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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문학전집
전6권
한용운
태학사 2011.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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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권 님의 침묵 외(시)
제2권 흑풍黑風(장편소설)
제3권 박명薄命(장편소설)
제4권 죽음 외(소설)
제5권 삼국지三國志(역술)
제6권 조선독립의 서書 외(산문)

저자 소개 1

韓龍雲, 만해, 한유천

승려·시인·독립운동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에서 몰락한 양반 출신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이며, 용운은 법명, 호적상이름이자 본명은 한정옥이다. 6세 향리의 사숙에서 한문을 배웠고, 9세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서경』 등을 통달하여 총명한 어린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풍습이 그러함에 따라 14세 향리에서 천안 전씨全氏 전정숙과 일찍 혼인하였으나, 집을 나가 떠돌고 출가하기를 반복했다. 가출하여서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고, 고향 홍성을 떠나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불교서적을 탐독했다. 21세에 강원도 인제군 설악
승려·시인·독립운동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에서 몰락한 양반 출신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이며, 용운은 법명, 호적상이름이자 본명은 한정옥이다. 6세 향리의 사숙에서 한문을 배웠고, 9세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서경』 등을 통달하여 총명한 어린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풍습이 그러함에 따라 14세 향리에서 천안 전씨全氏 전정숙과 일찍 혼인하였으나, 집을 나가 떠돌고 출가하기를 반복했다. 가출하여서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고, 고향 홍성을 떠나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불교서적을 탐독했다. 21세에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백담사 등지를 전전하였고, 이때를 전후해서 세계여행을 계획하였다.

1894년 동학군에 가담하여 투쟁하다 실패했다. 1896년 설악산 오세암에 은거, 수년 간 불경을 공부하는 한편 근대적 교양서적을 읽어 서양의 근대사상을 접했다. 1904년(26세) 설악산 백담사에 들어가 불목하니 노릇을 하다가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27세 백담사에서 김연곡사金蓮谷師에게서 득도. 백담사에서 전영제사全泳濟師에 의하여 수계受戒. 백담사에서 이학암사李鶴庵師에게 『기신론』, 『능엄경』, 『원각경』 등을 수료. 29세 강원도 건봉사에서 수선안거(최초의 禪수업)를 성취하였다.

30세 강원도 유점사에서 서월화사徐月華師에게 『화엄경』을 수학하였고 4월, 일본의 시모노세키, 교토, 도쿄, 닛고 등지를 주유하며 신문물을 시찰하였다. 도쿄 조동종 대학에서 불교와 서양 철학을 청강하였으며, 10월, 건봉사 이학암사에서 『반야경』과 『화엄경』을 수료하였다. 31세에 강원도 표훈사 불교 강사에 취임하였고 1910년(32세) 『조선불교유신론』을 백담사에서 탈고, 1911년(33세) 박한·진진웅·김종래·장금봉 등과 순천 송광사, 동래 범어사에서 승려 궐기대회를 개최하고 한일불교동맹 조약 체결을 분쇄하였다. 1913년(35세) 불교강연회 총재에 취임하였고 『조선불교유신론』을 불교서관에서 발행하였다.

1914년(36세) 『불교대전』을 범어사에서 발행하고 1917년(39세) 『정선강의 채근담』을 신문관에서 발행하였고 항일 투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12월 3일 밤 10시쯤 오세암에서 좌선하던 중 바람에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의정돈석擬情頓釋이 되어 진리를 깨치고, 오도송을 남겼다. 1918년 청년계몽운동지 [유심]지를 창간했다. 1919년(41세) 3.1운동을 주도,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의 자구 수정을 하고 공약삼장을 첨가하였다. 1923(45세)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적극 지원하였고, 민립대학 설립 운동을 지원하는 강연을 하였다.1924년 불교청년회 회장, 총재를 역임하였다.

1925년(47세) 오세암에서 『님의 침묵』을 탈고하엿다. 1927년(49세) 1월 신간회를 발기하였으며, 5월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겸 경성지회장에 뽑혔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민중대회를 개최하였다. 1931년(53세) 월간 [불교]지를 인수하였고 청년승려비밀결사 만당卍黨의 영수로 추대되었으며, 1932년(53세) 조선불교 대표인물 투표에서 최고득점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한용운 422표, 방한암 18표, 박한영 13표, 김태흡 8표, 이혼성 6표, 백용성 4표, 송종헌 3표, 백성욱 3표, 3표 이하는 생략. 불교지 93호에 발표됨). 1933(54세) 유숙원씨와 재혼하였고, 이때를 전후하여 『유마힐소설경』을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벽산 스님이 집터를 기증하고, 몇 분의 성금으로 성북동에 심우장尋牛莊을 지었으며, 이때 총독부 돌집을 마주보기 싫다고 북향으로 짓도록 하였다.

