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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지친 일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온기 가득한 거리 _ 신소윤

1부 인사동을 사랑한 예술가들

우리들의 인사동 시대 _ 이만주
삼류 시인 _ 조정은
알렉산드리아 _ 윤후명
뜨겁고, 아프고, 찬란했던 _ 신영란
연극 〈천상시인의 노래〉와 인사동 _ 김진규
내가 만난 인사동 작가들 _ 노광래
사는 게 뭔지 _ 윤영준
인사동 in 서울 _ 장두이
인사동 추억 _ 이정래

2부 살아 숨 쉬는 갤러리

고서점, 화랑, 그리고 ‘그림마당 민’ _ 유홍준
나의 인사동 전시장 소요記 _ 김진하
인사동 ‘그림마당 민’ 이야기 _ 곽대원
고상한 미술관은 아니지만 지낼 만하니? _ 김구
인사동, 내 청춘의 고향 _ 김종근
수요일의 인사동 _ 최영남
천지에 쓴 낙서, 정신적 떠돌이가 된 사람들에게 _ 이도윤
새롭게 낡아가는 인사동을 그리며 _ 황주리
전통을 이어가는 고미술품
숨 쉬는 박물관 인사동 _ 김경업
1964년 인사동 _ 장광팔
먹 향기 가득했던 어린 시절 인사동의 추억 _ 정문헌
시간의 노숙자들 _ 정병례
인사동을 추억하며 _ 서공임
숨어 있는 전시장을 찾는 즐거움 _ 남궁옥분
화선지를 홍두깨로 다듬어 쓰셨다고 _ 유필근
우리나라 고미술품의 위상을 높이려면 _ 홍선호

3부 시간이 쌓이는 공간, 카페

나를 길러준 요람, 인사동 _ 최일순
스무 살 청년의 세 친구-삼청동, 관훈동, 인사동 _ 박상희
회상 _ 유상동
인사동, 나의 놀이터 _ 최정인
인사동에서의 안선재 수사 _ 안선재
인사동에 가면 _ 장순향
인사동에는 귀천이 있다 _ 강애심
인사동 40년 문화 공간 ‘시가연(詩歌演)’을 지키며 _ 김영희
흐린세상건너기 _ 한세미

저자 소개 37

(사)인사전통문화보존회장, 고미술 단청 대표

Yu Hong-june,兪弘濬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미학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석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박사)를 졸업했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뒤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족미술인협의회 공동대표, 제1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1985년 2000년까지 서울과 대구에서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공개강좌를 십여 차례 갖고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대표를 맡았다. 영남대 교수 및 박물관장, 문화재청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정년퇴임 후 석좌교수로 있다. 평론집으로 『80년대 미술의 현장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미학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석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박사)를 졸업했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뒤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족미술인협의회 공동대표, 제1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1985년 2000년까지 서울과 대구에서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공개강좌를 십여 차례 갖고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대표를 맡았다. 영남대 교수 및 박물관장, 문화재청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정년퇴임 후 석좌교수로 있다.

평론집으로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 『다시, 현실과 전통의 지평에서』, 『정직한 관객』, 답사기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국내편 1~10, 일본편 1~4), 미술사 저술로 『조선시대 화론 연구』, 『화인열전』(전2권), 『완당평전』(전3권),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추사 김정희』 등이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저작상(1998), 제18회 만해문학상(2003)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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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황주리는 산문가며 소설가다. 기발한 상상력과 눈부신 색채로 가득한 그의 글과 그림은 삶의 순간들에 관한 고독한 일기, 다정한 편지이며, 촘촘하게 짜인 우리들 마음의 풍경화다. 산문집 《산책주의자의 사생활》, 소설 《마이 러브 프루스트》 등을 펴냈다. 현재 동국대학교 석좌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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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 뮤지컬배우
미술평론가, 그림마당 민 전 큐레이터
시인, 교수
화가, 수필가
시인, 카페 시가연 대표
미술평론가
시인
나무아트 갤러리 대표, 미술평론가

