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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세계명작산책』 개정판을 내며
『세계명작산책』 초판 서문
머리말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한 속인을 통한 죽음의 성찰

스티븐 크레인

구명정
죽음과 맞서는 인간의 태도 또는 자세

잭 런던

불 지피기
관념이 배제된 죽음의 과정

마르셀 프루스트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
삶이 죽음의 일부인가, 죽음이 삶의 일부인가

셔우드 앤더슨

숲속의 죽음
삶을 인상적으로 진술하는 방식

헤르만 헤세

크눌프
삶의 최종심

어니스트 헤밍웨이

킬리만자로의 눈
신이 없는 죽음과 감추지 않는 주저흔

샤를 루이 필리프

앨리스
독점욕이 빚어낸 특이한 죽음의 양상

바이올렛 헌트

마차
염세적 세계관을 배음背音으로 한 기상곡

저자 소개 17

레프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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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 Nikolayevich Tolstoy,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러시아 툴라 지방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모 밑에서 성장했다. 1844년 카잔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대학 교육에 실망하여 삼 년 만에 자퇴하고 귀향했다. 고향에서 새로운 농업경영과 농민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1851년 큰형이 있는 캅카스로 가 군대에 들어갔다. 1852년 「어린 시절」을 발표하고, 네크라소프의 추천으로 잡지 〈동시대인〉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는 한편, 농업경영과 교육활동에도 매진해 학교를 세우고 교육잡지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의 대작을 집필하
러시아 툴라 지방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모 밑에서 성장했다. 1844년 카잔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대학 교육에 실망하여 삼 년 만에 자퇴하고 귀향했다. 고향에서 새로운 농업경영과 농민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1851년 큰형이 있는 캅카스로 가 군대에 들어갔다. 1852년 「어린 시절」을 발표하고, 네크라소프의 추천으로 잡지 〈동시대인〉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는 한편, 농업경영과 교육활동에도 매진해 학교를 세우고 교육잡지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의 대작을 집필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 명성을 얻지만, 『안나 카레니나』의 뒷부분을 집필하던 1870년대 후반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는다. 1899년 발표한 『부활』에서 러시아정교회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1901년 파문당했다. 1910년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부인과 불화가 심해지자 집을 나와 방랑길에 나섰으나 폐렴에 걸려 82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레프 톨스토이의 다른 상품

스티븐 크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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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en Crane

미국 소설가 겸 시인, 신문 기자. 29살의 짧은 삶을 살다 갔지만 생생하고 강렬하며 독특한 방언과 아이러니가 넘치는 글을 썼다. 사회적 고립이라든가 인간의 두려움에 관한 주제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그의 작품은 다음 시대의 사회적 사실주의에의 길을 열었으며 헤밍웨이를 비롯한 현대 미국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시에서도 이미지즘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주요 작품에는 『붉은 무공훈장』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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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London

잭 런던은 1876년 1월 12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했다. 경제적 사정으로 중학교를 중퇴한 그는 통조림 공장 직원, 신문 배달원, 어업 감시원 등의 허드렛일들을 하면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1895년 20세 가까운 나이에 오클랜드 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이듬해 곧바로 캘리포니아 대학에 입학하여 스펜서, 다윈, 니체 등의 책을 읽으며 교양과 사상을 습득하고 그에 심취했다. 1897년 클론다이크 지방에서 금광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잭 런던도 그해 7월 12일, 21살의 나이로 그의 매형 셰퍼드와 함께 클론다이크로 떠났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괴혈병을 얻어
잭 런던은 1876년 1월 12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했다. 경제적 사정으로 중학교를 중퇴한 그는 통조림 공장 직원, 신문 배달원, 어업 감시원 등의 허드렛일들을 하면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1895년 20세 가까운 나이에 오클랜드 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이듬해 곧바로 캘리포니아 대학에 입학하여 스펜서, 다윈, 니체 등의 책을 읽으며 교양과 사상을 습득하고 그에 심취했다.

1897년 클론다이크 지방에서 금광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잭 런던도 그해 7월 12일, 21살의 나이로 그의 매형 셰퍼드와 함께 클론다이크로 떠났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괴혈병을 얻어 돌아온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은 그에게 창작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오클랜드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뒤 우편국에서 일하며 잡지에 단편들을 기고했다.

잭 런던은 1900년에 『늑대의 아들』 등의 작품을 발표했고 작가로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03년에 『야성의 부름』을 발표해서 초판 1만 부가 하루 만에 매진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후 그는 『바다늑대』『강철 군화』 등을 비롯해 많은 단편집과 자전적 소설들을 발표하고 평론가로도 활동하면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렇게 명예와 부를 누리던 잭 런던은 1916년 11월 22일 4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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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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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el Proust,Marcel Valentin Louis Eugene Georges Proust

1871년 파리 근교 오퇴유에서 파리 의과대학 위생학 교수 아드리앵 프루스트와 부유한 유대인의 딸 잔 베유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열 살 무렵부터 앓기 시작한 신경성 천식은 평생 그를 괴롭혔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어머니의 각별한 보살핌 속에서 자랐으며, 조르주 상드, 빅토르 위고, 조지 엘리엇, 오노레 드 발자크 등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 그는 어린 시절 노르망디에 있는 해변가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곤 했는데, 이곳은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발베크의 모델이 되었다. 프루스트는 건강이 좋지 않아 가족들로부터 특별한 기대를 모으지 못했다. 대신 그는 부유한 집안 환경
1871년 파리 근교 오퇴유에서 파리 의과대학 위생학 교수 아드리앵 프루스트와 부유한 유대인의 딸 잔 베유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열 살 무렵부터 앓기 시작한 신경성 천식은 평생 그를 괴롭혔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어머니의 각별한 보살핌 속에서 자랐으며, 조르주 상드, 빅토르 위고, 조지 엘리엇, 오노레 드 발자크 등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

그는 어린 시절 노르망디에 있는 해변가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곤 했는데, 이곳은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발베크의 모델이 되었다. 프루스트는 건강이 좋지 않아 가족들로부터 특별한 기대를 모으지 못했다. 대신 그는 부유한 집안 환경 덕분에 포부르 생제르맹의 귀족과 상류층 전용 술집을 드나들며 사교계의 나태함 속으로 빠져들었다. 또한 그는 이따금씩 소품을 쓰거나 영국 미술평론가인 존 러스킨의 작품을 번역했으며, 이야기꾼이자 비전문적 문인으로서 많은 글을 발표했다.

