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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정부간 무기의 평등 : 아렌트, 샌델, 유시민을 넘어
통째로 파묻힌 그리스 ‘절차’민주정치의 비밀
최자영
헤로도토스 2018.10.20.
베스트
정치/외교 top10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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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며

제1부 통째로 파묻힌 그리스 ‘절차’ 민주정치

제1장: 정치는 위정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정치의 현주소
아무 내용 없는 허사(虛辭)로서의 ‘민주공화국’
민주정치의 걸림돌은 독재정권보다 민중 자신의 수동성이다
한국의 전통에는 자유를 위한 찬가가 없다

제2장: 시민과 국가 간 무기의 평등, ‘절차’ 민주정치를 되찾아라!
‘내용’에 우선하는 ‘절차’ 민주정치
민중이 결정권을 갖는 ‘절차’ 민주정치
고대 그리스 ‘절차’ 민주정치
민중이 공권력을 감시하다
권력행사의 주체 대(對) 권력남용방지 담론

제3장: ‘내용’과 ‘절차’ 민주정치의 응용
‘절차’와 ‘내용’을 혼합한 로베르토 웅거의 급진민주정치
절차로서의 기독교의 두 얼굴: 저항과 복종

제4장: 국가 폭력이 민주정치를 방해 한다
아렌트와 소렐의 폭력론
지젝의 폭력론

제5장: 국가권력과 정의론: 롤스, 샌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롤스와 샌델의 정의론
롤스의 절차적 자유주의와 샌델의 공동선(善) 간 권력구조의 차이
롤스와 샌델의 정의론 비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몫’의 정의론(올바름 to dikaion, he dikaiosyne)

제6장: 고대 아테네 민주정치가 군국주의로 변질되다
고대 그리스의 원심적 권력구조
아테네 ‘절차’ 민주정치의 실태
투키디데스의 폭력과 전쟁에 대한 경계

제7장 보수와 진보의 대립을 극복하는 풀뿌리 민주정치 아나키즘
아나키즘과 고대 그리스 민주정치
보수와 진보 간 대립을 극복하는 ‘절차’ 민주정치

제2부 한국사회의 독선과 권위주의

제8장 국가폭력과 권위주의 유산
해방 후 국가 공권력이 인권을 말살하다
검사도 못 믿는다, 판사도 못 믿는다

제9장 의료계에도 스며있는 권위주의 잔재
살인, 강간 형사범죄에도 의사 자격증은 취소되지 않는다
한국 의료계는 왜 책임보험을 넣지 않는가

제3부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보론(補論)

제10장 유시민에게는 민중이 결정하는 ‘절차’ 민주정치가 없다
유시민의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유시민의 국가 폭력론

제11장 고대 그리스 사회신분에 대한 오해 풀기
폴리스의 정치구조와 사회신분에 대한 오해
시민과 노예 계층은 반드시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아테네 여성도 시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보이는 자연성의 노예와 사회적 억압의 노예

제12장 현대 그리스 분권과 집간 간 갈등
누가 그리스 경제위기의 주범인가?
그리스 분권과 자유 민주의 역사적 전통
경제위기에 즈음한 긴축재정과 중앙 통제 강화의 시도
자치구 및 마을 공동체를 희생한 중앙 및 지방의 집권
카포디스트리아스 프로그램 (1997)
칼리크라티스 프로그램 (2010)
권력집중의 과정과 그에 따른 득실

