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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설명 / 17 1장 기술 혁명 - 기술 + 인간 = 휴머니티 2.0 / 23 7대 주요 단절 / 언제 어디서나 / 트랜스휴머니즘 시대의 휴머니티 2.0 / 소셜 네트워크는 정말 세상을 네트워크화하는가?/ 연결인가 단절인가? 손에서 봉으로 2장 인간 혁명 - 세상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변화 / 41 시·공간의 변모 / 즉시 연결성 / 수평 공간 / 합리적 담론에서 휘발성 이미지로 / ‘재현’ 없는 이미지? / 이미지도 여전히 언어인가? / 순간적으로 이해되는 인스턴트 이미지 3장 자아 혁명 - 자아의 변화와 가상 주체성의 등장 / 73 요동치는 자아 / 자아 영역의 셀프 브랜딩 / 나는 셀피한다 고로 존재한다 / 셀피 단계 / 나르키소스의 셀피 / 욕망의 흔들림 / 욕망의 회귀 / 거짓 자기의 하이퍼진정성 / 파토스의 지배 / 디지털 자아 4장 사회·문화 혁명 - 화면으로 만나는 타자 / 111 성장하지 않는 정체성 / ‘나’와 ‘너’ 사이의 ‘객체-화면’에 대하여: 전도된 얼굴의 윤리 / 인정의 위기: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보인다는 것이다.” / 명성의 위기: 셀피에서 리얼리티 쇼로 / 대중을 따라하는 ‘엘리트’ / 셀프 마케팅 5장 에로스적 혁명 - 현실 속의 에로스 / 133 상호 놀이 / 메시지의 의미: 코드화와 기호화 / 발신자의 의미 / 수신자의 의미 / 얼굴 없는 쾌락: 셀피 오나니즘 / 섹스팅 6장 병리적 혁명 - 긴장 상태의 타나토스 / 157 병적 셀피: 정상과 병리의 경계 / 유머가 통하지 않을 때: 보여주기의 자유에서 부끄러움으로 / 말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 보일 수 있는 것의 한계: ‘셀피 효과’ / 가상의 고독에서 고독 속의 가상으로 / 디지털 죽음 후에도 살아남기 7장 미적 혁명 - 디지털 시대의 자화상, 셀피 / 179 자아, 아름다움, 세계 / 이미지의 공허함 / 셀프 아트: 셀피가 전시될 때 / 셀프 무비 / 눈속임으로서의 셀피 / 이미지에서 아이콘으로: 신성화된 얼굴 8장 윤리 혁명 - 여러 아바타 속의 자아 / 199 애타주의: 관계의 재발명 / 휴머니즘 2.0 / 한계들: 셀프 윤리의 복원 /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는… 결론: 끝은 시작일 뿐 / 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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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주체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자기 자신 그리고 세상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 지금 이 시기를 우리는 셀피 단계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실제로 변한 것은 세상이라기보다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다. 그런데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변한 까닭은 도처에 퍼져 있는 전화·화면·카메라·컴퓨터를 겸비한 이 하이브리드 물건, ‘똑똑하다’고 여겨 우리가 ‘스마트폰’이라고 부르는 이 물건이 세상과 우리 사이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라는 이 신기한 물건은 타인과 우리,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것과 우리가 겉으로 보여 주는 것, 나와 너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스마트폰이 결국 하나의 화면이라는 점, 다시 말해서 이미지를 생산한다는 점, 그래서 나의 일부를 보여 주는 물건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자. 스마트폰이 개인과 개인 간에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어느 선까지일까?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나란 어떤 나인가? 그리고 그런 나에 대해 대체 무엇을 말해 주는 걸까?
