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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선집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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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엄마의 저녁 인사와 나의 고뇌
마들렌 에피소드
콩브레
메제글리즈 쪽 산책
게르망트 쪽 산책
서로 통하는 메제글리즈 쪽과 게르망트 쪽
게르망트 마티네
내가 써야 할 책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저자 소개2

마르셀 프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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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el Proust,Marcel Valentin Louis Eugene Georges Proust

1871년 파리 근교 오퇴유에서 파리 의과대학 위생학 교수 아드리앵 프루스트와 부유한 유대인의 딸 잔 베유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열 살 무렵부터 앓기 시작한 신경성 천식은 평생 그를 괴롭혔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어머니의 각별한 보살핌 속에서 자랐으며, 조르주 상드, 빅토르 위고, 조지 엘리엇, 오노레 드 발자크 등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 그는 어린 시절 노르망디에 있는 해변가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곤 했는데, 이곳은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발베크의 모델이 되었다. 프루스트는 건강이 좋지 않아 가족들로부터 특별한 기대를 모으지 못했다. 대신 그는 부유한 집안 환경
1871년 파리 근교 오퇴유에서 파리 의과대학 위생학 교수 아드리앵 프루스트와 부유한 유대인의 딸 잔 베유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열 살 무렵부터 앓기 시작한 신경성 천식은 평생 그를 괴롭혔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어머니의 각별한 보살핌 속에서 자랐으며, 조르주 상드, 빅토르 위고, 조지 엘리엇, 오노레 드 발자크 등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

그는 어린 시절 노르망디에 있는 해변가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곤 했는데, 이곳은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발베크의 모델이 되었다. 프루스트는 건강이 좋지 않아 가족들로부터 특별한 기대를 모으지 못했다. 대신 그는 부유한 집안 환경 덕분에 포부르 생제르맹의 귀족과 상류층 전용 술집을 드나들며 사교계의 나태함 속으로 빠져들었다. 또한 그는 이따금씩 소품을 쓰거나 영국 미술평론가인 존 러스킨의 작품을 번역했으며, 이야기꾼이자 비전문적 문인으로서 많은 글을 발표했다.

헌신적인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프루스트는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글을 쓰며 사교계를 드나드는 생활을 계속했다. 그의 건강상태는 동성애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더욱 악화되었고, 이러한 동성애로 인해 그는 부자들과 세력가들이 드나드는 술집뿐만 아니라 남자 하인의 숙소와 매춘굴까지 드나들었다. 그리하여 1890년대의 프루스트는 나중에 그의 작품에서 표현되었던 것처럼, 사교계의 관심이나 끌려고 속태우는 천박하고 이기적인 속물처럼 보였다. 1905년 어머니의 죽음은 프루스트에게 길고 고통스러운 슬픔을 안겨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방탕한 생활이 어머니의 죽음을 야기시킨 주요 원인이라는 사실도 점차 깨달았다.

1883년 파리의 명문 콩도르세 중등학교에 진학하여 학교 문예지 [라일락]에 「어두운 보라색 하늘」,「극장에서 받은 인상들」 같은 글을 게재하였다. 1989년 파리 법과대학 및 정지학 전문학교에 등록하였으나 학업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가끔 소르본느대학에서 앙리 베르그손의 철학 강의를듣는 한편, 사교계에 열심히 드나들었다. 딜레탕트를 자처하며 사교계를 기웃거리고, 여러 문인과 교류하며 극장, 오페라 극장, 살롱 등을 드나들고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미술품을 감상한다.

1895년부터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의 초벌 그림과 같은 자서전적 소설 『장 상퇴유』를 집필하기 시작하였으며, 1986년 첫 수필집 『기쁨과 나날들』을 출간했다. 1893년경부터 십수 년간 러스킨의 작품을 연구하였으며, 1904년 『아비앵의 성서』, 1906년에『참깨와 백합』을 번역 출간했다. 1905년 어머니의 죽음은 프루스트에게 길고 고통스러운 슬픔을 안겨주었다. 1909년부터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를 본격적으로 집필하며 칩거 생활에 들어갔다. 출판을 위해 갈리마르 등 여러 출판사와 교섭하였으나 실패하고, 1913년 11월 그라세 출판사에서 자비로 첫 편 「스완 댁 쪽으로」를 출간한다.

