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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프랑스인
음식을 소재로 한 체호프의 단편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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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어리석은 프랑스인… …………………………………………7
이반 마트베이치… ………………………………………… 15
성주간 전날 밤 ……………………………………………… 27
생굴… ……………………………………………………… 37
삶의 권태로움 ……………………………………………… 45
사이렌 … …………………………………………………… 75
이오느이치 … ……………………………………………… 86
사랑에 대하여 ………………………………………………124
구즈베리 … …………………………………………………142
경박한 여자… ………………………………………………162
술안주 … ……………………………………………………211
아가피야 … …………………………………………………217
아리아드나… ………………………………………………236
작품해설:체호프의 문학에서 음식과 인간의 욕망 ……287

저자 소개 2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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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n Pavlovich Chekhov,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사실주의 희곡의 대가로 불리는 안톤 체호프(Антон П. Чехов, 1860∼1904)는 러시아 남부의 흑해 연안 항구 도시인 타간로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파벨은 항구도시 타간로크에서 잡화점을 운영했다. 그는 자식들에게 새벽 기도와 성가대 활동을 강요했는데, 그것이 작가의 유년 시절의 지각(知覺)을 지배하게 된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파산해 온 가족이 모스크바로 떠난 후 체호프는 타간로크에 혼자 남았다. 이때부터 체호프는 독립심과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갖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스스로 학비를 벌며 공부하던 그는 고학으로 중등학교를 마친 뒤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사실주의 희곡의 대가로 불리는 안톤 체호프(Антон П. Чехов, 1860∼1904)는 러시아 남부의 흑해 연안 항구 도시인 타간로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파벨은 항구도시 타간로크에서 잡화점을 운영했다. 그는 자식들에게 새벽 기도와 성가대 활동을 강요했는데, 그것이 작가의 유년 시절의 지각(知覺)을 지배하게 된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파산해 온 가족이 모스크바로 떠난 후 체호프는 타간로크에 혼자 남았다. 이때부터 체호프는 독립심과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갖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스스로 학비를 벌며 공부하던 그는 고학으로 중등학교를 마친 뒤 1879년 모스크바대학 의학부에 입학했다. 재학 중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단편소설들을 쓰기 시작했고, 졸업 후 의사로 근무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에 나섰다. ‘안토샤 체혼테’, ‘내 형의 아우’, ‘쓸개 빠진 남자’와 같은 필명으로 생계를 위해 유머 잡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초기 단편들은 쉽게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소품들이 대부분이었다. 1885년 12월 체호프는 레이킨의 초대를 받아 페테르부르크로 가게 된다.

거기서 드미트리 바실리예비치 그리고로비치와 알렉세이 세르게예비치 수보린을 알게 된다. 1884년 의사 자격을 얻은 후 결핵을 앓는 와중에도 의료 봉사와 글쓰기를 병행하며 풍자와 유머가 담긴 뛰어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리고로비치는 체호프의 『사냥꾼』을 읽으면서 그의 위대한 재능이 소모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이 무렵 그에게 당대 최고의 작가 그리고로비치가 천재적인 재능을 낭비하지 말고 문학에 집중하라는 조언의 편지를 보내 온다.

이 충고 이후 1887년 봄 무렵부터 체호프는 이전과는 다른, 보다 객관적인 작가로 변모하게 된다. 한편으로 수보린은 체호프에게 고정 지면을 내주었고, 경제적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그의 경제적 후원 덕택에 체호프는 원고 마감 시간과 주제의 제약과 같은 현실적 부담에서 벗어나 전업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황야』, 『지루한 이야기』, 『등불』 등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히게 되었고, 30세 때 시베리아 횡단 여행을 기점으로 사회문제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다루며 사회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작가로서의 자각을 새로이 하여 단편집 『황혼』(1887)으로 푸슈킨상을 받고 희곡 『이바노프』(1887), 중편소설 『대초원』(1888)을 발표하며 그동안의 스타일에 작별을 고했다. 1890년에는 사할린 섬으로 가 당시 제정 러시아의 유형 제도를 면밀히 관찰하고 이에 관한 르포르타주 『사할린 섬』(1895)을 발표한다. 이 작품은 대중의 엄청난 주목을 받았으며, 사할린에서 만난 하층민 유형수들과 정부 제도의 부조리는 이후 발표되는 그의 작품이 민중의 삶에 더욱 밀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1892년 모스크바 근교의 멜리호보에 정착한 작가는 왕성한 창작열로 『6호실』(1892), 『문학 선생』(1889∼1894), 『롯실트의 바이올린』(1894), 『대학생』(1894), 『3년』(1895), 『다락이 있는 집』(1896), 『나의 삶』(1896), 『갈매기』(1896), 『농군들』(1897)과 같은 후기 걸작들을 집필했다.

