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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제1장 성리학, 실학 그리고 다산학 14 1. 실학의 등장 14 2. 다산학은 어느 지점에서 주자의 성리학을 뛰어넘는가? 18 제2장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 37 1단계 충서忠恕을 통한 인仁의 실천 37 2단계 소학으로 행동을 규제하고, 심경으로 마음을 다스리자 40 3단계 진심으로 ‘생색내지 않고 행行할 것’ 45 4단계 무엇을 어떻게 행行할 것인가? 46 5단계 인仁의 실천이 어느 단계까지 이르렀는가를 성찰한다. 57 제3장 이게 나라인가?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60 1. 정치政治란 무엇인가? 62 2. 누가 권력을 갖고 개혁할 것인가? ? 황극론皇極論 72 3. 민권론民權論 제4장 과학사상科學思想 120 1. 천문天文.지리地理 121 2. 풍수風水.술수術數 124 3. 의약議約 126 4. 기술技術 129 제5장 유배지에서의 자녀교육 133 [부록] 민주주의 완성에 필요한 세 가지 정신 146 제2편 사암俟菴 정약용선생의 한평생 1.수학修學기간 172 2. 성균관 유배시절 182 3. 벼슬살이 기간 194 4. 유배초기 동문 매반가 시절 249 5. 고성암 시절 → 이학래 시절 261 6. 다산초당 시절 267 7. 해배이후 고향에서의 삶 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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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약용선생의 근본정신은?
사람들이 흔히 정약용선생을 '경세가'라 생각하지만, 선생은 국민을 잘살게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이는 말末에 지나지 않으며, 본本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수양하여 스스로 자신을 제어할 수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성공함으로써 [극기복례克己復禮],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선생이 회갑을 맞이하여 스스로 쓰신 '자찬묘지명 自撰墓誌銘'에 보면, 지금까지 경집經集 232권을 지었는데 인仁과 서恕 이 두 글자를 위해 썼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인仁이란 무엇인가? 선생의 저서 '논어고금주(1813)'에 보면 인仁이란 "인여인지 진기도人與人之 盡其道"'라 하여 한사람이 서로 상대방에게 그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 하였고, 인仁을 행하면 덕?이 되는데 부모에게 행한 것을 효孝라 하고, 형제에게 행한 것을 제弟라하며, 자식에게 행한 것을 자慈라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생은 여기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본능적으로 될 뿐아니라 지나치기 쉬워서 오히려 의義로써 다스려야하지만, 부모 형제에 대한 효孝와 제弟는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친구를 사귈 때에는 '부모에게 효도 하는지?' '형제간에 우애가 있는지?'를 꼭 살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를 오늘 날의 언어로 바꾸어 풀어 본다면, 부모는 어린자식이 애쓰는 것이 안쓰러워 그의 손과 발 그리고 머리가 되어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제 발로 서고, 제 손으로 해내고, 제 머리로 생각해 내서 기쁜 마음으로 자율적으로 움직일 때까지 안타깝지만 계속 지켜보면서 응원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 자식이 안쓰럽고 사랑스러워 모든 욕구를 바로바로 충족시켜준 부모는 의로움을 가르치지 못한 연유로 훗날 심각한 불효를 감수해야 한다는 경종을 울리고 있는 동시에, 친구로 사귀고 싶은 사람이 부모에게 효도하는지와 형제간에 우애가 있는 사람인지를 꼭 살펴서 친구 선택에서 실수하지 않을 것을 힘주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상황이 좋을 때는 입안의 혀처럼 굴다가도 조금만 형세가 불리 해 지면 아주 쉽게 배신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덕목은 의義요 어머니의 덕목은 자慈이며, 형의 덕목은 우友[따뜻함]이고 동생의 덕목은 공恭[공손함]이며, 자식의 덕목은 효孝라 하여이 모두를 5교라 하였는데, 이를 수신ㆍ제가ㆍ치국ㆍ평천하로 확장하여,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그 도리를 다 한다면 관계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서恕'란 무엇인가? 