1940년(62세) 『불교』지 2월호에 『유마힐소설경』 연재를 시작하였고, 1943년(65세) 조선인 학병의 출정을 반대하였다. 1944년(66세) 6.29 심우장에서 영양실조로 입적하였으며 유해는 미아리 화장장에서 다비한 후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한용운은 불자의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민중에게 독립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등 사회 참여가 활발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3·1운동에 가담하고 독립선언서를 공개하여 낭독하는 등의 활동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1926년에는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는데, 기존의 시조 형식을 깬 산문시 형태를 취했으며, 향토적 정서가 묻어나는 언어와 서민적인 시어 활용으로 민중정신을 반영했다. 독립을 향한 열망, 자연 등을 ‘님’으로 표현했고,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화법으로 검열을 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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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0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000쪽 | 5242g | 규격외
ISBN13
9788959664467

출판사 리뷰

엮은이가 직접 발굴해낸 만해 한용운의 '일본에서 쓴 시'를 비롯하여
1970년대 첫 한용운전집이 간행된 이래 학계의 연구 성과를 총망라,
그간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던 한용운의 「삼국지」 추가,
텍스트를 현대 국어 표기법에 따라 정리하고 난해한 어구에는 주석을 붙였으며,
편집 과정에서 기존에 누락되었던 많은 부분을 복원해낸
한용운 문학 '정본'의 탄생!


우리 근세사에 유례없는 르네상스인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 그의 업적 가운데서도 가장 빛나는 문학적 성과를 여섯 권의 책에 담아 복원하였다. 한국불교의 근대화를 이끈 선승이자 조국 독립에 앞장선 저항적 지식인이며 우리 문학사에 누구보다도 고결한 시언어를 각인시킨 만해의 글쓰기를 서울대 국문과의 권영민 교수가 문학의 범주 안에서 재정리하였다. 최초 발표 지면을 일일이 추적하여 판본을 대조하고, 한용운전집이 처음 출간된 1973년 이래 문학 분야에서 새로이 축적된 연구 성과를 총망라하여 텍스트를 정비, 주석하고 해제함으로써 21세기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한용운 문학의 정본을 마련한 것이다.
전체 여섯 권 가운데 제1권 「님의 침묵沈? 외」는 시집 「님의 沈?」에 수록된 시와 한용운이 신문 잡지에 발표한 시와 시조, 한시를 모두 실었다. 제2권과 제3권은 한용운의 장편소설 「박명薄命」과 「흑풍黑風」을 각각 수록하였고, 제4권 「죽음 외」는 유고 형태로 남았던 소설 「죽음」과 연재 중단으로 미완된 소설 「철혈미인」 「후회」를 함께 실었다. 제5권에는 한용운 평역의 「삼국지」(역시 연재 중단으로 미완됨)를 실었다. 제6권 「조선독립의 서書 외」에는 한용운이 잡지 신문에 발표한 여러 논설과 수필을 실었다.