헌신적인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프루스트는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글을 쓰며 사교계를 드나드는 생활을 계속했다. 그의 건강상태는 동성애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더욱 악화되었고, 이러한 동성애로 인해 그는 부자들과 세력가들이 드나드는 술집뿐만 아니라 남자 하인의 숙소와 매춘굴까지 드나들었다. 그리하여 1890년대의 프루스트는 나중에 그의 작품에서 표현되었던 것처럼, 사교계의 관심이나 끌려고 속태우는 천박하고 이기적인 속물처럼 보였다. 1905년 어머니의 죽음은 프루스트에게 길고 고통스러운 슬픔을 안겨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방탕한 생활이 어머니의 죽음을 야기시킨 주요 원인이라는 사실도 점차 깨달았다.

1883년 파리의 명문 콩도르세 중등학교에 진학하여 학교 문예지 [라일락]에 「어두운 보라색 하늘」,「극장에서 받은 인상들」 같은 글을 게재하였다. 1989년 파리 법과대학 및 정지학 전문학교에 등록하였으나 학업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가끔 소르본느대학에서 앙리 베르그손의 철학 강의를듣는 한편, 사교계에 열심히 드나들었다. 딜레탕트를 자처하며 사교계를 기웃거리고, 여러 문인과 교류하며 극장, 오페라 극장, 살롱 등을 드나들고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미술품을 감상한다.

1895년부터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의 초벌 그림과 같은 자서전적 소설 『장 상퇴유』를 집필하기 시작하였으며, 1986년 첫 수필집 『기쁨과 나날들』을 출간했다. 1893년경부터 십수 년간 러스킨의 작품을 연구하였으며, 1904년 『아비앵의 성서』, 1906년에『참깨와 백합』을 번역 출간했다. 1905년 어머니의 죽음은 프루스트에게 길고 고통스러운 슬픔을 안겨주었다. 1909년부터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를 본격적으로 집필하며 칩거 생활에 들어갔다. 출판을 위해 갈리마르 등 여러 출판사와 교섭하였으나 실패하고, 1913년 11월 그라세 출판사에서 자비로 첫 편 「스완 댁 쪽으로」를 출간한다.

제1차 세계대전 가운데서도 집필을 계속하여 1919년 6월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2편 「피어나는 소녀들의 그늘에서」를 출간하고, 이 작품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다. 1920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다. 이후 「게르망뜨 쪽」, 「소돔과 고모라」등이 출간되었고, 「갇힌 여인」과 「탈주하는 여인」,「되찾은 시절」은 그가 타계한 후에 출판되어 1927년에야 완간을 보게 된다. 그는 마지막 날까지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의 탁마 작업을 계속하다 1922년 11월 18일 평생의 지병이었던 천식으로 파리에서 사망했다.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은 1896년 그의 첫 작품집 『즐거운 나날들』에 수록된 산문시집으로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대작을 품은 씨앗의 면모를 보여준다.

1896년 첫 작품집 『쾌락과 나날』을 출간했고, 이후 존 러스킨의 작품을 번역한 『아미앵의 성서』(1904), 『참깨와 백합』(1906)을 출간했다. 그의 초기작 『장 상퇴유』는 1,000매를 넘는 대작으로 3인칭 수법으로 저술되었는데, 1896∼1900년에 걸친 작품으로 추정되며, 또 『생트 뵈브에 거역해서』는 1908∼1910년경의 습작인데, 모두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집대성될 일관된 노력이 남긴 행적으로 보아야 할 작품들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시간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또한 과거가 무의식적 기억의 도움을 받아 예술 속에서 회복되고 보존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탐구한다. 이 소설에서 그가 이룩한 혁신의 중심은 등장 인물들을 고정된 존재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정황과 지각에 의해 점차 드러나고 형성되는 유동적인 존재로 그리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완전한 예술적 전체 속으로 무너뜨리는 인생을 그려내는 프루스트의 강력한 실례는 20세기 문학에서 획기적인 영향력 중 하나였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더불어 근본적으로 소설의 형식을 바꾸었고, 소설의 여러 가지 기본 원칙들을 변화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집요할 만큼 강박적으로 비전을 표현하고 전달함에 있어서 그가 개인적으로 기여한 바는 문인의 현대적인 역할을 규정해 주었다. 파리의 8구에 위치한 오스만가 102번지는 프루스트가 살았던 아파트로 현재는 기념관으로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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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우드 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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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rwood Anderson

1876년 9월 13일 미국 오하이오주 캠던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잡일로 돈을 벌어야 했다. 스무 살 무렵 야간학교에 다니며 독학으로 문학에 눈을 떴고, 졸업 후 광고회사에 취직해 광고 카피와 칼럼 쓰는 일을 했다. 성공적인 결혼과 사업을 이루며 평탄한 삶을 살던 중 1912년 서른여섯 살이던 어느 날 “발이 젖어 있는 느낌, 그리고 점점 더 젖고 있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나간 뒤 행방불명됐다. 나흘 뒤 기억을 잃은 채로 발견되어 ‘신경쇠약’을 치료하며 그길로 사업을 정리하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16년
1876년 9월 13일 미국 오하이오주 캠던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잡일로 돈을 벌어야 했다. 스무 살 무렵 야간학교에 다니며 독학으로 문학에 눈을 떴고, 졸업 후 광고회사에 취직해 광고 카피와 칼럼 쓰는 일을 했다. 성공적인 결혼과 사업을 이루며 평탄한 삶을 살던 중 1912년 서른여섯 살이던 어느 날 “발이 젖어 있는 느낌, 그리고 점점 더 젖고 있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나간 뒤 행방불명됐다. 나흘 뒤 기억을 잃은 채로 발견되어 ‘신경쇠약’을 치료하며 그길로 사업을 정리하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16년 최초의 장편소설 『윈디 맥퍼슨의 아들』을 펴냈고, 1919년 출간한 연작단편집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로 인정을 받았다. 존 스타인벡, F. 스콧 피츠제럴드 등 동시대의 작가들은 셔우드 앤더슨과 그의 작품에 대해 ‘영문학의 바이블’ ‘영어로 글을 쓰는 가장 훌륭하고 섬세한 작가’라고 평했으며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는 지금도 20세기 미국 문학 강의 교재로 가장 많이 쓰이는 작품이다. 『달걀의 승리』 『말(馬)과 인간들』 『검은 웃음소리』 『삼림 속의 죽음』 등의 소설과 여러 편의 시집, 에세이를 남겼다. 1941년 이쑤시개가 꽂힌 마티니를 마시고 결장에 구멍이 생겨 복막염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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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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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ann Hesse