남궁옥분

관심작가 알림신청
 
가수, 화가
갤러리 씨네 대표
조각가
한국을 대표하는 민화 작가로, 왕성한 창작 활동과 제자 양성을 통해 민화를 널리 알려왔다. 정밀한 묘사와 정직한 표현, 간결한 언어로 자신의 세계를 표현해내는 그녀는 다른 민화 작가들의 작품에서 보기 힘든 맑고 투명한 색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과거에 매이지 않는 예술적 단호함과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진취적 성격은 민화 작가 서공임의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다. 세계에 우리 민화와 한국인의 얼굴(호랑이)을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연세대학교 미래교육원과 예술의전당 서화아카데미에서 전통민화를 가르치고 있다. 서촌에 연구실과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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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번역을 맡은 Brother Anthony of Taize(안선재)는 40권 이상 한국 시, 소설의 번역서를 펴낸 한국문학 번역의 독보적인 대가이다. 박노해 시인의 대표작인 『노동의 새벽』,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등을 번역해왔으며, 박노해 시인의 작품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번 『하루』를 영역했다. 1942년 영국에서 태어나 1969년 프랑스 떼제공동체 수사가 되었다. 1980년 5월, 故김수환 추기경의 초대로 첫 방문한 이후로 한국에서 살고 있다. 1985년부터 서강대학교 영문과 교수, 2007년 이후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20
번역을 맡은 Brother Anthony of Taize(안선재)는 40권 이상 한국 시, 소설의 번역서를 펴낸 한국문학 번역의 독보적인 대가이다. 박노해 시인의 대표작인 『노동의 새벽』,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등을 번역해왔으며, 박노해 시인의 작품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번 『하루』를 영역했다.

1942년 영국에서 태어나 1969년 프랑스 떼제공동체 수사가 되었다. 1980년 5월, 故김수환 추기경의 초대로 첫 방문한 이후로 한국에서 살고 있다. 1985년부터 서강대학교 영문과 교수, 2007년 이후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2010년 이후에는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2011년부터 왕립아세아학회 한국지부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1994년에 대한민국으로 귀화했으며 2008년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40권 이상 김지하, 고은, 천상병, 김수영, 정호승 등 한국 작가들의 시집과 소설 영문 번역서를 펴냈다.1942년 영국에서 태어나 1969년 프랑스 떼제공동체 수사가 되었다. 1980년 5월, 故김수환 추기경의 초대로 첫 방문한 이후로 한국에서 살고 있다. 1985년부터 서강대학교 영문과 교수, 2007년 이후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2010년 이후에는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2011년부터 왕립아세아학회 한국지부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1994년에 대한민국으로 귀화했으며 2008년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40권 이상 김지하, 고은, 천상병, 김수영, 정호승 등 한국 작가들의 시집과 소설 영문 번역서를 펴냈다.

Brother Anthony was born in England in 1942. He has been living in Korea since 1980, and taught English literature in Sogang University(Seoul), where he is now an Emeritus Professor. He is also a Chair-Professor at Dankook University. He took Korean citizenship in 1994 and received the Korean government’s Award of Merit, Jade Crown class, in October 2008. He has published over fifty volumes of English translations of Korean literature, mostly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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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회사 대표
화가, 수필가
수필가, 일산 연세의원 원장

尹厚明, 본명 : 윤상규(尹尙奎)

1946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연세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빙하의 새』가 당선되었다. 1969년 연세대학교를 졸업, 강은교, 김형영, 박건한 등과 함께 시 동인지 『70년대』를 창간하고, 도서출판 삼중당에 취직하였다. 이후 10년 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근무하다가 1977년 첫 시집 『명궁』을 출간하였다.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산역』이 당선되어 소설가와 시인의 길을 병행하면서 단편 『높새의 집』 『갈매기』 『누란시집』을 발표하였다. 1980년 전업작가로 나서 김원우, 김상렬, 이문열, 이외수 등과 함께 소설 동인지 『작가』
1946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연세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빙하의 새』가 당선되었다. 1969년 연세대학교를 졸업, 강은교, 김형영, 박건한 등과 함께 시 동인지 『70년대』를 창간하고, 도서출판 삼중당에 취직하였다. 이후 10년 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근무하다가 1977년 첫 시집 『명궁』을 출간하였다.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산역』이 당선되어 소설가와 시인의 길을 병행하면서 단편 『높새의 집』 『갈매기』 『누란시집』을 발표하였다. 1980년 전업작가로 나서 김원우, 김상렬, 이문열, 이외수 등과 함께 소설 동인지 『작가』를 창간하고, 단편 『바오밥나무』 『모기』 등을 발표하였다.

