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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문
역자서문 한국어판 서문 증보판을 내며 조선·고려의 왕도 들어가는 글 조선 왕도 서울 고려 왕도 개성 낙랑·고구려·백제 낙랑 평양 고구려의 고분 백제 웅진(공주) 부여 익산 신라 왕도 경주 경주의 추억 신라 왕도 왕도의 사찰Ⅰ-왕도 내외 왕도의 사찰Ⅱ-불국사와 그 부근 왕도의 사찰Ⅲ-남산의 불적 신라의 능묘 韓(한)의 사찰 서장 신라의 자취를 남기고 있는 절들 고려·조선조의 절들 성·객사·문묘·주택 성 객사·사고 문묘·서원·옛 선비들의 주택 글을 마치며 저자 후지시마 가이지로 전 도쿄대 교수 역자 이광노 서울대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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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의 건축문화』는 후지시마 가이지로(藤島亥治郞) 전 도쿄대 교수가 1922년부터 1986년까지, 60여 년에 걸쳐 한반도 구석구석을 발로 뛰며 우리의 문화재들을 기록한 기념비적 저작물이다. 지은이 후지시마 교수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자타가 공인하는 일본 최고의 고건축학자다. 후지시마 가이지로가 책 서문에서 “연구조사를 위해 현장을 편력한 발자취는 한반도 전역에 미친다”고 밝힌 것처럼 그의 조선 문화재에 대한 연구정신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후지시마와 조선을 연결한 고리는 도쿄(東京)제국대학 공학부 건축학과 스승인 세키노 다다시(關野貞)였다. 세키노 교수는 1902년 6월 27일 조선에 상륙, 전국을 일주하며 조선 고건축에 대한 일제조사를 벌였다. 세키노는 조선 강제 병합 이전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1930년대까지 경주와 평양, 부여를 비롯한 조선 각지의 고적조사와 발굴을 진두지휘한 거물 학자였다. 그는 한국의 건축과 유적조사, 특히 한대(漢代)의 세력권에 있던 낙랑(樂浪) 유물과 유적연구의 권위자였다. 세키노는 제자 후지시마가 도쿄대 졸업논문으로 『일한건축사론(日韓建築史論)』이란 테마를 정하자, 그를 주목했고, 1922년 경성고등공업학교(서울공대 전신)에 건축학과가 개설되면서 후지시마를 조교수로 불러들였다. 후지시마가 한반도 건축·고고·미술 연구의 개척자이며 은사인 세키노 다다시의 권유로 현해탄을 건넌 때는 만 23살 되던 때였다.
1922년 후지시마는 조선총독부 기사(技師·건축사)를 겸하며, 세키노의 지도 아래 조선건축사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후지시마는 연구를 위해 당시 건축 중이던 조선총독부 청사 현장실습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는 스승의 뒤를 이어 일제강점기 남북한의 건축과 유적을 현장조사를 통해 샅샅이 훑었다. 1926년부터 1928년까지 구미 유학을 다녀온 그는 1929년 5월 도쿄대 조교수로 귀국할 때까지 한반도 고건축 연구에 몰두했다. 1930년, 그가 『조선건축사론』이라는 단행본을 출간했고, 일본과 한국의 학계는 그의 이름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실린 조선건축에 관한 여러 논문 중에서도 경주의 시가배치도를 나름의 토대로 상상해 복원한‘신라왕경복원도(新羅王京復元圖)’는 80년이 가까워지는 지금도 가장 완벽한 신라 왕경지도로서 불후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그의 왕경 추정도는 과거와 현재 경주 일대에서 활발히 벌어지고 있는 각종 발굴의 성과가 그 정확성을 입증하고 있어 조사자들을 경악케 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후지시마가 복원한 왕경지도는 일제시대 당시의 경주 지형도를 기초로 했다는 점이다. 신라 왕경복원도와 함께 경주 황룡사 가람배치도에 관한 그의 또 다른 견해는 한국학계에 그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황룡사가 탑 하나에 금당 하나를 남북 일렬로 배치한 이른바 ‘1탑1금당’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는데, 1970~1980년대의 활발한 발굴조사로 1탑3금당식으로 밝혀지기 전까지 약 반세기 동안이나 이론(異論)을 용납하지 않는 통설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다. 이광노 서울대 명예교수는 1983년 12월부터 1년 동안 도쿄대 공학부 건축학과 스즈키 시게부미(鈴木成文) 교수의 연구실에 머물다, 1984년 도쿄대 구내서점에서 『한의 건축문화』를 발견하고 번역을 결심했다. 한국인도 아닌 사람이 한국 건축을 사랑하고 철저하게 연구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감동적이었다는 것이다. 1984년 10월 중순경, 이광노 교수는 후지시마 교수를 만나 한국어 출간을 허락받았다. 1976년 일본에서 출간된 『한의 건축문화』는 후지시마 교수가 6·25전쟁 이후 두 차례에 걸쳐 한국 전역을 광범위하게 시찰한 내용까지 담고 있어, 출간되자마자 일본 역사학계와 건축학계를 흥분시켰다. 저자 후지시마 교수는 이광노 교수에게 번역 출판을 승낙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귀중한 도표와 사진 등 원판을 사용하도록 해주었다고 한다. 이번 『韓의 건축문화』 증보판은 후지사마 가이지로가 1922년부터 1926년까지 한반도 전지역을 발로 뛰며 촬영한 170여컷의 흑백사진을 게재해 1976년 일본에서 출간한 원본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성공했다. 이 책은 저자가 일생 동안 연구해 온 한국 건축을 달관자 입장에서 기술한 책이다. 건축의 문외한(門外漢)도 쉽사리 읽을 수 있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 입증되는 확고한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건축사를 전공하는 이들은 물론, 한국 고건축에 관심 있는 건축가들이 한국 건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옮긴이 이광노 교수는 1986년 6월 『韓의 건축문화』를 국내에서 번역해 출간한 지 25년만에 재출간을 결정했다. 1970년대 이후 한국 건축·고미술·역사학도들의 ‘바이블’격 필독서였던 것처럼, 후지시마 교수의 한국 건축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의 치열한 연구정신이 한국 건축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후지시마 교수는 이광노 교수에게 한반도에 처음 건너왔을 때의 소감도 둘려주었다. 도쿄대 건축과 3학년생 후지시마가 여름방학 때인 1922년, 조선을 방문했을 때 조선총독부 청사를 신축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그때 일제는 청사를 신축한다며 기초공사를 위해 소나무 말뚝들을 박고 있었다. 후지시마는 “조선총독부가 세워질 그 언저리의 고궁 건축물들이 철거당하고 있는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다”면서 “그때의 충격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고 한다. 이광노 교수는 후지시마 교수가 자신에게 던진 말이 지금도 귓전에 생생하다고 역자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지금 조선총독부청사를 국립박물관으로 쓰고 있다고 들었다. 총독부 건물 속에 한국의 반만년 역사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스모 선수가 승부에서 지면 상투를 자르듯 이제라도 그 건물의 상투부분(돔 부분)을 잘라 버려라.” 후지시마 선생은 한국 정부가 총독부 건물 속에 귀중한 역사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것을 질책한 것이다. 이광노 교수는 “현재 경복궁은 완전히 원형복원이 됐고, 광화문은 제자리를 찾았다”면서 “이러한 사실들을 고인이 된 후지시마 가이지로 교수에게 고해야 할 것 같아 다시 펜을 든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