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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005
1. 환자를 알아간다는 것 보호자는 환자가 아닙니다 011 서울 의사, 지방 의사 016 편견 025 공감 033 카드 게임 048 선입견 055 나쁜소식 062 의사 말 좀 들으세요 068 응급실의 명암 074 인간의 조건 080 다른 환자, 같은 질문 089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094 삶과 죽음 099 죄책감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105 어리석은 죽음 112 네 번의 위기 119 병원의 의미 126 2. 왜 의사는 되어 가지고 질병은 개인의 얼굴을 지운다 135 믿음과 윤리 141 초보자의 실수 155 대화의 기술 161 이 직업의 묘미 166 의미 없는 심폐소생술 171 진료하지 않는 의사 178 쓸데없는 권위의식 184 똑같은 환자는 없다 190 복통과 호흡곤란 195 길고 긴 저녁 198 우리 과 문제는 아닙니다 209 무엇이 먼저인가 215 침착하고 냉정하게 220 협상이 필요하다 230 기본 중의 기본 238 평온한 밤의 망령들 242 에필로그 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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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육체적 고통은 대단히 당혹스럽다. 특히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고통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전에 경험했더라도 극심한 가슴 통증이나 호흡곤란은 익숙해지기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언어적 장벽까지 존재한다면 대부분은 최소한의 평정심도 유지하기 어렵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중국인 환자가 눈물 흘리고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내리치고 크게 고함지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고향의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생경한 언어를 사용하는 외국인 의료진에게 자신의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곰곰이 따져 보면 의사소통에서는 환자가 아니라 내가 더 큰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중국 출신 이주자가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 출신 백인이었다면 그리고 남루한 차림의 노동자가 아니라 인근 조선소나 석유화학단지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였다면 단순히 눈물 흘리고 고함치면서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친다는 이유만으로 정신과 질환이 아닐까 의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운이 좋아 늦지 않게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었지만, 항상 운이 좋을 수는 없다.” --- p.31~32
“적지 않은 의사들이 의학적으로 소생 가능성이 없어 이제 사망 선언을 해야 함에도 ‘가족이 원해서’, ‘아직 가족이 도착하지 않아서’란 이유만으로 몇 시간씩 의미 없는 심폐소생술을 계속하곤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대부분 보호자는 전문적인 의학 지식이 없다. 그런데도 단순히 그들이 원한다고 의사가 의미 없는 심폐소생술을 몇 시간씩 지속하는 것은 전문가다운 행동이라 볼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의 예상치 못한 죽음을 받아들일 시간을 주기 위해서’란 그럴듯하고 가슴 따뜻한 명분을 들먹이지만 내가 보기에 그런 의미 없는 심폐소생술을 몇 시간씩 지속하는 의사는 환자의 가족을 배려하는 가슴 따뜻한 휴머니스트가 아니라 보호자에게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만한 기술이 없는 무능한 의사거나 보호자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시간과 정성을 쏟아 설명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게으르고 냉담한 존재일 뿐이다. 의사를 ‘전문가’라 부를 때는 그저 의학적 지식과 기술을 가진 존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는 의학적 지식과 기술을 이용해서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며, 이 치료에는 환자나 보호자가 현재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것도 포함된다.” --- p.176~1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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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8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선정작
-주의: 소개 글에서 대화 형식으로 구성된 부분은 편집자가 편집하면서 지은이와 나눈 이야기와 책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으로 편집자 개인의 생각과 의견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의사는 되기 싫었다. 그러나 의사가 되었다.” “의사가 되기 싫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학창시절 꿈은 소설가나 인류학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의과대학 시절엔 병원으로 들어가는 게 괴물 입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쩌다보니 의사가 되어 10년 넘게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응급실에서 만난 수많은 환자들 그리고 의사로 살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쓴 것입니다. 병원이나 의사의 삶을 다룬 수많은 드라마, 다큐멘터리, 영화, 책을 보면 단편적 에피소드나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또 거기 나오는 병원이나 의사의 모습도 병원 밖 사람들이 ‘원하는 이미지’ 혹은 당위적으로 ‘그래야만 하는 모습’으로 ‘가공한’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와는 다릅니다. 