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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글누림 2018.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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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소설
김문수 소설집 『비일본계(非日本界)』
데니스 루헤인의 『무너진 세상에서』
마르코스의 『군터의 겨울』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350권 돌파를 지켜보면서
박성원 소설집 『고백』
에리히 캐스트너 『하늘을 나는 교실』
오르한 파묵, 『내 마음의 낯섦』
오스카 와일드, 『오스카리아나』
새 번역, 나쓰메 소세키의 『와가하이와 네코데아루』
최일남의 새 소설집 『국화 밑에서』
토마스 만의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
헤더 W. 페티, 『Mr. 홈즈 Miss 모리아티』
페터 한트케, 『보덴호수 말 타고 건넌 기사』

2부 시
김광규, 『안개의 나라』
이시영, 『시 읽기의 즐거움』
김승일 시집 『프로메테우스』
배수연 첫 시집 『조이와의 키스』
성선경 시집 『까마중이 머루 알처럼 까맣게 익어 갈 때』
연필로 베껴 쓴 조태일 시집 『국토』 그리고 창비시선
창비시선 400 기념시선집, 『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

3부 역사·철학
케이트 에번스, 『레드 로자』
메리 비어드,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
이재석, 『박정희, 독도를 덮다』
『비잔티움 제국 최후의 날』과 『부의 도시 베네치아』
이광수,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
조영남,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시리즈
『중세의 죽음』
고유경,『독일사 깊이 읽기-독일 민족 기억의 장소를 찾아서』

4부 문화·교양
수잔 스튜어트, 『갈망에 대하여』
윤준호, 『고물과 보물』
김화성의 『전라도 천년』
다카하시 데쓰오, 『미스터리의 사회학』
월터 딘 마이어스의 『더 그레이티스트』
최순우,『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스티븐 제이 굴드, 『판다의 엄지』
박정원, 『신이 된 인간들』
고나희의 『여행의 취향』
스노우캣의 『옹동스』
김태훈의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
손광수의 『음유시인 밥 딜런』
틱낫한 스님, 『너는 이미 기적이다』
이영미, 『한국대중예술사, 신파성으로 읽다』

5부 시인·작가
독일 시인 미하엘 오거스틴
아르헨티나 시인 에스테반 무어
소설가 정찬주
제 2영역시집 『SF-Consensus(SF-교감)』 출간한 박제천
첫 작품집 『급소』 펴낸 소설가 김덕희
칠레 시인 세르히오 바디야 카스티요
고 김강태 가상 인터뷰 계간 『시작』 2013년 가을호

6부 독서
『계간파란』 2016년 가을호 ‘들뢰즈’
채상우 시인이 이끄는 『무크 파란』 창간호의 문학실험
박숙자,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
강진, 백승권의 『손바닥 자서전 특강』
정은경, 『밖으로부터의 고백』

저자 소개 1

시인.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서울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저서로 『농구 코트의 젊은 영웅들』(1994), 『타이프라이터의 죽음으로부터 불법적인 섹스까지』(1994), 『농구 코트의 젊은 영웅들 2』(1996), 『길거리 농구 핸드북』(1997), 『X-레이 필름 속의 어둠』(2001), 『스포츠 공화국의 탄생』(2010), 『스포츠 보도의 이론과 실제』(2011), 『그렇다, 우리는 호모 루덴스다』(2012), 『미디어를 요리하라』(2012·공저), 『아메리칸 바스켓볼』(2013), 『우리 아버지 시대의
시인.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서울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저서로 『농구 코트의 젊은 영웅들』(1994), 『타이프라이터의 죽음으로부터 불법적인 섹스까지』(1994), 『농구 코트의 젊은 영웅들 2』(1996), 『길거리 농구 핸드북』(1997), 『X-레이 필름 속의 어둠』(2001), 『스포츠 공화국의 탄생』(2010), 『스포츠 보도의 이론과 실제』(2011), 『그렇다, 우리는 호모 루덴스다』(2012), 『미디어를 요리하라』(2012·공저), 『아메리칸 바스켓볼』(2013), 『우리 아버지 시대의 마이클 조던, 득점기계 신동파』(2014), 『놀이인간』(2015), 『휴먼 피치』(2016), 『맘보 김인건』(2017),기자의 독서』(2018), 『옆구리에 대한 궁금증』(2018), 『한국 태권도연구사의 검토』(2019·공저), 『기자의 산책』(2019), 『아픈 곳이 모두 기억난다』(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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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9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148*210*30mm
ISBN13
9788963275321