-pp.13∼14 “들어가기” 그러나 오늘날 언어는 더 이상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리얼리티의 근거가 되는 것은 언어로 세워진 바벨탑이 아니라, 이미지라는 새로운 우상을 섬기는 덧없는 제단이다. 언어는 이제 ‘퇴물’이 된 반면, 이미지는 무한 증식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올린 셀피 사진이든 아니면 거의 순간적으로 증발되는 스냅챗 사진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세계는 이제 사진으로 ‘기록된다.’ 긴 담론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단번의 눈길, 첫눈에 포착되어 수백만 화소로 고정되는 스냅사진이 삶과 죽음, 감정과 감동에 대해 말한다. 감정과 관련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정형화된 여러 감정 중에서 하나를 골라내는 정도다. 고대 그리스 이래로 지속되어 온 합리적 담론 로고스logosλ?γο?에 기반을 둔 세계관을 밀어내고, ‘휘발성 이미지’의 사회가 우위에 서게 된 것이다. -p.57, “2장 인간 혁명-세상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변화” 이처럼 셀피 단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혼종 주체성, 가상 주체성의 형성이다. 이것은 실재 주체와 그의 아바타 사이의 긴장 상태에서 자기 확신에 어려움을 느끼는 주체성, 주체 없는 주체성의 한 형태다. 이 셀피 단계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주체성의 완전한 변모가 일어나는 어떤 계기다. 실재 체험과 그것에 대한 가상적 재현 사이에서 끝임 없이 자문하는 자아와 마찬가지다. 이런 긴장은 과도기의 표현이다. 문제는 이 새로운 형태의 자아, 가상에 의해 관통되고 변모된 이 새로운 자아의 종착점이 과연 어디인가를 아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증강 현실’과 ‘증강 인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제 ‘증강 주체성’을 언급해야 하지 않을까? 증강 주체성이란 주체 형성 과정 자체에 가상이 결합되어 형성된 주체성을 뜻한다. 지금으로서는 이 변모의 시간이 여전히 불편하고 고통스럽고 어려운 순간으로 남아 있다. 이따금 사는 게 고달프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힘들고, 스스로에 대해 확신하기 어렵고, 많은 불안을 극복해야 한다고 느끼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pp.88∼89, “3장 자아 혁명-자아의 변화와 가상 주체성의 등장” 하지만 인정은 언제나 교환의 상호성, 즉 나와 너 사이에 편재하는 관계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가상 세계는 대개의 경우 소통 없는 교환, 언어 없는 이미지다. 덧없음과 (재화, 사물, 사람의) 과소비, 무절제한 조급증과 근거 없는 행동,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환상과 자유의지의 붕괴, 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우리는 아무런 확신도 없이 실존한다. 실존한다는 사실 자체 안에서 안도감을 느끼려는 욕구, 현사실성과 연루된 의심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늘 느끼면서 말이다.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셀피 뒤에는 비극 배우의 가면을 쓴 우리의 모습이 감춰져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려 끊임없이 애쓰다가 결국 타자와 편향된 관계를 맺고 만다. 우리는 끊임없이 묻는다. “셀피야, 셀피야.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페이스북 친구들아, 페이스북 친구들아. ‘좋아요’를 최대한 눌러 오늘 아침에 내가 정말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렴.” 그런데 이런 인정 욕구로 인해 우리는 자유를 잃어버렸다. 누군가의 마음에 들려 애쓰지 않고, 누군가를 실망시키거나 거절당할까봐 혹은 연극 무대에서 쫓겨나듯 ‘싫어요’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는 자유를. -p.122, “4장 사회·문화 혁명-화면으로 만나는 타자” 가상 세계에 몰입함으로써 우리는 ‘보다’ 인간적이고 ‘보다’ 진실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느낌을 갖게 되었다. 실재와 가상의 대립은 거기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이 두 현실을 대립시키는 것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플라톤이 지성의 세계와 감각의 세계를 구분했지만 결국 이 둘이 하나의 세계임을 상기시킨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현실에서 가상의 부가 정보를 내려 받는 증강 현실의 시대임을 수긍하고, 이 두 현실을 동시에 수용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서서히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물리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정신적·개인적·문화적 차원 등등에서 이런 변모가 우리를 불안하게 하든 아니면 혼란스럽거나 두렵게 하든, 우리의 관심을 끌든 우리를 매혹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본질적인 것은 일단 이 변모를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타자와 현실적이고 깊은 관계를 ‘상실’했다는 느낌이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관계를 되돌아보고 재정립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그런 상실감이 현실적인 것이든 단지 해석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든,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pp.202∼203, “8장 윤리 혁명-여러 아바타 속의 자아” 나는 이 책에서 신기술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이 기술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우리의 방식에 미친 급격한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자 했다. 나는 ‘셀피’?이 급격한 변화에서 비롯된 주체성 위기와 가상 자아의 존재를 보여 주는 에고의 초상화?가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또한 나는 우리가 가상 세계를 두려워하는 대신 그것을 우리의 일상 속에 완전하게 통합해 냄으로써, 그리고 이 ‘가상의 나’를 ‘실재의 나’와 연계시킬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르네상스의 토대를 닦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었다. 탈주체화되는 느낌에 맞서 내가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주체의 재주체화 가능성, 즉 도덕적 주체가 자신의 내면을 다시 제 것으로 삼아 그를 혼란에 빠트렸던 의미를 되찾고, 또 무엇보다도 주체가 다시 자유의 가능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다. -pp.219∼220, “결론: 끝은 시작일 뿐”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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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좋아요’를 얻는 것이다
