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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원목 도마
아버지와 숙부들 호숫가의 옛 집 예법과 요리법 마음을 치유하는 닭찜 대나무는 언제 꽃 피는가 할머니의 도시락 요리가 시가 될 때 마지막 만찬 사진 속의 여인 밀항의 추억 중국에 산다는 것은 소박한 마음을 위하여 단순하고도 충분한 진실 칸지의 부엌 작가 후기 |
Nicole M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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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어. 완벽한 식사란 균형이지 장식이 아니거든. 원매의 말을 생각해봐. ‘눈으로 먹지 말라. 식탁을 그릇으로 덮지 말고, 너무 많은 코스를 내지도 말라. 실은 두부가 제비둥지보다 훨씬 더 맛있는 거다.’”
“그건 아주 건전한 자연주의적 감정이지요, 숙부님.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그래도 역시 눈으로 먹을 거라고 생각지 않으세요?” “물론 그렇겠지! 네 말이 옳아! 너도 그들에게 근사한 인상을 주어야 해. 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문제란다. 음식에서 진정한 완벽성은 놀랄 만큼 단순한 거야. 제대로 된 음식이면 돼. 네가 찾는 건 바로 거기 있어.” ---pp.41~42 “본래의 중국 요리는 뭔가 추구하는 게 있다고 하셨지요.” “그래요.” “서양 요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라고요?” “그렇지요.” 그는 생각에 잠겼다. “일례로, 우리는 맛과 질감에서도 추구하는 이상이 있습니다. 그게 아까 말했던 원칙이라는 거지요. 말하자면 그 하나하나가 모든 요리사가 도달하려 애쓰는 목표인 셈이에요. 그 자체로서도 그렇고 다른 것들과의 조화에서도 그렇고. 그 위에 인공(人工)이 더해집니다. 서양 요리는 인공이라는 요소를 별로 중요시하지 않지요.” “인공이라고요.” 그녀는 그의 말을 확인하려는 듯 되풀이했다. “말하자면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음식은 음식 이상이라야 한다, 정신을 자극하고 도발해야 한다는 거지요. 가령, 식탁에 내오는 음식은 겉보기에는 A인데 실제로는 B라는 식으로요. 대표적인 예가 오리나 생선처럼 보이는 채소 요리지요. 겉보기에는 오리나 생선이지만, 실은 순전히 콩과 밀단백으로 만든 거거든요. 그밖에도 이런 착시적인 요리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잠시 눈속임을 함으로써 식사에 정신적인 재미를 더하는 거지요. 제대로만 되면, 미식가는 아주 기뻐합니다.” ---pp.61~62 “그러니까 맛이 맛을 다스리는 거로군요.” “모든 음식은 어떤 식으로든 상호작용을 하지요. 우리는 독특한 체계를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면 어떤?” “여러 가지 기술이 있어요. 국물을 내기 전에 뼈의 골수를 부서뜨려 맛을 진하게 한다든가. 생선 대가리를 센 불에 끓여 풍부한 맛을 우려낸다든가. 질감을 내는 데도 자르고 불리고 소금물에 담그고 하는 여러 가지 기술이 있고요. 그다음 단계가 재료들의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거지요. 맛과 맛의 반응에 관한 일련의 공식이 있답니다. 가령 설탕과 식초의 관계라든가. 또, 재료의 맛을 다스리는 데 쓰는 맛들도 있지요. 가령 생강이나 술 같은 거요. 그런가 하면 질감을 살리기 위해 쓰는 재료도 있는데, 가령 전분이나 그 밖의 식물 뿌리로 만든 가루들입니다.” ---pp.123~124 요리사들은 자연뿐 아니라 사건과 인물과 철학 사상을, 또는 가극과 회화와 시나 소설 같은 유명한 예술작품을 환기하는 요리들을 창조해냈다. 문명을 전수하고 회식자들이 먹고 즐기며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상차림이 개발되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요리를 통해 회상되고 탐구될 수 있었다. 정말이지, 훌륭한 만찬은 문명을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수준으로 음미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p.155 “네가 진짜 중국 요리사가 되려면 그 점을 이해해야 해. 먹는다는 건 요리의 시작일 뿐이지! 시작의 시작이고말고! 맛과 질감과 냄새와 그 모든 즐거움이 그저 관문에 불과한 거야. 진짜 훌륭한 요리는 그것을 넘어 마음과 정신에 호소하는 거란다. 