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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이야기와 깊은 사유, 구병모 소설집
상상이라는 도구를 통해 삶의 표층을 뚫고 거침없이 이야기를 펼쳐 보이는 작가 구병모 소설집. 아이를 기르는 여성과 소설을 쓰는 여성을 중심으로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 실존적 불안, 다가올 시대의 윤리 등에 대해 나름의 답을 제시하는 다채로운 소설 8편을 수록했다.
2018.11.09.
소설/시 PD 김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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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지속되는 호의 미러리즘 웨이큰 사연 없는 사람 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 오토포이에시스 해설 | 신샛별(문학평론가) 고뇌하는 키마이라의 명함 작가의 말 |
BYUNG MO-KU,具竝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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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으면 대상을 분별했던 모든 구획과 경계가 흩어지고 말하지 않으면 존재는 망각되기를 넘어 처음부터 없었던 듯 지워질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없음뿐이다. 눈앞에 막 솟구치며 어둠 속에 섬광을 긋는 거대한 발톱 또한 부러지거나 사라질 것이다. 그 자리에 일시적이며 육체적인 안도감과 맞교환하여 남는 것은 가벼운 착란과, 방향을 잃어 맹목으로 핏발이 선 두 눈동자. 포획한다. 생각을 멈출 수 없다면 그것을 잡아 소유하라. 소유하지 못하면 부수라.
---「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중에서 그러나 앞에서 뭔가 반짝이거나 흔들릴 때 원래 목적을 잊는 경우란 산만한 아이들에게 흔한 일이니 서영은 혀나 한번 차고 말자며 고개를 돌렸다. 잠깐이나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타인을 애틋하게 여기는 넉넉한 마음과 우아한 포즈가 공중에 싱겁게 흩어졌다. ---「지속되는 호의」중에서 옷 주머니에는 언제라도 예기치 못한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건네기 위해 명함이 넉넉히 든 지갑을 넣어두었다. 이쪽에서 먼저 주면 저쪽도 열 명 중 다섯 명은 자신의 명함을 맞교환한다. 그중 유명도와 중요도가 높거나 머지않은 때 크게 성장하거나 유용해지겠다는 촉이 오는 인물들은 명함을 받은 그날 즉시 명함첩에 깨끗이 정리되며, 대수롭지 않게 넣어둔 이름들은 지폐 사이에서 닳고 쌓이고 무거워져만 간다. 그런 식으로 버린 을의 이름들, 나라고 결코 없지 않다. ---「사연 없는 사람」중에서 나는 한 개 한 개의 송곳이 유난히 튀어나오기보다, 그걸 감싼 가죽이 튼튼하기 바랍니다. 한 개의 송곳이 뾰족 뚫고 나오지 않아도 되는 질기고 억센 가죽 주머니를 원해. 사람이 위대하지 않고서도, 사랑이 위험하지 않고서도 그 꼴이 유지되거나 이루어지는 자리를 바라요. 그 누구도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복면을 쓰거나 전신 타이츠를 입지 않더라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곳을요. ---「웨이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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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이야기의 주제를 압축하는,
나아가 그 모든 이야기와 무관한 궁극의 문장이 있지 않을까?” 국내 작가 중 가장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로 꼽히는 구병모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셰에라자드처럼 읽는 이를 매료시키는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펼쳐놓는다. 그 문을 여는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는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는 작가의 고민과 통한다. 얼굴은 물론 이름도 밝히지 않고 활동하는 작가 ‘P씨’는 어느날 그가 ‘정치적 올바름’에 위배되는 작품을 썼다는 평을 듣는다. SNS는 그의 편협한 세계관을 비판하는 글로 가득차고, 출판사는 사과문을 올린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조금’ 더 올발라졌을 뿐인 그의 다음 소설은 또다시 비난을 받고, 그는 점점 창작의 반경을 좁혀나가다가 결국 작가로서의 삶에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아비규환이 된 SNS상에서 벌어지는 ‘말의 활극’을 현실감 있게 담아낸 이 소설을 통해 구병모는 사회적 존재로서 작가의 의미, 그리고 한계를 고민한다. 