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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줄타기 곡예사 티불
제2부 계승자 투티의 인형
제3부 수오크
제4부 병기공 프로스페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 소개 2

유리 올레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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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주요 소설가이자 단편 작가, 희곡 작가, 시인, 수필가, 기자, 번역가, 영화 시나리오 작가. 1899년 엘리사베트그라드(우크라이나의 키로보그라드)의 몰락한 폴란드계 귀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오데사의 리셸렙스카야 김나지움 시기에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노보로시스크 대학에서 2년간 법학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 그는 오데사 문학 토론 그룹에도 참여했다. 이 그룹에서 올레샤는 젊은 작가들인 일리야 일프, 발렌틴 카타예프, 예두아르트 바그리츠키 등과 교우 관계를 맺었다. 1919년 그는 후에 폴란드로 떠난 부모님의 군주제 지지의 동정을 ‘붉은 군대’에 자원함으로써 거부했
소비에트 주요 소설가이자 단편 작가, 희곡 작가, 시인, 수필가, 기자, 번역가, 영화 시나리오 작가. 1899년 엘리사베트그라드(우크라이나의 키로보그라드)의 몰락한 폴란드계 귀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오데사의 리셸렙스카야 김나지움 시기에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노보로시스크 대학에서 2년간 법학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 그는 오데사 문학 토론 그룹에도 참여했다. 이 그룹에서 올레샤는 젊은 작가들인 일리야 일프, 발렌틴 카타예프, 예두아르트 바그리츠키 등과 교우 관계를 맺었다.

1919년 그는 후에 폴란드로 떠난 부모님의 군주제 지지의 동정을 ‘붉은 군대’에 자원함으로써 거부했다. 올레샤는 처음에 하리코프로 파송되어 선전·선동 기자로 활동했고, 오데사문학그룹 ‘녹색 등’에서 활동하며 많은 문인들과 교류했던 그는 1922년 모스크바로 이주한 뒤 철도노동자신문 『경적』에 ‘주빌로(조각칼)’라는 필명으로 풍자기사를 써 인기를 끌었다.

1927년 소설 「질투」를 발표하며 소비에트를 대표하는 작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 작품은 새로운 소비에트 질서 속에서 구세계 가치의 공존을 모색하는 동시대 인텔리겐치아의 비극을 다양한 비유와 이미지로 묘사하고 있다. 올레샤는 곧 이 소설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각색했다.

그는 1930년에 『세 뚱보』를 갖고 똑같은 작업을 했다. 이 작품들로 인해 올레샤는 소비에트 일류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후 『세 뚱보』는 여러 사람에 의해 오페라, 라디오, 영화(두 차례) 등으로 각색되었다. 그는 1932년까지 몇몇 훌륭한 단편들을 집필했다. 이 작품들은 그의 가장 뛰어난 걸작들로 간주되는데, 『버찌씨』. 『체인』, 『사랑』, 『리옴파』, 그의 유일한 원작 희곡인 「자산 목록」(1931) 등이 그것이다.

1920-1930년대 초에 씌어진 그의 단편들에서는 사물에 대한 예리하고 비범한 관찰과 직유와 은유의 눈부신 향연, 독창적인 상상력의 역동적 울림을 확인할 수 있다. 1930년대 이후 스탈린주의가 팽배해지며 그는 침묵을 강요당했고, ‘메타포의 왕’으로 이름을 떨치던 올레샤는 잡문에만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사후 출간된, 일기와 자전적 기록인 『매일 한 줄씩』은 올레샤 말년의 빛나는 문학적 상상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스탈린주의의 어두운 시절 동안 올레샤는 거의 침묵했고 생존을 위해서 번역과 약간의 이류급 이야기, 영화 시나리오 등을 집필했다. 그는 무일푼이었으나 성공한 소비에트 작가들은 그의 뛰어난 재능을 알았고 그를 접대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말년에 지나친 음주로 건강을 해친 결과 올레샤는 1960년 5월 10일 심장 발작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마지막 장편 반(半)자서적 작품인 『매일 한 줄씩』(1965)은 그가 1960년 죽을 때까지 작업했던 방대하고 다양한 단편(斷編)적 글들을 편집·발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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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은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불문학을 전공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한때 불문학을 동경했지만, 러시아 문학으로 방향을 선회,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에 입학했다. 이 궤도 선회에도 아버지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때까지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현실과 유리된 관념적 유희에 빠져, 유행처럼 번지는 학문 사조들을 무작정 좇아 헤매던 시절이었다. 그 후 《죄와 벌》의 감동이 살아 있는, ‘빛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유학을 떠났다. 이데올로기 장벽 때문에 책 속에서만 접했던 러시아 문학의 본고장에 대한 감상적 기분도
김성일은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불문학을 전공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한때 불문학을 동경했지만, 러시아 문학으로 방향을 선회,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에 입학했다. 이 궤도 선회에도 아버지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때까지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현실과 유리된 관념적 유희에 빠져, 유행처럼 번지는 학문 사조들을 무작정 좇아 헤매던 시절이었다. 그 후 《죄와 벌》의 감동이 살아 있는, ‘빛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유학을 떠났다. 이데올로기 장벽 때문에 책 속에서만 접했던 러시아 문학의 본고장에 대한 감상적 기분도 잠시, 외국 문학 전공자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언어 장벽, 사유와 지식의 빈곤은 이국의 고독과 맞물려 자신의 한계만을 절감하도록 만들었다. 집, 학교,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동선(動線) 속에서 유일한 사치는 헌책방 순례였다. 귀한 책들을 싼값에 마음껏 살 수 있었던 그때는 지금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겨우내 얼어붙은 도시 위로 낮게 드리워진 어두운 회색 풍광과 잠들지 못하는 태양이 만들어내는, 순간 증발해 버릴 것만 같은 백야의 희뿌연 안개빛 분위기에 익숙해질 무렵, 그동안의 성과를 정리해 〈20세기 초 러시아 유토피아 문학 연구〉라는 논문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여러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강의했고, ‘러시아 망명 문학 연구’라는 주제로 모교에서 박사후 과정(학술진흥재단 선정)을 마쳤다. 청주대학교에 둥지를 틀고 학생들에게 러시아어문학을 소개했다. 지금은 청주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있으며 이미지와 상상력, 서양 신화 등을 가르치고 있다.