제1차 세계대전 가운데서도 집필을 계속하여 1919년 6월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2편 「피어나는 소녀들의 그늘에서」를 출간하고, 이 작품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다. 1920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다. 이후 「게르망뜨 쪽」, 「소돔과 고모라」등이 출간되었고, 「갇힌 여인」과 「탈주하는 여인」,「되찾은 시절」은 그가 타계한 후에 출판되어 1927년에야 완간을 보게 된다. 그는 마지막 날까지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의 탁마 작업을 계속하다 1922년 11월 18일 평생의 지병이었던 천식으로 파리에서 사망했다.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은 1896년 그의 첫 작품집 『즐거운 나날들』에 수록된 산문시집으로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대작을 품은 씨앗의 면모를 보여준다.

1896년 첫 작품집 『쾌락과 나날』을 출간했고, 이후 존 러스킨의 작품을 번역한 『아미앵의 성서』(1904), 『참깨와 백합』(1906)을 출간했다. 그의 초기작 『장 상퇴유』는 1,000매를 넘는 대작으로 3인칭 수법으로 저술되었는데, 1896∼1900년에 걸친 작품으로 추정되며, 또 『생트 뵈브에 거역해서』는 1908∼1910년경의 습작인데, 모두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집대성될 일관된 노력이 남긴 행적으로 보아야 할 작품들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시간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또한 과거가 무의식적 기억의 도움을 받아 예술 속에서 회복되고 보존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탐구한다. 이 소설에서 그가 이룩한 혁신의 중심은 등장 인물들을 고정된 존재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정황과 지각에 의해 점차 드러나고 형성되는 유동적인 존재로 그리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완전한 예술적 전체 속으로 무너뜨리는 인생을 그려내는 프루스트의 강력한 실례는 20세기 문학에서 획기적인 영향력 중 하나였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더불어 근본적으로 소설의 형식을 바꾸었고, 소설의 여러 가지 기본 원칙들을 변화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집요할 만큼 강박적으로 비전을 표현하고 전달함에 있어서 그가 개인적으로 기여한 바는 문인의 현대적인 역할을 규정해 주었다. 파리의 8구에 위치한 오스만가 102번지는 프루스트가 살았던 아파트로 현재는 기념관으로 보존되어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다른 상품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투르대학에서 「쥘리앙 그라크 작품에 나타난 건축 공간의 형태와 의미」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충남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쥘리앙 그라크, 조르주 바타유, 레몽 루셀, 그리고 프랑스어권 카리브해 문학에 대한 논문들을 썼고, 『프랑스 하나 그리고 여럿』을 공동으로 집필했으며, 『시르트의 바닷가』 『아프리카의 인상』 『로쿠스 솔루스』 『마네』 『카르멘』 『검은 튤립』 『햄릿의 망설임과 셰익스피어의 결단』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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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2월 2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153*224*10mm
ISBN13
9788946084209

책 속으로

물론 내 깊은 곳에서 고동치는 것은, 그 맛에 매달려 나에게까지 오려고 시도하는 이미지, 곧 시각적 추억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먼 곳에서 너무 막연하게 발버둥 친다. 나는 휘저은 색깔들의 포착할 수 없는 소용돌이가 뒤섞이고 있는 중성적 반영을 겨우 지각할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 형태를 분별할 수 없고, 유일하게 가능한 통역자에게 하듯, 그것의 동시적 존재이자 뗄 수 없는 동반자인 맛의 증언을 내게 번역해 줄 것을, 그리고 어떤 특수한 정황, 어떤 과거의 시기가 문제 되는 것인지 내게 알려줄 것을 그것에게 요구할 수도 없다.
--- 「마들렌 에피소드」 중에서

