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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연보와 사건 7

마네의 우아함 29
비개인적 전복 38
주제의 파괴 46
[올랭피아] 스캔들 68
비밀 88
회의에서 지고의 가치로 101

해설: 마네와 바타유, 예술과 주권 118

저자 소개2

조르주 바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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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s Bataille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소설가였다. 프랑스 남부 오베르주에서 태어난 그는 매독 환자에 맹인이었던 아버지와 조울증 환자였던 어머니의 그늘 아래 한때 성직자가 되기를 꿈꾸기도 했지만 결국 파리 국립 고문서 학교를 택하고, 파리 국립도서관 사서가 된다. 평생 사서로 일한 그는 오를레앙 도서관장으로서 생을 마감했다. 문학 작품뿐 아니라 인류학, 철학, 경제학, 사회학, 예술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글을 쓴 그는 글쓰기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았고 자신의 다양한 경험을 기록하는 수단으로 글쓰기를 대했다. 사드의 적자라 불러도 좋을 바타유는 매음굴을 전전하며 글을 썼던 에로티즘의 소설가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소설가였다. 프랑스 남부 오베르주에서 태어난 그는 매독 환자에 맹인이었던 아버지와 조울증 환자였던 어머니의 그늘 아래 한때 성직자가 되기를 꿈꾸기도 했지만 결국 파리 국립 고문서 학교를 택하고, 파리 국립도서관 사서가 된다. 평생 사서로 일한 그는 오를레앙 도서관장으로서 생을 마감했다. 문학 작품뿐 아니라 인류학, 철학, 경제학, 사회학, 예술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글을 쓴 그는 글쓰기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았고 자신의 다양한 경험을 기록하는 수단으로 글쓰기를 대했다.

사드의 적자라 불러도 좋을 바타유는 매음굴을 전전하며 글을 썼던 에로티즘의 소설가였다. 그러나 그는 또한 소비의 개념에 천착하며 세계를 바라본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였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사상에 이어 모스의 증여론와 헤겔 종교철학에 심취했던 바타유는 [도퀴망], [아세팔], [크리티크] 등 당대 프랑스 사상계를 주도했던 여러 잡지들을 창간하고 운영했던 주체였다.

무신론자를 자칭했지만 신성과 신비주의, 샤머니즘, 선불교 등에 관심이 많았다. 자전적 요소가 많은 그의 글들에서 그가 탐구했던 신성, 황홀경, 죽음에 대한 공포와 환희를 엿볼 수 있다.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는 그의 글들은 대중적으로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난해함 때문에 독자도 많지 않다.

바타유는 생애 방대한 글들을 생산했고, 글들은 철학, 사회학, 경제학, 미술, 종교, 문학을 아우른다. ‘성(性)’과 ‘성(聖)스러움’, ‘작은 죽음’과 ‘죽음’ 등 인간의 삶을 ‘(비생산적) 소비’의 관점에서 관통하는 개념들은 ‘비지(非知)’의 상태, 즉 (‘주권[主權]’, ‘지고성[至高性]’, ‘지상권[至上權]’ 등으로도 옮길 수 있는) ‘절대권’에 수렴된다.

저서로 『태양의 항문』, 『작은 것』, ‘무신학 전서’ 3부작 『내적 체험』, 『죄인』, 『니체에 관하여』와 『저주의 몫』, 『에로티즘』, 『눈 이야기』, 『불가능』, 『하늘의 푸른빛』, 『종교이론』, 『마담 에두아르다』, 『C 신부』, 사후 출간된 『내 어머니』와 『시체』, 『내적 체험』, 사상서 『저주의 몫』, 『에로티즘의 역사』와 『에로스의 눈물』, 문학 이론서 『문학과 악』, 미술서 『선사시대의 회화: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 『마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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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투르대학에서 「쥘리앙 그라크 작품에 나타난 건축 공간의 형태와 의미」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충남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쥘리앙 그라크, 조르주 바타유, 레몽 루셀, 그리고 프랑스어권 카리브해 문학에 대한 논문들을 썼고, 『프랑스 하나 그리고 여럿』을 공동으로 집필했으며, 『시르트의 바닷가』 『아프리카의 인상』 『로쿠스 솔루스』 『마네』 『카르멘』 『검은 튤립』 『햄릿의 망설임과 셰익스피어의 결단』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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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8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168쪽 | 228g | 128*188*20mm
ISBN13
9788954674089

