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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휘발유, 라이터, 수면제, 소주
2장 누구도 너의 무대를 기억하지 않아 3장 세상은 푸른데, 희망의 빛으로 푸른데 4장 같이 시작했으니 같이 끝내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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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우릴 인질로 잡았어요. 우린 우리에 갇혀 키워지고 있었어요. 그 속에서 게임을 즐기는 걸 방해한 건 당신이죠. 게임의 규칙은 최대한 재밌게 즐기다가 게임을 끝내는 건데, 그 즐기는 와중에 우리들의 게임 속에 뛰어들어서 규칙을 어지럽게 만들고 게임을 진부하게 만들어 버린 건 당신이니까. 당신들이니까.”
세상이 고요해지고 있다. 암흑이고 고요하다. 한순간의 고통은 고요함을 가져다주었다. 처음으로 세상의 고요함을 느낀 기분이다. ‘세상은 원래 고요했던 것일까.’ 어처구니없이 그런 질문이 떠올랐다. ‘이런 고요함을 두고 언제나 세상의 무언가를 쫓아다녔다니. 허둥대느라 세상의 고요를 느낄 사이가 없었다니.’ 최열은 고요해진 자신을 느끼자 은태에 대해 ‘못다 한 생각’을 다 하게 된 것 같았다. ‘은태는 아빠가 없는 곳으로 갔구나.’ 그것이었다. ‘못다 한 생각’이 있다고 여겼는데, 그것은 은태가 간 곳이 어딘지 알지 못해서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은태가 찾아간 곳은 바로 ‘아빠가 없는 곳’이었다. 이제 더 이상 궁금한 것이 없었다. 은태는 최열로 부터 아주 떠난 것이다. 처음 춤을 추러 올라왔을 때의 행복하던 표정은 사라지고 관객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다가 지쳐서 쓰러졌다. 그러자 관객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 일어나서 제 갈 길로 떠났다. 누구도 목숨을 다해 춤을 추던 그의 무대를 기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쓰러져 뒹구는 그를 뒤돌아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남자는 몸에 옷 하나 걸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내고 있었다. 관객이 떠난 뒤에야 자신의 몸이 발가벗은 것을 알아챘다. 관객의 장단에 맞춰서 춤추느라 자신이 알몸이 된 사실도 몰랐던 것이다. 남자는 무대에서 일어섰다. 그의 밑바닥까지 다 보고 가 버린 관객에게 분노했다. 그 분노 때문에 그는 시내로 나가서 아무 집이나 불을 지르고 다녔다. 집들이 불탔다. 평화로운 집에서 쉬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쏟아져 나왔다. 몸에 불이 붙은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자 남자는 불붙은 사람에게서 불이 옮겨 붙을까 봐 무서웠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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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아들에게 무엇인가?
아들이 아빠 삶의 전부가 되어도 좋은가? 『아빠 살고 싶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되고 창작된 소설이다. 학교폭력 아래서 은태와 그 아버지 최열을 비롯한 피해자들, 기주와 교장을 비롯한 가해자들이 맞붙어 펼치는 한바탕 비극의 결정판이다. 오직 아들 하나 잘 키우는 게 성공한 인생이라고 확신했던 아버지는 아들이 명문고에 입학하자 현수막을 걸고 모든 사람들에게 아들을 자랑한다. 그러나 명문고에 입학했던 아들은 계속 괴롭힘을 당하며 살고싶다, 살려달라고 끝없이 절규한다. 그런 아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 넣는 아빠.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가해자들과 피해자들을 둘러싼 이들의 한바탕 비극의 활극을 보면서 우리가 욕망하던 행복의 벼린 칼날을 마주치게 된다. 한편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십여 년 전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짤막한 뉴스를 들었다. 그 뉴스는 금세 다른 뉴스에 묻혔지만 내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그 사건을 파헤치고 그것에 관련된 글을 찾아 읽었다. 몇 해 동안 그 사건에 대해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쓰고 있어도, 쓴 것을 다시 읽어도 가슴이 저렸다. 실화를 바탕으로 시작했지만 대체로 허구적인 이야기로 창작되고 재구성되었다. 하지만 “살려줘, 제발 살려줘.” 라던 그의 신음은 어쩌지 못했다. 이 소설을 읽을 어떤 독자가 그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기를 바랄 뿐, 이제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비상하는 저 새처럼, 그 역시 한때는 자신만의 세상을 향해 하늘 위로 마음껏 비상하기를 꿈꾸지 않았을까.‘라고 밝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