인仁을 이루는 인술仁術로서 '논어 위령공편'에 언급된 내용을 보면 제자 자공子貢이 공자孔子에게 "선생님! 평생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야할 한 글자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서슴없이 "그것은 서恕이다"라고 답하면서 서恕란 "기소불욕 물시어인 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고 했는데, 이는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말고,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상대를 대우하고, 내가 주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나도 꼭 갖고 싶은 물건을 주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서恕로써 인仁을 행함에 있어서, 하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아무도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곳에서도 몸을 삼가고[계신戒愼], 두려움[공구恐懼]을 갖는 신독愼獨으로 행해야 하며,끊임없이 노력함으로써 만이 현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중용中庸의 참뜻을 이해하고 노력 하면 누구나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생색내지 않고 진심으로 행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선생이 유배지에서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생색을 내는 순간 그동안 쌓아 놓은 공功과 덕德이 다 재가 되어 날라간다"고 하시면서, "하늘의 도道는 현묘玄妙해서 내가 동쪽에 베풀었는데 그 보답을 서쪽에서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니 대가를 바라지 말고 수기修己에 정진할 것"을 간곡히 부탁하고 계십니다. ● 정약용 선생이 구상한 정의正義로운 사회는? 롤스J.Rawls는 유리한 위치에 있는사람은 그 유리한 조건을 자신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조건을 개선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한에서 자신의 유리한 위치를 정당화 할 수 있다고 했고, 그럼으로써 차별 속의 평등이 가능한 정의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모든 재화의 생산은 사회적 협력 속에서 이루어 진다는 점'과 보다 낳은 환경에서 좋은 머리를 갖고 태어나고 질 높은 교육을 받은 것도 행운인데, 그로 인해 몇 십배 나아가 수 백배의 보상을 받는다면 이는 '이중적 보상'으로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18C말~ 19C초의 유학자 정약용선생의 정의관념은 어떠할까요? 선생도 차별이 존재할 뿐아니라, 차별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목민심서 예전禮典 육조六條의 변등辨等' 조항에 보면 사람의 부류에 귀천이 있고 귀천 간에 마땅히 등급을 구별해야만 하며, 세력에도 강약이 있기때문에 그 어느 한쪽이라도 없앨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물론 다산선생이 말하는 차별이란 물려받은 세습적 지위나 이에 근거한 귀천의 구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를 조직하고 운영함에 있어서 위계에 따르는 일정한 신분 등급의 구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날에도 같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선생이 내세운 사회적 신분 등급의 구별 기준은 무엇일까요? 네 가지가 있는데 친친親親, 존존尊尊, 장장長長 즉 노노老老, 현현賢賢이며, 이를 지키는 것이 인仁, 의義, 예禮, 지知라 했습니다. 친친이라 함은 가까운 친속을 사랑하는 것이고, 존존은 벼슬을 가진 사람을 존귀하게 대하는 것이며, 장장은 연장자를 어른으로 모시는 것이고, 현현은 어진 사람을 어질게 대우하는 것으로 '혈친 간의 친소親疎 관계'외에 '벼슬' 과 '나이'와 '덕행[孝弟]' 이라는 삼달존三達尊을 보편적 구별 기준으로 제시하였던 것입니다. 선생이 생각하는 정의로운 사회란 목민심서 등에서 언급했듯이 '벼슬한 자는 일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수신修身을 이룬 후에 치인治人의 역할까지 병행해야 한다'고 했는데, 나아가 친족의 어른과 지역의 연장자 그리고 현자들이 모범을 보이면서 사람들을 계몽하고 교육하여 올바른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끌어가는 지도자와 교화의 대상인 사람들과의 엄격한 분별을 강조하였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선생이 꿈꾸었던 것은 5교敎 [아버지의 의義와 어머니의 자慈, 형의 우友(따스함)와 동생의 공恭(공손함) 그리고 자식의 효孝]가 확대되어 펼쳐지는 아름다운 사회 그리하여 예禮가 주가되고, 득이한 경우에만 형벌로 다스리는 예주형보禮主刑補의 사회였습니다. 