찰칵, 찰칵! 오천 번 정도 찍어서 하나 건진 셀피를 SNS에 올려 수시로 울리는 알람으로 ‘좋아요’ 개수를 확인한다. 언제부턴가 카톡에서 말 대신 이미지(짤)로 대화하고, 오픈채팅에서는 대화 없이 이미지만 올리는 ‘고독한 OO방’이 유행한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평균 수면시간을 제외한 16시간 중에 우리가 가상의 공간에 머무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혹은 자기 의지대로 현명하게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오가는 동안 우리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 프랑스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엘자 고다르는 우리 사회 전반의 급격한 변화의 신호인 셀피 현상을 기술 발전, 언어와 타인에 대한 인식, 가상의 자아의 탄생, 에로스적·병리적·미적·윤리적 측면에서 살펴본다. 셀피 단계에서 발견한 새로운 주체성 저자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인간이 자기 자신 그리고 세상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 지금을 ‘셀피 단계’라고 칭한다. 아기가 거울을 통해 처음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시기인 라캉의 ‘거울 단계’. 스마트폰의 화면이 거울로 대체될 수 있고, 화면을 통해 가상의 자기 자신, 타인과 만난다는 점에서 셀피 단계는 거울 단계와 통한다. 이렇듯 셀피는 ‘가상의 나’ 없이는 더 이상 자신을 파악할 수 없어진 상태를 나타낸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증강 현실과 증강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요즘, 이제 ‘증강 주체성’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주체의 형성 과정 자체에 가상이 결합된 증강 주체성 때문에, 우리는 이따금 사는 게 고달프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힘들고 스스로에 대해 확신하기 어려우며 많은 불안을 극복해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지를 숭배하는 시대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삶의 변화 중 하나는 시·공간에 대한 인식과 언어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연결되어 있는 인간은 지금 여기에서 빠른 속도로 반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시간의 흐름을 잊고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계에 대해 사유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인간에게 남은 것은 즉각적으로 소비되는 이미지뿐이다. 이 과정에서 언어는 힘을 잃고 이미지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었다. 19세기 데카르트는 인간을 생각/언어를 통해 자기 인식에 도달하는 주체로 보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Je pense donc je suis.)”라고 했다. 21세기 현재, 고다르는 “나는 셀피한다 고로 존재한다(Je selfie donc je suis.)”라고 하면서 인간이 셀피를 통해 실물보다는 자기 이미지의 재현으로만 남으려 한다는 점을 내세운다. 나르시시즘의 표현이기도 한 셀피는 나르키소스의 신화와도 맞닿아 있다. 나르키소스와 에코의 비극은 서로 말을 듣지 못한다는 상호 이해 불가능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로 말을 듣지 못해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만날 수 없다는 점은 말이 쇠퇴하고 픽 스피치(이미지를 통한 말)가 득세한 지금 시대에 대한 완벽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책임감 있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서 인간이 주체로 떠오른 르네상스 시대에 자화상이 유행한 것처럼, 가상의 주체성이 등장하는 디지털 시대에 셀피가 유행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 시대를 제2의 르네상스라고 부를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표현되는 청소년기처럼 지금 우리는 개인적·사회적으로 과도기, 변모의 시기를 겪고 있다. 저자는 지금의 우리가 자신에 대한 확신 없이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 속에서 자유를 잃어버렸다는 점을 안타까워한다. 누군가의 마음에 들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에게 거절당하거나 ‘싫어요’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는 자유 말이다. 이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우리가 가상 세계를 두려워하는 대신 그것을 우리의 일상에 완전히 통합해 내는 것, 즉 ‘가상의 나’와 ‘실재의 나’를 연계시켜 받아들이길 권한다. 그리고 기술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에만 관심을 갖는 바이오 윤리가 아니라, 비인간적 일탈과 가상 세계에 대한 과도한 소비욕을 막아줄 셀프 윤리, 가상 세계에서 타인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애타주의를 통해 우리가 책임감 있고 자유로운 존재로 남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세상이 변했다면 그 이유는 우리가 세상을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라고, 최악의 사태가 가능하다면 최선의 사태 역시 가능하다고, 실존의 조종석에 앉아 있는 것은 여전히 우리 자신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