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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프롤로그 ---- 014 제1부 : 쉼표가 있는 프라하 아름다운 풍광 속 그날의 뜨거운 열기 ---- 025 : 바츨라프 광장 소원을 들어주는 프라하의 수호성인 얀 네포무츠키 ---- 033 : 카렐교와 얀 네포무츠키 시원(始原)의 몸짓과 같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 ---- 041 : 비셰흐라드 존재의 떨림 ---- 053 : 카렐교 삶의 기준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여유 ---- 061 : 니콜라스 윈턴 사랑이라는 예술 ---- 075 : 체스키 크룸로프의 이발사의 다리 기억할 수 있는 시간 ---- 085 : 리디체 추모기념관 내 존재를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곳 ---- 097 : 독일 드레스덴과 카페듀 내 안에 상주하는 악마와 천사 ---- 109 : 테레진 유대인 강제 수용소 변수의 묘미를 즐기는 그들만의 새벽 ---- 123 : 베트남 사람들의 미니 슈퍼마켓 무의식적인 이데올로기 ---- 141 : 성 키릴과 메소디우스 교회 영혼이라는 장식 ---- 155 : 쿠트나 호라의 세들레츠 납골당 또 만나기 위한 의식 ---- 171 : 프라하 구왕궁 제2부 : 쉼표가 있는 부다페스트 프로들일수록 짐은 가볍게 ---- 191 : 라이언에어 그들이 사는 모습 ---- 201 : 중앙 시장 안개에 싸인 그 불확실함 ---- 213 : 선상 파티 혁명이라는 젊은 피 ---- 225 : 부다페스트 공과대학 그들의 현재 ---- 237 : 도하니 거리의 시너고그 역사 그리고 자유 ---- 247 : 영웅 광장의 안익태 동상 흔들리는 황금빛 풍경 ---- 259 : 부다 왕궁으로 가는 길 길 위의 발자국 ---- 275 : 엘리자베스 워치 타워 에필로그 ---- 2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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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길을 걷는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걷는 길은 다르다. 길을 걷다 만난 바람의 내음이 다르고 그의 눈길과 쓸쓸함도 다르다. 요 몇 년 간 소설가 차노휘는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들과 숲을 걸었고 바다의 소리를 듣고 하늘을 응시했다. 이 책은 그가 만난 길에 대한 내밀한 기록이다. 고요함 속에 책을 펼치면 그와 여행길을 동행하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 - 화가 한희원
광주에 일이 있어 그녀와 약속을 잡으면 그녀는 그곳까지 걸어서왔다. 그리고는 혈색 좋은 얼굴로 무덤덤하게 말했다. “집에서 여기까지 5.8km네? 한 시간 오 분 걸렸군.” 언제부턴가 그녀는 걷기 시작했다. 제주도 올레길을 지리산 둘레길을 그리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거뜬히 걷고 와서도 양에 차지 않는지 걷는 것을 생활화했다. 어느 날 물었다. “왜 걷는데?” 그녀의 답은 시니컬했다. “걷고 싶으니깐 걷지.” 하지만 나는 안다. 그녀가 걷는 것은 자신의 심연(틈)과 정면 대결하는 것임을. 끝나지 않는 길 위에 현재진행형인 그녀의 걷기는 그래서 무섭다. 시간이 갈수록 내면은 더욱 단단해지고 깊어지며 무한대로 확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볼 뿐이다. 조용히 응원하면서. - 영화감독 사유진 프롤로그 글과 동행하는 작가의 길을 걷게 된지 거의 십년이 다 되어 간다. 남들보다 늦게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또 한참 뒤늦게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그림과 사진을 익히다가,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글의 씨앗과 만난 결과였다. 열정과 방황은 어쩌면 동일한 것의 다른 현현(顯現)인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면서 열병을 앓았고, 때로는 방황을 했다. 첫 창작집을 내고,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내 안에 조금씩 틈이 생기고 있음을 알았다. 그때부터 길을 걷게 되었다. 그 길이 산이기도 했고, 섬이기도 했다. 제주에서 시작해, 남해의 섬을 찾아 나섰다. 해풍을 맞으며 길 위에 섰을 때, 뭐랄까, 노트북을 켜면 모니터 제일 위쪽에서 깜박거리는 커서가 된 기분이었다. 길 위에 선 내가 체험해야 할, 깨달아야 할 것들이 광활한 여백으로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했다.