1877년 독일 남부 칼프에서 선교사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으며, 서점과 시계 공장에서 일하며 작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첫 시집《낭만적인 노래》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1904년《페터 카멘친트》가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06년 자전적 소설《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1919년 필명 ‘에밀 싱클레어’로《데미안》을 출간했다. 가장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한 1920년에는《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클라인과 바그너》《방랑》《혼란 속으로 향한 시선》을 출간했다. 1946년《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
1877년 독일 남부 칼프에서 선교사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으며, 서점과 시계 공장에서 일하며 작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첫 시집《낭만적인 노래》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1904년《페터 카멘친트》가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06년 자전적 소설《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1919년 필명 ‘에밀 싱클레어’로《데미안》을 출간했다. 가장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한 1920년에는《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클라인과 바그너》《방랑》《혼란 속으로 향한 시선》을 출간했다. 1946년《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수상했다. 1962년 8월 9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소설과 시, 수많은 그림을 남겼고, 평생을 통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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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네스트 밀러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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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nest Hemingway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현재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를 두었고, 여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평생을 낚시와 사냥, 투우 등에 집착했으며, 다방면에 걸쳐 맹렬한 행동을 추구하고, 행동의 세계를 통해 자아의 확대를 성취하려 했다. 그러한 인생관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고등학생 때 학교 주간지 편집을 맡아 직접 기사와 단편을 썼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17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현재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를 두었고, 여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평생을 낚시와 사냥, 투우 등에 집착했으며, 다방면에 걸쳐 맹렬한 행동을 추구하고, 행동의 세계를 통해 자아의 확대를 성취하려 했다. 그러한 인생관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고등학생 때 학교 주간지 편집을 맡아 직접 기사와 단편을 썼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17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하기도 했으며,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고 귀국했다. 휴전 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의 특파원이 되어 유럽 각지를 돌며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1921년, 해외 특파원으로 건너간 파리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 유명 작가들과 교유하는 등 근대주의적 작가들과 미술가들과 어울리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23년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詩)』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시대에』, 『봄의 분류(奔流)』,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소설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후 1920년대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피츠제럴드’와 ‘포그너’와 함께 3대 작가로 성장하였다.

그의 첫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1926년에 발표했는데, 헤밍웨이의 대다수 작품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에 발표되었다. 전쟁 중 나누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전쟁문학의 걸작 『무기여 잘 있거라』(1929)는 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데 공헌했으며, 1936년 『킬리만자로의 눈』,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는 출판되자마자 수십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다. 이후 10년 만에 소설 한 편을 발표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52년 인간의 희망과 불굴의 정신을 풀어낸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여 큰 찬사를 받았으며,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통해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인간은 파괴될 수 있지만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그러나 이 해에 두 번의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데, 말년에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집필 활동도 막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동의 규범에 철저한 만큼이나 죽음과 대결하는 삶의 성실성과 숭고함을 작품에 투영하려 노력해왔다. 1959년에는 아이다호 주로 거처를 옮겼고, 1961년 여름, 헤밍웨이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1961년 케첨의 자택에서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작으로는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52년 『노인과 바다』 등이 있다.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후 10여 년 넘게 긴 침체기를 겪었지만, 인생의 절망과 희망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신념을 잃지 않으면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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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루이 필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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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1874~1909년. 프랑스 중부 세리이 출생. 파리 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창작 활동에 힘썼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소박하고 애정 어린 글을 주로 발표했다. 출세작 『뷔뷔 드 몽파르나스』는 매춘부와 포주, 그리고 그녀를 구하려는 젊은 지식인 사이의 관계를 그린 자전적 작품이며, 그 밖에 『어머니와 아들』, 『페르드리 노인』, 『작은 집에서』 등이 있다.

바이올렛 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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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작가. 1862~1942년. 영국 더럼 출생. 그녀의 아버지는 예술가 알프레드 윌리엄 헌트, 어머니는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마가렛 레인 헌트이다. 활동적인 페미니스트였으며 1908년 여성 작가의 참정권 리그를 창립했고 1921년 국제 펜클럽 창립에 참여했다. 자서전 『하고 싶은 이야기』와 장편소설 『시든 잎의 하얀 장미』, 소설집 『불안한 자들의 이야기』 등의 작품이 있다.

Lee Mun-yol,李文烈,이열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북 영양, 밀양, 부산 등지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수학했으며.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들소」, 「황제를 위하여」, 「그해 겨울」, 「달팽이의 외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여러 작품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현란한 문체로 풀어내어 폭넓은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 특히 장편소설 『사람의 아들』은 문단의 주목을 이끈 대표작이다. 한국문학에 미치는 영향력이 워낙 커서 문학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많은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지만, 가장 많은 독자층을 가지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북 영양, 밀양, 부산 등지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수학했으며.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들소」, 「황제를 위하여」, 「그해 겨울」, 「달팽이의 외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여러 작품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현란한 문체로 풀어내어 폭넓은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 특히 장편소설 『사람의 아들』은 문단의 주목을 이끈 대표작이다.

한국문학에 미치는 영향력이 워낙 커서 문학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많은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지만, 가장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이 시대 대표 작가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오늘의 작가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2015년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현재 미국, 프랑스 등 전 세계 20여 개국 15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고 있다.