결언
깊이 읽기 자료 소개

저자 소개 1

최자영(崔滋英)은 경북대학교 문리과대 사학과를 졸업(1976)하고 같은 대학교에서 석사학위(1979)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1986)하였다. 그리스 국가장학생(1987.4-1991.4)으로 이와니나 대학교 인문대학 역사고고학과에서 「고대 아테네 아레오파고스 의회」로 역사고고학 박사학위(1991.6)를 받았고, 다시 이와니나 대학교 의학대학 보건학부에서 의학박사학위(2016.7)를 취득했다.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로 재직했고(2010-2017),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의 학회장(2016-2017)을 역임했으며, 현재 ATINER (Athenian Institute for
최자영(崔滋英)은 경북대학교 문리과대 사학과를 졸업(1976)하고 같은 대학교에서 석사학위(1979)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1986)하였다. 그리스 국가장학생(1987.4-1991.4)으로 이와니나 대학교 인문대학 역사고고학과에서 「고대 아테네 아레오파고스 의회」로 역사고고학 박사학위(1991.6)를 받았고, 다시 이와니나 대학교 의학대학 보건학부에서 의학박사학위(2016.7)를 취득했다.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로 재직했고(2010-2017),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의 학회장(2016-2017)을 역임했으며, 현재 ATINER (Athenian Institute for Educa tion and Research: 아테네 소재 연구소)의 역사부 부장, 부미사<부산의미래를준비하는사람들> 공동대표, 10.16부마항쟁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저서로 『고대 아테네 정치제도사』(신서원, 1995)[문화체육관광부 역사부문 우수도서];『고대 그리스 법제사』(아카넷, 2007 [대우학술총서 588 : 2008년 문화체육부 역사부문 우수도서]); Comparative Botano-therapeutics: Traditional Medi cinal Use in the Far-Eastern and Greece (Lambert Academic Publishing, 2017); 역서로는 『러시아 마지막 황제』(송원, 1995), 아리스토텔레스의 <아테네 국가제도> 등을 번역한 『고대 그리스 정치사 사료』[공역: 최자영, 최혜영](신서원, 2003), 이사이오스, 『변론』(안티쿠스, 2011), 크세노폰, 『헬레니카』(아카넷, 2012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509]), 그 외 그리스의 저명한 현대 문학가 안토니스 사마라키스의 작품을 번역한 『손톱자국』(그림글자, 200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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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589쪽 | 746g | 173*210*35mm
ISBN13
9791196270308

책 속으로

11~12
촛불 혁명을 이루어낸 지금 우리에게 ‘절차’ 민주정치의 개념에 대한 깨우침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도합 천만이 넘는 민중의 촛불 시위가 남다른 것은 정치를 위정자들에게 맡겨두기만 할 것이 아니라 민중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로 촛불 혁명 이후 민중이 결정권을 갖는 직접민주정치의 개념이 회자되고 있다. 이것은 ‘절차’ 민주정치의 개념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구체적인 정치, 사회 제도의 내용은 민중의 결정권을 회복한 다음 그 다수의 결정에 따라 도출되는 것이며, 중의를 모아서 나오는 결론은 당연히 중도의 어느 지점에 머물 수밖에 없고 극단적인 이념과 체제의 대립 혹은 보수와 진보 간 대립 극복될 수 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민중의 뜻을 외면한다”라는 불평조차도 여전히 수동적인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한 번의 거사로 원하는 개혁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또 촛불혁명 자체로서 구체적 변화의 방향이 제시된 것도 아니다. 정부의 권력을 감시하는 것은 주권자 민중이어야 하고, 그 감시를 멈추는 순간 그 주권은 상실하게 마련이다. 평화의 촛불이 한 번의 정권교체로 꺼지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6~27
빨갱이 사냥은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자의적이고 집권적인 권력과 특권을 누려왔던 수구 기득권이 그 권력을 뺏기게 되는 순간,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서 빨갱이 사냥이 시작되는 것이다. 빨갱이 사냥은 그 대상이 진짜 빨갱이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대상이 노동운동가인 경우도 있는데,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려는 이들이 이른바 공산주의자 빨갱이는 아니다. 그런데도 기득권자의 눈으로 보면 공산주의자와 노동운동가 간의 차이는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특권을 위협하는 자는 다 동색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누가 정말 빨갱이인지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해관계를 민주적으로 절충하여 타협점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고, 이런 타협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걸핏하면 하릴없이 고개를 쳐들고나오는 빨갱이 사냥을 없애는 길은 지방 분권 및 풀뿌리 민주정치를 세우는 것이다. 권력을 분산함으로써 집중적으로 쟁취하여야할 대상을 없애버리게 되면, 어느 누구를 빨갱이로 몰아서 얻는 것이 없게 된다. 공격해야할 대상이 무수하게 분산되면 대통령이나 어느 누구를 빨갱이로 몰아서 얻는 소득이 크게 없어진다. 빨갱이 사냥을 없에는 길은 중앙의 위정자들에게 집중된 권력을 지방과 민중에게로 분산하여 돌려주는 일이다.