이윽고 나는 마치 바라보는 것을 잠시 멈추고 났을 때 그것을 더 잘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작 앞에서인 양 산사나무 앞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눈앞에 오로지 그것만을 두기 위해 손으로 가림막을 한들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내 안에 일깨운 감정은 모호하고 막연하게 남은 채 벗어나려고, 그 꽃들에 와 결부되려고 부질없이 애쓸 뿐이었다. 산사나무 꽃들은 그 감정을 해명하도록 나를 돕지 않았고, 나는 다른 꽃들에게 그것을 충족시켜 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었다.
--- 「메제글리즈 쪽 산책」 중에서

나는 그 어떤 것이 그들 안에 있다고 느꼈으므로 내가 있던 자리에 가만히 선 채로 바라보고 호흡하며 내 사념과 더불어 이미지나 냄새 너머로 가보려고 애썼다. 할아버지를 따라잡아 길을 계속 가야만 할 경우, 나는 눈을 감고 그것들을 되찾으려고 했다. 나는 또한 지붕의 선, 돌의 뉘앙스를 정확하게 떠올리는 데 몰두했는데, 그것들은 내가 알 수 없는 곡절로 속이 가득 차 있으며, 스스로 열림으로써 그것들이 덮고 있는 것을 내게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여겨졌던 까닭이다. 물론 이런 종류의 인상들이 언젠가 작가와 시인이 될 수 있으리라는 잃어버린 희망을 내게 돌려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 인상들은 언제나 지적 가치가 결여되어 있으며 그 어떤 추상적 진리와도 관련되지 않는 특정 대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들은 내게 알 수 없는 기쁨을, 일종의 생산성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고, 그렇게 권태로부터, 그리고 위대한 문학 작품을 위한 철학적 주제를 찾으려고 할 때마다 느껴야만 했던 무력감으로부터 내가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렇지만 그 형태, 향기 또는 색채의 인상이 내게 부과하는 의무감이 - 곧 그것들 뒤에 감춰진 것을 인식하기 위해 애써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나를 어찌나 힘들게 했던지, 나는 곧 그 같은 노력에서 빠져나와 그 고단함을 면하게 해줄 핑계들을 찾아야만 했다.
--- 「게르망트 쪽 산책」 중에서

내가 방금 전에 느낀 기쁨은 실제로 마들렌을 먹으면서 느꼈고, 당시로서는 그 깊은 이유를 찾는 일을 뒤로 미루어야만 했던 바로 그 기쁨과 같은 것이었다. 두 기쁨 사이의 순전히 물질적인 차이는 상기된 이미지들에 있었다. 깊은 창공이 내 눈을 도취시키며 시원한 인상과 눈부신 빛이 내 곁에서 소용돌이쳤고, 나는 그것들을 잡으려는 욕망에서, 마들렌 맛을 음미하는 순간 그것이 떠올리는 것을 나까지 이르게 하려고 애쓰면서 그랬던 것처럼, 감히 더 이상 꼼짝하지 않은 채, 수많은 운전수의 무리가 웃음을 터뜨리는 것조차 무릅쓰고, 조금 전에 그랬던 것처럼 한쪽 발은 높은 포석을, 다른 쪽 발은 낮은 포석을 밟고 비틀거리면서 있었다. 그런데 같은 동작을 오로지 물질적으로만 되풀이해 본들 그것은 매번 무익한 것이기만 했다. 하지만 게르망트 마티네를 잊어버리고 그렇듯 발로 포석을 디디면서 느꼈던 것을 다시 되찾는 데 성공했을 때는 그 명료하지는 않지만 찬란한 광경이 또다시 나를 스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럴 힘이 있으면 지나가는 나를 붙잡아 봐. 내가 네게 제안하는 행복의 수수께끼를 풀어보란 말이야.” 나는 거의 즉시 그 광경을 알아보았다.
--- 「게르망트 마티네」 중에서