책 속으로

콜롬비아의 가르시아 마르케스,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보르헤스는 스페인어로 시와 소설을 썼다. 조제마우루 지 바스콘셀루스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파울로 코엘류는 『연금술사』를 포르투갈어로 썼다. 거기서도 무라카미 하루키나 오르한 파묵을 읽을까.
“그래서 『군터의 거울』이 더욱 반갑다”라고 쓰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새빨간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 나는 파라과이 작가 후안 마누엘 마르코스를 모른다. (책에는 ‘마르꼬스’로 인쇄했지만 신문은 국립국어원의 표기법을 따른다) 거기다 번역이 가로막고 있다. 소설을 앞에 놓고 비로소 공부하기 시작한다. --- p.26~27

문화 영역에서, 특히 학문과 예술의 영역에서 번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식의 발전 속도가 빠르고 예술 감성과 기법이 방향과 층위를 가리지 않고 두려움 없는 도전을 거듭하는 지금 번역은 가장 안전하면서도 믿을 수 있는 파이프 역할을 한다. 여기에는 고도의 지성이 개입하며 자의식이 작동한다. --- p.33

누군가 먼 곳을 그리워할 때, 그리움에는 근원이 있다. 우연의 산물인 듯한 행동에도 실마리는 있다. 실마리를 공안公案으로 삼아 성찰하면, 마침내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잡아당기듯 영원과도 같은 시간의 미로를 더듬어 과거의 어느 한 순간과 조우하게 된다. 그래서일 것이다. 나는 일 년에 몇 번 에리히 캐스트너가 쓴 『하늘을 나는 교실』을 읽는다. 청소년을 위한 아름다운 이야기다. 내 나이 또래라면 대부분 초등학교 시절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급문고에서 빌려 처음 읽었다. 그때 제목은 ‘날아가는 교실’이었다. 독일어 제목(Das Fliegende Klassenzimmer)을 생각하면 어느 쪽도 이상하지 않다. --- p.40

책을 읽는 여러 방법이 있다. 옛 선비처럼 몸을 좌우로 흔들며 소리 내어 읽을 수도 있다. 낭독. 말없이 한 자 한 자, 한 줄 한 줄 눈길로 따라가도 좋다. 묵독. 소리 없이 눈으로 읽어도 우리의 뇌는 음성행위를 한다. 두개골 앞에 훤히 불이 들어온 프롬프터처럼 책을 쓴 언어가 은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그래서 책이 내게 전하는 메시지는 영겁에서 시작해 나를 스쳤다가 다시 영겁으로 가는 우주의 나그네가 된다. 책은 저자와 그 물리적 형태로부터 해방되어 추상이 되는 한편 명료한 체험으로 뇌리에 각인된다. --- p.53

나는 대학생이었다. 늦은 오후 수업, 국어국문학과 학생이 연극영화과 학생들과 함께 듣는 과목이니 시나리오 또는 희곡론이었으리라. 문과대 건물을 나서니 어둑했다. 연영과 여학생이 연극 팸플릿을 주었다. [보덴호수 말 타고 건넌 기사]. 서울 운니동에 있는 실험극장에서 공연했다. 1984년 9월 5일.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 내게는 돈이 없었다. 필동에 있는 ‘이층집’(단골 식당 또는 술집)에서 소주를 한 잔 하면 집에 갈 차비조차 없을 터였다. 나는 터덜터덜 걸어서 덕성여대 근처에 있는 작은 극장을 찾아 갔다. 담배를 피우며 연극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지금도 이 연극을 생각하면 배고픔과 쓴 담배 맛이 떠오른다. --- p.75

내게는 버릇이 있다. 새 시집을 받으면 행운을 점치듯 책갈피를 펼쳐 만나는 첫 시를 공들여 읽는다. 가능하면 그 시는 외우려 노력한다. 배수연의 시집에서 읽은 첫 작품은 「오렌지빛 줄무늬 교복」이다. 출처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은 정서가 오감을 어지럽게 한다. 또한 시인은 어마어마한 재능과 어찌나 순수한지 관능적이기까지 한 미숙함(또는 낯섦)으로 독자를 한편 짜릿하고 한편 서글픈 시간 속에 빠지게 한다. ‘오소리 같은 심장’ ‘갈색 소스가 흐르는 싸구려 햄버거’ ‘바짓가랑이 아래로 흐르는 베고니아 똥꼬의 유혹’ ‘커서 엄마가 될지 담임이 될지 알려주지 않는 창문’…. --- p.95

