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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네 한솥밥
북한의 천재 시인 백석 동화시
백석
효리원 201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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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리원 대표 작가 대표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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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1

BAEK SEOK,白石,白奭,백기행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본명 백기행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필명은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 있었는데 주로 백석(白石)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경성문화 인쇄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본명 백기행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필명은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 있었는데 주로 백석(白石)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경성문화 인쇄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전 천재 시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오산소학교, 오산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오산고보 졸업 후,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춘해장학회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영어사범학과에 입학하였다. 김소월을 동경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으며,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1934년에 귀국하여 8·15 광복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영어교사로, [여성사], [왕문사] 등에서 근무하며 시작 활동을 했다. 1935년 [조광] 창간에 참여하였고, 같은 해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시작 활동 외에도 많은 외서들을 번역했다고 전해진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하였으며 같은 해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1939년 [여성]지 편집 주간 일을 사직하고 고향인 평북 지역을 여행하였다. 1940년 만주의 신징(지금의 장춘)으로 가서 3월부터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창씨개명의 압박이 계속되자 6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1942년 만주의 안둥 세관에서 일하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신의주를 거쳐 고향인 정주로 돌아왔다.

1946년 북조선예술총동맹이 결성된 후 1947년 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러시아 문학 번역에 매진했다. 1949년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의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었고 [아동문학]과 [조쏘문화] 편집위원을 맡으며 안정적인 창작활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간행하였으나 1958년 ‘붉은 편지 사건’ 이후 격렬한 비판을 받게 되면서 이후 창작과 번역 등 대부분의 문학적 활동을 중단했다. 1959년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의 국영협동조합 축산반에서 양을 치는 일을 맡으면서 청소년들에게 시 창작을 지도하고 농촌 체험을 담은 시들을 발표했으나, 1962년 북한 문화계에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창작 활동을 접었다. 1996년까지 삼수군 관평리에서 농사를 짓다가 사망했다는 내용이 드러났지만 정확한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수용하여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백석은 일제 강점기에도 모국어를 지키고자 하였다.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으며, 대표 작품으로 「여우난골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이 있다. 북한에서 나즘 히크메트의 시 외에도 푸슈킨, 레르몬토프, 이사콥스키, 니콜라이 티호노프, 드미트리 굴리아 등의 시를 옮겼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으며 수록된 시 「통영」, 「적막강산」, 「북방」 등 백석의 대표작들은 실향 의식을 바탕으로 서민들의 삶을 토속적인 언어로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한국의 대표 모더니즘 시인으로 평가받는 백석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백석의 다른 상품

그림 : 이정진
1978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강릉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였습니다. 대학미전과 뉴프론티어전에서 특선하였으며, 월간 「페이퍼」 크리스마스 카드 공모전과 사이버아트센터 예쁜 카드·엽서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그 동안 그림을 그린 책으로는 『파브르 곤충기』『시턴 동물기』『미안해요 사랑해요』『그림 형제』『이솝이야기』『팔랑팔랑 나비』등이 있습니다. 지금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1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56쪽 | 189*233*15mm
ISBN13
9788928101719

출판사 리뷰

우리나라 아동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대표 동화 시리즈!
창작 동화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 땅의 내일을 짊어질 어린이들의 마음밭을 살찌울 만한 감동과 용기를 주는 작품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이에 (주)효리원에서는 우리나라 아동 문학계를 대표하는 작가(이오덕, 권정생, 이현주, 정채봉, 이영희, 김요섭, 정채봉, 김병규 등)의 주옥 같은 작품만을 가려 “대표 작가 대표 동화” 시리즈를 펴내고 있습니다. 대표 작가 대표 동화 03은 북한의 천재 시인 백석의 동화시 『개구리네 한솥밥』입니다.

백석이 쓴 동화시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동화시’는 낯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작가들이 써 온 문학의 한 분야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화시는 1912년에 최남선이 쓴 「남잡이가 저잡이」입니다. 그 후 1933년에 윤석중이 동화시「잃어버린 댕기」를 발표하였고, 그 뒤를 이어 백석 시인이 우리나라 동화시의 맥을 이어 왔습니다. 동화시는 시의 형식에 이야기를 담은 것입니다. 쉽고 재미난 이야기를 운율 속에 실어 놓은 것이지요. 백석의 동화시에는 옛 시절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던 시절의 고향 냄새가 묻어 있습니다. 또한 광복이 되기 전 우리나라의 생활이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백석 시인의 작품을 읽고 그 속에 담긴 자유로운 문학 정신을 배우는 것은 뜻깊은 일이 될 것입니다.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지 보여 주는 이야기!
개구리가 쌀 한 말을 얻으러 형네 집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길을 가던 도중에, 개구리는 봇도랑에서 발을 다친 소시랑게, 길 잃은 방아깨비, 땅 구멍에 빠진 쇠똥구리, 풀대에 걸린 하늘소, 물에 빠진 개똥벌레를 차례로 구해 줍니다. 그래서 형네 집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밤이 깊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형이 준 벼 한 말은 너무 무거워서 잘 들고 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때 은혜를 입었던 개똥벌레가 나타나 길을 밝혀 줍니다. 무거운 짐은 하늘소가 날라 주고, 쇠똥구리가 길 복판에 놓인 쇠똥더미를 치워 줍니다. 집에 도착하자 방아깨비가 방아를 찧어 주고 그 쌀로 소시랑게가 밥을 지어 줍니다. 서로 도와가며 쌀을 나르고 밥을 지은 개구리와 친구들은, 마당에 둘러앉아 한솥밥을 맛있게 나누어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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