그렇다. 추억이 망각 덕분에 자신과 현재 순간 사이에 어떤 관계도 맺지 못하고 또 어떤 연결고리도 걸쳐놓을 수 없었다면, 그냥 자기 자리 자기 날짜에 머물러 있었다면, 움푹한 계곡 또는 산봉우리 정상에 고립된 채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문득 새로운 공기를 호흡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 공기는 예전에 우리가 호흡했던 바로 그 공기이기 때문이다. 이 공기는 시인들이 낙원을 채우려고 헛되이 시도했던 더욱 순수한 공기이니, 이 갱신의 깊은 느낌은 그것을 이미 호흡한 다음에만 가능하다. 진정한 낙원은 잃어버린 낙원인 까닭이다.
--- 「게르망트 마티네」 중에서

물론 우리 감각이 범하는 수많은 다른 오류들이 있다. 우리 눈에 이 세계의 실제 양상을 왜곡해서 보여주는, 이 이야기에 포함된 다양한 일화들이 내게 그것을 입증해 주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제공하려고 애쓸 보다 정확한 옮겨 쓰기에서 나는 소리들의 위치를 결코 바꾸지 않으며, 비록 지성이 그것들을 엉뚱한 자리에 위치시키겠지만, 그것들이 원인과 유리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방 한가운데에서 빗소리가 부드럽게 노래를 부르거나 보리수 달이는 물 끓는 소리가 안뜰에 홍수처럼 쏟아져 내리게 하는 것이, 화가들이 돛이나 산봉우리를 - 원근법의 규칙, 색채의 강도, 맨 처음 시선의 착시, 이런 것들이 우리 눈에 어떻게 나타나게 하느냐에 따라 - 그토록 자주 우리에게서 매우 가까이 또는 매우 멀리 보이도록 - 뒤이은 추론은 그것들을 이따금 엄청난 거리 너머로 이동시킬 것이다 - 그리는 것보다 결국 더 황당하달 것도 없다. 오류는 더욱 심각할지언정, 사람들이 그리하듯, 나는 계속해서 지나가는 여인의 얼굴에 이목구비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 「내가 써야 할 책」 중에서

출판사 리뷰

차 한 잔에 담긴 콩브레라는 추억의 원형
시간을 아우르는, 인상과 느낌에 관한 소설


“엄마와 단둘이 되자마자 터지고 만 오열을 나는 매우 잘 지각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오열은 결코 그친 적이 없다. 오로지 내 둘레의 삶이 이제 보다 더 침묵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다시 들을 수 있다. 낮 동안 도시의 소음에 뒤덮여 멎어버린 줄로만 알았으나 저녁의 고요 속에서 다시 울리기 시작하는 수도원의 종처럼”_「엄마의 저녁 인사와 나의 고뇌」에서

어린 시절의 인상들은 어떻게 문득 떠올라 삶 전체를 펼쳐 보이는 걸까? 엄마의 저녁 인사를 받지 못할까봐 불안해하던 어린 마르셀의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시간이 지나 마르셀이 콩브레에서 지내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마들렌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마르셀은 엄마가 건넨 마들렌 한 조각이 무르고 있는 숟가락에 담긴 차를 마시는데, 그때 문득 추억이 나타난다. 이 맛은 일요일 아침 콩브레에서 레오니 아주머니 방에 아침 인사를 하러 가면 아주머니가 마시던 차에 담갔다가 꺼내어 주던 작은 마들렌 조각의 맛이었다.

