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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_ 영인본
2부_ 번역본 주 해설 발간사 감사의 말 역자 후기 |
Rosetta Sherwood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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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스의 카타르성 폐렴 진료 기록
10월 6-9일-세인트 폴에서 벤쿠버로 가는 기차 안에서 백일해에 노출됨. 8일부터 12일까지 가벼운 이질 증상. 12일 하루 종일 배멀미로 아무것도 먹지 못함. 한동안 소화가 안된 변을 보았지만 더 이상 출혈은 없음. 11월 7일과 9일-황해에서 배멀미. 9일경 병에 노출됨. 8일과 9일 그리고 10일에 심한 코감기와 약간의 기침. 11월 10일-제물포에 도착. 온종일 칭얼댐. 저녁 7시에 잠. 춥다고 하고 잠시 후에는 저녁 먹은 것을 토함. 밤새 열이 나고 자지 못함. 11월 11일-오전에 열이 조금 내린 듯함. 코피를 조금 흘림. 졸려하면서 안 먹으려고 함. 오전 11시 체온 103.4도, 호흡 50, 심박수 150. 오후 2시 체온 101.8도, 호흡 44, 심박수 138. 오후 5시 체온 102.4도, 호흡 44, 심박수 150. _1897년 10월 11-28일 일기에서 ■ 그림 속에서 에디스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가운데 나는 어린이들과 어머니들에게 왜 우리가 이날을 축하하는지, 또 생일 선물이었던 돈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께서 1년 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지금 우리가 모인 이 좋은 건물을 주셨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는 에디스가 좋아했던 찬송 [예수 사랑하심은](Jesus Loves Me)과 [행복한 나라가 있네](There is a Happy Land)를 불렀다. 오늘 오후 우리가 가진 이 모임이 모두의 사기를 북돋워 준 듯하다. _1900년 1월 18일 일기에서 ■ 엄마는 엄마의 마음을 진찰해 보려고 했으나 자신의 병을 진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는 이러한 손실이 최선이었다고 느끼고 싶은 곳까지 엄마 자신을 이끌어 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가끔은 멀리 떨어져서 이 시처럼 느껴보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주께서 내 보물 창고에서 내 손을 비우셨네 그리고 주의 언약의 사랑을 나타내셨네 내 아픈 마음에는 상처가 없었네 주의 호흡의 향기로 치유되었네” 그러나 아직 엄마는 이러한 상처들이 아물기를 바랄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들을 잊어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너무나 어리석어 보이고 나중에 엄마에게조차도 틀림없이 근시안적으로 보이겠지만 엄마는 그 상처들을 안고 치유받기를 거부하면서 살아간다! _1900년 5월 23일 일기에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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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박동처럼 울려퍼지는 생생한 기록과 사진들
《로제타 홀 일기 6 - 에디스 마가렛 홀 육아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에디스가 태어난 1895년 1월 18일부터 약 2년 반 동안 미국에서 생활한 내용, 둘째, 로제타 홀과 셔우드, 에디스가 다시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출발하는 1897년 10월 27일부터 에디스의 죽음(1898년 5월 23일) 및 양화진에 묻힌 아빠의 곁에 묻히는 1898년 5월 26일까지의 내용, 셋째, 이후 2년 동안 딸의 생일과 기일을 맞아 로제타 홀이 깊은 상념을 풀어 놓은 1899년 1월 18일부터 1900년 5월 23일까지의 일기다. 에디스는 남편을 잃은 엄마에게 위로자와 같은 존재였다. 가끔 병치레를 했지만 비교적 건강했고, 가족들의 사랑을 이끌어 내는 천사 같은 아이였다. 