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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장 고독은 나 자신과의 대화이다 나는 왜 고독하다고 말하지 못하는가 | 나는 고독하다, 고독하다 |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 고독을 짊어지다 | 고독을 거부하는 사회 | 산산조각 난 고독 | 욕망의 출구를 찾아서 | 고독을 노래하다 | 고독에 살고, 고독에 죽다 | 죽음은 삶의 본질이자 고독의 숙명이다 | 고독은 삶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 의미 있는 삶은 없고, 무의미한 삶도 없다 | 왜냐하면 고독하기 때문에 | 고독을 욕망하다 | 고독은 결코 쓸쓸하지 않다 2장 말하는 사람은 있지만 듣는 사람은 없다 혀에 대한 고찰 | 화자는 있지만, 청자는 없는 사회 | 말을 삼가고 행동에 주의하라 | 감정 없는 언어는 소리일 뿐이다 | 언어의 힘으로 고독을 이기다 |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를 들어라 | 절대고독의 시간, 타자의 목소리와 마주하다 | 거짓 소리와 거짓 표정 | 언어, 우리 안에 내재된 기억 | 소통의 힘을 잃은 언어는 소리에 불과하다 3장 꿈꾸는 사람은 고독하다 꿈꾸는 자, 새로운 문을 열다 | 혁명의 시, 거대한 충격과 울림 | 진정한 혁명은 자신에 대한 혁명이다 | 혁명가가 고독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 | 실패한 혁명가, 고독을 완성하다 | 모든 고독한 사람은 시인이다 | 고독은 나를 찾아가는 길 | 절대고독을 위한 발걸음 | 성공한 혁명가는 다시 꿈꾸지 않는다 | 깨어난 꿈, 부서진 이상 | 만약, 그리고 문학이 있다면 | 고독과 함께 혁명은 끝난 것인가 4장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어둠 우리 안에 감추어진 폭력 본능 | 폭력은 어떻게 미학으로 변하게 되었는가 | 늑대를 그리워하며 | 폭력을 희망하고, 폭력을 거부한다 | 폭력의 이중성 | 폭력의 본질은 인간 본성에 대한 반전이다 | 잠재의식 속 폭력의 미학 | 폭력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 문명의 허울을 둘러쓴 폭력 | 문화 우월주의, 또 다른 이름의 폭력 | 폭력을 둘러싼 인간 군상의 블랙 코미디, [밍위에 여사의 손가락] | 인간의 이기심이 부른 또 다른 폭력 | 합법성을 쟁취한 폭력은 더 큰 폭력으로 나타난다 5장 생각하는 사람은 고독하다 생각지도 말고 논하지도 마라 | 소통하지 않으면 생각은 단절된다 | 삶이 황당무계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 태양은 생각하는 뇌를 지치게 한다 | 고난은 삶의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 타자에 대한 이해에서 사유는 시작된다 | 사유의 고독은 단절에서 비롯된다 | 의심하고, 살펴보고, 생각하라 | 사유하는 자는 고독하다 | 고독은 사유의 시작이다 |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고독 6장 고독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윤리가 넘어야 할 난관 | 나의 몸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 쾌락과 본능 그리고 윤리 사이 | 자아를 찾아 떠날 기회 | 마음의 실종은 존재를 부정한다 | 사랑에 의존할 때 자아는 상실된다 | 모든 윤리의 끈은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 폭력으로써의 윤리 | 아름답고도 추한 윤리의 모든 얼굴 | 내 마음속 서랍을 열어라 | 깨진 조각을 다시 맞춰 자아를 되찾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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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에 대한 탐구는 반드시 자신에게로 회귀한다. 고독은 일종의 도덕적 의식이므로 자아성찰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집단의 도덕적 의식은 종종 타인에 대한 질책으로 변질되는데, 서양에서의 도덕관은 개인의 자아성찰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인다. 서양에선 타인에 대한 비판을 도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반성이 바로 도덕이다.