다음 순간, 그의 어린 시절이 녹아 있는 콩브레 일대가 펼쳐진다. 레오니 아주머니가 준 보리수차에 담근 마들렌 조각의 맛을 알아보자마자 즉각 아주머니의 방이 있는 길에 면한 오래된 회색 집이, 그리고 집과 더불어 아침에서 저녁에 이르는 온갖 날씨의 도시의 모습, 점심 먹기 전에 자신을 보내곤 하던 광장, 장을 보러 가던 골목들, 날씨가 좋을 때 걷던 길들이 나타난다. 인상과 느낌이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한 그것은 어떤 작업을 필요로 하는가? 예술 작품을 만들면서, 곧 문학 작품을 쓰면서라고 마르셀은 이 책을 통해 말한다. 왜냐하면 오로지 예술만이 “우리에게 가장 귀하되 대개는 영영 미지의 상태로 남는 것, 곧 우리의 진정한 삶, 다시 말해 우리가 느낀 그대로의 실재,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그토록 달라서 어떤 우연이 진정한 추억을 가져다주면 우리가 행복으로 가득 차게 될 그런 실재”를 발견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삶의 정수에, 시간의 본질에 가닿는 문학
마르셀 프루스트의 세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모두 일곱 권으로 이루어진 대하소설이다.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마르셀이 작품을 ‘대성당’에 비유한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 비유는 장대한 분량에 복합적 구성을 갖고 있는 소설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적절한 비유다. 그것은 또한 작품을 옹호해 주는 비유이기도 하다. 방대한 분량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가려 뽑은 이 선집에서 우리는 물질적 자극에 의해, 그로부터 촉발된 인상에 의해 무의지적 추억을 갖게 된 존재의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시간 탐색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과거를 다시 소생시키려는 노력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과거를 질료 삼아 진정한 삶, 본질적 시간을 창조하려는 작업이다.

시간의 바깥에서

“첨탑의 형태, 선들의 이동, 표면의 환한 빛을 확인하고 기억해 두면서 나는 내가 받은 인상을 완성할 수 없으리라는 것, 그 움직임 뒤에는, 그 빛 뒤에는 어떤 것이, 그것들이 담는 동시에 숨기는 듯 여겨지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_「게르망트 쪽 산책」에서

“이때 내 안에서 그 느낌을 맛보고 있는 존재는 그 느낌이 예전의 날과 지금 현재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 안에서, 다시 말해 그 느낌이 갖고 있는 초시간적인 것 안에서 그 느낌을 맛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존재는 현재와 과거의 일치 가운데 하나를 통해, 자기가 살아낼 수 있고 또 사물의 본질을 향유할 수 있는 유일한 환경에 자리 잡을 수 있을 때에만, 다시 말해 시간의 바깥에 자리 잡을 수 있을 때에만 나타나는 존재였던 것이다”_「게르망트 마티네」에서

인상이 과거와 현재에 동시에 연결되며 바야흐로 시간으로부터 해방된다. 존재는 이제 시간에서 벗어나 초시간의 영역, 나아가 본질적 시간으로 돌입한다. 예로부터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영원을 추구해 왔다.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는 특별한 체험에서 출발하여 시간의 본질 또는 삶의 정수를 지성의 등가물, 곧 문학 작품으로 축조하는 일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그 하염없는 페이지들을 통해 절실히 탐색하고 또 감동적으로 제시하는 위대한 영원의 형태로 여겨진다.

프랑스 문학의 정수를 가려 뽑은
마르셀 프루스트 선집과 알베르 카뮈 선집 동시 출간!


오늘 저녁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 어떤 어린 시절의 이미지라면, 내가 거기서 끌어낼 수 있는 사랑과 가난의 교훈을 어째서 받아들이지 않는단 말인가? 그 시간은 예와 아니오 사이의 틈 같은 것이므로, 나는 삶에 대한 희망이나 염오는 다른 시간들로 돌린다”_『태양과 바다와 인간: 알베르 카뮈 선집』에서

이 책의 주인공 마르셀처럼 되돌아오는 어린 시절의 이미지를 긍정하는 작가로, 알베르 카뮈가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선집』과 함께 출간되는 『태양과 바다와 인간: 알베르 카뮈 선집』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한 인간이자 예술가로서 세상을 감각하고 자신들만의 언어로 풀어내는 프랑스 작가들의 글을 가려 뽑은 이 두 권의 선집에서 삶과 예술에 대한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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