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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하우스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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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

Miri Yuu,ゆう みり,柳 美里

1968년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서 재일한국인 2세로 태어난 한국 국적의 소설가·극작가다. 외할아버지가 “아름다운 마을처럼 살아라”라는 뜻으로 지어 준 ‘美里’라는 이름과 달리 ‘일본 속의 한국인’으로서 굴곡진 청소년기를 보낸다. 이지메(학교 괴롭힘)에 시달리다 고등학교 1학년을 중퇴하고 뮤지컬 극단 ‘도쿄 키드 브라더스’에 입단, 연기와 연출 경력을 쌓다가 1988년 희곡 『물속의 친구에게』로 극작가로 데뷔했다. 25세 때인 1993년 『물고기의 축제』로 희곡 분야의 아쿠타가와(芥川)상으로 일컬어지는 기시다 구니오(岸田國士) 희곡상을 최연소로 수상하며 재능을 인정받았
1968년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서 재일한국인 2세로 태어난 한국 국적의 소설가·극작가다. 외할아버지가 “아름다운 마을처럼 살아라”라는 뜻으로 지어 준 ‘美里’라는 이름과 달리 ‘일본 속의 한국인’으로서 굴곡진 청소년기를 보낸다. 이지메(학교 괴롭힘)에 시달리다 고등학교 1학년을 중퇴하고 뮤지컬 극단 ‘도쿄 키드 브라더스’에 입단, 연기와 연출 경력을 쌓다가 1988년 희곡 『물속의 친구에게』로 극작가로 데뷔했다.

25세 때인 1993년 『물고기의 축제』로 희곡 분야의 아쿠타가와(芥川)상으로 일컬어지는 기시다 구니오(岸田國士) 희곡상을 최연소로 수상하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1994년 문예지 [신초(新潮)]에 첫 소설을 발표하여 소설가로 등단했고, 1996년 소설집 『풀하우스』로 이즈미 교카(泉鏡花) 문학상과 노마(野間) 문예신인상을 동시에 거머쥐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드디어 1997년 자전적 희곡 『가족 시네마』로 일본 문학계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제116회)을 수상, 한국과 일본 사회에 큰 화제를 뿌렸다. 2002~04년에는 올림픽 마라토너를 꿈꾸었던 경남 밀양 출신의 외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 장편 『8월의 저편』을 사상 처음으로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에 동시 연재(2002~2004)하여 이목을 모았다. 『우에노역 공원 출구』(2014)는 한국(2015)을 비롯해 프랑스(2015), 영국(2016), 폴란드(2020), 미국(2020) 등에서 번역 출간되었으며, 2020 전미(全美) 도서상(번역문학) 수상하였다.

품목정보

발행일
1997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27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12115012

책 속으로

한밤중에 꿈을 꾼 듯했지만 일어났을 때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햇빛은 점점 강해지고 그림자는 짧아진다. 가늘게 눈을 뜨자 옆집 나무의 잎들이 고개를 끄덕이듯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소녀의 모습은 없었다. 손바닥에는 어젯밤 몸을 씻을 때 소녀의 앙상하지만 부드러운 살결에서 느낀 촉감이 아직 남아 있디. 나는 소녀의 머리가 남긴 움푹한 베개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다.

--- p. 87

빛은 없다. 숨이 막히는 더위와 먼지 냄새만 차 있다. 조용히 다른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콩은 물과 어둠을 빨아들여 부드러워지고 모든 에너지를 스스로에게 불어넣는다. 처음에 뿌리가 나온다. 약간 보라색을 띠지만 끝은 이슬처럼 투명한 백색. 뿌리는 물을 찾아 뻗는다. 콩은 침묵을 깼지만 동시에 침묵을 지키려 한다. 콩의 표면은 점차 검게 되고 주름이 생기고 이윽고 파열된다. 뱀이 허물을 벗듯 표피를 벗어간다. 그리고는 노란 콩은 서서히 머리를 숙인다. 아홉 가닥으로 갈라진 가는 뿌리는 아직 발아하지 않았지만 물을 얻으려고 혹은 잡아 뽑히는 걸 경계해 사방으로 뻗어간다. 콩은 일어나고 빛을 찾아 줄기를 뻗는다.
빛은 없다. 줄기는 더욱 뻗고, 머리 위에 모자처럼 씌워져 있던 표피가 떨어져 나간다. 소리는 없지만 모든 것을 흘려듣지 않겠다고 귀를 기울인다. 콩 한 가운데의 힘줄은 빈틈이 되어 깊어져 간다. 콩은 둘로 갈라지고 떡잎이 된다. 줄기는 빛을 찾아 더욱 뻗지만 빛은 없다. 뿌리는 물을 찾아 더욱 갈라지나, 물은 바싹 말라 있다. 떡잎은 좌우로 퍼져 조름진 노란 본잎을 내보이게 한다. 잎의 무게를 못 이겨 줄기는 옆으로 기울어져 간다.

--- p.121~122, <콩나물> 중에서

나는 그저 잠자코 모친의 눈을 마주 바라봤다. 모친도 나를 바라보았지만 문득 시선을 비껴 우롱차를 탄 위스키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게 몇 잔째인가? 의식이 꽃가루처럼 날아 흐트러졌다가 천천히 흡수되어 가는 느낌이다. 뭐가 어떻게 되는 상관없다는 기분과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는 기분이 번갈아 엄습한다. 오늘 이 집에 발을 들여 놓을 때는 사내와는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겠노라고 결심했지만, 주저하고 있는 것은 사내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사내의 모친에 대한 반발에서다.

--- pp. 216-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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