작품으로 장편소설 『젊은날의 초상』, 『영웅시대』, 『시인』, 『오디세이아 서울』, 『선택』, 『호모 엑세쿠탄스』 등 다수가 있고, 단편소설 『이문열 중단편 전집』(전 6권), 산문집 『사색』, 『시대와의 불화』, 『신들메를 고쳐매며』, 대하소설 『변경』(전12권), 『대륙의 한』(전5권)이 있으며, 평역소설로 『삼국지』, 『수호지』, 『초한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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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국문학과를 중퇴했으며,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영어,불어,일어를 넘나들면서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 허먼 멜빌의 『모비 딕』,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쥘 베른 걸작선집(20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15권) 등 많은 책을 번역했다. 역자 후기 모음집 『번역가의 서재』를 펴냈으며, 1997년에 제1회 한국번역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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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렬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스틴 소재 텍사스대학교 대학원 영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문과 명예교수이다. 평론집으로 『미로에서 길 찾기』(1997), 『신비의 거울을 찾아서』(2004), 『응시와 성찰』(2007), 『시간성의 시학』(2013), 『즐거운 시 읽기』(2014),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2016), 『예지와 무지 사이』(2017), 『꽃잎과 나비, 그 경계에서』(2017),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2017), 『삶에서 문학으로, 문학에서 삶으로』(2020) 등이 있으며 문학이론 연
장경렬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스틴 소재 텍사스대학교 대학원 영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문과 명예교수이다. 평론집으로 『미로에서 길 찾기』(1997), 『신비의 거울을 찾아서』(2004), 『응시와 성찰』(2007), 『시간성의 시학』(2013), 『즐거운 시 읽기』(2014),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2016), 『예지와 무지 사이』(2017), 『꽃잎과 나비, 그 경계에서』(2017),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2017), 『삶에서 문학으로, 문학에서 삶으로』(2020) 등이 있으며 문학이론 연구서로 The Limits of Essentialist Critical Thinking (『본질주의 비평적 사유의 한계』, 1990), 『코울리지』(2006), 『매혹과 저항』(2007)이 있다. 번역서로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Robert Pirsig, 2010), 『노인과 바다』(Ernest Hemingway, 2012), 『백내장』(John Berger, 2012), 『젊은 예술가의 초상』(James Joyce, 2012), 『라일라』(Robert Pirsig, 2014), 『학제적 학문 연구』(Joe Moran, 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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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뉴욕대학교에서 영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D. H. Lawrence’s The Rainbow and Women in Love : A Critical Study』가 있다.
1962년 진주에서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불어교육과와 불어불문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제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첫 소설 『당신을 닮은 나라』,가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소통 말통』, 『바르샤바의 열한 번째 의자』, 『금지된 정원』, 『모반의 연애편지』, 『훈민정음의 비밀』, 『이상한 연애편지』, 『러브버그』,, 창작집 『쥐식인 블루스』, 『위험한 상상』,, 문화 칼럼집 『발칙한 신조어와 문화현상』, 『너는 무엇을 하면 가장 행복하니?』, 서간집 『작가들의
1962년 진주에서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불어교육과와 불어불문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제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첫 소설 『당신을 닮은 나라』,가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소통 말통』, 『바르샤바의 열한 번째 의자』, 『금지된 정원』, 『모반의 연애편지』, 『훈민정음의 비밀』, 『이상한 연애편지』, 『러브버그』,, 창작집 『쥐식인 블루스』, 『위험한 상상』,, 문화 칼럼집 『발칙한 신조어와 문화현상』, 『너는 무엇을 하면 가장 행복하니?』, 서간집 『작가들의 연애편지』, 『작가들의 우정편지』, 『작가들의 여행편지』, 『해에게서 사람에게』,를 출간했다. 프랑스어 장편소설 『Le Jardin interdit』, 단편소설 「Imagination dangereuse」, 「Le rat de bibliothequ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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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대학원 영문과와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대학원 미국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예일대학교 연구교수 및 아이오와대학교 객원교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문과 교수를 역임했고 지금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미국문학과 그 전통』, 『미국 흑인문학과 그 전통』 등이 있고, 역서로는 『프로스트의 명시』, 『현대소설과 의식의 흐름』, 『나사니엘 호손 단편선』, 『한때 흑인이었던 자의 자서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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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논문 〈헤세 문학에 나타나는 인간화 과정의 제 양상〉(1984)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괴테 인스티투트에서 수학하고 청주대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 《독일문학의 깊이와 아름다움》, 《독일어권 문화 새롭게 읽기》(공저)가 있고, 역서로 괴테의 《파우스트》와 《로마 체류기》, 지그프리트 렌츠의 《독일어 시간》, 헤르만 헤세의 《환상동화집》, 《환상소설집》, 《크눌프·로스할데》, 《테신, 스위스의 작은 마을》, 고트프리트 켈러의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 요제프 아이헨도르프의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논문 〈헤세 문학에 나타나는 인간화 과정의 제 양상〉(1984)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괴테 인스티투트에서 수학하고 청주대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 《독일문학의 깊이와 아름다움》, 《독일어권 문화 새롭게 읽기》(공저)가 있고, 역서로 괴테의 《파우스트》와 《로마 체류기》, 지그프리트 렌츠의 《독일어 시간》, 헤르만 헤세의 《환상동화집》, 《환상소설집》, 《크눌프·로스할데》, 《테신, 스위스의 작은 마을》, 고트프리트 켈러의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 요제프 아이헨도르프의 《방랑아 이야기》, 슈테판 하임의 《콜린》, E. T. A. 호프만의 《스퀴데리 양》, 크리스토프 하인의 《탱고연주자》, 클라우스 틸레?도르만의 《베네치아와 시인들》 등이 있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인문학부 독일언어·문화학 전공의 명예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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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익대학교 문과대학장, 세계상상력센터 한국 지회장, 한국상상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 그리고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으로서 한국이 주빈국이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성공적으로 주관하며 한국문학과 한국문화의 세계화에 기여했다. 이런 활동의 연장선에서 생각하는 힘: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시리즈를 기획하여 출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프리메이슨 비밀의 역사』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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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0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528쪽 | 500g | 128*188*33mm
ISBN13
9791197148927