한마디로 논어 위정편과 자로편에 나오는 이런 사회이었을 것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백성들을 행정명령[정政]을 통해서 지도하고 형벌[형刑]을 통해서 강제하면, 그들은 형벌을 피하기 위해서 죄만 짓지 않으려할 뿐 진정으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오히려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백성을 덕德으로 이끌고 예禮로써 규율한다면 그들은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질 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복종하게 될 것이다."[위정편] "공자가 말했다. 윗사람이 예禮를 좋아하면 민중들이 공경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의義를 잘 지키면 민중들이 복종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신의信義를 잘 지키면 민중들이 성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사방에서 민중들이 제 자식을 포대기에 싸서 업고 찾아올 것이다."[자로편] 그렇다면 이번에는 사회정의가 살아있는 '진정한 복지사회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정부가 책임지는 사회! 이러한 바탕위에서 개개인들은 경쟁에 휘둘리지 아니하고, 자신의 타고난 자질을 찾아 계발하면서, 끝까지 적성이 맞는 곳을 찾아가서 자기의 직업으로 삼는 사회! 이를 위해 교육과 의료와 종교가 뒷받침하도록 짜여진 사회!그러나 일단 돈을 벌기 시작하면 수입에 따라 최소30%에서 최대 70%[평균 50%]의 세금을 아낌없이 내는 나라! 내부모와 나는 이미 혜택을 받았고, 내자식은 앞으로 받을 것이므로 그리하여 먹고 사는 것은 큰 차이 없이 골고루 잘 살고, 서로 하는 일을 존중하면서 형제로서 살아가는 나라가 아닐까요? 그렇게 되면 보수가 많고 환경이 좋은 직장에 들어갈 자격을 얻기위해 고교 졸업생의 80%가 너도 나도 대학에가려 하지도 않을 것이고, 당연히 고등 실업자도 없어질 것이며, 이들이 회피한 3D업종의 기술자들을 외국에서 수입하고 같은 이유로 농촌에 외국인 신부를 데려와야하는 사회적현상도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하기 힘들고 위험한 일은 로봇 등이 하도록 과학의 힘을 빌어야 되겠지요. 이렇게 되면, 저절로 우리 사회의 소모적이고 치명적인 난제인 사교육을 비롯한 교육문제가 해결될 뿐아니라 집값 문제도 단숨에 해결될 것입니다. 어찌보면 그동안 자유와 평등에 가려 실종되었던 '박애' 정신이 부활된 사회체제가 아닐런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19C초 우리 나라의 정약용선생이 [경세유표(1817)]에서 제시한 새로운 나라에 대한 구상을 분석해 보면, 그 생각이 북유럽 복지국가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은 60%에 달하는 지면을 할애하여 정전제井田制 실시를 통해 지주의 대토지 소유를 억제하고, 공정한 조세제도와 환곡제도를 정비해 농민을 비롯한 백성들의 생활 안정과 정부의 재정수입을 늘리려 한 경제정책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한편, 관리 평가제도인 '고적제도'를 제대로 실시하여 전문지식을 갖춘 청렴하고 열정적인 관료들을 대거 등용하여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선생은 이미 [탕론蕩論]과 [원목原牧]이라는 논문에서 국민 저항권을 인정하였고, 상향식 지도자의 선출을 주장하였습니다. 한편, '통색의通塞議'에서는 막힌 것을 뚫고 온 나라의 인재들을 골고루 등용해야 하며 전 국민과 소통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생의 생각은 애민과 위민정책으로 가득합니다.박애의 정신으로 점철되어 있어요. 만약 조선이 이대로만 정책을 실천해 나갔었더라면, 결국에는 진정한 복지사회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것이 제가 선생을 좋아하고 따르는 이유입니다. 선생의 정신은 21C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혁명이 없었다고 해서 근대화가 진행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서구 중심적 사고일 뿐입니다. 근대화 과정은 시대적 상황과 문화적 특성에 따라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