또한 에디스는 로제타로 하여금 한국에서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이어가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병으로 고생했고, 엄마의 임지인 평양에 도착한 직후부터 심한 이질에 걸려 아파하다 1898년 5월 23일, 3년 4개월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 책에는 특히 에디스의 치료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한 병상기록이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배 안에서 시작되어 서울에 도착한 이후 약 40여 일 동안 앓은 폐렴 치료 기록, 1898년 2월에 걸린 홍역 치료 기록, 결국 죽음으로 이어진 1898년 5월 1일부터 23일까지의 이질 치료 기록은 매 시간마다 에디스의 증세와 그에 따른 처치, 그리고 엄마의 애끓는 마음이 분 단위로 기록되어 있다. 100여 년 전 한국 의료선교의 실제적 상황을 마치 역사 기록처럼 보여 주는 소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어둠에서 빛을, 절망에서 희망을 로제타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먼저 데려간 데 대해 기독교인이자 선교사임에도 갈등을 겪는 것에 못마땅해 하면서, 치유되지 않는 아픔에 힘겨워했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라지 않았으며, 대신 그 상처를 가슴에 품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고자 힘겨운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었다. [로제타 홀 일기]는 어쩌면 슬픈 이야기로 비칠 수 있다. 선교일기는 남편 윌리엄 홀 선교사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고, 육아일기 역시 어린 딸 에디스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두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일기 전체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로제타 홀의 믿음이 성숙해지는 모습을 만날 수 있고 생명과 한국인들을 향한 그녀의 진심어린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로제타 홀 일기 1-4》의 각 권 구성은 1부에서는 일기 원본 사진과 함께 우리말 번역을 실었고, 2부에서는 로제타 홀이 쓴 일기를 영문 활자화하여 실었다. 이 같은 편집을 통해 로제타 홀의 의료사역은 물론, 일상 모습 속에서 그녀의 인간 됨과 신앙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육아일기인 《로제타 홀 일기 5-6》은 편집을 달리하여 1부에서는 영인본, 2부에서는 한글 번역문을 실었고 판형도 이전 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게 했다. 이와 더불어 전반적으로 한 여성으로서의 면모가 잘 간직되도록 디자인했다. * 에스더재단 교육과 자선을 목적으로 미 연방 세법에 의해 비영리 법인단체로 승인받아 2010년 4월 설립되었다.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를 기리는 마음에서 ‘에스더재단’이라고 이름 지었다. 에스더재단은 초창기 내한 선교사들이 남긴 선교 자료들을 발굴하여 책으로 발간, 번역, 출판, 배포하는 일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치유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선교 사업도 세계 곳곳에서 펼치고 있다. 엮은이 양화진문화원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된 선교사 및 한국 기독교 역사에 대한 자료 수집과 연구를 수행·지원하고, 교회와 사회를 잇는 소통의 도구가 되기 위해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에 의해 2005년 설립되었다. 전택부 유품 기증을 계기로 양화진문화원 내에 양화진기록관Yanghwajin Archives을 설립·운영하고 있으며, 초기 선교사들의 기록물도 보존 관리하고 있다. 해설 이용민 -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교회사 연구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내한 선교사들의 활동과 본국 교단 선교부와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연구이사 및 아시아기독교사학회 총무이사로 섬기고 있다. 로제타 홀 일기 시리즈 소개 [선교일기] 로제타 홀 일기 1 _로제타 홀 선교사가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1890년 8월 21일 뉴욕을 떠나 경유지인 일본에 도착한 9월 24일까지의 기록. 로제타 홀 일기 2 _1890년 9월 24일부터 1891년 5월 17일까지, 로제타 홀이 중간 기착지인 일본 각지에 머무는 동안과, 한국에 도착해 서울에서 첫 7개월간 사역한 모습. 로제타 홀 일기 3 _1891년 5월 15일부터 1891년 12월 31일까지, 어느 정도 한국에 적응하여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 로제타 홀 일기 4 _1892년 3월 8일부터 1894년 10월 1일까지, 로제타를 뒤따라 한국에 온 윌리엄 홀 선교사와의 결혼, 평양 선교 개척 이야기, 남편과 사별하기까지의 과정. [육아일기] 로제타 홀 일기 5 _아들인 셔우드 홀이 태어난 1893년 11월 10일부터 셔우드가 일곱 번째 생일을 맞은 1900년 11월 10일까지의 기록. 로제타 홀 일기 6 _에디스 마가렛 홀의 출생부터 이질로 인해 떠나보내는 과정, 이후 딸에 대한 진한 그리움의 기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