책 속으로

허무가 존재의 조건인 것처럼 죽음은 삶을 삶답게 하는 전제가 된다. 죽음이 없다면 삶은 어떤 끝없는 상태 혹은 지루한 상황의 연속으로서 그 독특한 의미를 잃고 말 것이다. 삶은 죽음 때문에 유한성에 갇히게 되지만, 또한 그 죽음 때문에 무한과도 견줄 만한 의미를 얻게 된다.
---「이문열 ‘머리말’」중에서

이반 일리치의 인생은 너무나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너무나 끔찍했다.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중에서

이반 일리치는 어떤 치료법도 효과가 없으리라는 것, 이제 남은 것은 훨씬 지독한 고통과 죽음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도 알고 있고 이반 일리치도 알고 있는 이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끔찍한 상태에 대해 그를 속이려 들 뿐만 아니라, 환자 자신에게까지 그 기만에 참여하기를 원하면서 그것을 강요하려 들었다. 이런 기만이 이반 일리치를 괴롭혔던 것이다.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중에서

모든 것이 똑같았다. 희망의 불꽃이 번득였는가 싶으면, 다음 순간에는 절망의 바다가 사납게 출렁였다. 그리고 변함없는 통증, 변함없는 절망. 언제나 마찬가지였다.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를 부르고 싶은 강렬하고 비참한 욕망을 느꼈다.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중에서

‘나는 위로 올라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실은 그동안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던 모양이군. 아니, 그런 모양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어. 사람들 눈에는 내가 위로 올라가고 있었지만, 그만큼 생명은 썰물처럼 나한테서 멀어져가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이제 생명은 다 끝났고, 남은 건 죽음뿐이야.’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중에서

만일 운명이 여신이 나를 물에 빠뜨려 죽일 작정이었다면, 왜 진작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겪은 온갖 수고를 덜어주지 않았단 말인가! 모든 게 다 터무니없다……. 하지만 아니, 그럴 수는 없어. 운명의 여신이 나를 물에 빠뜨려 죽일 작정이라니, 그럴 수야 없지. 나를 물에 빠뜨려 죽이려 하다니, 감히 그럴 수는 없지. 나를 물에 빠뜨려 죽일 수는 없어. 이렇게 온갖 고생을 다 했는데 말이야.’ 그렇게 생각한 다음, 사람들은 구름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 나를 물에 빠뜨려 죽여봐라! 그리고 내가 퍼붓는 욕이 어떤 건지 한번 들어봐라!’
---「스티븐 크레인 ‘구명정’」중에서

자연의 여신은 인간에게 잔인하지도 자비롭지도 않았으며, 그를 배반하거나 그의 앞에서 현자인 척하지도 않았다. 다만, 무심할 뿐이었다. 철저하게 무심할 뿐이었다.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우주의 냉담함에 압도된 채 자기 삶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결함을 직시하고는 짓궂게도 마음속으로 그 맛을 하나하나 음미한 다음,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지기를 갈망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곧이어 닥칠 죽음의 위기에 대해 이처럼 여전히 무지한 상태에서도, 옳은 것과 그른 것 사이의 구분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그에게 명백한 것처럼 느껴질 터였다. 그리고 만일 기회가 다시 한 번 주어진다면, 품행과 어투를 바르게 고칠 수 있을 것이며, 남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나 함께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좀 더 선량하고 똑똑하게 처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었다.
---「스티븐 크레인 ‘구명정’」중에서

동짓달에 비가 내리면 내 무덤의 꽃잎은 썩을 것이고, 6월의 햇볕에 꽃잎들은 타버릴 것이고, 내 영혼은 조바심에 언제나 울고 있을 것이오. 아! 언젠가 죽음의 기념일에 당신이 기억을 더듬어 내 사랑의 주변으로 오기를 바랄 뿐이오. 그땐 마치 당신의 목소리와 당신의 얼굴을 얼핏 듣고 보고서도, 당신을 맞아들이기 위해 환희의 꽃이 활짝 피어날 것이오.
---「마르셀 프루스트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중에서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크눌프는 잠시 침묵하다가 나지막한 소리로 시인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제가 아직 어렸을 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왜 저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질 못했을까요? 왜 올바른 인간이 되지 못했을까요? 시간은 충분했는데 말입니다.”
---「헤르만 헤세 ‘크눌프’」중에서

킬리만자로는 6,008미터 높이의 눈 덮인 산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한다. 그 산의 서쪽 정상은 마사이족의 말로 ‘누가예 누가이’라 불리는데, 이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서쪽 정상 가까이에는 미라 상태로 얼어붙은 표범의 사체가 하나 있다. 그런 높은 곳에서 표범이 무얼 찾고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까지 아무도 없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킬리만자로의 눈’」중에서

출판사 리뷰

[리뷰] 세속적인, 너무나 세속적인 -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Смерть Ивана Ильича」

이반 일리치의 인생은 너무나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너무나 끔찍했다. (p41) 이반 일리치는 러시아 제정시대의 부패한 관료사회에서 신분 상승을 지상 목표로 하는 야심찬 법관(판사)다. 그의 야심 탓인지, 본래 천성인지 소위 ‘상류사회’라고 하는 것은 그에게 입던 옷처럼 잘맞았다. 그는 쾌락과 정욕, 허영에 몸을 맡기면서도 업무적인 능력을 증명할 정도의 열정을 갖고 있었고, 사교계에서도 재미있고 재치 있는 인물로 통했다. 업무적인 권한과 사람들의 경외심을 함께 즐겼고, 자신이 응당 누려야할 자리라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치고 올라갔다.