가급적 실제 응급실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때론 환자를 냉정하게 몰아붙이기도 하고, 같은 동료의사들에게도 ‘악당’을 자처하며 싸우기도 합니다. 응급실을 다룬 몇몇 에세이들을 보면 삶과 죽음의 문제를 감성적으로 다루거나 헌신적 의사의 가슴 따뜻한 휴머니즘을 다루곤 하는데, 이 책은 그런 식의 ‘감정 과잉’도 가급적 지양하고자 했습니다.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사실 존경받는 의사는 되지 못해도, 전문가로서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사람으로서 배우고, 실수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괴짜 의사의 ‘진짜’ 의사 수업 흔히 응급실이라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들이 있다. 삶과 죽음, 촌각을 다투는 싸움, 엄청난 긴장감과 압박감. 이런 이유로 응급실을 전쟁터에 많이 비유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려지는 응급실 풍경은 다양한 인간 군상이 모이는 시장 혹은 연극 무대에 가깝다. 그곳에서 지은이는 환자에 대해 알아가고,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질문을 던진다. 2부로 나뉘어 담겨 있는 서른네 개의 에피소드 각각은 마치 점묘법처럼 하나의 점이 되어 커다란 풍경화를 완성한다. ‘내가 지금 응급실에 가니 준비’하고 있으라며 청탁 전화를 하는 사람들에서부터, 약봉지를 집어던지며 자신의 병명을 맞혀보다는 노신사, 지방 의사를 못 미더워하고 불신하는 환자, 다 큰 아들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진료에 끊임없이 간섭하는 어머니, 한밤에 응급실에 나타나 안정제를 투여 받으려 생떼를 쓰는 사람, 의사의 말보다 자신의 진단과 믿음을 더 믿는 보호자, 마약성 진통제를 구하기 위해 이 병원 저 병원 떠도는 사람. 이 모든 에피소드 속 사람들이 모여 그려내는 풍경은 바로 한국의 한 지방 병원 응급실 풍경이다. 기괴한 듯하면서도 응급실이라는 특정한 공간에 한정된 풍경 같지만 사실 우리 사회의 문화와 정서를 이만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도 드물다. 책에서 응급실은 비단 환자와 의사가 질환을 매개로 만나는 단순한 공간을 넘어 다양한 사람들의 믿음과 가치가 만나고 얽히고설키는 곳이 된다. 그 공간에서 지은이는 환자와 질환이라는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고, 뿌리 깊은 불신과 맹목적 믿음을 깨기 위해 분투하기도 한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책을 쓰다 보니 의사들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이 많이 부각된 것 같은데, 사실 주변엔 훌륭한 의사들이 더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의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다른 의사들이 내린 진단도 일단 의심하고 봅니다. 다른 분이 실력이 부족해서, 제가 보는 게 맞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다른 만큼 합리적 의심을 가지고 접근하면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보통 심폐소생술의 한계 시간은 20~30분입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사실 소생술 자체가 의미가 없습니다. 사망 선언을 해야 하죠. 하지만 어떤 의사들은 ‘환자의 가족이 원해서’ ‘가족이 임종을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심폐소생술을 합니다. 저는 이런 모습이야말로 전문가로서의 책임을 망각한 게으르고 냉담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의학적 전문지식이 없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감성적으로 호소할 것이 아니라 정확하고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쓸데없는 권위주의를 내세우는 의사나 환자 개개인의 특성을 면밀히 살펴 진료하기보다는 묶음 처방이라는 매뉴얼을 만들어놓고 환자들에게 같은 처방을 내리는 의사 이야기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모두 옳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또 어떤 시스템이나 구조와 같은 공허한 이야기를 하고자 함도 아닙니다. 다만 의사로서 직접 겪고 피부에 와 닿는 것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각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 하고 의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가슴 따뜻한 휴머니스트도, 남다른 능력을 가진 슈퍼맨도 아니다.” “사실, 전 냉소적인 편입니다. 책에도 썼지만 학창시절 또래 아이들과 놀기보다는 책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잘 예측하고 이해하는 편인데 아마도 책이 주었던 방대한 간접 경험 탓인 듯합니다. 이에 반해 상대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회적 기술과 공감 능력은 부족합니다.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런 점이 응급실 의사로 일하면서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의 말을 대개 믿지 않는 편입니다. 거짓말을 하거나 일부러 의사에게 숨긴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진료와 처방은 제가 생각하기에 일종의 미스터리를 푸는 것에 가깝습니다. 때론 냉정하게 캐묻고, 온정적으로 설득하며, 의사의 언어가 아니라 환자의 언어로 설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오만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환자들과 의사들을 만나면서 제가 터득한 바는 전문가가 자신의 분야에서 침착하고 냉철하게 바로 서지 않고서는 엉망이 되어버린다는 점입니다. 저는 응급실 의사로 일하면서 ‘가슴 따뜻한 휴머니스트’가 되고자 하는 마음도, ‘남다른 능력을 가진 슈퍼맨’이 되고자 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의사로서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않고자 노력할 뿐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의료 현장에 ‘기적’이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