예술과 자연과 철학에 대해 명상하게 하는 거야. 미식가의 마음에 힘을 주고 정신을 고양시키는 거지. 그저 먹기 위한 음식은 결코 만들지 말게, 조카!” ---p.201 “당신은 뭔가를 너무나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가져볼 엄두를 못 낸 적이 있나요?” “사랑 같은 거요. 사랑에 빠지는 거.” 그녀는 불쑥 말해놓고는, 괜한 말을 했다 싶었다. “그렇지요.” 그는 천천히 말했다. “너무나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만일 실패할 경우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물러서는 거예요.” 그는 파를 씻어 동글동글하게 썰어나갔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지요.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영영 놓치고 말리라고.” 그는 곁눈질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p.230 요리란 결혼과 비슷하다. 함께하는 두 가지는 서로 어울려야 한다. 맑은 것은 맑은 것과, 진한 것은 진한 것과, 딱딱한 것은 딱딱한 것과, 부드러운 것은 부드러운 것과 함께해야 하는 법이다. ---p.370 “뭘 만드는 거예요?” “칸지예요. 제일 간단하고 기본적인 거지요. 하지만 신경을 많이 써야 해요. 마치 사랑처럼요.” 그는 그녀를 마주보았다. 그의 눈길이 옷을 뚫고 몸을 뚫고 마음속을 곧장 들여다보는 듯했다. 그는 냄비 속을 저었다. “우선 갓 익힌 쌀의 향긋한 냄새가 나야 해요. 그러고는 고명이지요.” 그는 옆의 조리대 위를 가리켜 보였다. 거기에는 죽을 끓이는 한편 그가 준비해놓은 갖가지 고명이 담긴 작은 그릇들이 놓여 있었다. 아삭아삭한 피클, 썰어놓은 푸른 채소, 깍둑 썬 두부, 바삭바삭한 훈제 어포, 땅콩, 수초 줄기, 잘근잘근 씹히는 불린 버섯, 성냥개비 모양으로 썰어놓은 짭짤한 윈난 햄 등등. ---p.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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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지에서는 갓 익힌 쌀의 향기가 나죠.
마치 사랑처럼요.” 재닛 하이딩어 카프카 상(미국 여성작가가 쓴 최고의 작품에 수여되는 상) 수상작가 니콜 모니스의 국내 첫 출간작! 《칸지의 부엌(원제: The Last Chinese Chef)》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니콜 모니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중국에서 18년간 사업을 하면서 틈틈이 써둔 소설 《Lost in Translation》이 재닛 하이딩어 카프카 상(Janet Heidinger Kafka Prize)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변신하게 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이 작품은 뉴욕타임스 선정 ‘주목할 만한 책’에 채택되기도 했다.) 《칸지의 부엌》은 작가가 2007년 출간한 세 번째 소설로, 중국 황실 요리를 계승하려는 황실 숙수의 손자와 그를 취재하는 푸드 에디터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의 네 주인공은 각자 가족에게 받은 상처를 자신만의 소울 푸드로 위로한다.《달팽이 식당》셰프인 링고는 하루에 손님 한 팀만 예약을 받고, 온종일 그들을 위해 요리한다.《심야 식당》은 그저 식사를 위한 공간이 아닌,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담담하고 소박한 공간을 꿈꾼다. 요리를 소재로 한 소설들은 이처럼 인생의 상처와 슬픔에 주목하며, 음식으로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반면,《칸지의 부엌》은 과거(청나라)와 현재를 이어주는 스토리 구조부터가 눈길을 끈다. 미국인 여주인공과 중국계 미국인인 남자주인공, 오경재, 원매, 소동파 등 실존 인물과 중국 황실 요리에 대한 철저한 취재, 3대를 이어 온 요리 스승들과 제자 간의 끈끈한 정(情), 중국 전역에 생중계되는 요리 올림픽 등은 기존 소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풍성한 스토리 라인이다. 