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독일 통일의 3단계 전개 과정
동방정책에서 내적 통합까지
최영태
아침이슬 2018.02.26.
베스트
정치/외교 top100 2주
가격
15,000
10 13,500
YES포인트?
75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변경
배송비?
유료 (도서 15,000원 이상 무료)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책소개

목차

저자의 글
머리말

1단계 : 동방정책―절반의 통일

1. 브란트의 동방정책
동방정책의 맹아
동방정책의 시작
유럽 평화 속의 독일 정책
동방정책의 성과
동방정책에 따른 영광과 시련

2. 동방정책의 계승
헬무트 슈미트 정부의 동방정책
헬무트 콜 정부의 동방정책

2단계 : 정치적 통일

1. 동독 혁명
소련과 동유럽의 자유화운동
대탈출
베를린 장벽의 붕괴

2. 통일 준비
통일 논의의 시작
동독의 변신 노력

3. 통일 독일의 탄생
동독의 민주정부 수립
통일 조약들
2+4 회담
통일 독일의 출현

3단계 : 내적 통합

1. 통일국가 체제의 수립
정치·군사적 통합
행정·교육기관의 통합
과거 청산
동독 출신 엘리트의 변화

2. 경제 통합과 통일 후유증
경제 통합
경제 통합의 후유증
통일 비용과 통일 방식의 적절성 논쟁

3. 내적 통합의 진전과 과제
내적 통합의 진전
복지국가가 갖는 통합적 기능

저자 소개 1

전남대학교 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문학박사). 전남대학교에서 30여 년 동안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는 명예교수이다. 대학에 재직하는 동안 5?18 연구소장, 교무처장, 인문대학장 그리고 한국독일사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1989년부터 1990년까지 독일에 머물면서 베를린 장벽 붕괴 및 독일통일 과정을 지켜봤다. 이후 독일과 한반도의 분단극복정책과 통일 과정에 대한 비교연구,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한 연구에 큰 관심을 가졌다. 시민운동에 참여하여 광주흥사단 및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공동의장, 광주 도시철도 2호선 공론화
전남대학교 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문학박사). 전남대학교에서 30여 년 동안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는 명예교수이다. 대학에 재직하는 동안 5?18 연구소장, 교무처장, 인문대학장 그리고 한국독일사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1989년부터 1990년까지 독일에 머물면서 베를린 장벽 붕괴 및 독일통일 과정을 지켜봤다. 이후 독일과 한반도의 분단극복정책과 통일 과정에 대한 비교연구,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한 연구에 큰 관심을 가졌다. 시민운동에 참여하여 광주흥사단 및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공동의장, 광주 도시철도 2호선 공론화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빌리 브란트와 김대중』, 『독일 통일의 3단계 전개과정』, 『베른슈타인의 민주적 사회주의론』 등이 있다. 공저?역서로 『김대중의 사상과 정치』, 『5?18, 그리고 역사』, 『미국을 바꾼 혁신주의 대통령들』 등이 있다.

최영태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2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524g | 154*224*30mm
ISBN13
9788964291436

출판사 리뷰


집권당이 바뀌어도 지속적으로 추진된 동방정책

1969년 집권한 사민당의 브란트 총리는 ‘접근을 통한 변화’라는 슬로건으로 상징되는 동방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동독을 사실상의 국가로 인정하고 1972년 동·서독 기본 조약을 체결해 동독과 서독에 각각 상주대표부를 설치하고 동·서독 간 긴장 완화와 인적 교류 활성화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다. 브란트는 독일의 통일은 유럽의 평화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판단해 외교적으로는 서방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1971년 모스크바 협정과 바르샤바 협정, 1973년 체코슬로바키아와의 협정을 체결해 동유럽 공산국가들과의 교류 협력을 강화했다.
브란트의 뒤를 이어 1974~1982년 재임한 슈미트 총리는 동독 및 동유럽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정책을 계속 추진했고 인적·물적 교류를 크게 확대했다.
1982년 정권 교체로 집권한 기민/기사당과 콜 총리는 야당 시절 동방정책을 비판 견제했던 것과는 달리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동·서독 간의 인적 교류와 동독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확대했다. 소련 등 공산권 국가들과의 관계도 강화되었고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의 서독 방문도 이루어졌다. 1987년에는 서독을 방문한 동독인이 5백만 명이나 되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될 때까지 20년 동안 동방정책은 집권당이 바뀌어도 중단 없이 추진돼 ‘절반의 통일’을 이루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정치적 통일

1989년 11월 9일 밤 냉전 체제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동독의 민주 혁명과 동독 경제의 붕괴, 지속적으로 추진된 동방정책 등이 만들어 낸 한 편의 드라마였다. 콜 총리는 11월 28일 연방의회 연설에서 독일 통일을 위한 ‘10개 항 프로그램’을 제시하면서 통일 과정의 주도권을 잡았다. 1990년 3월 18일 동독에서 최초의 민주선거가 실시되어 신속한 통일을 주장한 동독 기민당이 승리했다. 이로써 통일은 콜 총리의 로드맵에 따라 진행되었다. 동·서독 사이에 ‘화폐, 경제 및 사회 통합 조약’이 발효되었다. 동·서독 마르크화가 통일되었고 서독의 사회적 시장경제의 법적·제도적 틀이 동독 지역까지 확대되었다. 1990년 8월 31일에는 ‘통일 조약’까지 체결되어 통일 후 시행될 구체적인 로드맵과 내용이 정해졌다. 1990년 10월 3일 분단 45년 만에 드디어 정치적 통일이 완성되었다.
독일 통일은 국제정치 상황의 변화 흐름을 잘 활용한 서독 외교력의 승리이기도 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폴란드와 헝가리의 개혁과 동독혁명을 촉발했고, 고르바초프가 독일 통일에 대해 유연하고 긍정적으로 임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 1990년 동·서독과 미국·소련·영국·프랑스로 구성된 ‘2+4 회담’에서 독일 통일에 대한 국제적 동의가 이루어진 것은 동방정책이 추구해 온 ‘유럽 평화 속의 독일 정책’의 성공을 의미했다.

내적 통합 과정과 통일 후유증

두 국가가 45년간 지속된 서로 다른 체제를 극복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내적 통합 과정을 거쳐야 했다. 내적 통합의 첫 단계는 통일국가로서의 외형적 틀과 자결권의 완전 회복에 초점을 맞춘 정치적·군사적 통합이었다. 행정·교육의 통합과 동독의 비밀경찰 슈타지 문제 등 과거사 청산 작업도 뒤따랐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동독 지역의 경제적 재건과 생활수준의 균등화였다.
신속한 통일은 많은 후유증을 낳았고 막대한 통일 비용이 들었다. 동·서독 마르크화의 1:1 교환으로 동독 기업들의 경쟁력은 완전히 상실되어 40%의 제조업체가 문을 닫아 실업자가 대량으로 발생했다. 이와 함께 임금의 급속한 인상, 소유권 문제의 혼선 등에 따른 투자 지체 등으로 통일 이후 2013년까지 통일 비용으로 2조 유로나 투입되었다. 동독인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생활수준과 높은 실업률, 동독 고위직에 서독 출신 인사들의 대거 투입 등으로 불만이 높아 ‘오씨’와 ‘베씨’ 문제, 옛 동독 시절을 그리워하는 ‘오스탈기’ 현상도 나타났다. 서독인들은 막대한 통일 비용을 위한 세금 인상이 불만이었다. 이런 사회적 후유증은 정치적 균열로 이어지고 있으며 내적 통합 과정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13,500
1 1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