12~13
독일 헌법재판소가 재판소원을 인정하는 것은 법관들 사이의 견해의 차이를 통해 독주를 방지하는 자체 견제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재판소원을 금지함으로써 법관들 사이의 갈등 자체를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금기시한다. 그래서 사법부는 난공불락의 하자 없고 절대적인 권위로 군림한다. 또 재판소원 배제는 헌법재판소의 독주 뿐 아니라 파생적으로 일반법원의 독주까지 초래함으로써 한국 사법부 전체를 비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계기가 되었다.

352~353
한국의 현실은 판사는 물론이고 경찰, 검찰 인력이 부족하여 공권력이 일어나는 범죄를 다 해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재량권이라는 것을 내세워 공익에 우선하는 것을 중심으로 처리한다. 공익에 밀리면 수사를 안 해도 공직자에게 죄가 돌아가지 않는다. 재량권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국민은 다 같이 세금을 내는데 국가에서는 수사할 능력이 안 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형편이니 국민이 양해하고 수용한다 치자. 그러나 부족한 경찰, 검찰 인력을 보고 그 많은 범죄, 공권력 비리를 다 수사해달라고 시민들이 마냥 앉아서 손만 벌리고 있을 수는 없다. 공권력과 수사력이 다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시민의 자발적 수사대와 협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개요 :
- 개요(참고용) : 1. 촛불 시위가 남다른 것은 정치를 위정자들에게 맡겨두기만 할 것이 아니라 민중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치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민중의 뜻을 외면한다”라는 불평은 여전히 수동적인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한 번의 거사로 원하는 개혁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또 촛불혁명 자체로서 구체적 변화의 방향이 제시된 것도 아니다. 정부의 권력을 감시하는 것은 주권자 민중이어야 하고, 그 감시를 멈추는 순간 그 주권은 상실하게 마련이다. 그 제도적 기반으로 유신독재 때 빼앗긴 국민개헌발안권부터 쟁취해야 한다. 평화의 촛불이 꺼지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 이 책에서는 민주정치를 논하는 데 절차와 내용 간 대립개념을 제시한다. 내용은 상황, 시대, 시민의 요청에 따라서 가변적이다. 그러나 민중의 뜻을 모으는 방법으로서의 절차 민주주의는 결여할 수 없는 민주정치의 기초가 된다. 그런 점에서 내용보다 절차가 우선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경제적 사회복지정책은 내용에 해당한다. 그 내용에 대한 것은 서로 이견이 있을 수 있으며, 그 자체를 두고 논쟁을 하면 끝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의제 대신 민중이 결정권을 갖는다는 것은 절차에 해당한다. 결정하는 사람이 달라지면 그 내용도 달라지기 때문에 민중이 결정권을 가지는 제도를 먼저 도모하는 것이다.
3.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간 싸움은 결정의 번복이 불가능한 경직된 집권적 권력구조에서 치열하게 전개된다. 제도의 갱신이 가능하다면 서로 반목하면서 빨갱이(공산주의)나 파랭이(자본주의) 사냥을 할 것 없이 다수결로 다시 결정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빨갱이가 아닌 사람조차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빨갱이 사냥은 권력이 비민주적으로 집중된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권력이 분산(아나키)되어 있다면 결정의 주체가 외연으로 확산되어 다원화 되므로 특정인을 빨갱이로 모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4. 민중이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이 대의제보다 비용이 더 들고 번거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 그러나 비용 문제는 차치하고 민중의 직접 정치 참여는 불가피하다. 공무원 인력이 모자라 정부의 공무원 인력으로 다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재량권이란 공무원이 사적인 것보다 공익 관련 사안을 우선하여 처리하도록 판단하는 권한을 말한다. 공익의 순서에서 밀리는 사적인 것은 무시하고 정부가 국민을 일일이 다 보호하지 못해도 불법이 아닌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많은 국민이 ‘재량권’이 초래하는 어마어마한 공권력의 공백에 대해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5. 1987년 독일의 제도를 본 따서 만든 헌법재판소는 하위법률인 헌법재판소법(68조 1항)을 통해서 재판소원을 애초에 금지했다. 이것이야 말로 독일의 헌법재판소와의 결별을 선언하는 것으로서, 애초부터 법률을 진정으로 수호할 의사가 없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독일 헌법재판소가 재판소원을 인정하는 것은 법관들 사이의 견해의 차이를 통해 독주를 방지하는 자체 견제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재판소원을 금지함으로써 법관들 사이의 갈등구조 자체를 원천적으로 배제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헌법재판소가 3권 분립의 권력 간 상호견제의 민주적 원리를 벗어나 있는 것으로서 이는 독재정권의 잔재이다. 헌법재판소의 재판소원 배제는 자신 뿐 아니라 파생적으로 일반법원의 독주까지 초래함으로써 한국 사법부 전체를 비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계기가 되었다.