저서로 시집 『名弓』(1977),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1992) 등이 있고, 소설집 『敦煌의 사랑』(1983), 『부활하는 새』(1986), 『원숭이는 없다』(1989), 『오늘은 내일의 젊은 날』(1996), 『귤』(1996), 『여우 사냥』(1997), 『가장 멀리 있는 나』(2001), 『둔황의 사랑』(2005, 2005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한국의 책 100’ 선정 도서) 등과 장편소설 『별까지 우리가』(1990), 『약속 없는 세대』(1990), 『협궤 열차』(1992) 『삼국유사 읽는 호텔』(2005)등이 있으며, 그외 산문집 『이 몹쓸 그립은 것아』(1990), 『꽃』(2003), 장편동화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1994)가 있다. 이 중 단편 「둔황의 사랑」 「원숭이는 없다」 「사막의 여자」 등이 각각 프랑스어, 중국어, 독일어, 영어 등으로 번역되어 해외에 소개된 바 있다.

1980년대에 소설가로 활동을 시작한 그의 작품세계는 80년대의 일반적인 소설 경향과는 뚜렷이 구별되어 독특한 위치에 놓여 있다. 직접적인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시적인 문체와 독특한 서술방식으로 환상과 주술의 세계를 자유롭게 비상하는 그의 소설은 1980년대의 시대적 부채감에서 자유로웠다. 또한 1990년대 들어서는 자전적 색채가 짙은 여로형 소설을 발표하여 삶의 본질적인 쓸쓸함을 이야기하였다. 또한 1995년 작품인 「하얀 배」는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과 대상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통해 정서적인 격조를 잘 살려낸 서사 기법으로, 전통적인 플롯의 규범에서 벗어나 정밀한 묘사를 통해 특유의 비유와 상징을 살려내면서 소설적 공간을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3년 『돈황의 사랑』으로 제3회 녹원문학상, 1984년 『누란』으로 제3회 소설문학작품상, 1986년 제18회 한국창작문학상, 1994년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로 제39회 현대문학상, 1995년 『하얀 배』로 제19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2007년에는 제10회 김동리 문학상을 받았다. 현재는 창작에 전념하면서 문학비단길 고문과 국민대 문창대학원 겸임교수로 활동하였다. 2025년 5월 8일, 향년 79세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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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전 MBC 플러스 스포츠 이사
춤 비평가. 사진작가. 시인. 서울대, 외대 대학원 졸업. 사회성 짙고 문명비평 성격의 시집 『다시 맺어야 할 사회계약』(2015년)과 『삼겹살 애가(哀歌)』(2018) 출간. 1994년 '올해의 여행가상', 2018년 '동반예술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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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원장
만담가 장소팔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만담보존회 수석부회장 정해복지법인 상임고문 국가원로자문회의 정책위원 민주평통 자문위원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박춘재기념사업회 상임이사 한국오페라진흥회 이사 통일문화네트워크 이사 컬럼니스트, 방송인 <저서> 『서울전통문화 장소팔만담』, 『짜증과 맞장뜨기』, 『20초에 사로잡아라』, 『털어도 먼지 안 나는 형법』, 『한·중·일 공용한자 800자』, 『Story를 입혀라』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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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국문과, 서울 예술전문대학 연극과와 무용과를 졸업했다. 동국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과 재학 중인 1978년 9월 뉴욕 LaMama 극단 초청으로 미국으로 갔다. 이듬해 독일 연극협회 초청으로 베를린 어린이연극제와 함부르크 국제연극제에 참가, 안보이는 연극 등의 워크샵을 주관했다. 1980년 다시 도미. 뉴욕 브루클린대학원 연극과 연기전공 석사과정을 이수하고 뉴욕 Actor's Studio 연기 수업과정, 뉴욕 Lee Strasberg 연기 학교와 H.B Acting Studio 연기 수업과정을 이수했다. 연극 작품으로는 그로토우스키, 피터 브룩의 작품은 물론
고려대학교 국문과, 서울 예술전문대학 연극과와 무용과를 졸업했다. 동국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과 재학 중인 1978년 9월 뉴욕 LaMama 극단 초청으로 미국으로 갔다. 이듬해 독일 연극협회 초청으로 베를린 어린이연극제와 함부르크 국제연극제에 참가, 안보이는 연극 등의 워크샵을 주관했다. 1980년 다시 도미. 뉴욕 브루클린대학원 연극과 연기전공 석사과정을 이수하고 뉴욕 Actor's Studio 연기 수업과정, 뉴욕 Lee Strasberg 연기 학교와 H.B Acting Studio 연기 수업과정을 이수했다.