책 속으로

회화의 역사에서 마네라는 이름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마네는 그저 한 사람의 매우 위대한 화가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그에 앞선 화가들과 단절했고, 우리가 사는 세계를 열었다. 그는 지금의 세계, 우리의 세계와 어울리되, 자신이 살며 스캔들을 일으킨 세계와는 어울리지 못했다. 마네의 회화가 일으킨 돌연한 변화, 그 날카로운 전복에는 혁명이라는 이름이 적절할 것이다.
--- p.29

시대에 따라 쇄신하는 예술의 변화무쌍한 미美와 대중의 취향이 이렇게 완벽히 불일치한 적은 마네 이전에 결코 없었다.
--- p.30

그 시절 카페의 삶은 중요했다. 그것이 재사才士들에게 갖는 의미는 경마장이 우아한 여인들에게 갖는 의미와 견줄 수 있는 것이었다. 그곳은 접근이 어려운 고상한 살롱의 삶의 언저리였다. (…) 사교계 사람이며 우아한 달변가인 마네는 결코 살롱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카페에서 수다 떨기를 좋아했다.
--- p.33

조각가이거나 화가인?문학가도 여기 해당한다?장인匠人, artisan들은 결국 자기 스스로를 표현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게 되었다. 한데 이번에는 자기 스스로를 주권적 존재로 표현한다는 점이 달랐다. 예술가artiste라는 모호한 이름은 이제 이런 새로운 품격과 동시에 정당화하기 힘든 포부를 나타낸다.
--- p.38~39

주제를 지우고 파괴하는 것은 현대 회화의 일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주제의 부재는 아니다. 각각의 그림은 많건 적건 하나의 주제, 하나의 제목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 주제, 그 제목은 무의미하며 회화의 구실에 불과해진다.
--- p.60~61

마네와 더불어 시작하는 인상주의에서?야수파와 입체파를 거쳐?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회화에는 격렬한 전복이, 오랜 열기가 있었고, 스캔들은 그것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 p.75

[올랭피아]는 여자이지 벌거벗은 여신이 아니다. 이 벌거벗은 여자와 재킷을 입은 남자는 같은 세계에 산다. 그런데 이 세계는 예술이 배척하는 세계이다. 나는 회화가 과거의 위엄 있는 형태들을 재현했었다고 말했는데, 이를 회화는 현실의 틀 속에서, 그리고 가능한 한도 내에서 행했다.(그 당시 회화는 재현해야 했다. 창조할 수 없었다.)
--- p.83

그는 신화적 주제와 도식에 현재 세계를 도입했고, 이런 변화에서 자신이 원하던 것, 곧 과거의 전복과 새로운 질서의 탄생을 찾았다.
--- p.84

[풀밭 위의 점심]에서 시작된 노력은 완료되었다. 완만한 준비 과정이 마무리된 것이다. 테크닉과 빛의 신성한 유희, 현대 회화가 탄생했다.

--- p.87

출판사 리뷰

바타유와 마네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1897~1962)는 프랑스 현대 사상의 원천이 된 독보적인 사상가이자 작가이다. 그는 철학, 문학, 사회학, 인류학, 종교, 예술을 넘나든 위반과 전복의 사상가이면서 ‘20세기의 사드’라 칭할 만한 에로티슴의 소설가이기도 하다. 평생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한편으론 잡지 『도퀴망』『아세팔』『크리티크』를 창간하며 사상계를 주도하고 초현실주의와 공산주의 활동에 참여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론 사창가를 드나들며 방탕한 생활을 하고 가명으로 외설적인 소설을 쓰는 이중적 삶을 살았다. 방대한 글을 남겼지만 그의 사상은 당대에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고 사후에 푸코, 바르트, 데리다, 낭시, 라캉, 보드리야르, 크리스테바 등에 의해 재평가된다. 바타유 사유의 핵심을 이루는 ‘과잉’ ‘위반’ ‘소모’ ‘주권’ 개념은 특히 포스트모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롤랑 바르트는 『텍스트의 즐거움』에서 바타유를 ‘분류할 수 없는’ 작가로 규정한다. 이 분류 불가능성은 바타유의 삶이, 그의 다양한 글쓰기가 그대로 증명해준다. 바타유의 사유는 정의할 수 없는 것, 이성의 끝, 침묵하는 언어를 지향했다. 그는 언제나 경계 너머를 사유하고 실제로 이를 경험하고자 했다.

바타유는 예술에 관한 책 두 권을 1955년에 나란히 출간했다.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은 예술 자체의 기원을 이야기한 책이고, 『마네』는 한 화가를 통해 현대 예술의 탄생을 다루고 있다. 19세기 미술계 최대의 스캔들을 일으킨 마네는 바타유가 보기에 현대 예술의 출발점에 있는 화가다. 예술을 사치, 도박, 종교, 성행위, 시와 더불어 ‘소모’의 활동으로 간주하는 바타유는 마네의 그림에서 새로운 예술의 어떤 징후를 보았던 것일까?

