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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그림에 스며들다
옛 그림이 전하는 우리 풍류 양장
한울 2018.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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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며

1장 그림을 감상하기 전에

2장 파격 풍류방

천재 화가 단원, 그 풍류방의 비범한 기물들 | 사대부(유교)와 신선(도교) 사이에서 | 고매하고 영험한 생황 | 비파라는 악기 | 사대부들이여, 나 김홍도는… | 마무리하며

3장 평양에 초청되어 이름을 남긴 스타

병풍에 찍힌 19세기 평양성 안팎 | 평안 감사! | 명품 성악 판소리, 그 초기 연행 현장 속으로 | 빅스타 모흥갑이 다녀갔다! | 또 한 명의 명창 고수! | 마무리하며

4장 선비와 거문고

왜 줄이 없는 현악기인가? | 거문고는 여섯 줄, 가야금은 열두 줄? | 왕산악과 거문고, 그리고 풀리지 않는 의문점 | 세상에 둘도 없는 거문고 연주법 | 거문고는 남성적, 가야금은 여성적? | 금과 슬, 그리고 거문고의 서로 다른 운명 | 중국 선비는 금을 탔는데 조선 선비는 왜 거문고인가? | 조선 선비들, 정말로 거문고를 탔을까? | 주인공의 정체 | 마무리하며

5장 도시 남녀의 한강 뱃놀이 데이트

의문의 화원, 혜원 신윤복 | 조선 화원의 혁명적 일탈 | 적나라하게 그린 상류층 세태 | 조선 남녀의 도심 뱃놀이 현장 | 뜬금없는 화제(?題) | 아주 특별한 대나무로 만든 대금 | 청소리는 맑은 소리? | 기생들도 즐겨 불던 악기, 생황 | 마무리하며

6장 1747년 초복, 선비들이 모였다

명문가 출신, 은일과 출사의 표암 강세황 | 시서화(삼절)의 달인, 서양화법을 도입하다 | 나이와 신분을 초월한 스승과 제자 | 주관자는 설명을 남기고 참가자는 시를 남기다 | 그윽한 정자에 모여 우아하게 쉬다 | 초복을 맞아 개장국을 먹다 | 거문고는 누가 연주했을까? | 엉뚱한 강세황, 파격의 자화상 | 마무리하며

7장 웃기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운 한국인

민화 속 오랜 단짝, 까치와 호랑이 | 천진난만한 민화, 아직 끝나지 않은 민화 | 익살, 익살, 불가사의한 우리의 익살 | 싸이의 「강남스타일」, 민화의 해학 정신을 이어받아? | 너무나 해학적인 우리 민요 | 해학의 챔피언, 판소리 | 마무리하며

8장 불보살의 그 큰 세계

고려 불화와 불교 음악 | 물 위에 비친 달과 관음, 고려의 유일한 그림 고려 불화 | 한국인과 불교, 그 남아 있는 많은 흔적들 | 불교의 천사, 부처님 비서. 아, 자비의 화신 보살들이여! | 자비의 화신 관세음보살 | 〈수월관음도〉 속으로 | 영산회상, 우선 그 사건의 전모부터 | 아홉 곡의 모음곡, 정악의 백미 「영산회상」의 탄생 | 가장 유명한 불교 음악, 「회심곡」의 정체 | 마무리하며

9장 아흔아홉 칸 집 후원의 밀회

대저택 후원의 연못가에서 | 당상관 ‘나으리’와 의녀 기생 | 은밀한 유흥과 적나라한 현장 스케치 | 1700여 년을 이어온 신라의 가야금 | 뜯고 퉁기고 꼬집고 뒤집고 | 마무리하며