작가는 두 주인공의 잔잔하고 달콤한 로맨스는 물론 요리를 통한 마음의 치유, 화려하고 섬세한 중국 황실 요리 묘사, 음식을 통해 관계를 맺고 정을 나누는 동양 고유의 정서까지, 서양인의 시각으로는 발견하기 어려운 문화적 가치들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작가의 작품들은 지금까지 18개국에 번역, 출간돼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단순한 ‘상처의 치유’를 넘어 ‘먹는’ 행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음식을 소재로 한 소설의 새 장을 여는 작품 푸드 에디터이자 요리 평론가인 매기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뜻밖의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중국에서 어떤 여성이 남편의 딸을 낳아 키우고 있다며 친자 확인 소송을 낸 것. 만약 아이가 남편의 딸이라면, 법에 따라 재산의 상당 부분을 아이 가족에게 내주어야 하는 상황. 마침 잡지사에서는 중국에 있는 한 천재 셰프를 취재할 것을 요청하고, 매기는 ‘친자 확인’과 ‘취재’를 위해 베이징으로 떠나는데……. 이 책은 샘의 올림픽 준비를 도와주는 숙부들과 샘의 사촌 누이들, 매기를 도와 소송 사건을 해결해가는 캐리, 매기의 남편 매트와 매트의 아이를 낳았다고 주장하는 가오린 등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여러 가지 갈등 상황과 화해의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나가고 있다. 책에서 관시(關係)라고 묘사되는 이들의 관계는, 사실 서양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소설에서는 관시를 ‘단순한 관계’가 아닌 ‘중국 사회를 이끌어온 실제적 힘’으로 묘사한다. 가령 탄 숙부는 샘에게 “음식을 입에 넣는 것은 요리의 시작일 뿐이니, 먹기 위한 음식을 만들지 말라”라고 가르치는데, 작가는 이런 메시지를 통해 중국에서 식사란 단순히 음식을 함께 먹는 행위가 아닌, ‘좌석 배치, 음식이 나오는 순서, 음식을 담는 접시와 연회장의 인테리어, 음식을 권하고 사양하는 멘트를 통해 마음과 정을 나누는 친교의 행위’라고 소개한다. 특히 매기가 ‘샘에게 호통을 치고, 애써 요리한 음식을 버리는 숙부’, ‘처음 만난 자신에게 거리낌 없이 침실을 양보하는 샘의 사촌 누이들’,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마음 상태를 고려해 부추, 생강 등 치유력이 강한 식재료로 요리를 해주는 샘’에게 처음에는 거부감을 가지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을 충실히 묘사하는데, 이런 장면을 통해 작가는 서양인들이 흔히 ‘무례하다’고 느끼는 동양의 관계가, 실은 상대방을 향한 깊은 정(情)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소개한다. “지금 당신을 위한 맛들이에요.” 그는 설명했다. “당신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생강과 고수와 부추. 모두 강한 치유력이 있지요.” “뭘 치유한다고요?” 그녀는 되물으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갑자기 그라는 인간이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조리대 맞은편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 바로 곁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긴장하여 똑바로 앉았다. “수심이지요.” 그가 대답했다. “수심이라고요?” 그녀의 속에 훀던 모든 언짢은 것들이 일시에 표면으로 떠올라왔다. 슬픔과 수치와 매트에 대한 분노. 그리고 자기 멋대로 짐작하고 끼어든 샘에 대한 분노와, 또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한 감사가 뒤죽박죽이 되었다. 이윽고 입을 열자 묘하게 쉰 듯한 목소리가 나왔다. “당신이 제 수심을 치료한다고요?” “아니,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가 강조했다. “저는 당신을 위해 요리했을 뿐입니다. 그건 달라요.” _p.125~126 무미(無味), 극도의 인위성, 오직 질감만을 위한 식재료, 책 속의 책…… 화려함과 섬세함의 극치라 불리는, 중국 황실 요리를 엿보는 재미 《칸지의 부엌》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즐거움은 ‘화려함과 섬세함의 절정’이라 불리는 중국 황실 요리를 접하는 재미이다. 작가는 첫 소설 출간 이후〈구어메〉의 중국 요리 전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중국 전역을 탐방한 바 있는데, 이때 중국 요리에 매료되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힐 만큼 중국 요리에 관심이 많다. 