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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 007
누각의 소금 / 053 파루 / 101 후기 / 133 해설-「여자에게 보내(지 않)는 편지」_양윤의 / 135 작가의 말 / 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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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 폐경이 시작된 여성으로서의 명성황후에 주목
이 소설은 중세와 근대의 시간이 교차하는 1895년 조선을 배경으로 조선에 사는 사람과 조선에 온 사람의 시간의식이 다르다는 것, 서양 시간과 조선 시간을 둘러싼 권력, 그 와중에 벌어진 명성황후의 시해사건을 중심 줄거리로 전개된다. 저자는 여기서 사실 시간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아무도 시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다는 것과, 명성황후에 대한 분분한 이야기 중 40대 중반 폐경이 시작된 여성의 우울과 불안, 그리고 비숍 여사를 만났을 때의 충격에 주목한다. 왕후가 운명하신 지 한 달 만에 밤의 시작과 끝을 알리던 누각의 물시계가 멈춘 것이다. 마흔 중반, 폐경 직전이거나 갓 폐경을 맞이했을 왕후가 자주 생각났다. 어디 왕후뿐이겠는가. 조선도 폐경 직전이었고 그럼에도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떠나 오직 조선의 것이기 때문에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의 아름다움이 자꾸 들려왔다.(작가의 말 중에서) 전루군 봉출과 명성황후의 사랑 신경숙의 『리진』과 김탁환의 『파리의 조선 궁녀 리심』이 명성황후의 시녀였던 리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면 정영선의 『물의 시간』은 전루군 봉출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수십 년간 물시계에 물을 채우고, 잣대를 확인하고 파루(罷漏) 시각을 알려온 전루군 봉출은 오늘도 어김없이 파루를 알리는 북을 친다. 그러나 궁궐 안은 오늘 울린 파루의 북소리에 대해 시각이 맞느니 안 맞느니 말들이 많다. 왕후를 마음에 품은 전루군 봉출은 왕후를 위해 북을 치고, 왕후는 수십 년간 들어온 그 북소리가 맞는다는 걸 몸으로 안다. 그러나 왜국 영사관 직원은 시각이 틀렸다고 불평하고, 급기야 봉출은 의금사로 끌려가게 된다. “시간이란 게 원래 몸에 새겨지는 게 아니겠소이까. 내 수십 년간 그 소리를 듣고 아침저녁을 맞았습니다. 이제 내 몸이 그 북소리에 익숙해져 있을 터인데 오늘 새벽의 파루는 내 몸과 한 치의 빈틈이 없었소이다. 내 자세히는 모르나 그 전루군은 아주 오랫동안 누각에 있었던 것 같은데…….”(61∼62쪽) 왕후를 마음에 품은 전루군 봉출이 왕후를 위해 북을 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둘이 공유한 과거의 기억이 과거와 현재 사이를 오가는 매개자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왕후에 대한 봉출의 사랑은 이 소설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은 세속적인 열정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여기서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이기도 하지만, 침묵해야 하는 자들의 공감과 연민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왕후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자신이 수십 년간 들어왔던 파루의 전루군 이름이 어릴 적 만났던 봉출임을 알게 된다. “빌고 빌어 제 속으로 난 세자까지도 가끔 희미할 때가 있는데 어린 시절 만난 박봉출만 어찌 이리 생생한지……. 왕후는 일순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것 같았다. 사직을 위해서, 왕후를 위해서 누각의 종을 울린다는 영상의 말이 귀에 생생했다.”(271쪽) 직관과 내면의 언어로 왕후와 소통하는 이방인 ‘비숍 여사’ 왕후의 말벗이면서 이방인의 시선으로 조선을 관찰하는 등장인물 ‘비숍 여사’는 소설 속에서 ‘지리학자’로 등장한다. 그러나 지리학자는 단순히 서구의 이론으로 조선을 평가하려 들지 않는다. 여행하는 자가 체험을 통해서 얻은 교훈은 경계의 모호함에 대한 자각에 가깝기 때문이다. 비숍 여사가 들려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동굴은 왕후의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간이 과거와 미래 양방향으로 흐르는 토끼굴은 과거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이 혼융된 왕후의 시계(視界)와 일치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지리학자와 왕후는 직관과 내면의 언어로 소통한다. 작가는 지리학자의 내면을 통해 “자신이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말을 듣는 것 같았다”고 표현한다. 그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표현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 해서 알 수 없는 건 아니”며 “보는 방법이 다를 뿐”이라는 다소 직설적인 표현은 소통이라는 이 소설의 핵심적 테마를 보여주는 것이다. 다양한 시간성이 뒤섞여 있는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 간의 소통은 언어의 소통가능성이 아니라 언어의 소통-불가능성에 의해서, 비로소 가능해진다.(해설-양윤의 문학평론가) 한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연서 이 소설은 한 인간의 죽음을 전하는 비통한 부고이자, 한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연서이다. 비극적인 죽음으로 봉합된 왕후의 삶은 물기가 마른 뒤 종이 위에 남은 작은 소금 알갱이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다. 그것은 검은 잉크로 쓴 글씨를 지우지 않는 작은 알갱이에 불과할 것이다. 작가는 그것을 ‘여인의 역사’라고 불렀다. 죽음은 역사라는 의미맥락 안에 포섭되기보다는 역사를 향한 질문으로 끝없이 되돌아온다. 그것은 우리가 “외롭지도 서럽지도 않아도” 떠오르는 질문이다. 작가는 한 편의 연애편지를 손에 들고 우리에게 천천히 읽어주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한 여인의 죽음(비밀)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한 여인의 삶(이야기)에 대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