[들어가며]

관료주의와 독선의 나라 한국

너나 할 것 없겠으나 진보 운동권도 예외 없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독선이다.
최근 문화체육부 도종환 장관이 구설수에 올랐다. 비밀리에 작성한 이름 목록, ‘블랙리스트’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정권에 비우호적인 문화·예술인을 탄압·규제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라는 의혹은 사는 것이다. 국가 예산으로 11개월간 불철주야 민관 합동으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가 가동되었고, 도 장관 자신이 공동 위원장직을 맡았다.
그런데 도 장관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연루 공무원들을 사실상 징계하지 않았다. 시인 출신인 도 장관은 전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고, 야당 의원 시절 블랙리스트 사태를 가장 앞장서서 파헤친 인물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장관 취임 1년 3개월만에 블랙리스트 연루자들에게 지극히 소극적 처분을 내리는 데 그쳤다. 문체부 징계 '0명'으로 11개월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과 권고가 물거품이 되었다. 도 장관이 블랙리스트 사태에 앞장을 서왔던 상징적인 인물이기에 문화예술계의 충격은 쉽사리 가시지 않고 있다. 문화체육부를 향한 실망과 분노는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도 장관이 진상조사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한 데 대해 한 문체부 공무원은 "도 장관이 조직을 위해 큰 결심을 한 것이다"고 분위기를 전했다고 한다. 민중의 뜻이 ‘조직’의 이해관계 앞에 무력하게 내려앉았다는 말이다. 또 문화체육부는 자체적 법률자문단의 법리 검토를 거친 결과라고 해명하고 있단다. 이른 바 ‘법리검토’는 민중의 뜻을 무시하는 도구로 이용되었음을 노정한다. 또 있다. 문체부 황성운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진상조사위는 순수한 자문위원회였기 때문에 의견을 듣는 차원에서 진행됐다고 보면 된다"며 "문체부가 결국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진상조사위에서도 법률 자문을 거쳐 내린 권고 사항을 문체부가 무시한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민중의 뜻이 조직의 논리 앞에, 법률자문단의 법리검토 앞에 실체 없는 그림자로 내려앉았다. 11개월이나 국민의 피나는 세금 국가 예산을 들여서 가동한 진상위원회는 그저 ‘의견을 전하는 데 불과한’ 들러리 자문의 역할을 하는 데 그치며, 그것도 ‘명확한 이유도 없이’ 관료들은 자체의 “법률자문단의 검토”를 이유로 똑같이 “법률자문단의 검토”를 거친 진상조사위원회의 권고를 헌신짝같이 걷어찼다.
한국이 겪는 질곡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집약되어 있다. 80% 이상의 민중이 원하는 개헌이 국회의 벽에 막혀 진척되지 않고, 양승태 전(前)대법관과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다. 문화체육부는 조직의 논리를 내세워 민의를 무시하는 ‘큰 결심’을 했고, 사법부는 자체의 위신 추락을 염려하여 검찰의 수사를 실상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명색이 ‘주권자’인 민중은 권력을 가진 조직의 논리 앞에 냉가슴을 앓고 있다.
민의가 들러리를 서는 것은 사법부의'시민배심제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하니 우리도 흉내를 낸 것인데, 시민배심원은 결정권이 전혀 없다는 것이 다른 나라 배심원제하고 다른 점이다. 한국의 시민은 언제나 자문하는 데 그칠 뿐 결정권이 없다. 한국의 위정자들은 주권자인 시민을 '개코'로 아는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권력과 조직이다.
이런 조직의 논리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도종환 장관의 예가 보여주고 있듯이 그는 독재 권력에 저항하고 불이익을 당한 운동권 출신의 인물이다. 도 장관의 조그만 일화는 그가 어떤 인물‘이었던가’ 혹은 ‘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한국의 권력구조가 빚어내는 만화경이다. 개인이 아니라 집중된 권력의 조직이 만들어내는 ‘파노라마’이다. 과거에 어떤 전력을 보고 누군가에게 믿음을 가졌다가는 피를 보게 된다는 것이 여기서 얻는 산 교훈이다.
위정자의 권력을 민중의 것으로 되돌려서 결정권을 회복하고, 제 것이 아닌 권력을 잘못 행사하는 위정자를 민중이 직접 벌하는 제도를 세우지 않는 한 민중의 뜻은 무시되기 마련이다. 조직의 논리, ‘법률검토’의 논리, 위정자들의 ‘위신’을 추락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그것도 아무런 '뚜렷한 이유'도 제시함이 없이, 민중의 뜻은 번번이 무시되곤 한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문화체육부가 진상조사위원회의 결정을 무시하면서, 그것은 자문위원회이기 때문에 의견을 듣는 차원에서 진행되었으며 최종 결정은 결국 문화체육부, 즉 관료가 내리는 것"이라고 관료가 말하는 사태를 보노라면, 현재 한국은 민중이 아니라 위정자가 ‘주권자’인 나라가 확실하다. 사람에게 믿음을 두는 미련한 짓을 하지 마시고, 권력의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마시라. 독재권력에 항거하고 불이익을 당한 도종환이 문화체육부 장관이 되어 한 ‘큰 결심’이 이런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이 책은 사람을 믿지 말고 위정자들에게 집중된 권력을 타파하기 위해서 쓰였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 대립의 극복과 ‘절차’ 민주정치

