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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이야기 009
1 고양이 눈 011 2 노르망디산 장롱 020 3 마르셀의 냄새 030 4 태양의 흑점 038 5 핏줄기 048 6 시몬 055 7 마르셀 063 8 죽은 여자의 감지 않은 눈 071 9 음란한 동물 078 10 그라네로의 눈 085 11 세비아의 태양 아래에서 095 12 시몬의 고해와 에드먼드 경의 미사 104 13 파리의 다리들 113 2부 일치들 125 부록 139 해설 | 포르노그래피적 상상력(수전 손택) 141 해제 | 부위의 책(김태용) 211 작가 연보 224 |
Georges Bata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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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우리는 자전거를 찾아냈고, 알몸에 신발만 신은 채 자전거에 올라 탄, 자극적이면서도 더러운 구경거리를 서로에게 제공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야릇하게도 서로의 존재에 흡족해하면서 웃지도 않고 말도 없이 재빠르게 페달을 밟았는데, 음란함과 무기력과 부조리 속에 똑같이 고립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 둘은 비슷했다. --- p.49~50
그런데 어느 날 투우에 관해서 에드먼드 경이 시몬에게 하는 얘기를 들으니, 최근까지만 해도 투우 애호가들인 몇몇 스페인 남자들이 먼저 죽은 황소의 싱싱한 불알을 석쇠에 구워달라고 투우경기장 관리인에게 주문하는 게 관습이었다고 했다. 그들은 그 불알을 자기 자리로, 그러니까 투우경기장의 맨 앞줄로 가지고 오게 해서 그다음 황소들이 죽는 걸 보며 즉시 먹어치웠다. 시몬은 이 이야기에 전례 없이 큰 흥미를 보였다. 다음 주 일요일에 열리는 그해의 중요한 개막 경기를 구경하기로 되어 있으니, 자기에게도 처음 죽인 황소의 불알을 가져다주도록 해달라고 에드먼드 경에게 부탁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석쇠에 굽지 않은, 생 불알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 p.83 실제 우리는 말하자면 계속해서 육체관계를 맺고 있었다. 우리는 오르가슴을 느끼지 않도록 하면서 그 도시를 구경 다녔는데, 이것이야말로 내 음경이 그녀의 음부 속에 한없이 잠겨 있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리는 단지 산책하는 도중에 생기는 온갖 기회를 이용할 따름이었다. 우리가 유리한 장소를 떠난 것은 오직 또 다른 유리한 장소를 발견할 목적에서뿐이었다. 빈 박물과 진열실, 계단, 덤불이 높게 둘러진 공원 산책길, 문이 열려 있는 교회, ?밤이면 인적이 끊긴 골목,? 우리는 그런 비슷한 장소를 발견할 때까지 걸었으며, 그런 장소를 발견하기만 하면 나는 즉시 그 처녀의 한쪽 다리를 들어올려 몸을 열면서 내 음경을 단숨에 엉덩이 깊숙한 곳까지 던져넣었다. --- p.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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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와 위반의 문학, 이단적 사유의 절정!
죽음과 에로티슴의 서사 『눈 이야기』 “당신은 생각이 너무 많다. 인간의 범주는 영원이나 영성 혹은 지성만이 아니다. 우리는 태초부터 짐승이었다.” _조르주 바타유 『눈 이야기』는 1928년 로드 오슈(Lord Auch)라는 필명으로 발표된 조르주 바타유의 첫 장편소설이다. 엉덩이로 달걀을 깨는 기벽이 있는 소녀 ‘시몬’과 점점 더 성(性)에 탐닉하는 소년‘나’, 그리고 시몬과 나 사이에서 미묘한 삼각관계를 구축하는 소녀 ‘마르셀’, 이렇게 세 명의 십대 소년소녀가 이야기의 주축을 이룬다. 하지만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제목 그대로 ‘눈(目, ŒIL)’이라는 사물이다. 또 눈과 더불어 그것의 형태 및 색깔 혹은 어휘의 유사성을 지닌 ‘달걀’과 ‘불알’이 이야기를 더하며 소설의 영역을 확장한다. 『눈 이야기』는 일견 과잉과 광기로 인해 비극으로 치닫는 성 입문의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지만,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라는 신화를 전복하는 데 일생을 바친 이단적 지성 바타유의 사상적 근간이 엿보이는 한 편의 철학적 우화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바타유의 이후 소설도 그러하지만 『눈 이야기』에는 작가의 실제 삶에서 불러들인 자전적 에피소드가 곳곳에 녹아 있다. ‘일치들’이라는 제목을 붙인 2부에서도 밝혔듯, 매독으로 눈이 먼 채 마비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소파에서 누워 지내던 아버지가 오줌 쌀 때의 기묘한 시선은 『눈 이야기』의 모티프가 되었고, 소설에서 눈과 그것의 이형태인 달걀이 등장할 때마다 거의 규칙적으로 오줌이 따라붙는 것 역시 성장기의 이러한 장면에서 기인한 것이다. 