성선경의 시도 채상우가 풀어쓴 글도 맺힌 곳 없다. 이 쉬운 글들은 우리 마음속에 스며들어 애틋한 감정을 우러나게 만든다. 콘크리트를 다져 지은 집에 물기가 새어들고 벽을 물들이고 퍼릇퍼릇 거뭇거뭇 곰팡이를 피워낼 때 우리는 어느 곳에 금이 갔는지 찾지 못한다. 다만 고요한 가운데 마음 한곳이 출렁이며 창밖에 내리는 비가 단지 거리의 소음만은 아니며 내 마음 깊은 곳을 적시게 됨을 실감한다. 시란 그런 것이다. --- p.102

하늘이 어둑하다. 바다는 검다. 에스메랄다호가 석호를 가로지른다. 검은 연기를 뿜으며, 황소처럼 긴 울음을 토해낸다. 저 멀리 갯벌이 드넓다. 강박관념처럼, 털어낼 수 없는 상념처럼 주제선율이 흐른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루치노 비스콘티가 감독한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원작은 토마스 만의 동명 소설(Der Tod in Venedig)이다. 나는 소설의 주인공, 구스타프 아셴바흐처럼 음울한 표정으로 낡은 여객선을 타고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상상을 오랫동안 했다. --- p.132

나는 이 책을 단숨에 읽었다. 그러나 책이 품고 있는 무한대의 공간을 내면에 수용하기 위해서는 오랜 되새김질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로마제국 시대로부터 베를린 봉쇄로 상징되는 동서 냉전 시대를 아우르고 그 위에 현대를 세웠기에 방대한 역사적 지식을 동원해야 저자가 구축한 담론의 세계에 입장할 수 있다. 전쟁사, 철학사, 종교사, 예술사, 인물사를 망라한 서술을 꼼꼼한 각주와 미주, 적절한 시각자료들이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텍스트와 주문, 사진만으로 책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기 어렵다. 그만큼 깊은 책이다. --- p.155

내가 어릴 때, 여름이면 극장에서 ‘공포영화’를 상영했다. 소복을 입고 산발한 처녀가 등장했다. 처녀는 한밤에 산속에 있는 무덤을 열고 나왔다(산길을 내려올 때는 비틀거리며 발밑을 조심했다). 소복과 긴 생머리는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장치였다. 1960~1970년대의 골목에서는 어머니들이 딸들을 야단쳤다. “미친×처럼, 귀신처럼 머리는 풀어 헤치고 …!” 맞다, 처녀 귀신들은 살짝, 아니면 심하게 미친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무서워도 궁금증은 남았다. 어쩌다 저리 됐을까? 끝까지 보면 답이 나왔다. --- p.175

이 글을 읽고 어딘가에 숨어서 울고 싶어졌다. 나는 생각했다. ‘아, 칸타는 지금쯤 녀석이 세 살 되던 가을날 세상을 떠난 내 어머니를 만났겠구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칸타를 소개했겠지. 칸타는 지금쯤 나와 내 아이들과 생김새가 비슷한 어른들 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야. 그리고 내가 죽어 레테(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강)를 건널 때면 맞은편 기슭에 나와 꼬리를 흔들며 멍멍 짖겠지. 그 때 되면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다 알 수 있으리라. 녀석에게 물어봐야지. 넌 나를 어떻게 생각했어?’ --- p.205

김덕희는 여러 소설에서 순환구조에 대한 천착을 보여준다. 이 순환은 뱀이 제 꼬리를 물고 희롱하다 스스로를 삼켜 버리는 것과 같은 파멸이 예고된 원형의 터널이 아니다. 오히려 무한한 확장의 가능성을 내포한 원심력 충만한 순환으로서 독자의 의식세계를 무한히 잡아 늘여 끝끝내는 수습할 길이 없게 만들 정도다. 「낫이 짖을 때」는 첫 문장 “나는 글을 읽을 줄 모른다”로 시작해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그럼으로써 강력한 깨달음을 경고하지만 당신은 이 소설을 다 읽은 다음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인셉션Inception]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팽이가 돈다.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팽이가 돈다. 열릴 듯 열리지 않는 문처럼, 닫혀 있지만 곧 열릴 문처럼 시간은 당신을 겁박한다. 즉, 김덕희는 당신의 인생을 추궁한다. --- p.259