나는 믿는다. 언젠가 고독은 우리가 새로이 뉘우치고 도덕 의식을 살피는 데 도움을 줄 것이며, 그때 도덕적인 순결이 싹틀 것이다. 도덕이 연기로 변하면 순식간에 가짜로 변질되고 만다. 그러면 도덕은 각종 형태의 연기로, 가장 도덕적이지 않는 사람은 가장 도덕적인 사람으로 변해버리기 마련이다. 말과 행위가 서로 따로 놀기 시작하는 것이다. - [1장_ 고독은 나 자신과의 대화이다] 중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언어의 고독이다. 언어가 소통의 힘을 갖추지 못했을 때, 언어의 소통 가능성은 비로소 시작된다. 앞 장에서 언급했듯, 고독은 고독하지 않은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고독이 두려워 고독을 몰아내려 고독하지 않는 원인을 찾으려 할 때가 가장 고독한 때인 것처럼 말이다. 언어가 소통의 힘을 갖추지 못했을 때, 말하자면 언어가 고착화되고 유형화된 형태로 나타나면 기관총의 콩 볶는 소리처럼 그저 소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서로 다른 내용을 담고 서로 다른 사상을 담고 있을 때 비로소 언어의 본질이 드러난다. - [2장_ 말하는 사람은 있지만 듣는 사람은 없다] 중에서 맨 마지막에 아름다운 구두점을 찍지 못한 혁명가는 실은 정말 볼썽사납다. 이는 내 논리에 모순되는 것이기도 하다. 혁명가의 고독은 마땅히 죽은 자아가 있어야 하지만, 혁명은 성공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왜 모든 혁명가는 실패자의 모습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가? 혁명가란 자신의 꿈을 완성하려는 사람이지만 일단 혁명이 성공하면 꿈은 다시는 꿈이 될 수 없고, 반드시 제도적인 개혁을 수행해야 하며, 자질구레하고 잡다한 행정 업무에 얽매이기에 다시는 시가 될 수 없다. 혁명가의 고독을 고집하려면 반드시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 고집했던 미학의 이데올로기를 고집해야 한다. 결코 유방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면 안 된다. 나는 우리 모두는 유방이지 항우가 아니기를 희망한다고 믿는다. 모두 성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실패자가 되기를 바라진 않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미학으로 남겨진 부호는 모두가 고독한 사람이요, 실패한 사람이다. - [3장_ 꿈꾸는 사람은 고독하다] 중에서 만약 폭력을 야만으로 정의한다면, 우리가 갖는 모순은, 야만과 폭력의 상황에 처해 있지 않으면 그 사람은 완벽한 인성을 가진 인간으로 여겨지지만, 실제 상황은 오히려 이와 정반대로 생존의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문명과 원시, 진보와 야만은 공존 가능할까? 어떻게 폭력을 보유하고 폭력을 미학으로 변하게 할 것인가가 폭력의 고독자에게는 중요한 과제다. - [4장_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어둠] 중에서 나는 사유의 고독이 이 책에서 논한 여섯 가지 고독 중 가장 큰 고독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하지 않는 사회에서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의 마음과 영혼은 가장 적막하고, 가장 고독할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고독을 참아내야 한다. 그가 하는 이야기를 아마도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도 없고, 수용할 수도 없으며, 심지어 비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독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사유하는 습관을 끝까지 고집스럽게 지켜낼 수 있는가? 이는 아주 어려운 시험이다. - [5장_ 생각하는 사람은 고독하다] 중에서 어떤 교육이든 우리의 사유를 철저히 부술 수 없다면 이는 역량이 부족한 탓이다. 한 장의 그림, 한 곡의 음악, 한 편의 영화, 한 권의 문학 작품 앞에서 철저하게 깨지고 부서진 후 다시 자신의 신앙으로 되돌아와 재정비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원래의 신앙으로 되돌아와 재정비할 수 없다면 이 신앙은 믿을 가치가 없는 신앙이며, 가져다 버려도 시원치 않을 신앙이다. 모두가 파쇄된 조각을 다시 맞추는 과정을 거쳐 자신의 윤리의 고독을 되찾기를 희망하는 바다. - [6장_ 고독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중에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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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학의 대가, 쟝쉰이 알려주는 고독을 이기는 여섯 가지 방법
≪사랑하는데 나는 왜 고독할까≫는 2002년 [롄허[聯合] 문학]에 게재된 저자가 고독의 여섯 주제로 강의한 내용을 모아놓은 책이다. 제목 그대로 현대인들이 느끼는 고독에 대해 저술한 이 책은, 고독을 욕망의 고독, 언어의 고독, 혁명의 고독, 폭력의 고독, 사유의 고독, 그리고 윤리의 고독 이렇게 여섯 가지 주제로 분류해놓았다. 잔혹한 청춘 속에서 야수처럼 질주하는 “욕망의 고독”, 뭇 사람들이 떠들어대지만 그 누구도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 “언어의 고독”, 거칠 것 없이 득의양양하게 시작했지만 그 끝은 쓸쓸하고 허무한 “혁명의 고독”, 인간 본성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숨어 있는 본질적인 본성 “폭력의 고독”, 생각하지도 논하지도 않아야 하는 “사유의 고독”,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속박하고 구속하는 “윤리의 고독”이 저자가 분류한 인간의 고독이다. ≪사랑하는데 나는 왜 고독할까≫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어떻게 고독을 사라지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다. 개인의 가장 내밀한 사적 공간마저도 인정하지 않으며 집단에 최고 가치를 둔 유교 전통 문화 속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일궈온 저자는, 고독이 만연한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고독을 몰아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고독을 완성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고독을 베풀 것인가, 어떻게 하면 고독을 존중할 것인가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단지 고독에 대한 자신의 사변을 늘어놓거나, 고독은 나약한 마음의 징표라며 설교하려 들지 않는다. 저자는 인간의 느끼는 고독 그 자체에 집중한다. 우리가 느끼는 고독을 욕망, 언어, 혁명, 폭력, 사유, 윤리 여섯 개의 카테고리로 구분하고, 이를 문학과 철학, 미술과 영화, 중국 역사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미학가인 작가는 특유의 사유와 정서를 바탕으로 고독을 깊이 파고들어 개인의 기억과 미학에 관한 추궁, 문화에 대한 반성, 사회 비판을 고독과 혼연일체가 되도록 한다. ⊙ 고독이 거부당한 시대, 어떻게 꿈을 지켜나갈 것인가? 