저자의 홈페이지에는 중국 각 지역을 여행할 때 반드시 가보아야 할 추천 식당 리스트가 따로 소개돼 있을 정도. 따라서 이 책에 등장하는 요리들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국 요리나 맛집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매기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샘은 중국 요리가 맛과 질감에서 서양 요리와는 전혀 다른 이상을 추구한다고 전제한 다음, 중국 요리의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을 언급한다. 가령, ‘인공(눈속임)’이란 정신을 자극하고 도발하는 기술로, 음식은 단순히 혀를 즐겁게 하고 배를 불리는 이상으로 지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약선’이란 모든 음식은 약의 효능을 가지며, 단순한 건강 증진의 차원을 넘어 모든 식재료가 갖는 독특한 성질을 이용해 신체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 마지막으로 ‘관시’란 모든 음식은 함께 나눔(한 그릇에 든 것을 함께 나눠 먹음)으로써 공동체를 결속시킨다는 것이다. 샘이 제시하는 이런 특징들은 ‘걸인의 닭’(닭의 모습 그대로 껍질을 벗겨낸 다음, 속을 야채와 햄으로 채운 것. 겉으로 보면 통닭이지만 속을 갈라보면 전혀 다른 요리)이나, 숙주나물 속을 철사로 긁어내는 요리 기술, 게 한 마리를 요리하기 위해 게 서른 마리를 졸여 소스를 만드는 과정, 식재료라 보기 어려운 재료까지 사용해 맛을 만들어내는 과정 등으로 나타난다. 중국 음식의 가치는 이러한 자연스러움에서 비롯된다. 재료의 맛에 가장 가까운 맛을 내기 위해 다른 여러 재료를 쓴다든가, 맛으로 맛을 다스림으로써 어떤 한 가지 맛도 두드러지지 않게 한다든가, 가장 소박한 음식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최상의 요리라든가 하는 것은 모두 기술을 넘어서 자연스러운 조화에 이르는 경지를 의미한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샘은 중국어로 물었다. 다들 불안한 기색으로 침묵을 지켰다. “파와 생강이 돼지고기 맛을 살려주는 것은 인정하겠다.” 셰가 말했다. “돼지고기의 깊은 맛을 밖으로 끌어내지. 파와 생강에는 그런 효과가 있어. 하지만 이건 최고 미식가들을 위한 요리다! 중요한 건 맛의 극대화가 아니라, 세련미와 미묘함이야. 모든 것이 지적으로 표현되어야 해. 모든 맛은 질감을 활용해야 하고, 모든 질감은 맛을 환기해야 한다고. 맛들이 제각기 불거져서는 그런 균형을 얻을 수 없어. 절대로. 자극적이고 향기롭고 매운 맛들은 곤란해.” “맛이 너무 강하다는 말씀이시군요.” 셰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소박하기는 하되 거칠어서는 안 되지. 항상 회식자의 지성을 믿고, 미묘함으로 대접해야 한다.” _p.228 각 장의 시작 부분마다《마지막 중국 요리사》라는 제목으로 등장하는 제사(題詞)에는 중국 요리가 지향하는 이러한 가치가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책 속의 책’으로 등장하는《마지막 중국 요리사》는 샘의 할아버지이자 황실 최고 숙수였던 량웨이가 쓴 것으로 묘사되는데, “음식을 입에 넣는 것은 요리의 시작일 뿐”, “훌륭한 요리사는 정신을 만족시킬 줄 아는 요리사”, “가장 소박한 요리가 가장 훌륭한 요리”라는 구절 등을 통해, 중국 요리의 화려한 겉모습뿐 아니라 중국 요리가 추구하는 궁극의 가치도 깨달을 수 있다. 중국 요리는 인공(人工)의 추구에서 위대함을 축적한다. 우리의 목표는 셴(鮮), 즉 사물 본연의 맛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우리는 많은 것을 은미(隱微)하게 첨가함으로써 그 맛을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맛은 재료에서뿐 아니라 손끝에서도 나오는 것이다. 후자는 극단적이 될 수 있다. 미식가는 윤나게 구운 오리가 짙은 육즙의 자극적이고 강한 농(濃)의 냄새를 풍기며 식탁에 오르는 광경을 즐기지만, 그 ‘오리’가 실은 전부 채소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될 때 한층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 훌륭한 요리사는 입맛뿐 아니라 정신도 즐겁게 할 줄 알아야 한다. _p.245 음식을 만들며 마음을 여는 천재 셰프, 음식을 먹으며 사랑을 알아가는 푸드 에디터 ‘음식을 통한 치유’를 넘어, 인간의 다면성을 입체적으로 묘사한 소설 《칸지의 부엌》은 그저 음식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작가가 그려낸 소설 속 주인공들은 보통 사람들이 그렇듯, 극단적으로 순수하거나 악하기만 한 인물이 아니다. 