나는 1976년 여름에 삼중당문고에서 낸 책을 처음 샀다. 이광수가 쓴 『무정』. 서울 면목초등학교 앞에 있는 문구점 겸 책방, 나무로 짠 책꽂이의 중간쯤에 상하 두 권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이때 국어선생님을 병적으로 사랑했다. 이 사랑은 불에 덴 자리처럼 나의 삶에 선명한 흔적으로 남았다.

--- p.191

출판사 리뷰

이 책에 실린 글은 독후감들이다.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닐 때 국어 선생님들에게 책을 읽으면 반드시 독후감을 써야 한다고 배웠다. 독후감에는 단지 책의 줄거리만 추려 정리해서는 안 되고, 글을 읽은 결과 내 안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글을 읽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래서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지 같은 내용도 써야 한다고 했다. 나는 어릴 때 배운 기억을 오래 간직하는 편이고, 한 번 배우면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자전거를 탈 때는 반드시 자전거의 왼쪽에서 왼발로 페달을 밟고 오른쪽다리를 들어 올려 안장에 오른다.

책도 몸에 밴 순서대로 읽어 나간다. 책은 존중받아야 하고, 지은이도 존중받아야 한다. 책은 가장 아름다운 대화 상대다. 사랑스런 숙녀와 대화하면서 그의 눈길을 피할 리가 있는가. 그가 하는 말을 절대 흘려들을 수 없다. 그러므로 책을 읽다 주변의 소란에 한 순간이라도 정신을 빼앗겼다면 반드시 그 부분을 다시 읽는다. 그리고 노트북이나 수첩, 일기장 같은 데에 때로는 길게 때로는 짧게 독후감을 쓴다. 독후감은 책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글쓴이가 주인공이 되기도 하며 책이 하는 이야기가 주제가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 책과 저자, 주제가 나의 내면에 일으킨 화학작용을 조용히 관찰하면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정리해 나가는 것이다.

이 책에 실린 글은 공통점이 있다. 나는 서울시 중구 초동 아시아미디어타워 10층에 있는 내 사무실에 매주 도착하는, 여러 출판사에서 보낸 신간안내용 책들을 읽고 아시아경제 지면이나 온라인 공간에 서평 또는 독서 칼럼을 쓰고 있다. 그중에 2015년 봄부터 2018년 봄까지 쓴 글을 이 책에 모았다. 미디어 종사자의 책읽기는-이러한 일반화가 부당하다면 나의 책읽기는-특정 분야 전문가나 마니아의 독서와 다르다. 문화부 기자들은 매주 쏟아져 나오는 새 책들을 마감 시간에 쫓겨가며 빠르게 읽는다. 책의 제목과 내용, 출판가와 서점가의 흐름, 지적 호기심의 유행 정도를 파악하고 그 사실에 유념하면서 때로는 뉴스로, 때로는 서평이나 책 소개 형식의 다소 긴 산문으로 독자에게 소개한다. 기자들이 남다른 책읽기를 한다지만 방법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새 책의 본질을 파악하고 글쓴이가 의도한 방향과 논의의 진행 양상, 주제어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은 흡사할 것이다. 이 방식에는 독서를 즐기는 보통 사람들이 참고해도 좋을 점이 적지 않다. 특히 능률이라는 면에서 그러하다. 요점 파악, 인용 대상 문구의 수집, 비교 대상의 추출 등은 독후감은 물론이고 보고서나 제안서에도 두루 활용될 수 있을 만큼 효과적인 독서 요령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언젠가 조용히 책을 읽어 나가다 나의 경험을 독자와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누구나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에게는 내가 가장 중요한 존재여서 책이 누리는 사회적 평판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책을 쓴 저자가 아무리 유명하고 존경을 받아도 나와는 크게 관계가 없는 과거나 현재의 생명체일 뿐이다. 나에게는 책을 만나는 반가움과 읽기로 결심하는 순간의 결단, 읽어 나가는 동안의 희열과 인내, 행간을 짚어 나가며 내 안에서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은근하게 근본을 바꿔 나가는 정신과 정서의 화학작용, 이러한 경험들이 훨씬, 아니 유일하게 중요하며 양보할 수 없는 고유의 생명활동이 된다. 솔직히 말해 나는 재미 삼아 책을 읽는 편이다. 책의 주장이나 지은이가 전달하려는 새 정보에 어지간해서는 설득되지 않는다. 내가 새 지식과 통찰을 발견하고 경험하는 장소는 책 밖에, 그러니까 나의 현실 속에 있다.