19세기 마르크스의 '자본론' 출현 이후 지금까지 세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 이념 대립의 성토장이 되어왔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에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 이념과 체제의 대립이 없었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빈자와 부자 간 갈등이 그리스에도 있었는데도 그랬다. 이미 기원전 6세기 초 아테네의 국부(國父)로 불리는 솔론의 개혁도 빈자와 부자 간 극한 대립을 극복하려는 것이었다. 이렇듯 빈자와 부자 간 갈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에는 체제나 이념의 대립이 왜 없었을까?
고대 그리스에는 자본이나 공산이라는 구체적 내용의 대립보다 ‘절차’의 개념이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면 민중이 모여서 다수로 결정을 하는 방법을 말한다. 민중이 스스로 논의하여 도출하는 결론은 당연히 극단의 대립이 아니라 그 중간의 어느 지점에서 타협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그 옛날 기원전 6세기 초 아테네에서는 빈자와 부자 간 극한적 대립이 있었다. 내란 위협의 도가니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 민중은 뜻을 모아 믿을 만한 사람 솔론에게 전권을 부여하게 되고, 솔론은 적정한 선에서 결론을 도출했다. 그것은 양 극단을 피하는 선에서, 토지 재분배는 하지 않고 부채는 말소하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체제를 민주정치(다수 혹은 빈자), 과두정치(소수 혹은 부자), 군주정치로 구분할 때, 그 핵심은 구체적 사회체제의 내용이 아니라 누가 결정권을 갖는가 하는 절차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빈자의 민주정치는 공산주의와 같은 말이 아니고, 과두정치는 어떤 특정계층의 경제적 특권과 무관하게, 결정하는 주체가 소수 혹은 부자라는 말이 된다. ‘빈자의 정치’ 혹은 ‘부자의 정치’는 결정권의 주체를 말하는 것이지, 구체적 체제의 내용으로서 공산, 자본 혹은 토지소유의 특권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절차를 무시하는 사상은 이미 기원전 4세기 초 플라톤에게서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 '국가'에서 일면 공산주의에 유사한 사상을 제시했다. 적어도 지배층인 철학자 통치자와 무사의 두 계층은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 없고 가족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사상은 이미 독선의 가치관을 전제로 한 것으로서, 다수의 민의를 수렴하여 정치 사회체제가 결정되어야 한다는 ‘절차’ 민주정치의 개념을 배제하고 있다. 플라톤은 어떤 근거에 의해 그런 체제의 정당성이 보장되는가 하는 ‘절차’의 문제를 생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정치사상은 당시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현실화되지 않은 예외적인 것이다. 마르크스도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어떤 정당한 체제나 이념이 누구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하는가 하는 절차의 개념을 결여하고 있다. 그 대신 그 시비(是非)를 떠나서 강요된 체제의 사회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공산주의 뿐 아니라 자본주의도 마찬가지로 강요된 사회체제를 전제로 하고 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간 싸움은 결정의 번복이 불가능한 강요의 경직되고 집권적인 권력구조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그러나 절차 민주정치가 정초되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의 이념 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 민중의 결정은 극단으로 흐르지 않고 타협을 통해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민중은 과거의 결정을 번복하여 갱신할 수 있는 권리도 갖는다. 제도의 갱신이 가능하다면 서로 반목하면서 빨갱이(공산주의)나 파랭이(자본주의) 사냥을 할 것 없이 다수결로 다시 결정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빨갱이가 아닌 사람조차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빨갱이 사냥은 권력이 비민주적으로 집중된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권력이 분산(아나키)되어 있다면 결정의 주체가 외연으로 확산되어 다원화 되므로 특정인을 빨갱이로 모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이 책에서는 민주정치를 논함에 있어 자본부의와 공산주의의 대립 대신에 절차와 내용 간 대립개념을 제시한다. 그 중 내용은 상황, 시대, 시민의 기호에 따라서 가변적이다. 그러나 민중의 뜻을 모으는 방법으로서의 절차 민주주의는 결여할 수 없는 민주정치의 기초가 된다. 그런 점에서 내용보다 절차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정하는 주체가 달라지면 결정하는 내용이 달라진다.