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한 그 해 여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훌쩍 떠났다. 내 안의 틈이 더 벌어졌지만 나는 걷는 동안 그것과 대면할 용기가 생겼다. 끊임없이 물었다. 틈의 정체는 무엇일까. 첫 출간한 창작집이 한국도서관협회 우수도서로 선정되어 전국 도서관에 비치되었다. 작가로서 경험을 넓히기 위해 광주작가회의에 들어갔다. 주로 혼자 글을 쓰고, 혼자 활동하던 내게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적극적으로 활동하진 못했지만 선배 작가들을 만나면서 글을 쓴다는 것의 내밀한 속내에 대해 더 고민할 수 있었다. 역사의 도시 광주에 살면서도, 속앓이만 했지 먼저 나서서 길을 찾으려는 행동은 늘 굼떴다. 그러다 문학인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그 작은 행위가 ‘블랙리스트’란 이름으로 되돌아왔다. 내가 영향력 있는 작가여서 문화당국의 지원을 받을 일은 없었지만 배제와 차별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준비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섬뜩했다. ‘글은 역사의 칼’이어야 한다는 말을 간혹 듣곤 한다. 글이 역사의 칼이어야 한다는 리얼리즘을 내가 따라가진 않더라도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냉철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자각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저항과 희생의 역사 현장이 있는 광주를 깊게 아는 계기가 되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탑, 금남로, 충장로, 전남도청, 전일빌딩, 5·18 묘역까지. 나는 지난해 촛불이 타올랐던 시간에 틈틈이 그 자리를 지키면서도 역사의 흔적이 스며있는 거리를 다시 걸어보았다. 작가로서 내가 채워야 할 틈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글을 낳고, 어떤 글로 독자와 만나야 할지를 더 고민해야 했다. 이번 체코와 헝가리 여행 또한 그 길을 찾아 나서는 여정의 연장선이었다. 한때는 소련의 위성국으로서 남보다 북과 가까웠던 나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이 일어났던 나라. ‘헝가리 혁명’과 ‘프라하의 봄’을 통해 민주주의를 쟁취하고자 했던 두 나라. 설익은 몇 가지 지식만으로도 두 나라는 광주와 비견할 만한 곳이었다. 나는 배낭을 꾸렸다. 방학을 맞아 체코(프라하)와 헝가리(부다페스트)에 머무르면서 광주에서 일상을 보내듯 사십여 일을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그곳의 길을 걸으며 내 안의 나, 역사를 바라보는 주체로서의 나, 작가로서의 나와 조우하고 싶었다. 나는 떠났다. 두 도시를 넘나들면서 여행자로서의 자유와 아픔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과거에서 현재를 봤고 지리적으로 떨어진 여행지에서 한국의 정치 변화를 느꼈다. 운 좋게 두 청년을 만났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홀로코스트를 겪은 조상을 둔 이스라엘 청년 모어와 작년 여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났던 부다페스트공과대 학생인 데이비드. 모어는 법률가였고 여행 중이었다. 그 나이 때에 누릴 수 있는 방황을 하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Ph.D 과정을 밟아 연구원이나 교수가 되기를 바랐다. 아픔을 겪어낸 두 나라의 청년들. 둘은 상이한 성격을 지녔지만 그들 모두 일상의 ‘틈’을 느끼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 그럴수록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삶. 나 또한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어떤 사람이든 장소든 시간의 궤적이 있고 그 궤적은 다양한 이야기를 잉태하기 마련이다. 아픔보다는 즐거운 추억이 많아야 하지만 대부분 아픈 기억을 오래 품는 듯했다. 강한 사람(국가) 사이에 끼었을 때는 더욱 더. 예민하면 그보다 더욱. 나는 아픈 궤적을 예민하게 체코와 헝가리에서 따라가기로 마음 먹었고 그렇게 했다. 다녀온 흔적을 남기기 위해 인터넷 신문 ‘광주in’에 23회에 걸쳐 연재를 했다. 연재한 글을 정리하여 《쉼표가 있는 두 도시 이야기》에 담았다. 그리고 여기, 소박한 여행기를 내놓는다. 책을 내놓기까지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셨다. 그분들께 감사를 전한다. 2018년 5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