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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철 · 나타샤가 왔다 / 7
김다은 · 베베의 정원 / 115 김미수 · 그저 웃음소리뿐 / 145 김용희 · 세계의 이편便 / 173 송철복 · 무지개 너머 / 213 이수정 · 옥수수 솜이불 / 249 정현상 · 어떤 원죄 / 281 황주리 · 소설, 자서전 / 313 큰글 Vol. 3를 내며 / 337 |
고유, 高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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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복래…. 시인의 이름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너무 세속적이고 단순 무식하다. 김벌래 대신에 김벌레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언뜻 떠올랐다. 그래도 내가 명색이 시인인데 이름을 표절하면 곤란하잖아. 벌레 말고 버러지?
---p.20 · 꽃다발을 받은 그녀와 나는 가볍게 포옹했다. 참담한 사실은 내 콧잔등이 그녀의 가슴팍에 닿을 만큼 높낮이 차이가 났다는 점이다. 그녀의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보니 여름 바이칼호 물빛 같아 내 몸둥이가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p.31 · 영빈관에서 침대에 누우면 섬망증이 끊이지 않아 거기서 더 살기가 어려워졌다. 잠에서 깨면 잠옷 상의는 땀에 젖어 축축하고 아랫도리는 끈적했다. 벌레 한 마리가 보로지노 대평원을 죽을 때까지 날아가는 꿈도 꾸었다. 툭하면 카프카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처럼 내 몸이 벌레로 변신했다. ---p.107 · 나는 인간의 대화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나인과 나인의 엄마는 자신들이 믿는 신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 지렁이들은 전봇대를 신이라고 믿고 있다. 가까이 가면 죽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전봇대 아니어도 너무나 많은 건물이 땅속 깊이 들어와서 어떤 것이 신인지 알 수 없어졌다. 나인은 엄마 말대로 자연은 성경에 없는 단어지만, 자연이라는 단어는 언어학적으로 ‘본성’이라는 다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p.134 · 너를 마지막 본 날, 내 말이 너를 왜 그렇게 화나게 했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너한테 난 매 맞는 여자야? 너한테도 난 매맞던 여자인 거야? 되풀이해 묻던 말이 떠오른다. 당시엔 잘 기억나지 않던 말. 노기 띤 눈으로 보던 너의 얼굴은 매 맞았다고 고백하는 나보다 더 수치스럽고 처참한 표정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p.169 · 사람의 살갗 밑에 얼마나 많은 마음들이 숨 쉬고 있는 걸까. 아픔들이 숨어 있는 걸까. 나는 울고 있는 아버지 옆에 가만히 쪼그려 앉았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이편便에 함께 앉아 있었는데, 둘은 서로 함께 이편에 있었다는 것을 몰랐는지도 모른다. 나와 재희도 그런 게 아닐까. ---p.206 · “먼저 지역 문인들을 지원하는 일을 꼽을 수 있습니다. 문예 진흥 사업이죠. 시, 시조, 소설, 희곡, 수필, 평론, 시나리오 등 문학 장르별로 역량이 입증된 지역 문인들을 발굴해 그들이 더 큰 그릇으로 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추가로 판소리, 서예 등도 포함할 수 있겠습니다. 중장기적으로는 금전 지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근에 적당한 부지를 확보해 일정 규모의 캠퍼스를 지어 문학 학교를 여는 방안도 추진할 작정입니다.” ---p.239 · 책상 옆으로 바투 붙은 욕실 유리문 앞에 뭔가 있었다. 이불이 든 비닐 가방과 윤곽이며 크기가 비슷했다. 물론, 이불일 리는 없었다. 이불이 거기 있었다면 손바닥만 한 방에서 열두 번도 넘게 발에 차였을 테니까. 숭희는 이불과 비슷한 크기와 모양으로 거기 있을 만한 걸 머릿속으로 짚어 보았다. 설마, 사람이리라곤 생각 못했다. 그게 머리를 들 때까지는. ---p.253 · 금단의 무화과 열매를 따 먹은 인간에게 신은 영원히 씻을 수 없는 부정한 영혼이라는 벌을 내린 것처럼, 금단의 화석연료를 태워 산업혁명을 일으킨 인간에게 되돌릴 수 없는 기후 위기라는 벌을 내렸다. 하지만 왜 산업혁명을 일으킨 이들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기후 위기라는 불공정한 벌을 내린 것인가. ---p.297 · 사랑이란 무엇인가? 내가 하나를 주면 두 개를 주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러다 세 개를 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나는 그를 더 사랑할 것이고 네 개, 다섯 개, 열 개를 주는 사람이 앞에 나타나면 당연히 더 많이 주는 쪽을 사랑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한다. ---p.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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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고승철 톨스토이의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최근에 다시 읽고 감명을 받아 이번에 중편 〈나타샤가 왔다〉를 집필했습니다. 그는 망원경으로 세상사를, 현미경으로 인간을, 내시경으로 인간 내면세계를 동시에 살핀 문호입니다. 이런 대작을 읽으면 개인의 사소한 체험을 소재로 한 감정 과잉의 사소설私小說이 얼마나 옹색한 것인지를 절감합니다. 김다은 문학적인 언어는 한 단어가 갖는 빈틈을 통해 다양한 의미가 생성되는데, 진리란 인간적인 언어나 사고가 말씀의 빈틈을 결코 노릴 수 없구나 싶어 전율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 ‘소설’ 속 생물들도 스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작가가 만든 것입니다. 김미수 이제 숲에서 홀로 헤매던 여자가 출구로 나올 때입니다. 숲 밖으로 걸어 나오면 한없이 투명하고 넓은 호수가 맞이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다시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숲속에서 걸어 나온 그 여자의 정말 가슴 뛰는 일에 대하여. 김용희 〈세계의 이편便〉은 세계의 이편과 저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즉, ‘편 가르기’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충돌과 갈등, 그 속에서 그려지는 수많은 ‘선 긋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윤가은 감독 영화 〈우리들〉에 대한 오마주로 쓰게 된 소설이란 점을 밝혀둡니다. 송철복 〈무지개 너머〉는 ‘일어난 일, 일어나고 있는 일,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소설의 3대 제재에 두루 걸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문학의 여러 장르 가운데 유독 소설 쓰기의 꾀까다로움을 간파했다고 혼자 자부하는 나로서는 부디 취재에 근거한 이 작품이 한 편의 소설로 독자에게 승인받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수정 한때 고시원에서 한 달간 묵었던 적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공간에 있을 게 다 있었습니다. 침대, 책상, 그리고 욕실. 그것들은 서로를 움켜쥐듯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한 뼘 공간을 활용하는 그것들의 방식이었습니다. 한여름에 솜이불에 관해 쓰고 싶어진 이유입니다. 정현상 〈어떤 원죄〉는 지금 시기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야 하는 기후 위기의 한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좋은 메시지가 이야기의 완성도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에서 메시지가 조금 강한 것은 나의 절박감에서 왔습니다.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으며, 메시지도 좋은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황주리 〈소설, 자서전〉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 관한 문학적 사색입니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기억이 모여 한 사람의 기억이 되어 가는, 모든 타인이 내 안의 부분임을 고백하는 나, 너, 우리 모두의 자서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