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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존재에 대한 단상
홍시 12 코스모스 14 벌레 16 까마귀 19 모과 한 알 31 모월모시(某月某時) 33 문답(問答) 36 법정 스님의 엽서 43 제2장 몸에 대한 사유 몸 48 몸을 붙들고 51 나는 몸으로 쓴다 58 간시궐(幹屎厥) 60 냉장고의 눈물 65 데미지 67 사드 후작에 관하여 74 제3장 자연에서 배우다 고엽(枯葉) 94 숲으로 가자 100 자연에서 배우다 105 화두 108 유택(幽宅) 114 가을 117 시간의 강가에서 124 제4장 문학의 힘 붓 한 자루 134 문학의 힘 138 정신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문학밖에 없다 142 노년의 식탁 146 저물녘 벌판에 앉은 눈사람처럼 150 인공지능, 수필을 쓸 수 있을까 154 좋은 수필을 쓰려면 162 제5장 독서의 즐거움 그 밝은 것을 어둡게 하라 174 가득 찬 것은 오래 갈 수 없다 178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182 자아의 속임수를 폭로하다 185 만들어진 신 188 마지막 선물 191 보르헤스의 불교 강의 195 제6장 불교로 읽는 문학 사무엘 베케트 씨에게 200 몽테뉴의 ‘수상록’ 212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221 말라르메의 부재(不在)인식과 허공 꽃 237 해설 진심출사(眞心出死)의 수필미학 / 유한근 · 259 |
맹난자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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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 한 알
수필가 K씨는 해마다 마당에서 수확한 가을을 보내온다. 이번에도 상자 속에 모과 세 개가 들어 있었다. 아기 머리통만한 모과는 손끝에서 무쭐했다. 아마도 그녀의 정원에서 간택된 제일 잘 생긴 놈이지 싶다. 피부는 어린 연두에 노랑 빛깔을 띠고 있으나 몸통은 산맥처럼 꿈틀대는 골격이 범상치 않다. 그 중 두 개는 모과차를 만들고 두상(頭像)과 빛깔이 제일 나은 것을 골라 안방 문갑 위에 두었다. 방문을 여닫을 때마다 은은한 향기가 따라나오고 빛깔도 점차 황금빛으로 익어갔다. 어느 날은 방문을 여니 모과가 그 방의 주인인 것처럼 정좌(靜坐)하고 있었다. 미더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시간은 어디까지였을까? 가을이 땅으로 내려앉고 하늘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을 무렵인가, 그때부터 그의 모습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몸에 갈색 반점이 번지고 늙은 대추마냥 쪼그라들더니 시커먼 하나의 돌덩어리에 불과했다. “들어내야지” 하면서도 왠지 손길이 쉽게 가지 않았다. 한가람 디자인미술관의 회랑을 돌 때였다. 울퉁불퉁한 시커먼 돌덩어리, 그건 내 첫인상이었고 청동으로 부조된 자코메티의 마지막 작품 〈앉아 있는 남자의 흉상〉이었다. 배코 친 두상에 비쩍 마른 얼굴, 눈빛은 형형한데 그친 입술〔止〕은삐뚤어졌고…… 뭔지 모를 고통이 솟구쳤다. 그때 등신불이 떠올랐다. 젖줄이 끊긴 아이처럼 나무에서 박리(剝離)된 채 제 모습의 꼴을 갖추느라고 힘들었을 모과의 고행(苦行)정진이 짚어졌다. 나는 그날 우연히 모과 한 알에서 고행승의 열반을 보는 듯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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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존재에 대한 단상’에서는 홍시, 코스모스, 벌레, 까마귀, 모과 한 알 등 여러 사물과 유기체인 미물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명에 대한 존재 의미를 탐색한 글을 읽을 수 있다.
제2장 ‘몸에 대한 사유’에서는 정신과 대척적인 자리에 있는 육체에 대한 욕망과 사랑, 노화(老化) 등을 다루었다. 「몸」, 「몸을 붙들고」, 「나는 몸으로 쓴다」, 「간시궐」, 「냉장고의 눈물」, 「데미지」, 「사드 후작에 대하여」 등 7편의 ‘몸 수필’은 다른 언어로는 ‘영혼의 수필’ ‘죽음 인식의 수필’이라 불릴 수 있다. 제3장 ‘자연에서 배우다’에서는 공자, 노자, 라즈니쉬. 보르헤스의 자연관과 시간관을 통해서 인간의 생사 과정에서의 제 문제를 탐색했다. 표제작 「시간의 강가에서」는 강가에 서서 흐르는 강물을 보고 ‘간다는 것’에 대한 사유로 시작한다. “잔잔한 물살 위에 흐르는 시간, 물 수[?]와 갈 거(去)를 합하면 법(法) 자가 된다. 법(法)이란 진리, 물이 흘러가는 ‘흐름’이 진리가 아닐까. 돌이킬 수 없는 그 흐름의 원형은 시간일 터”라며 시간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케 한다. 제4장 ‘문학의 힘’에서는 노자, 원효를 비롯한 동서양의 석학과 문인인 춘원, 루쉰, 조나단 스위프트, 오에 겐자부로, 마크 트웨인, 존 스타인벡과 헤세의 정신사적 편력을 살피면서 문학의 힘인 현상학을 탐색한다. 「붓 한 자루」나 「문학의 힘」은 평생 힘써온 수필쓰기와 사람을 변화시키는 문학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쏟아낸 글이다. 제5장 ‘독서의 즐거움’에서는 『주역』, 법정 스님의 잠언집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프랑스 철학자인 아버지 장 프랑수아 르벨과 승려가 된 그의 아들 마티유 리카르의 대담집 『승려와 철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웰다잉 체험교실을 운영 중인 오진탁 한림대 교수의 『마지막 선물』, 보르헤스의 『불교 강의』 등 작가가 섭렵한 독서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제6장 ‘불교로 읽는 문학’에서는 위와 같은 맥락으로 사무엘 베케트, 몽테뉴, 카잔차키스, 말라르메의 글에서 문학사상과 불교사상의 연관 관계를 탐색하였다. 맹난자 수필가의 『시간의 강가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작가의 사상적 궤적을 일별하는 것이 즐거움이 되면서도 따라잡기가 벅참을 진솔하게 토로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