저자 소개 2

비교종교학자로서 그동안 수많은 저서와 강연을 통해 종교와 인간, 윤회와 환생 등 아무나 감당할 수 없는 특별한 분야에서 학문적 업적과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약력 1979년 서강대학교 사학과 졸업 1988년 미국 템플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 졸업 1989년 종교문화연구원 설립 1992년~2021년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역임 2005년 한국죽음학회 설립 2021년~ 이화여대 명예교수 2024년 UFO 협력단 창설 저서 『UFO-세계가 주목한 두 접촉자의 이야기』(2025), 『죽은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 사후생을 증명하는 다섯 가지 근거』(2
비교종교학자로서 그동안 수많은 저서와 강연을 통해 종교와 인간, 윤회와 환생 등 아무나 감당할 수 없는 특별한 분야에서 학문적 업적과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약력
1979년 서강대학교 사학과 졸업
1988년 미국 템플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 졸업
1989년 종교문화연구원 설립
1992년~2021년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역임
2005년 한국죽음학회 설립
2021년~ 이화여대 명예교수
2024년 UFO 협력단 창설

저서
『UFO-세계가 주목한 두 접촉자의 이야기』(2025), 『죽은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 사후생을 증명하는 다섯 가지 근거』(2025), 『Beyond UFOs?UFO, 그 너머의 이야기』 (2024), 『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 종말의 문제에 관하여』(공저)(2015), 『최준식의 메타 종교로 가는 마지막 춤 1, 2, 3』(2023), 『인간은 분명 환생한다』(2017), 『한국 사자의 서』(2017),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죽음학 강의』 (2014)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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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한국음악과와 동 대학원에서 국악을 전공하여 학사와 석사학위를 얻고 서울대와 이화여대에서 각각 음악교육전공과 한국문화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홍익대, 건국대, 경인교대, 이화여대, 연세대에서 한국음악, 서양음악, 음악교육, 한국문화 등을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또한 한국인들에게 제대로 된 한국 문화를 알리고자 창단된 (사)한국문화표현단에서 교육·공연팀장으로서 강의(인문학)와 공연(예술)을 접목한 새로운 양식의 강좌와 한국문화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을 개발 및 운영하고 있으며,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의 상임연구원으로서 한국문화 관련 프로그램 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이화여대 한국음악과와 동 대학원에서 국악을 전공하여 학사와 석사학위를 얻고 서울대와 이화여대에서 각각 음악교육전공과 한국문화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홍익대, 건국대, 경인교대, 이화여대, 연세대에서 한국음악, 서양음악, 음악교육, 한국문화 등을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또한 한국인들에게 제대로 된 한국 문화를 알리고자 창단된 (사)한국문화표현단에서 교육·공연팀장으로서 강의(인문학)와 공연(예술)을 접목한 새로운 양식의 강좌와 한국문화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을 개발 및 운영하고 있으며,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의 상임연구원으로서 한국문화 관련 프로그램 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 밖에 한국음악과 한국문화를 중심으로 대학, 기업 등에서 특강을 진행하고 있으며 관련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교실의 단소연주』, 태림(2005) 『한국문화는 중국의 아류인가?』, 소나무(공저, 2010). 논문으로는 「초등학교 단소 교육과정에 관한 재고」, 「초등학교 단소수업의 단계적 교수 학습 전략-코다이 방법의 부분적인 활용을 통하여」, 「한국음악의 원류로서의 중국음악과 한국적 변용」, 「한국음악의 고유성에 관한 일 고찰-한국과 중국의 전통악기가 지닌 연주법의 비교를 중심으로」, 「현행 한국 문묘음악의 연원에 관한 一考察-세종 제사 아악보와 元朝 임우 대성악보의 선율 비교 분석을 중심으로」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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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5월 1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34쪽 | 585g | 153*214*22mm
ISBN13
9788946064805