또한 단지 작가만의 이야기를 넘어 ‘말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인식과 문화의 차원’에서 현상을 바라보도록 한다. 「오토포이에시스」에는 그 어떤 통찰이나 사유도, 심지어 이야기 너머 기저에 있는 무언가에 닿기 위한 시도조차도 ‘이야기라는 도구’를 통해야 비로소 전달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 담겨 있는 듯하다. 「오토포이에시스」에서 “이 세상 모든 이야기의 주제를 압축하는, 나아가 그 모든 이야기와 무관한 궁극의 문장”(272쪽)을 찾아가는 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도 먼 미래에 인간을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도록 만들어진 AI 소설 기계 ‘백지’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내던 ‘백지’가, 환경오염과 전쟁으로 인해 문명은 물론 문자마저도 사라진 멀고먼 미래에 다시 깨어나 글을 쓰는 자신의 행위,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실존적 질문에 맞닥뜨리는 이야기는 구병모가 작가로서, 인간으로서 품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의문을 형상화한 듯하다. 그는 날마다 수많은 한 문장을 쓰고 버렸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였다. 꿈은 이 세계 바깥의 현실이다. 모든 것을 의심하거나 모든 것을 기억하라. 미로에서 빠져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솟아오르는 것이다. 모든 것을 관조하라. 우아함은 정열의 독이다. 이 같은 문장들 사이사이에는 아무런 서사적 인과관계가 없었으나, 한 문장 한 문장은 저마다 자꾸만 무언가 의미를 담아내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백지가 그토록 버리려고 했던 의미를. _279쪽, 「오토포이에시스」에서 구병모는 동시대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양육자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직면하게 되는 현실을 사회학적 시선으로 탐문한다. 남편의 전근 발령으로 임신한 채 아무 연고도 없는 산골 마을로 거주지를 옮기게 된 ‘정주’가, 원 거주자들을 통해 타인과 자신 사이의 거리 감각을 점차 상실해가며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선명히 그려낸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피서지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아이들로 인해 곤란을 겪다가 결국 안온했던 일상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되는 「지속되는 호의」 등. 남성을 생물학적 여성으로 바꿔놓는 주사기 테러의 희생자가 된 한 남자의 이야기인 「미러리즘」이나 가상현실 체험 기계를 통해 사이버 소풍을 갔다가 실제적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구하고자 하는 「웨이큰」 등은 비일상적인 상황을 통해 이 시대의 위험을 성찰하고 있다. 정주는 문득 러시아워에 어깨를 부딪치거나 서로 발을 밟고 밟히는 사이였던, 다시 스쳐갈 일 없으며 형상이 떠오르지 않는 수천수만의 얼굴들이 그리워졌다. 누구도 정주를 알지 못하며 정주 또한 그들을 모르는 세계에서의 불안과,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나 실상은 아는 것이 없는 세계에서의 안식 가운데 선택을 요하는 문제에 불과했다. _84~85쪽,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에서 “현전의 재현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잡히지 않는 것을 만질 수 있는 날이, 내게도 올까.” 구병모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계속해서 나아간다. 어쩌면 그는 이 책의 제목인 ‘단 하나의 문장’처럼 ‘단 한 권의 책’을 찾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세계의 스펙터클이 작가 구병모라는 몸을 통과해 나온 이야기를 그저 따라만 가도 좋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어의 한계마저 도구로 사용하는 구병모라는 프리즘에서 시작된 아주 작은 굴절은, 종내 우리의 인식과 사고를 전복시켜 세계의 진실을 보게 되리라는 희망을 품게 해준다. 지금-여기 우리에게 닥친 현실을 그는 자신만의 무기인 소설(小說)이라는 작지만 강력한 언어로 펼쳐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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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경우에도 추상이 아니라 구체를, 현상이 아니라 실질을 장악해 그려내는 솜씨는 그의 소설에 긴요한 시의적 의미를 새겨놓는다. (…) 그의 소설이 강력하게 환기하는 것은 공상적 상상력이 아니라 차라리 지금-여기에 이미 와 있는 위협과 공포다.
- 신샛별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