‘절차’ 민주정치는 ‘내용’으로서의 민주정치와 대응 관계에 있다. 내용으로서 정책 입안에 관한 문제는 절차로서 결정의 주체에 관한 문제와는 다른 문제이다. 절차란 어떤 과정으로 누가 결정권을 행사하느냐 하는 주도권의 귀속에 관한 것이고, 내용이라 함은 기본소득제, 토지공개념, 최저임금 등과 같이 구체적인 정책 내용에 관한 것이다. 결정의 주체에 따라서 그 결정의 내용은 달라지기 마련이므로, 절차의 문제는 내용보다 더 우선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절차 민주정치에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 이념의 대립이 사라지고 민중의 대립개념으로서 대의 권력을 가지고 민중의 뜻을 배반하는 국회의원이나 위정자들이 들어서게 된다. 대의제 대신 민중이 결정권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정하는 사람이 달라지면 그 내용도 달라진다.
지금같이 대의제 국회에서 결정권을 갖는다면 민중을 위한 복지정책은 실로 가결되기 어렵다. 국회의원들 다수가 가진 자들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민중의 결정권을 확보한 다음 나머지는 민주적 방법으로 결정하면 된다. 민중의 결정권만 확보된다면 공산주의나 자본주의체제를 가지고 충돌할 필요도 없어진다. 그 중간 어디쯤인가에서 다수가 원하는 것으로 절충하면 되기 때문이다. 평등과 자유의 가치를 어떻게 양립하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평등과 자유를 어떻게 적절하게 복합할 것인가 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결정하는 궁극적 주체에 대한 논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떤 내용의 정책을 실시할 것인가 하는 것은 누가 결정권을 행사하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국회가 결정권을 가진다면 국회를 구성하는 의원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그 결과가 도출 될 것이다. 국회는 민중의 뜻을 대의(代議)해야 하는 곳이지만, 이런 개념 규정은 형식적인 당위성일 뿐 현실이 아니다. 국회의원의 다수가 사회 경제적으로 유력하고 부유한 계층에서 정당을 배경으로 선출되는 것이므로 서민의 입장을 대변하기 어렵고 당리당략 혹은 지역집단의 이해에 구속된다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국회의원이 결정권을 행사 하였다면 정치인으로서의 사회성으로 인해 그 내용은 당연히 보다 보수적일 것이다,
그러나 시민의 다수가 서민들로 이루어지므로 민중이 결정권을 가질 경우 국회의원들보다 스스로의 이해관계에 더 충실할 수가 있다. 직접 민주정치를 통해 민중이 투표권을 행사한다면, 그 결정 내용이 보다 더 진보적일 것은 자명하다. 결정권자가 민중이 아니고 다수가 상류층으로 구성된 국회의원들이라면 기본소득제, 토지공개념 같은 법안은 절대로 통과되지 않는다. 통과가 된다면 이미 그 내용이 변질되어 이도저도 아닌 회색 법안이 된 다음일 것이다. 본질이 변하지 않으면 그런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경험으로 터득한 바이다.
주권자 민중은 국회의원이나 위정자의 판단에 종속되는 존재가 아니다. 많은 사안이 상투적으로 대의체제하에 이루어진다는 전제를 하더라도, 민중이 필요로 할 때 그 권한은 바로 민중 자신에게로 귀속되어야 한다. 한 번 결정으로 권력을 대의체제로 이양했다고 해서 변경이 불가능하거나 무지 곤란한 것이 되어, 민중이 구속을 받고 체제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직접 민주정치는 국가 영역의 규모와 무관하게 권력의 구조를 바꿈으로써 가능하다. 위정자들의 결정권의 일부를 민중에게 넘기고, 그들을 감시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고, 중앙의 권력을 지방정부, 기초자치단체로 분권해야 한다. 민중의 결정권은 국회의원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 민중의 이해를 반영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민중으로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이 책은 권력의 구조를 바꾸어서 위정자들의 권력을 민중에게로 넘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경제적 사회복지정책은 내용에 해당한다. 그 내용에 대한 것은 서로 이견이 있을 수 있으며, 그 자체를 두고 논쟁을 하면 끝이 나지 않는다. 거기다 온 정열을 쏟고 싸우다 보면 정작 갖추어야 할 것을 놓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주권자 민중의 궁극적 결정권을 확보하는 일이다. 그 첫걸음으로 민중은 국민발안권부터 돌려받아야 한다. 이것은 유신독재에 의해 빼앗겼으나 아직도 국회에서는 돌려주려고 염을 내지 않고 민중의 뜻을 배반하고 있다.
촛불 혁명을 이루어낸 지금 우리에게 ‘절차’ 민주정치의 개념에 대한 깨우침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도합 천만이 넘는 민중의 촛불 시위가 남다른 것은 정치를 위정자들에게 맡겨두기만 할 것이 아니라 민중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로 촛불 혁명 이후 민중이 결정권을 갖는 직접민주정치의 개념이 회자되고 있다. 이것은 ‘절차’ 민주정치의 개념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구체적인 정치, 사회 제도의 내용은 민중의 결정권을 회복한 다음 그 다수의 결정에 따라 도출되는 것이며, 중의를 모아서 나오는 결론은 당연히 중도의 어느 지점에 머물 수밖에 없고 극단적인 이념과 체제의 대립 혹은 보수와 진보 간 대립 극복될 수 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민중의 뜻을 외면한다”라는 불평조차도 여전히 수동적인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한 번의 거사로 원하는 개혁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또 촛불혁명 자체로서 구체적 변화의 방향이 제시된 것도 아니다. 정부의 권력을 감시하는 것은 주권자 민중이어야 하고, 그 감시를 멈추는 순간 그 주권은 상실하게 마련이다. 평화의 촛불이 한 번의 정권교체로 꺼지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987년 헌법이 남긴 사법독재의 잔재 헌법재판소