한편으로 농민들을 무료로 진료하고, 톨스토이, 코롤렌코와 함께 기근(饑饉)과 콜레라 퇴치 자선사업을 펼쳤으며, 학교와 병원 건립 등 사회사업에도 참여했다. 1898년 지병인 결핵이 악화되어 크림 반도의 얄타로 이사한 체호프는 우울과 고독 속에서 나날을 보냈는데, 모스크바 예술극장 여배우 올가 크니페르와의 결혼으로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다. 이 시기에 그는 『용무가 있어서』(1899), 『사랑스러운 여인』(1899),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1899), 『바냐 외삼촌』(1899), 『골짜기에서』(1900), 『세 자매』(1901), 『약혼녀』(1903) 등을 발표했다.

1904년 1월 17일 체호프의 생일에 초연된 [벚나무 동산]과 창작 25주년 축하연은 그에게 무한한 기쁨을 주었지만, 그의 건강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같은 해 6월 독일 바덴베일레르(Баденвейлер)로 아내 올가 크니페르와 요양을 떠나 거기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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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졸업했으며, “안톤 체홉의 장르연구: 패러디를 중심으로”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대학교 러시아어과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논문으로 “안톤 체홉의 작품연구: 문체와 언어”, “체홉의 작품에서 음식과 욕망”, “체홉의 아동을 위한 텍스트에 나타난 서사구조” 등이 있고, 주요저서로는 <한-러 비교문학연구>, <체홉의 소설과 문학세계>, <안톤 체홉 ? 새로운 형식을 위하여>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크로포트킨의 <러시아문학 오디세이>,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 체홉의 <연극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졸업했으며, “안톤 체홉의 장르연구: 패러디를 중심으로”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대학교 러시아어과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논문으로 “안톤 체홉의 작품연구: 문체와 언어”, “체홉의 작품에서 음식과 욕망”, “체홉의 아동을 위한 텍스트에 나타난 서사구조” 등이 있고, 주요저서로는 <한-러 비교문학연구>, <체홉의 소설과 문학세계>, <안톤 체홉 ? 새로운 형식을 위하여>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크로포트킨의 <러시아문학 오디세이>,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 체홉의 <연극이 끝난 후>, 체홉의 <어리석은 프랑스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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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125*182*30mm
ISBN13
9791186430590
KC인증
kc마크 인증유형 : 확인 중
인증번호 : -

책 속으로

파이를 한 조각 떼어서 손가락으로 요렇게 살살 만지작거리면 행복해집니다. 그걸 입에 넣으면, 기름이……. 파이 속은 달걀과 고기의 내장과 양파가 잔뜩 들어 있고 육즙이 풍부하죠…….”
서기는 눈알을 굴리면서 입을 귀밑까지 일그러뜨렸다. 명예 치안 판사는 아마도 쿨레뱌카를 상상하고 있었던지 한숨을 푹 내쉬면서 손가락을 까딱거리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지역 판사는 중얼거리면서 다른 창문 쪽으로 옮겨 갔다.
“두 조각을 먹고는 세 번째 조각은 야채 수프를 마실 때 먹으려고 남겨 두지요.” 서기는 열심히 말을 이어갔다. “쿨레뱌카를 다 먹고 나면 식욕이 떨어지지 않도록 즉시 야채 수프를 달라고 하세요. 야채 수프는 아주 뜨거워야 해요. 소(小)러시아의 방식대로 햄과 소시지를 넣고 비트로 만든 보르시치 수프가 가장 좋지요. 거기에다 스메타나와 허브를 넣은 파슬리를 곁들이는 거죠. 내장과 신선한 간을 넣어 만든 라스솔리니크도 근사하죠. 만약 유럽식 수프를 좋아하신다면 수프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뿌리와 잎사귀를 같이 넣은 것이죠. 예를 들어서 당근, 아스파라거스, 콜리플라워 같은 법리학적으로 유사한 것들 말이예요.”
“참 근사한 음식이지…….” 의장이 종이에서 눈을 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곧 제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여보게, 제발 부탁이네! 이렇게 하다가 난 저녁때까지도 소수의견을 다 작성하지 못하겠네! 네 장째 버리고 있다구!”
--- p.79~80