현대 예술의 탄생과 [올랭피아] 스캔들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1832~1883)는 흔히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인상주의의 틀에 묶이지 않는 다양성을 보여주었다. 마네는 그 누구보다도 대담하게 기존의 관습과 전통을 거부하고 예술의 지평에 파란을 불러일으킨 인물이다. 바타유는 그런 마네의 개성을 비일관성과 비개인성에서 찾는다. “일종의 변모를 위한 우연의 도구가 아니면 마네는 도대체 무엇일까?”(38쪽) “그 앞에 차례차례 나타났지만 그를 안착시키지 못한 가능성들의 무질서와 비교할 때 인상주의는 차라리 빈약한 것이었다.”(39쪽)

마네는 기존 세계의 기반이 무너져가는 변화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 기존 세계는 신의 교회와 왕의 궁전이 군림하던 세계다. 과거에 예술은 그런 주권적 형태들(신이나 왕에게 속하는 것)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마네가 주도한 변화는 주제의 파괴, 형태 및 색채의 해방과 긴밀하게 관련된다. 르네상스 이래 서양을 지배해온 근대적 재현 양식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시점에 마네가 제시한 새로운 회화는 그 자체로서 자율성과 자족성을 갖는, 비개인적이면서 비개성적인 “형태와 색채의 노래”(49쪽)로 나아간다.

이 책에서 바타유가 중요하게 언급하는 마네의 작품은 [튈르리정원 음악회] [풀밭 위의 점심] [올랭피아] [막시밀리안황제의 처형] [발코니] [스테판 말라르메의 초상] 등이며, 이 가운데 특히 걸작으로 꼽는 것은 [올랭피아](1863)이다. [올랭피아]는 1865년 살롱전에 출품되었을 때 “누런 배의 오달리스크” “‘올랭피아’, 일종의 암컷 고릴라” 같은 혹평을 받고 대중의 분노를 촉발하며 엄청난 스캔들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바타유가 보기에 이 작품이야말로 마네 예술의 정점이다. 마네의 다른 대표작인 [풀밭 위의 점심](1862)을 [튈르리정원 음악회](1860)에서 [올랭피아]로 나아가는 “체계적 탐구의 한 단계”(85쪽)로 간주할 정도이다.

침묵의 회화: ‘주제’의 파괴

바타유는 마네 예술의 가장 이상한 양상 가운데 하나로 ‘차용’을 꼽는다. 마네는 예전의 그림에서 구도와 주제를 빌려오곤 했다. [풀밭 위의 점심]은 조르조네의 [전원의 합주]와 라파엘로의 [파리스의 심판]에서, [올랭피아]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에서 구도를 차용했다. 하지만 마네는 예전 회화의 신화적 주제와 도식에 현재 세계를 끌어들였다. 과거의 회화가 재현하던 신화의 세계, 신적인 형상은 사라지고 없다. [풀밭 위의 점심]에는 현대적인 복장인 재킷을 입은 남자들 곁에 벌거벗은 여인이 앉아 있다. [올랭피아]에서 벌거벗은 여인은 신화 속 여신이 아니라 창녀처럼 도발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고 흑인 하녀가 화면의 중앙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마네는 이런 패러디를 통해 과거의 전복과 새로운 질서의 탄생을 모색했다. 그때까지 회화는 눈에 보이는 것, 현실의 범속한 것을 넘어서는 진리의 표현이어야 했다.

마네는 회화의 전통적 규약을 따르는 대신 현재 자기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그리려 했고, 권위 있는 주제, 웅변과 설교의 표현을 배격함으로써 회화를 침묵의 차원으로 옮겨놓았다. 이렇게 주제에서 벗어남으로써 회화는 스스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성격과 위상을 지니게 된다. 주제의 부정 또는 파괴는 곧 주제의 침묵이고, 주제는 단지 형태와 색채의 유희를 위한 구실에 불과해진다.

주제를 지우고 파괴하는 것은 현대 회화의 일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주제의 부재는 아니다. 각각의 그림은 많건 적건 하나의 주제, 하나의 제목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 주제, 그 제목은 무의미하며 회화의 구실에 불과해진다.(60~61쪽)

시인 폴 발레리는 [올랭피아]에 대해 “대도시의 매춘 일과 풍습 속에 감춰지고 보존된 모든 원시적 야만과 제의적 동물성을 꿈꾸게 해준다”고 말하지만, 바타유가 이 그림에서 주목하는 것은 오히려 회화의 침묵이다.