책 속으로

송혜나: 그 이유에 대해서는 추정만 해볼 수 있는데요, 앞에서 본 생황과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니까 비파의 연주법이나 음색 등이 한국인들의 성정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인들은 음을 격하게 떠는 농현 주법을 발전시켜왔습니다. 그런데 이 비파는 동급의 위상을 지닌 현악기인 가야금이나 거문고와는 달리 농현하는 주법이 없습니다. 줄과 몸통이 거의 붙어 있어서 구조적으로 가야금이나 거문고와 같은 방법으로 농현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것이지요. 이것은 기타를 생각해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기타 역시 줄과 울림통이 거의 붙어 있어서 농현을 세차게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이런 이유로 비파는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국악기 반열에서 사라진 것 같습니다. _ 49~50쪽 “파격 풍류방”

최준식: 조선조 때 중앙에서 감사가 올 적마다 그 도시에서 잔치가 벌어졌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로 갈수록 이 감사 환영 연희가 쇠퇴했던 반면 평양에서는 대규모 행사가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평양이 교통의 관문이어서 물자가 풍부한 탓도 있겠지만 이 평안 감사의 임기는 다른 지역과 달리 2년이었던 데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다른 지역의 관찰사는 임기가 1년인 것에 비해 평안도와 함경도는 중앙으로부터 멀기 때문에 임기가 2년이다). 이런 환경 덕에 2년에 한 번씩 새 감사가 부임할 때마다 대규모 환영 행사를 벌였고 행사 뒤에 그걸 그림으로 남기는 게 유행이나 관례로 정착됩니다. 그런 이유로 전국의 8도를 책임지는 각각의 감사들 중에서도 유독 평안 감사 부임 관련 그림만이 이렇게 남아서 전해지는 게 아닐까 합니다. _ 72쪽 “평양에 초청되어 이름을 남긴 스타”

송혜나: 우선 조선 선비들에게는 투철한 ‘완물상지(玩物喪志)’ 정신이 있었습니다. 〈포의풍류도〉 편에서도 나온 이야기입니다만 완물상지란 ‘희롱할 완(玩), 물건 물(物), 잃을 상(喪), 뜻 지(志)’로 구성되어 있으니 이 사자성어의 뜻은 ‘물건을 가지고 노는 데 정신이 팔리면 자신의 의지나 뜻, 그러니까 본심을 잃어버린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 선비들은 물건을 만들고 그것을 가지고 희롱하는 일을 극히 꺼렸습니다. 양반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래서 거문고 연주도 직접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겁니다. _ 122쪽, “선비와 거문고”

최준식: 또 남종이니 북종이니 하는 미술사학자들의 전형적인, 그리고 재미없는 설명이 나오는군요. 이런 설명은 실물을 가져다 놓고 다른 그림과 비교하면서 찬찬히 설명을 들어야 그나마 알 수 있는 것인데 이렇게 말로만 들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회화사 전공자가 아닌 송 선생이나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기에 강세황의 특이점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서양의 원근법을 도입했다는 것 정도입니다. 이는 화가로서의 강세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정보이니 그 이야기를 조금 나눠보지요. _ 177쪽, “1747년 초복, 선비들이 모였다”

최준식: 네. 뒤에서도 살펴보겠지만 「영산회상」의 일곱 번째 악장의 제목이 「염불도드리」입니다. 이는 「영산회상」을 대표하는 매우 유명한 곡입니다. 제목에 나오는 염불이란 말할 것도 없이 불보살들의 이름을 외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교의 영향을 짙게 느낄 수 있지요. 조선 사람들이 「영산회상」에서 불교의 흔적을 지우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런 식으로 흔적이 남은 것 같습니다마는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정이지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_ 288쪽, “불보살의 그 큰 세계”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김홍도의 그림에서처럼, 조선의 선비는 정말로 악기를 연주했을까?
기층문화인 판소리는 어떻게 양반의 풍류가 되었을까?
그림과 음악, 두 예술 장르의 교차 지점을 응시하며 비로소 생생해지는 조선의 예술

그림과 음악, 장르가 교차되며 더욱 선명해지는 ‘전통문화’ 이해
국악과 옛 그림 각각을 소재로 다루는 책은 많다. 하지만 이 둘을 같은 지면에 두고 나란히 소개하는 책은 드물다. 그러나 옛 그림 속에 음악이 등장하는 경우, 그림이 묘사하는 음악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좀 더 정확히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뿐 아니다. 그림과 음악, 두 장르를 교차하며 읽는 ‘조선’은 그 세태나 풍경, 인물, 멋에 관해 더 풍요롭고 입체적인 감각으로 다가온다.