랴보프스키는 차를 마시면서 올가 이바노브나에게 그림 그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보람이 없고 재미없는 예술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화가도 아니며, 자기에게 재능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바보들이라고 하더니 갑자기 칼을 집어들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신의 가장 잘 된 스케치를 찢어버렸다. 그러고는 차를 마신 후 그는 우울하게 창가에 앉아서 볼가 강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볼가 강은 더 이상 반짝거리지 않았다. 흐릿하고 차갑게만 보였다. 모든 것이 황량하고 우울한 가을을 연상시켰다. 자연은 볼가의 강 연안에서 빛나는 현란한 초록색과 다이아몬드 같은 햇살과 푸른 하늘과 축제의 광채를 끌어모아 다음 해 봄까지 가슴에 묻어놓은 것 같았다. 강 위를 날아가는 까마귀 떼들이 올가를 놀렸다.
“알몸이네! 알몸이야!”
랴보프스키는 까마귀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자신은 완전히 지쳤으며 재능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일시적이고 상대적이며 어리석어 보였다. 그는 이 여자에게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는 기분이 좋지 않았고,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올가 이바노브나는 칸막이 뒤 침대 위에 앉아서, 그녀의 아름다운 연한 황갈색의 머리칼을 빗질하며, 자기 집의 응접실과 침실과 남편의 서재를 떠올렸다.

--- p.183

출판사 리뷰

음식이 곧 그 사람이다

먹는 행위는 단지 생물학적인 기본욕구를 만족시키는 것 이상이다. 음식물 섭취는 문화적으로 틀이 잡히고 사회적으로 결정된 주요한 행위이다. 음식이란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먹기에도 좋고 생각하기에도 좋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고 주장했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해석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충분히 이해 된다. 따라서 이제는 기호학자나 문화 이론가들도 음식문화 속에 등장하는 음식의 의미들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기 시작했다.

문학작품들에서 음식묘사는 “화려한 향연을 그린 장면에서, 그리고 식탁을 둘러싼 자리를 지정 받는 것부터 손님들의 시중 받는 순서까지 모든 것이 계급과 성에 대한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엄격하게 반영하는” 격식을 따르고 있다. 물론 문학텍스트가 아닌 다른 면에서 음식을 묘사하는 작가들도 많다. 톨스토이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로서 금육을 주장하며 행동으로 실천한 작가로 유명하다. 어떤 작가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을 비꼬는 데에 음식을 이용해 표현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새뮤얼 존슨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서 그들이 말(馬)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고 산다고 비난했다.

이렇게 먹는 음식이 곧 그 사람이며, 자기와 함께 식사를 하지 않으면, 또는 자신이 먹는 음식과 같은 것을 먹지 않으면, 곧 그 사람은 적이라는 의미를 갖기도 했다. 실제로 어떤 문화권에서 ‘적’에 해당하는 낱말을 풀어보면 글자 그대로 ‘입맛이 다른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회는 모임이고 모임에는 음식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사회화란 사람이 살면서 사회의 가치와 문화를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인간의 사회화는 음식을 먹는 행위로부터 비롯된다. 즉 아기가 처음 젖을 빨 때 이미 ‘사회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유년기 음식섭취의 경험은 삶의 원초적 토대가 되고, 어린 시절 음식과 관련된 갖가지 상황들은 평생 기억에 남는 법이다. 게다가 사람에게 제공되는 음식은 그 자체가 당시 사회의 생태적 조건과 역사에 의해 선택되고 가공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사람들 사이의 교류에 의해 이루어지고, 이때 친밀한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 음식이다.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사실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형식적인 수준을 넘어 한 단계 밀착된 관계로 진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체호프의 음식 묘사와 그것을 먹는 모습의 묘사에서 우리는 묘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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