사법적폐는 물론 구석구석 공권력이 썩지 않은 데가 드물다. 그런데 그 적폐의 중심에 태풍의 눈 같은 헌법재판소가 존재한다. 현재의 헌법재판소는 1987년 헌법에 의해 정초된 것이다. 1987년 헌법은 그 전 유신독재와 전두한 군부정권보다 더 민주화된 헌법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일 뿐 절대적인 의미가 결코 아니다. 어떻게 직전까지 식민지 지배, 독재로 얼룩진 한 사회가 갑자기 민주화될 수 있단 말인가. 친일과 독재에 협조했던 사람들이 그대로 가부좌를 틀고 있고 기득권 정권도 바뀌지 않고 과거 집권 여당이 그대로 뒤를 잇고 있는 형편에서 말이다.
1987년 독일의 제도를 본 따서 만든 헌법재판소는 하위법률인 헌법재판소법(68조 1항)을 통해서 재판소원을 애초에 금지했다. 이것이야 말로 독일의 헌법재판소와의 결별을 선언하는 것으로서, 애초부터 법률을 진정으로 수호할 의사가 없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독일 헌법재판소가 재판소원을 인정하는 것은 법관들 사이의 견해의 차이를 통해 독주를 방지하는 자체 견제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재판소원을 금지함으로써 법관들 사이의 갈등구조 자체를 원천적으로 배제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독립기관으로서의 헌법재판소가 구조적으로 3권 분립의 구도를 벗어나서 절대적 권위로 군림하는 것이다. 권력 간 상호견제의 민주적 원리를 벗어나 있는 헌법재판소는 독재정권의 잔재이다. 헌법재판소의 재판소원 배제는 자신 뿐 아니라 파생적으로 일반법원의 독주까지 초래함으로써 한국 사법부 전체를 비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계기가 되었다. 사법부 일반이 3권의 견제구도에서 벗어나서 무오류의 신성(神聖)으로 군림하는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1987년 전두환 정권에 이어지는 노태우 군부출신 정권에 의해 탄생한 헌법재판소이다.
1987년 헌법은 이렇듯 사법부를 초헌법적 존재로 만듦으로서 30년의 사법부 적폐를 양산해오는 데 기여했다. 사법부뿐 아니라 정부 구석구석 양심을 외면한 좀도둑이 없는 곳이 드물다. 1987년 헌법이 독재를 종식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면, 이제 이루어야 하는 개헌은 공직자를 감시하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작금에 눈덩이 같이 쌓인 사법적폐 척결의 요구에 즈음하여 무엇보다 중앙집권적, 획일적 사법구조를 바꾸는 데 착안할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의 명령으로 하나같이 움직이는 관료조직을 타파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법관 임명방법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 자체의 권력구조를 지방 단위로 분권화하고, 시민이 법관 임명에 목소리를 내며 사법재판에 배심원으로 임석하여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부터 개헌은 시작되어야 한다.