또한, 조르주 바타유는 국립고문서학교를 졸업하고 떠난 마드리드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한다. 당시 최고의 투우사로 명성이 자자하던 마뉘엘 그라네로가 눈과 두개골에 뿔이 박혀 죽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그때 그라네로의 죽음이 불러일으킨 환호와 쾌감의 아이러니는 『눈 이야기』의 장렬한 하이라이트로 오롯이 옮겨져 있다. 『눈 이야기』는 1928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판된 이래, 1940년, 1941, 1967년, 세 차례에 걸쳐 개정판으로 거듭 출간되었다. 그만큼 작가 자신에게나 문학사에나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작품임이 틀림없다. 처음 세 번은 ‘로드 오슈’라는 필명으로, 마지막은 본명으로 발표되었는데, 로드 오슈는 성서에서 신을 일컫는 ‘로드’에 ‘화장실에서’ 혹은 ‘망할 자식아(aux chiottes)’를 뜻하는 ‘오슈’를 더한 이름으로, 작가 특유의 세상을 향한 깊은 조롱이 담겨 있는 작명이라 하겠다. 이번 한국어판은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간행된 전집에 실린 네 번째 판본을 번역 저본으로 삼고, 영어판(『Story of the Eyes』)과 일본어판(『眼球譚』)을 참고하여 편집했다. 이 책에 덧붙이는 글 책이라는 부위를 덮고 손이라는 부위를 씻으며, 바타유의 손을 상상해본다. 책장을 넘겼던 손. 음경을 움켜쥐었던 손. 미친 아버지의 오줌통을 비웠던 손. 거울을 보며 입술을 만지던 손. 이니셜 J로 시작하는 매춘부의 음모를 쓰다듬던 손. 머리에 기름을 바르던 손. ‘로드 오슈’라는 이름을 떠올린 날의 손. 임종 직전의 손. 누가 그의 손을 만져보았을까. 어떤 책이. 어떤 동물이. 어떤 태양이. 그리고 어떤 눈이. 그러했을 것이다. 신의 오줌 자국이 묻어 있는 책. 오줌을 싸지 않고는 못 견디는 여성. 그리고 남성. 오줌에 물든 눈. 오줌을 말리는 태양. 오줌. 우리가 이 책에 다 읽고(과연 다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부위를 꺼내 오줌을 쌀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한 사랑은 없을 것이다. 오줌을 싼 뒤에는 성기를 털거나 휴지로 닦지 말고 그대로 다시 넣어두기를. 그 축축함이 자신의 부위를 깨닫게 할 것이다. 부디 이 책이 이성의 부위가 아닌 육체의 부위의 책으로 남기를. 학자와 작가의 서가보다 수줍은 소년소녀들의 뒷주머니에 더 많이 꽂혀 있기를 근거 없이 바란다. _해제:「부위의 책」에서(김태용·소설가) 포르노그래피가 더럽기 때문이 아니라, 포르노그래피가 심리적으로 왜곡된 사람들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거나 도덕적으로 무감한 사람들을 잔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거나 반발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한다. 나 역시도 그 이유 때문에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혐오감을 느낀다. 그리고 증가하고 있는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접근 가능성에 대해서도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다소 잘못 배치된 것이 아닌가? 진정 위험에 처한 것은 무엇일까? 지식 사용 자체에 대한 우려가 그것이다. 모든 사람이 지식의 주체로서 혹은 잠재적 주체로서 같은 조건하에 놓여 있지 않다는 이유로, 모든 지식이 위험하다고 감지하는 견해가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더 넓은 범위의 경험’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미묘하고 광범위한 정신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경험과 의식의 확대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파괴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종류의 지식에 대해 현재의 대중이 가지고 있는 접근성에 대해서, 그리고 기계에 의한 인간 역량의 변형과 확장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낙관적인 묵인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모하고 무한한 자신감을 정당화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야만 한다. (…) 폴 굿맨은 다음과 같이 썼다. “문제는 포르노그래피가 아니라, 포르노그래피의 질이다.” 정확하게 맞는 말이다. 이 생각을 훨씬 더 멀리까지 확장해보자. 문제는 의식이나 지식이 아니라, 의식과 지식의 질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 주체가 갖는 완성도의 질-역대 가장문제적인 기준-에 대해 고려해볼 것을 권유한다. _해설:「포르노그래피적 상상력」에서(수전 손택·에세이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