말하자면 그는 평생 동안 유능하고 쾌활하고 싹싹하고 사교적인 남자, 하지만 자신의 의무로 여기는 일은 엄격하게 실행하는 남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의무로 여기는 일은 높은 양반들이 그의 의무로 생각하는 일, 바로 그것이었다. 소년 시절에도, 어른이 된 뒤에도 그는 결코 남에게 아첨하는 일이 없었지만, 파리가 빛에 끌려들 듯 지체 높은 사람들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 그의 천성이었다. (p42)

훌륭한 관리라는 평판 속에 승승장구하던 이반 일리치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적당히 좋은 가문에 약간의 유산, 못생기지 않은 편인 외모를 갖춘) 배우자를 만나 결혼해 가정도 이룬다. 하지만 부부관계는 곧 서로에 대한 원망과 간섭으로 점철되고, 가정은 그저 더 많은 연봉과 더 큰 집을 강요하는 빚쟁이에 지나지 않는 곳이 된다. 하지만 뜻밖의 기회를 잡아 그는 만족스러운 연봉을 보장하는 새로운 직책을 따낸다. 더불어 그와 아내의 허영에 걸맞는 집을 찾아 대대적인 수리에 들어간다.

사실, 그 집의 실내장식은 그다지 부자도 아니면서 부자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재산이 많지 않으니까 독특한 멋은 부릴 수 없고, 따라서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흉내 내는 데만 성공할 뿐이다. 그들의 집에는 어김없이 다마스크 천으로 만든 시트와 식탁보, 흑단 목재, 화분, 깔개, 둔탁한 빛을 내는 청동 제품 따위가 갖추어져 있다. 이런 것들은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 같은 계층의 사람들과 비슷해지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두는 것들이다. 이반 일리치의 집도 다른 사람들의 집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비슷했지만, 그의 눈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집처럼 보였다. (p60~61)

이반 일리치는 다시 만족스럽고 충실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무도회를 열어 상류층 명사를 초대하고, 유력인사나 젋은이들의 방문을 받으며 과시하는 번지르르한 삶. 그들은 그렇게 살았고, 이렇다 할 변화도 없이 모든 게 순조롭게 돌아갔다. 인생은 즐겁게 흘러가고 있었다. (p66) 하지만 집 수리 중 사다리에서 삐끗하며 부딪힌 옆구리 통증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유명하다는 의사의 진료를 받고 꾸준히 약을 먹었지만 이제 고통은 업무를 지속할 수 없을 만큼 그를 힘들게 하고 만다.

하루하루가, 아니 순간순간이 그에게는 고문이었다. 하지만 그를 이해해주거나 동정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누구의 이해나 동정도 받지 못한 채,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혼자 그렇게 살아야 했다. (p79)
주위 사람들이 그의 죽음이라는 엄숙하고 무서운 행위를 (마치 누군가가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객실에 들어온 것처럼) 우발적이고 불쾌하고 예의에 어긋나는 사건 정도로 끌어내린 것을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원흉은 바로 그가 평생 동안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온 바로 그 예의범절이었다. 이반 일리치는 누구 하나 자기를 동정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도 그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99)

그는 병마의 고통에 시달리며 무력감과 절망 속에 천천히 죽어간다. 죽음을 앞둔 환자의 심리가 그렇듯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등을 들쭉날쭉 오가며 살고 싶다는 욕망에 발버둥친다. 그럼에도 그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져 배변을 남의 손에 맡겨야 했고, 젊은 하인의 어깨에 다리를 올려놓지 않고서는 잠도 자지 못하는 지경이 된다.

요즘 들어 그는 자신이 직접 꾸민 객실?그가 사다리에서 떨어진 바로 그 객실?에 자주 들어가보곤 했다. 그때 창문 모서리에 부딪힌 것 때문에 병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객실을 위해 그는 목숨을 바친 셈이었다(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p91)

그가 이처럼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는 동안 그의 가족과 친구들의 관심은 다른 데 쏠렸다. 그의 죽음 이후 벌어질 일에 대한 계산에 분주할 뿐, 시시각각 이반 일리치의 목을 조아오는 죽음의 그림자와 끝없는 고통에 무심했다. 그의 죽음을 앞두고도 가족과 사윗감은 화려한 옷차림으로 오페라 극장에 나서고, 그 젊음과 생명감에 대비되는 자신의 고통 속으로 그는 더 큰 절망에 빠진다.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서서히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반 일리치가 병을 앓은 지 석 달이 지나자 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오로지 그가 법관 자리에서 곧 물러날 것인가 어떤가에만 쏠리게 되었다. 그의 아내와 딸, 아들, 친지들, 의사들, 하인들도 그것을 알아차렸지만, 누구보다도 가장 민감하게 알아차린 사람은 바로 이반 일리치 자신이었다. 그가 언제쯤이면 세상을 떠나 그의 존재가 야기하는 불편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을 마침내 해방시켜주고, 그 자신도 고통에서 해방될 것인가가 다른 사람들의 유일한 관심사였다. (p93)