독서를 간접체험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독서는 체험을 돌이키기도 하고 체험 자체이기도 하며 낯선 초대이기도 한다.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행간 속에 빠져들어 상념에 잠기곤 한다. 이런 일은 한눈을 팔거나 다른 생각을 하는 일반적인 독서의 실종과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같은 소설을 읽을 때. 이 소설은 수많은 복화술로 점철되어 있다. 나는 독자로서 특별한 경험을 한다. 그러한 경험은 지은이의 글쓰기라는 창조의 레일에서 벗어나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일탈이나 탈선을 떠오르게 하지만 사실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독서행위라고 보아야 옳다. 수묵화의 배접을 분리하거나 그 사이에 스며들어 혹시 남았을지 모를 풀기를 손가락 끝에 찍어보는 물리적 실험, 여러 번 덧그린 유화의 표면에 뢴트겐을 조사하여 깊은 곳에 파묻힌 처녀의 청동열쇠를 찾아내는 일에 비유할 수 있을까. 특히 번역 소설을 읽을 때 이러한 경험은 생생하다. 나는 인상적인 작품을 읽은 다음에는 가능한 한 원래 언어로 출판한 책을 구입해 다시 읽기를 원한다. 물론 다국어를 익히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은 만용에 가깝다.

그러나 라틴계의 언어라면 한두 페이지쯤 도전해 보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나의 독서에는 사전이 많이 동원된다. 모국어로 쓴 글을 읽을 때도 사전은 곁에 두어야 한다. 나의 독서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경험일 뿐이다. 내가 밥벌이를 하기 위해 책을 읽고 신문에 글을 쓸 때도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독백과도 같은 책읽기 경험담이 독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사무적인 설명은 이미 앞서 했으니 반복하지 않겠다. 다만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멋진 여행을 하고 온 사람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허겁지겁 보고 듣고 맛본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던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 서로 말문을 틀 때도 경험의 고백은 도움이 된다. “낙안읍성에 가 보셨나요? 아 아직 안 가보셨구나. 기회 되면 꼭 가보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저는 2012년에 처음 가봤는데요…” 때로 공통의 경험을 교환하는 자리라면 더욱 원만한 대화가 오고갈 것이다. “아, 거기를 가셨군요. 야아~ 거기는 웬만해서는 들르지 않는 곳인데 선생님도 저만큼이나 호기심이 많으신가 봐요. 어떠셨어요? 저는 아주 반했습니다만….”

그렇다. 나는 나의 독자와 그렇게 시간을 함께 보내는 상상을 한다. 내가 책과 지은이의 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가본 곳에 대해, 거기에 어떻게 갔는지, 무얼 타고 언제 어떻게 가서 뭘 했는지 주절거리면서. 그러는 동안 혹시라도 독자가 내 여행의 경험과 기술 중에 베낄 것이 있으면 베끼고 외울 것이 있으면 외우는 것이다. 표절을 하든 훔쳐가든 뭐, 상관없다. 내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내가 쓴 책이 세상을 만나는 데 산파가 필요했다. 변함없는 호의로써 내가 쓰는 글을 받아 주시는 이대현, 최종숙 대표께 감사드린다. 이태곤 편집이사와 안혜진 디자이너, 문선희 과장 등 글누림 가족 여러분의 응원과 격려는 한 자 한 자 적어 나가는 순간마다 힘이 되었다. 나는 오래 머무른 세검정을 떠나 인왕산 아래 서실을 열고 첫 봄을 지내며 원고를 다듬었다. 겹겹이 쌓인 인연과 은공을 새기며 깊이 고개 숙인다.

2018년 봄
萬學書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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