“그림과 음악은 모두 예술이란 장르에 속하지만 둘이 만날 수 있는 연결점은 별로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림은 시각 예술이고 음악은 청각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장르가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그것은 그림 속에 악기와 같은 음악 관련 기물이 나올 때다. 이 경우 우리는 악기를 매개로 그 그림을 한층 더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 그림에 나온 악기가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악기를 통해서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세태나 풍경도 읽어낼 수 있어 좋다. 물론 그 악기를 가지고 연주할 수 있는 음악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좋다.” _5쪽

우리가 ‘전통문화’라고 말할 때 ‘전통’이 지칭하는 시대는 조선 후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전통’을 더 오랜 것으로 감각하고 있다고 저자는 이어 덧붙인다. 저자의 말대로 이러한 감각 왜곡은 긴 우리나라의 역사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쩌면 ‘전통’이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 느끼게 되는 막연함과 어려움도 한몫하지는 않았을까? 혹시라도 이 막연함에 공감한다면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음악과 그림, 두 장르의 생생한 공존이 ‘전통’에 관한 시간성을 전에 없이 선명한 형태로 바꾸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의 박자를 따라가는 리드미컬한 전통 예술
리듬과 생동감은 이 책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먼저, 국악을 주요 소재로 다루는 책인 만큼 매 장마다 특정 음악과 악기 등이 자세히 소개되며 느껴지는 리듬감이 그것이다. 읽다 보면 당시의 풍류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다가오는 체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두 명의 저자가 편안하게 묻고 답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이 책의 형식이다. ‘현학적 용어’와 ‘학계의 고질적인 시야’를 기피하는 두 전문가의 쉽고 촘촘한 대화는 궁금증이 유발되는 바로 그 지점을 적재적소에서 긁어주며, 때로는 궁금한 줄도 모르고 지나칠 만한 지점을 명확히 짚어주며 독자들의 머릿속 이해의 박자와 유연하게 발맞춘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개되는 ‘입말’ 특유의 자연스러운 리듬감 또한 즐거운 독서를 거든다.

간학문적 관점으로 새롭고 정확해지는 옛 풍류상
“이 원고에는 기존의 학설이나 상식을 뒤집는 설이 종종 나온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은 선비들의 악기 연주에 관한 것이다. 지금 국악계에 통념처럼 받아들여지는 이야기 중의 하나는 선비들이 풍류방에서 거문고와 같은 악기를 연주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하도 많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어 국악방송 등에서도 마치 사실처럼 말해지곤 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조선조의 선비들은 결코 악기 연주를 하지 않았다. 이것은 한 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악기 연주란 주지하다시피 광대처럼 천민이나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선비들은 악기 연주를 아주 멸시했다. 본문에서도 나오지만 선비가 악기 같은 것을 연주하면 “완물상지(玩物喪志)”, 즉 “물건을 가지고 희롱하면 뜻을 잃어버린다”라고 생각했다. 이렇듯 선비들은 물건도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 악기를 가까이 하고 연주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_8쪽

국악과 옛 그림. 두 장르의 간학문적 시도가 주는 효과는 옛 풍류가 보다 입체적으로 감각된다는 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학계 내에서 당연한 것으로 통용되던 내용이 다른 학문의 관점에서 새롭게 교정될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이 흔치 않은 시도의 장점이다. 이는 어쩌면 간학문적인 시도에 의해서만 논의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한국학 전공자와 국악 전공자, 가야금 연주자와 취미로 대금을 부는 국악 애호가. 매 장마다 다채로운 정체성으로 그림과 음악, 역사와 예술을 잇는 두 저자의 이야기는 그렇기 때문에 새롭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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