그 여자는 거기 있다. 도발적 정확함 가운데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녀의 벌거벗음(실제로 육체의 벌거벗음과 일치하는)은 난파한 배, 빈 배에서 스며 나오는 침묵처럼 그녀로부터 배어나오는 침묵이다.(78쪽)

‘올랭피아’는 여자이지 벌거벗은 여신이 아니다. 이 그림에서 화가가 의도적으로 사용한 눈에 거슬리는 배색, 색채의 파열과 부조화는 너무나 강렬해서 그림을 이루는 나머지를 모두 침묵에 빠뜨린다. 인물은 정물과 다름없어진다. 마네의 회화에서 “정물은 인물의 층위로 옮겨가고, 인물은 그만큼 사물의 층위로 추락한다.”(106쪽) 모든 것은 미美에 대한 무심함으로 미끄러진다. 주제와 의미에서 벗어난 침묵의 회화는 “테크닉과 빛의 신성한 유희”(87쪽)를 낳았다. 이것이 바로 현대 회화의 탄생이다.

주권과 예술

바타유에 따르면, 마네에서 출발하는 현대 회화의 속성은 “형태와 색체의 노래” “빛의 마술적 유희”로 수렴한다. 이 유희는 주권souverainete과 연결된다. 더이상 신이나 왕이 군림하지 않는 세계에서 예술가는 스스로를 주권적 존재로 표현해야 한다. 하지만 이때의 주권은 어둠과 침묵, 죽음을 전제로 한다. 회화에 이질적인 모든 가치가 말소되는 국면에서 회화는 결정적 침묵에 도달한다. 이런 유희, 이런 침묵은 현대인에게 역설적으로 자유를 선사한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신화적 주제, 권위 있는 표현과 규약에 기댈 수 없는 현대 예술은 이제 ‘재현’하지 않고 ‘창조’해야 한다.

바타유가 말하는 주권은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제시한 개념과 달리 이성과 지식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그것들과 거리를 둔다. 노예의 삶을 거부하고 주권의 회복을 추구하는 바타유에게 지성 및 그 지성과 연결된 의미에 대한 욕망은 노예성의 발로일 수 있다. 즉 바타유의 주권은 이성에 대한 불신에 기반을 둔다. 현대 예술에 있어 바타유의 주권은 크게 다음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과거의 가치와 이념, 곧 전통과 규약의 이름으로 여전히 문화를 지배하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둘째, 이성과 유용성의 이름으로 인간의 삶을 구속하는 모든 것에 대한 거부이다.

바깥으로부터 주어진 규약의 위엄으로부터 독립된 자리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어떤 현실, 다시 말해 거짓말에 의해 거대한 유용성의 기계에 굴복하지 않는 어떤 현실을 찾아야만 했다. 한데 그런 주권이 발견되는 것은 예술의 침묵뿐이었다. (…) 그[마네]의 회화는 이 주권적 침묵의 지점을 표현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스스로 변모한다. 그리하여 회화는 이제 부르주아적 무거움에 완전히 종속된 세계로부터 대상들을, 대상의 이미지들을 떼어내는 예술로 나타난다.(65쪽)

현대 예술에 나타나는 침묵의 주권을 통해 인간은 “유용성의 기계”와 “부르주아적 무거움”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로 거듭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주제를 파괴하고, 그 자리에 형태와 색채의 유희를 펼쳐놓는 주권의 회화. 그것이 곧 마네의 예술이다. 바타유가 읽어내는 마네 예술의 특징은 한마디로 ‘의미로부터 벗어나기’이다. 바타유에게서 의미는 노동, 이성, 유용성과 같은 범주에 속하며, 소모의 영역에 속하는 예술, 종교, 에로티슴과 대립한다. 그렇기에 “의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마네의 예술은 르네상스 이래의 근대 예술에 대한 부정을 넘어 서양 근대문명 일반에 대한 문제제기가 된다.”(옮긴이 해설)

“바타유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_미셸 푸코

“바타유는 신의 죽음을 견디고 살아남았다. 그에게서 현실은 투쟁이다.”
_장폴 사르트르

“바타유를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그 작가는 소설가인가? 아니면 시인? 에세이스트? 경제학자? 철학자? 신비주의자? 그 대답은 지극히 당혹스러운 것이어서, 문학 교과서에서는 일반적으로 바타유를 망각하는 편을 더 좋아한다. 실상 바타유는 텍스트들을, 어쩌면 지속적으로 하나의 유일하고 동일한 텍스트만을 썼다.”
_롤랑 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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