매기는 아이를 갖는 것도 포기할 만큼 일에서는 완벽주의자이지만, 때로는 요리 평론가라는 본분을 잊고 배가 불러도 맛있는 음식을 남김없이 먹어치우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의 요리는 칼처럼 날카롭게 비평하지만 정작 자신은 냉동식품으로 세 끼를 해결할 만큼 요리에는 문외한이기도 하다.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중국 황실 요리를 계승하려 하는 샘은 요리를 향한 순수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지만, 경쟁자의 식당을 찾아가 몰래 레시피를 훔쳐보기도 한다. 매기의 남편 매튜는 모범적인 가장이지만, 해외 출장을 가면 클럽에서 밤새 여자들과 춤을 추기도 하고, 매튜의 딸을 낳았다고 주장하는 가오린은 언뜻 유부남을 유혹하는 부정한 여성처럼 보이지만, 배 속의 아이를 지키면서도 고향에 있는 병든 부모를 부양하려는, 생활력 강한 여성이기도 하다. 이처럼,《칸지의 부엌》의 등장인물들은 기존의 소설에서 보아왔던 정형화된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에서 훨씬 생동감이 넘친다. 향초를 넣은 제비콩 퓨레, 달콤한 밀단백 퍼프, 건두부 샐러드, 따뜻한 칸지…… 당신이 간절히 그리던 부엌의 풍경, 사랑은 그곳에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독자들에게 ‘먹는다’는 행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달팽이 식당》에서 링고가 단 한 명의 손님을 위해 하루 종일 산과 들을 누비며 좋은 식재료를 고르는 장면이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면,《칸지의 부엌》에서 샘은 매기의 감정 상태를 고려해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식재료로 요리를 해준다. 죽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배신감으로 피폐해져가면서도 친구는커녕 어머니에게조차 그런 마음을 드러내지 못했던 매기는, 자신을 위해 생강, 부추 등 치유력이 강한 재료로 닭을 요리해준 샘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게 된다. 격식과 체면을 중시하는 서양인(매기)에게 곰 발바닥, 낙타 혀처럼 혐오스러운 재료까지 요리하는 데 쓰는 동양인(샘)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정을 느끼게 되고 마침내 샘의 숙부와 사촌들에게도 마음을 여는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은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한 샘과 매기가 숙부들과 샘의 사촌 누이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 장면으로 묘사되는데, 이때 샘이 매기에게 건네는 음식이 바로 칸지(죽)이다. 가장 간단하지만, 그래서 가장 신경 써야 하는 음식인 칸지는 ‘가장 소박한 요리, 어느 한 가지 맛이 두드러지지 않게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요리’를 추구하는 샘이 가장 정성을 들여 만드는 음식이기도 하다. 매기와 숙부, 누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죽을 나누는 장면을 통해, 작가는 두 주인공의 사랑이 이루어짐과 더불어, 매기가 미국에서의 개인중심적인 삶을 접고 중국에서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칸지의 부엌》은 ‘작고 소박하고 따뜻한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그쳤던 기존의 요리 소설들을 한 차원 뛰어넘는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중국 요리의 새로운 세계를 엿보는 것은 물론, 다양하고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통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주는지와, 갈수록 희미해져가는 사람들 사이의 정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