고독함 속에서 강한 자는 성장하지만, 나약한 자는 시들어버린다(칼릴 지브란). 고독하지만 고독하지 않다고 소리 높여 외치고,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이 사회에서 왜 우리는 ‘고독’이란 단어에 집중해야 할까? 고독이 외로움과 분리되고, 절망에서 벗어날 때 진정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에너지원이 되기 때문이다. 고독은 피해야 할 어두운 그림자가 아니라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쟝쉰이 ≪사랑하는데 나는 왜 고독할까≫에서 말하고 있는 고독은 ‘고독하기 때문에 이런 모습이다’가 아닌, 결핍과 부재 그리고 권위에 의해 야기되는 고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이 상실되지 않는 한, 이러한 고독에 대한 투쟁은 성장으로 연결된다. 자, 그럼 우리는 고독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고독해져야 하며, 어떻게 고독을 존중하여 완성할 수 있을까? 그 첫 출발은 용감하게 대중 속을 헤집고 나와 고개를 돌려 스스로를 성찰하는 것이다. 고독에 대한 탐구는 바로 나 자신에게로의 회귀이다. 이것이 바로 고독의 출발점이다. 이제 우리는 고독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어떻게 고독해져야 하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고독을 인생의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쟝쉰은 ‘의미 있는 삶은 없다. 그리고 무의미한 삶도 없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고독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진정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만이 타인의 고독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것이다. ⊙ 고독을 통한 진정한 자아 찾기 “고독과 적막은 다르다. 적막은 당혹스럽지만, 고독은 풍만하다.” 나는 고독하지 않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은 고독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진정 고독은 두려운 것인가? ≪사랑하는데 나는 왜 고독할까≫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어떻게 고독을 사라지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다. 개인의 가장 내밀한 사적 공간마저도 인정하지 않으며 집단에 최고 가치를 둔 유교 전통 문화 속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일궈온 쟝쉰은 고독이 만연한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고독을 몰아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고독을 완성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고독을 베풀 것인가, 어떻게 하면 고독을 존중할 것인가에 관해 이야기한다. 고독은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고독은 사유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사고의 과정이 점점 더 결여되어 가는 시대적 폭력으로부터, 하나의 목소리만을 원하는 시대적 요구로부터 벗어나 나의 사고를 해방시키고 존재 이유를 발견하도록 하는 혁명의 과정이다. 즉 고독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생명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쟝쉰의 ≪사랑하는데 나는 왜 고독할까≫는 고독에 대한 자신의 사변을 늘어놓거나, 고독은 나약한 마음의 징표라는 설교를 늘어놓지 않는다. 그저 인간이 느끼는 고독 그 자체에 집중한다. 욕망의 결여, 소통의 부재, 권력의 통제, 꿈의 상실 그리고 관계의 거부와 집단의 폭력의 6가지 고독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다. 이를 문학과 철학, 미술과 영화, 중국 역사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미학가인 작가는 특유의 사유와 정서를 바탕으로 고독을 깊이 파고들어 개인의 기억과 미학에 관한 추궁, 문화에 대한 반성, 사회 비판을 고독과 혼연일체가 되도록 한다. 타이완의 정신적 지주이자 리더인 쟝쉰! 그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진 바는 전무하다. 쟝쉰은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수재이다. 쟝쉰의 어머니는 청나라의 귀족 집안 출신이었고, 아버지는 푸젠(福建)의 농민 출신이었다. 결혼 후 그의 아버지는 황푸(黃?)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군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쟝쉰이 두 살 되던 해인 1947년 타이완으로 이주한 후에는 공무원 생활을 하게 된다. 귀족과 농민 출신의 결혼이라는 이질적인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쟝쉰은 두 집단 간의 문화 충돌과 교류를 경험하게 된다.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그는 송나라 휘종의 서법 등 차원 높은 회화 작품을 접하게 되었고, 이는 모두 그의 미학 범주가 되는 자양분이 되었다. 쟝쉰은 타이완에서 ‘미학의 대가’, ‘정신적 지주’ 혹은 ‘계몽자’로 칭송받고 있다. 그는 문학, 예술, 미학을 하나로 꿰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이완의 정신을 이끌어가는 리더로, 많은 강연과 저작 활동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풍류를 즐기는 그는 시문화부 장관직을 거절하기도 하였다. 여류작가인 장샤오펑(張曉風)은 쟝쉰을 “마치 살아있는 신선과 같은 인물”이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정신적 지주로, 시대를 이끌어가는 리더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풍류가로 살아가고 있는 쟝쉰이 세상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고, 세월을 성찰해온 결과를 모아 세상에 내놓은 것이 바로《사랑하는데 나는 왜 고독할까》이다. 고독이 거부당한 시대, 생각이 소외당하는 시대에 사유하고 몰입하는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고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완성시키고 존중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 책은 생각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