러시아 문학과 영화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과 책을 썼으며, 전공 관련 교재도 몇 권 출간했다. 톨스토이, 체호프, 마야콥스키 등의 작품들과 러시아 문화 및 영화 관련 글도 번역했다.

지은 책으로 《톨스토이》(공저), 《러시아 영화와 상상력》 등이 있으며, 레프 톨스토이, 유리 올레샤 등 19∼20세기 여러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들과 《러시아 문화에 관한 담론》(공역) 《러시아 발레사》 등을 번역했다. 〈문화원형으로서의 도시 페테르부르크 연구〉 외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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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6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210*297*20mm
ISBN13
9791128830495

책 속으로

“병기공 프로스페로요. 근위병들이 그를 잡았어요.”
“그거 잘됐네요!” 부인이 말했다.
여자아이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넌 대체 왜 우는 거니, 이 바보 같은 것아?” 부인은 깜짝 놀랐다.
“병기공 프로스페로가 불쌍하기라도 해? 불쌍해할 것 없다. 그 사람은 우리를 해치려 했으니까…. 이것 좀 봐, 장미가 참 예쁘구나….”
커다란 장미들이 씁쓸한 물과 잎사귀가 가득한 그릇 안에서 마치 백조처럼 천천히 떠다녔다.
“자, 너한테 세 송이 사 줄게. 참, 울 이유가 없다니까. 저 사람들은 폭도들이야. 저 사람들을 철창 안에 가두지 않으면 저들이 우리의 집과 옷, 장미를 차지할 거야. 그리고 우리를 베어 죽여 버릴 거야.”

--- p.16~17

출판사 리뷰

전 연령의 러시아인들이 이 작품을 알고 있다. 원작은 물론이고, 연극, 인형극, 발레, 영화, 오페라 등으로의 각색된 작품들 또한 대중의 인기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올레샤가 어린이들을 위해 쓴 『세 뚱보』가 이렇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당대는 ‘소비에트 혁명’과 ‘계급’을 부각하는 작품이 성행하던 시기였다. 때문에 평론가들은 소비에트 혁명의 묘사와 계급의 구별을 뚜렷이 보여 주지 않는 작품을 격렬하게 비판하곤 했다. 올레샤 또한 이 비판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대중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였다. 『세 뚱보』는 소비에트 이데올로기 성향에 부합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혁명과 노동자 계급에 대한 찬양이 아닐 뿐이다. 올레샤는 악한 지도자 세 뚱보와 삼인조 주인공들의 대립을 그린다. 세 뚱보는 부유하고 욕심 많으며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이기적이다. 반대로 거기에 대적하는 주인공들은 온정이 넘치고 세 뚱보에게 맞서는 입장에 서 있다. 때문에 승리의 결말은 이념적 승리라기보다는 세 뚱보의 통치 아래 결여된 자유, 사랑, 생명의 승리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렇게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줄거리 속에 이념을 뛰어넘는 뚜렷한 인간적 주제를 보여 주었다는 점이 인기의 비결이다. 『세 뚱보』는 서로 벽을 두고 타인의 고통을 등한시하고 있는 현재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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