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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찔레꽃 눈 내리는 날 겨울여자 굴참나무 숲 빈자리 동백꽃 지다 억새꽃 소묘 봄비1 봉숭아꽃 물들이기 태몽 칸나의 계절 클리티아 유리창 12시5분 잠자리와 아이 서풍(西風) 패랭이꽃 2주간의 구애 홍단풍 빗속에서 가을비 제 2 부 북성포구 53 산동네 B지구 그 남자 55 리얼리티 57 스카이댄서 58 유리벽 60 별 뽑기 오후를 지나가는 남자 아날로그 할아버지와 비둘기 겨울밤 주천강 바람 부는 골목 피서 밤나무 골 영훈이 그림자 주차라인 국화빵 제 3 부 붉은 동백꽃 엽서 건망증 꽃점 후암동 억새꽃의 여름나기 사루비아 봄비2 초경 바람이 불다 하지 제비꽃 사랑니를 앓다 10월 우리 이렇게 그때처럼 마흔아홉 비 개인 오후 제 4 부 울엄마 엄마의 일기장 고등어 달맞이꽃 가는 비 대숲사이 달빛 능소화 6층 병동 3호실 어머니 파킨슨 증후근 해설│박영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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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리
칸나꽃대 불쑥 올라오더니 꽃잎 끝이 붉게 열렸다 이슬 마른자리 무당노린재더듬이가 꽃잎과 꽃잎 사이 들락날락 더듬다가 날아갔다 개미 한 마리도 이 꽃잎 저 꽃잎 옮겨 다니다가 갔다 열점박이무당벌레가 앉았다가 날아가고 붉은점모시나비도 날아갔다 여름좀잠자리가 날아가고 참꽃무지도 날아갔다 달팽이가 칸나 꽃대를 기어올랐다 여름을 팽팽하게 당기지 않아도 꽃잎이 붉어졌다 꽃잎이 지던 날이 기억나지 않았다 잎 떨어진 꽃자리는 가볍고 가벼워진 꽃대 위엔 바람이 머물렀다 겨울 여자 카프리콘*(12월24~1월19일) 1960년 12월 24일생 박마리아 먼- 나라였다고 꿈을 꾸어요 지상으로 내려온 날은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것 같아요 땅위에 울려 퍼지던 그 종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하면 될까요 눈 내리던 창밖이 따스하게 느껴졌어요 나무와 새 빈들과 바람 숨죽여 바라보기만 했죠 겨울 동백 이야기를 하며 붉어지던 당신 그 꽃잎 바라보며 이젠 울어도 될까요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에서 찍은 동백꽃 사진 한 장 유골함 앞에 붙이고 돌아서는 여자 오늘이 그 여자 생일입니다 *염소자리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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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시인의 임무는 길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을 깨우는 일이다. -헤르만 헤세- 철부지 때 그 아이도 그립고 내가 쓴 시를 읽으며 눈물 흘리던 친구 현이도 그립고 돌아가신 부모님도 그립고 새둥지로 떠나간 아이들도 그리고 곁에 있는 남편도 그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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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옥 시인이 나무 꽃 눈 비 등 풍경을 빌어 체질이다 싶게 머뭇머뭇 발설하는 세계들은 범위에 있어서나 발언에 있어서나 요란하지 않다. 작고 조용하고 약하고 거의 머뭇거린다. ‘머뭇거리는 정서’라고 이름 지어 본다. [산수유 꽃처럼 노랗게 맺혀/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 [밟히고 부서지는 꽃잎 위에 머뭇거리는 눈] [손가락으로 꼽고 있던 날들이/가물가물 풀려나고] [바람이 멀리...흔들린다/가을볕이...자꾸만 눈을 감는다] 같은 문장들에서 나도 머뭇거린다. 욕망의 무화 같은 어떤 힘도 들어가 있지 않은 이런 가물거림, 머뭇거림은 어디서 오는가. 혹 무언가 극히 억눌려져 있는 존재상태에 오래 침윤돼 있는 것일까. 그렇담 시인은 시의 여정에서 이것을 찾아나서야 하리라.
그런 한편, 우리 삶의 애절, 비참한 소외 이웃에 대한 주목과 연민을 펼쳐내는 시편들은 시인의 확장된 다른 면모로 삶의 성찰을 선사한다. 시인이 찬찬히 담담히 그려낸 타자세계의 아픈 내역에 동참, 마음을 이입케 한다. 조손가정, 한부모가정, 극빈, 독거 등 시인이 보듬고 싶어 할밖에 없는 삶의 극지 목록이 적지 않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봉제공장으로 먼저 간/누나한테로 (자기도) 가야 한다는] 어린 남동생의이런 발설은 사실 같지 않은 상상세계의 일만 같다. 시인이 [콘센트 구멍 속에 가득 찬 어둠] 같은 끄집어내질 것 같지 않은 어둠에 미약한 빛줄기이나마 시의 빛줄기 대기를 그치지 않을 줄 안다. - 이진명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