문사文士 한용운을 꽃 피우다
한용운은 충남 홍성의 외진 촌락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했다. 부친의 가르침에 힘입어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고 가난한 백성을 구해야 한다는 큰 뜻을 세웠고, 이후 동학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동학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몸을 피하여 설악산 오세암에 입산, 불도佛道를 닦기 시작한다. 이때가 스물이 훨씬 넘어서다. 일본의 세력이 날로 확대되던 1908년 일본에 건너가 새로운 문물을 두루 살피고 돌아와 경술국치(1910)를 당하자 망국의 한을 품고 만주를 떠돌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불교에 대항하여 침체한 한국불교의 혁신을 내세우면서 유명한 「불교유신론佛敎維新論」을 발표하였고, 「불교대전佛敎大典」을 펴내고 「유심惟心」 「불교佛敎」 등의 잡지를 간행하면서 ‘조선불교청년총동맹’을 조직하여 대중 불교의 실현에 앞장섰다. 이러한 운동은 종교적인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고 민족의 독립운동으로 확대되었다. 1919년 불교계를 대표하여 3.1운동에 참가한 한용운은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어 3년 동안 투옥되었으며, 옥중에서 「朝鮮獨立에 對한 感想의 大要」(속칭 「조선독립의 서」)라는 명문을 기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한평생을 바쳐 투쟁하며 열망했던 조국의 광복을 끝내 보지 못하고 1944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시집 「님의 沈?」을 비롯하여 많은 한시漢詩와 시조를 발표하고, 신문과 잡지에 수편의 중?장편소설을 연재하는가 하면, 동양 최대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삼국지」 역술, 종교와 시사?신변잡기에 대해 숱한 논설과 수필을 쏟아냈다. 그가 현실에서 마주한 문제의식은 그의 문학적 상상력과 반응하여 또다시 한 경계를 열어 보인다. “그의 고결한 시정신은 그의 투철한 역사의식과 함께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그의 소설에 그려진 폭넓은 세계관은 그가 추구하던 삶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일면이 되고 있다. 한용운의 위대성이 그의 고난의 삶과 그 의지적인 자세에서만이 아니라, 그가 남긴 문학을 통해서 크게 발현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일”(권영민, 「「한용운문학전집」을 간행하며」)이다.

정서적 공감을 확산해내는 시적 대화 공간
“한용운의 시적 글쓰기는 한학의 교양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는 시집 「님의 沈?」을 위해 일상적인 생활에 뿌리박고 있는 고유한 한국어의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살려 낼 수 있는 서정적 발화의 형태를 찾아낸다. 그것은 자체 내에서 완결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개별적이지만 아주 특이한 대화적 공간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시적 대화의 공간 속에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이 서정적 발화의 방식은 그 시적 의미의 단조로움이나 시정신의 소박함을 넘어서서 일상적인 생활 감정까지 모두 포괄하기 때문에 정서의 공감 영역을 더욱 확대시켜 놓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특징은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하기 이전에 발표한 한용운의 논설들이 대부분 난삽한 한문 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점을 견주어 볼 때, 더욱 그 시적 성과를 돋보이게 만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권영민, 「한용운, ‘님’과 그 존재의 시적 인식」)

제1권 「님의 침묵 외」는 그의 첫 시집 「님의 沈?」에 수록한 시들과, 이후 심우장 시절의 시, 그리고 한시의 총 3부로 나누어 정리하였고, 발표 당시의 원문과 현대어본을 함께 실었다. 원문에는 주석을 붙이고 발표 지면을 모두 밝혔다. 특히 엮은이가 직접 발굴해낸 일본 조동종 대학림의 잡지 「화융지和融誌」에 발표된 한용운의 한시까지 수록하여 명실상부한 한용운 시 전집을 구성하였다.

시적 자세로 구명하는 인간 실존과 도덕의 가치
“만해는 시인이지만 시인만은 아니며, 소설을 썼지만 소설가만은 아니다…… 만해는 소설이라는 것을 인간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삶의 현실적인 조건을 넘어서는 곳에 그의 소설이 자리하게 한다…… 당대의 비평적 논리를 대변하고 있던 사실주의 미학이나 모더니즘적 방식이 모두 만해의 소설을 이해하는 데에 적절하지 못했던 것임을 알아야만 한다. 만해의 소설은 삶의 전체성을 지향하거나 반영의 충실성을 의도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고, 개인의 내면과 왜곡된 현실의 아이로니를 추구하는 방법과도 일정한 거리를 둔다. 만해의 소설은 당대적인 현실의 디테일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면서도 강렬한 인간의 감정 또는 인간 정신의 어떤 정수를 포착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삶을 바라보는 서사적인 원리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시적인 자세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권영민, 「한용운의 소설과 도덕적 상상력」)