추천평

민중의 무기고에 다시 나오지 않을 귀중한 책이 보태졌다. 국내 최고라 해도 손색이 없는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 전공자 최자영교수가 사법피해자이자 시민운동가로 거듭나서 고대 그리스 민주정치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돌파구를 찾아냈다. 고대그리스 민주정의 운영원리를 이해하고 싶은가? 작금의 한국 정치계 및 위정자들의 한계를 알고 싶은가? 샌델, 웅거, 유시민의 민주정치론의 적실성을 알고 싶은가? 국민발안, 국민투표, 국민소환 등 주권자 민중의 권리 강화가 왜 필요한지 궁금한가? 이념의 극단적 대립을 피하는 방법을 알고싶은가? 이 책을 보라. 아나키적 자치분권과 '절차' 민주정치를 통해 구현되는 민중과 위정자 간의 《무기의 평등》은 촛불혁명이후 한국 민주주의가 나아갈 길을 명료하게 밝혀준다.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
누구나 직접민주주의를 말하고 있지만 직접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한국에서도 촛불혁명이후에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나 많은 오해와 왜곡이 있다. 최자영 교수의 ‘시민과 정부 간 무기의 평등’은 선출된 국가권력과 주권자인 국민간의 정치적 경쟁을 통해서 정치적 무능과 권력의 남용, 국민의사의 왜곡을 방지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로서 직접민주주의를 논증하고 한국현실에 적용하고 있다. 대의제도를 보완하여 국민주권을 실현하려는 학자들이나 실천가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아렌트와 샌델, 유시민 등의 국가론과 정의론이 갖는 맹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이론적 구성과 그리스의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를 지적하고 바로잡고 있는 것이 특히 돋보인다.
이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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