자신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게라심이 옆방으로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울기 시작했다. 자신의 무력함, 끔찍한 고독, 인간의 잔인함, 신의 잔인함 그리고 신의 부재를 한탄하며 흐느껴 울었다. “주여,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왜 나를 이 세상으로 데려왔습니까?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를 이토록 괴롭히십니까?”(p115) 상상 속에서 그는 즐거웠던 인생에서도 가장 좋았던 순간들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즐거웠던 인생의 좋았던 순간들 가운데 어떤 것도 이제 와서는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즐겁거나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몇몇 기억들을 제외하고는……. (p116)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났건만, 그 모든 것은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지겨워질 뿐이었다. ‘나는 위로 올라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실은 그동안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던 모양이군. 아니, 그런 모양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어. 사람들 눈에는 내가 위로 올라가고 있었지만, 그만큼 생명은 썰물처럼 나한테서 멀어져가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이제 생명은 다 끝났고, 남은 건 죽음뿐이야.’(p117~118) “그게 우리 탓인가요?” 리사가 어머니한테 말했다. “꼭 우리 탓인 것 같잖아요! 아빠가 가엾긴 하지만, 왜 우리가 고통을 받아야 하죠?” (p124) 이반 일리치는 끝없는 고통에 시달리며 후회와 상념, 원망과 분노에 빠진다. 그리고 체념과 화해, 용서로 승화되다 다시 분노 속으로 내동댕이 쳐지기를 반복한다. 드디어는 죽음에 대해 묻고 스스로 답하기 시작한다. 또한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전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되던 일, 즉 자기가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결국 옳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지위 높은 사람들이 좋게 생각하는 것과 맞서 싸우려고 애쓴 적도 몇 번 있었지만, 그런 노력은 겨우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미미한 것이었다. 어쩌다 한 번씩 그런 가벼운 충동을 느껴도 당장에 억눌러버리곤 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미미한 노력과 가벼운 충동만이 진짜이고 나머지는 모두 가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직무도, 생활도, 가족에 대한 약속도, 사교상의 관계는 물론 업무상의 관계도 모두 가짜였을지 모른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을 변호하려고 애썼지만, 자기가 변호하고 있는 대상이 얼마나 허약한가를 불현듯 깨달았다. 변호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반듯이 누운 채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는 아침에 먼저 하인을 보았고, 다음에는 아내를 보았으며, 다음에는 딸을 보았고, 그다음에는 의사를 보았다. 그들의 언행 하나하나가 간밤에 그가 깨달은 무서운 진실을 뒷받침해주었다. 그것들 속에서 이반 일리치는 자기 자신, 즉 그의 인생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순전히 가짜이며, 삶과 죽음을 덮어버린 무섭고도 거대한 기만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이러한 자각은 육체적 고통을 열 배나 가중시켰다. 그는 신음하며 마구 뒹굴었고, 숨이 막혀서 옷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아내와 딸과 의사를 증오했다. (p125~126) 마지막 사흘간 계속된 고통, 그 끝에 그는 깨닫는다. 그의 여윈 손에 입맞추며 기도하는 막내아들을 보며 구원의 희망을 발견한다.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톨스토이가 58세(1886년)에 발표한 단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대작들 대비 짧지만 대표작 목록에 반드시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 혁명 전 러시아의 부패한 사회에 대한 톨스토이의 가장 강력한 비판이 담겼다는 평가가 많다. 해설에서 작가 이문열은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이 캐릭터, 스토리, 진행 모두 사실상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매우 흡사하다고 지적하면서도 두 작품 모두 빼놓을 수 없는 명작이라고 평가했다. 더불어 “작가 톨스토이는 도스토옙스키와 더불어 러시아 문학의 양대 거봉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정신사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작가다. 거기다가 80세의 고령을 누리면서 남긴 문화적 유산과 일화도 많아 그를 짧게 요약하기는 불가능하다. 톨스토이에 관해 알고 싶으면 역시 시간을 따로 내기를 권하고 싶다”고 덧붙인다. (p134)

메멘토 모리의 훌륭한 전통 안에 자리 잡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에 세속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을, 휘스트 카드놀이와 저녁 파티보다 진실과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의 저자, 인생학교 설립자)

톨스토이의 작품 중 가장 예술적이고 가장 완벽하며 또한 가장 정교하다. - 블라지미르 나보코프 (『롤리타』의 저자)

[리뷰] 그저 무심하기만 한 죽음 - 잭 런던 「불 지피기 To Build a Fire」

한 사내가 영하 80도의 맹추위에 유콘강을 따라 길을 나선다. 봄이 오면 상류에서 통나무를 베어 강으로 옮기는 경로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거리는 한나절 걸으면 되는 정도, 그는 비스킷 빵을 점심 삼아, 늑대개를 동행 삼아 길을 나섰다.

몸을 돌려 길을 계속 가다가 그는 얼마나 추운지 알아보기 위해 침을 뱉었다. 침이 날카롭게 파열음을 내며 얼어붙어 그를 놀라게 했다. 다시 침을 뱉었다. 그러자 채 눈에 떨어지기도 전에 침이 공중에서 얼어붙었다. 마이너스 50도에서는 침이 눈 위에서 얼어붙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공중에서 얼어붙는 것이었다. 마이너스 50도 이하는 분명했지만 정확히 얼마나 추운지는 몰랐다. (p197)

그는 소위 ‘체카쿼’라고 불리는 신참일 뿐 바보가 아니었다. 빈틈없고 재빠른 ‘빠릿빠릿한’ 사내다. 다만 경험이 부족하고 ‘영하 80도’라는 것에 대한 실감이 없었다면 설명이 될까. 이미 추위에 감각 없는 광대뼈와 코를 문지르면서도, 뱉은 침이 떨어지기도 전에 얼어붙는 것을 보면서도 그저 대단한 추위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입김이 얼어 수염에 고드름처럼 늘어져도.

확실히 추운 날씨라고 그는 생각했다. 설퍼 수로 쪽에서 온 노인이 이 지방엔 때때로 무시무시한 추위가 온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당시에 그는 노인을 비웃지 않았던가! 이는 아무도 세상일에 대해서 지나치게 확신하지 말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알려주었다. 분명한 사실이었다. (p205)

영리하게도 사내는 이런 추위에도 제대로 얼지 않은 강의 위험을 잘 피해 점심 무렵까지도 무사히 일정을 소화했다. 쉴 틈 없이 강 주변의 지형과 위험, 특이점을 살피며 꼼꼼히 기억해두면서. 하지만 대개의 사고가 그렇듯 미숙함과 부주의가 불운의 시작이었다.

불은 잘 탔다. 이제 안전했다. 설퍼 수로 쪽에서 온 노인의 충고를 기억하고는 미소를 지었다.이 노인은 아무도 마이너스 50도 이하의 기온에서는 클론다이크 지방을 혼자 여행해서는 안 된다는 철칙을 매우 진지하게 세워놓았던 것이다. 그래, 그가 사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여기 살아 있다. 혼자이지만 목숨을 건진 것이다. 저 노인네들 가운데 적어도 몇몇은 여자 같은 겁쟁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라면 겁을 내지 말아아 한다. 그리고 그는 멀쩡했다. 정말 사내대장부라면 혼자서 여행할 수 있어야 한다. (p209)