제2권 「흑풍」(장편소설)은 청나라를 무대로 펼쳐지는 중국 젊은이들의 혁명을 빌려 일본의 군국주의를 비난하는, 정치색이 강한 작품이다. 서두에서부터 지주 계층의 비인간적인 착취에서 비롯되는 계급적인 갈등과 모순이 묘사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점차 사회 혁명의 대열로 나아가게 된다. 그 혁명은 매우 단호하고 격렬하며 투쟁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조선일보」 1935년 4월 9일부터 1936년 2월 4일까지 총 243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제3권 「박명」(장편소설)은 강원도 산골에서 계모의 구박을 받으면서 자라던 여주인공 순영의 파란 많은 생애를 그렸다. 자연적 시간의 순차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지만, 단순한 통속적 흥미에서 벗어나 소설 속 주인공의 삶에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는 인간의 도덕적 본질을 제시하여 현실의 문제를 포괄하려는, 한용운 소설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조선일보」에 1938년 5월 18일부터 1939년 3월 12일까지 총 223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제4권 「죽음 외」는 세 작품을 수록하였다. 첫 작품 중편소설 「죽음」은 주인공이 경성신문사에 폭탄을 투척하는 엄청난 사건으로 시작되는 전체 24장의 완결된 이야기이다. 유고로서 창작 연대가 시집 「님의 침묵」보다 앞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후회」는 경성에 아내를 두고 동경으로 유학 온 남성 주인공이 세련된 신식 여성을 만나 파탄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장편소설인데, 1936년 6월 27일부터 「조선중앙일보」에 발표되다가 연재가 중단되는 바람에 미완으로 남게 되었다. 「철혈미인」은 중국 군벌의 거두 손전방孫傳芳 암살 사건이 소재다. 범인이 당년 30세의 미녀였다는 사실에 주목하였으나, 「신불교」 제1.2집에 2회 연재되다가 중단되었다.

한용운의 삼국지, 그 첫 장을 열다

“한용운의 「삼국지」가 갖는 서지학적 문학사적 의미는 ‘삼국지 판본사’에 있어 요컨대 「삼국지」 텍스트의 근대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혹독한 암흑기를 견뎌내려는 독자들의 도피주의 심리와 일제에 대한 은근한 저항의 정치적 무의식을 내포한 판본이라는 점에 있다.” (조성면, 「한용운 「삼국지」의 판본 상의 특징과 의미」, 「한국학연구 제14집」)
제5권 「삼국지」는 ‘모본(毛本)’을 저본으로 평역한 것으로, 긴장감.압축감 있게 구성.서술한 점이 돋보인다. 양백화, 박태원의 「삼국지」(「매일신보」 「신시대」에 각각 연재)와 함께 대표적인 국역 판본으로 손꼽힌다. 1939년 11월 1일부터 「조선일보」 석간에 연재했지만 1940년 8월 11일 신문이 폐간되면서 미완으로 남았다. 형주를 둘러싼 갈등 장면에서 중단되고 있으므로 전체 이야기의 중반 정도에서 끝난 셈이다.

민중과의 소통을 모색한 명문名文
“한용운의 초기 논설들은 1919년 3.1운동을 전후한 시기까지 국한문체로 구성되었으며, 서법으로 볼 때 장중한 느낌을 주는 ‘-러라’ 체의 서술형 문장을 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비록 한자 혼용이긴 하지만 세련된 논설 양식과 국문체를 확립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물론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와 문체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국문 글쓰기를 통한 민중과의 소통에 대하여 한용운 자신이 꿆별한 관심을 가졌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1930년대에 『불교』에 발표한 계몽적 논설은 이 같은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한용운 논설이 명문으로서의 요건을 고루 지니고 있음은 이를 통해 입증이 가능하다.” (권영민, 「명문으로 손꼽히는 한용운의 논설」)
제5권 「조선독립의 서書 외」는 혁명가이며, 선승이자, 시인으로 살아야 했던 인간 만해의 다층적 면모와 그의 시대가 산문 속에서 오롯이 구현된다. 근대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조선독립의 서」, 「유심」에 발표했던 초기의 논설들, 이후 잡지와 신문에 발표한 논설과 수필, 여정과 답사를 기록한 글, 불교와 종교에 관한 논설, 이렇게 다섯 부로 나누어 그의 문장을 조망할 수 있게 하였다.

40년 만의 새로운 총괄 작업
한용운의 저술을 총괄하는 작업은 1973년 신구문화사에서 「한용운전집」 전6권(제1권 님의 침묵 외/조선독립의 서, 제2권 조선불교유신론 外/불교논설집, 제3권 불교대전/유마힐소설경 강의/십현담주해, 제4권 채근담/근풍사 及 건봉사말사사적, 제5권 흑풍/후회/철혈미인, 제6권 박명/죽음)을 발행한 것이 처음이었고, 1980년에 한 차례 증보 재판이 있었다. 이 전집이 절판된 후에도 문학의 영역에서 다양한 연구 업적이 나왔고 새로운 자료 발굴도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조사 연구의 성과를 기반으로 지금의 「한용운문학전집 1~6』을 새롭게 발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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