그러나 그가 신발 끈을 자르기 전에 일이 벌어졌다. 자신의 잘못 아니면 실수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전나무 밑에서 불을 피우지 말았어야 했다. 나무가 없는 빈터에 불을 피웠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숲에서 잔가지를 끌어다가 불에 직접 던지기가 훨씬 쉬웠다. 그가 나무 아래에서 불을 피웠는데, 그 나무는 그 큰 가지 위에 눈을 이고 있었다. 몇 주일 동안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기 때문에 눈이 잔뜩 쌓여 있었다. 잔가지를 끌어모을 때마다 진동이 생겨 약간씩 나무가 흔들렸다.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주 미세한 진동이었지만, 문제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진동이었다. 저 높이 있는 나뭇가지에서 눈이 쏟아져내렸다. 이 눈이 그 아래쪽의 나뭇가지에 떨어졌고 그 여파로 거기에 있던 눈도 또 쏟아져내렸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되었고 결국에는 나무 전체로 퍼지게 되었다. 결국 눈사태처럼 커지면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 사나이와 불을 덮쳐버렸다. 불은 꺼지고 말았다. (p210)

어떻게든 저녁식사 전에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도착하려는 사내는 점심 때 잘 피운 불을 서둘러 버리고 길을 재촉하다 젖은 군화를 깨닫는다. 다시금 얼어가는 손으로 어렵게 불을 지피지만 눈 쌓인 나무 밑인 탓에 결국 반쯤 녹은 눈을 뒤집어쓴다. 불은 꺼지고 이제 몸에는 감각이 사라졌다. 성냥을 켤 수 없을 정도로 얼어 감각이 사라진 손으로 간신히 켠 성냥은 기침에 꺼지고, 다시 붙인 군불은 부주의로 또 꺼졌다.

사나이는 조심스럽지만 둔한 동작으로 불을 간수했다. 불은 생명을 뜻하기 때문에 꺼지지 않게 해야 했다. 몸 표면에 피가 없어 그는 오한이 났고, 그래서 동작이 더욱 둔해졌다. 꽤 큰 새파란 이끼 덩어리가 작은 불 바로 위로 떨어졌다. 손가락으로 이끼를 꺼내려고 했으나, 몸이 떨렸기 때문에 이끼에서 빗나갔고, 그 결과 그나마 작은 불 한가운데를 헤집어놓고 말았다. 타던 풀과 작은 가지가 이리저리 흩어졌다. 다시 이것들을 집어 모으려 했으나 아무리 애를 써도 나뭇가지들은 다시 모을 가망이 없을 정도로 산산이 흩어졌다. 하나씩 연기를 피식 내고는 나뭇가지의 불이 꺼졌다. 불을 제공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p215)

개를 보자 야만적인 생각이 들었다. 눈보라를 만났을 때 소를 죽여서는 그 사체 안에 기어들어가서 목숨을 구한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개를 죽여서 따뜻한 몸 안에 손을 묻으면 손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고 나면 새로 불을 피울 수도 있을 것이다. (p216) 그러나 개의 몸통을 두 손으로 잡고 앉아 있는 것 이외에 사나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개를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죽일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무력한 두 손으로는 칼집에서 칼을 빼서 손에 쥘 수도 없었고 개의 목을 조를 수도 없었다. 그가 개를 놓아주자 개는 꼬리를 다리 사이에 감추고 계속 짖어대면서 미친 듯이 튀어 달아났다. 마흔 걸음쯤 물러나서는 멈춘 다음 두 귀를 쫑긋 앞으로 세우고 호기심을 갖고 사나이를 관찰했다. (p217)

이제 사내는 자신이 불을 다시 켤 수 없으리라는 걸 알았다. 개를 죽여 몸을 덥히려는 참혹한 생각까지 했지만 역시 그 몸으로는 어림없는 일. 추위에 노출된 얼굴과 손을 시작으로 감각이 사라지고 몸속의 피가 점점 느리게 흐르는 느낌이 그를 엄습한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희미하긴 했지만 죽음에 대한 중압적인 공포가 사나이에게 다가왔다. 이번 일이 단순히 손가락과 발가락이 언다든지 혹은 손발을 잃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죽을 가능성이 높은 생사의 문제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공포감은 더욱 커져갔다. 그러자 그는 힘이 빠졌다. 방향을 틀어 수로 바닥을 넘어 오래된 희미한 길을 따라 뛰었다. 개가 합세하여 그를 따랐다. 평생 몰랐던 공포를 느끼며, 아무런 의도도 없이 맹목적으로 뛰었다. (p218) 그는 달리고 있다, 그것도 꽤 빠른 속도라고 생각했지만 이는 오산이었다. 이미 관속에 들어가 앉은 상태였던 그다. 달리기로 몸의 피가 빨리 돌기보다 오한이 덮쳐오는 게 더 빨랐다.

이번에는 그에게 오한이 좀 더 빨리 닥쳤다. 동상과의 싸움에서 지는 중이었다. 동상은 사방에서 그의 몸으로 기어들고 있었다. 이런 생각 때문에 다시 달렸지만, 100피트 정도 달리고는 멈추었다. 그러고는 비틀거리다가 앞으로 곤두박질쳤다. 최후의 고통이었다. 숨을 제대로 쉬고 자제력을 회복했을 때, 그는 앉아서 죽음을 당당하게 맞이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다른 식으로 다가왔다. 그에게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니라 목이 날아간 채 뛰어다니는 닭처럼, 바보 같은 자신의 모습이었다. 글쎄, 어쨌든 얼어 죽을 수밖에 없으니 그 사실을 점잖게 받아들여야 마땅하리라. 이렇듯 새로 찾은 마음의 평화와 함께 처음으로 희미한 졸음이 다가왔다. 그의 생각으로는, 자다가 죽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마취당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얼어 죽는 것이 사람들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았다. 더 험하게 죽는 방법도 많지 않은가. (p220~221) 공포와 환각, 그리고 쏟아지는 졸음, 그렇게 끝이다. “노인장 말씀이 옳았소. 당신 말씀이 옳았던 것이오.” 사나이는 노인에게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사나이는 평생 맛본 가운데 가장 편안하고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개는 그를 쳐다보면서 앉아 기다렸다. 짧은 낮이 거의 끝나면서, 긴 황혼이 서서히 다가왔다.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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