연극 작품으로는 그로토우스키, 피터 브룩의 작품은 물론 쟌 크로드 반 이태리의 「The Tibetan Book of The Dead」, 안드레이 셔반의 「Greek Trilogy」, 엘리자벳 스웨도즈의 뮤지컬 「Jerusalem」, 쥴리 테이모의 「Tirai」, 데이브 흔사커의 「Summer Face Woman」, 레오나르도 샤피로의 「Strangers」, 핑총의 「The Fallen Angel」 등의 출연과 국내 작품으로는 「첼로」, 「청바지를 입은 파우스트」, 「마당놀이 옹고집전」, 「뮤지컬 고래 사냥」, 「세종 32년」, 「맨하탄 일번지」, 「천상 시인의 노래」, 「바리공주」, 「아버지가 사라졌다」, 「영웅을 생각하며」 등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백여 편이 넘는 연극에 출연했다.

저서 『장두이의 장면 연기 실습』, 『장두이의 한국 연기 실습론』, 에세이집 『인생이 연극이야』 시집 『0의 노래』, 『Y의 노래』 그리고 『짱의 노래』와 희곡집 『장두이 두번째 희곡집』, 『장두이 뉴 희곡집』 등이 있다. 현재 서울 예술대학교 연극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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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 춤꾼
1966년 05월 04일 강원도 고성군 출생.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시카고대학교 대학원 정책학 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취득. 한나라당 강원 속초 고성 양양 인제지구당 지구당위원장, 제17·19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부대표,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실 통일비서관, 한나라당 속초고성양양당원협의회 당협위원장, 유임문화재단 이사장,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연구교수,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우암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매봉통일연구소 연구위원 역임. 종로구청장

정고암

새김아티스트, 지하철 ‘풍경소리’ 전각작가.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나 어머니 같은 영산강 품 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타고난 감각으로 어려서부터 서예와 그림 등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20대 중반 우연히 접한 인장작업에서 영감을 얻어 동양예술의 한 분야인 전각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0년 동안의 치열한 독학을 거쳤고, 30대 후반 스승 정문경 선생을 만나 전각예술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대한민국서예대전, 동아미술제 등에서 수상했으며 첫 번째 전시회인 ‘고암부부전’을 시작으로 다양한 전시회를 통해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전각세계를 펼쳐 국내는 물론
새김아티스트, 지하철 ‘풍경소리’ 전각작가.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나 어머니 같은 영산강 품 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타고난 감각으로 어려서부터 서예와 그림 등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20대 중반 우연히 접한 인장작업에서 영감을 얻어 동양예술의 한 분야인 전각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0년 동안의 치열한 독학을 거쳤고, 30대 후반 스승 정문경 선생을 만나 전각예술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대한민국서예대전, 동아미술제 등에서 수상했으며 첫 번째 전시회인 ‘고암부부전’을 시작으로 다양한 전시회를 통해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전각세계를 펼쳐 국내는 물론 중국, 대만, 유럽에까지 많은 관심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하철 「풍경소리」, 드라마 「왕과 비」 「명성황후」, 영화 「오세암」, 단행본 「미쳐야 미친다」 등의 작업을 통해 대중적으로도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반기문UN사무총장의 삼족오(三足烏) 직인 제작과 베이징올림픽 타이틀, 전각애니메이션 제작 등을 통해 우리 전각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2006년 전각의 현대화를 시도한 ‘새김아트’를 창시했으며, 현재 서울 삼청동에서 전각연구소 겸 갤러리를 운영하며 전각예술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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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화가, 수필가
연극배우, 영화배우, 푸른별주막 대표
섬유공예가, 동화작가, 문화기획자
카페 흐린세상건너기 주인장
관고재 화랑 대표, 한국전통미술융합진흥원 회장, 이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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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수길

관심작가 알림신청
 
사진작가, 《노블레스》 포토에세이 게재, 《이코노미스트》, 《카페인》, 《월간 커피 매거진》, 사진 연재, 사진집 《낙산 아랫동네 이야기》

사진조문호

관심작가 알림신청
 
조문호(1947-)는 사람만 찍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청량리 사창가 여인, 강원도 산골 농민, 인사동 풍류객, 장터꾼, 쪽방촌 빈민을 렌즈에 담아왔다. 찾아가 촬영한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 그들과 함께 살면서 작업해왔다. 이 책의 집필을 위해서도 쪽방촌에서 5년간 살았다. 『월간사진』, 『한국사협』, 『삼성포토패밀리』 편집장으로 일했으며, 1995년부터 10년간 「한국환경사진가회」 회장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자연환경 기록에도 힘썼다. 현재 동자동 쪽방촌에 살며 빈민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개인전으로 아시안게임(1986), 동아미술제 초대전(1987), 민주항쟁(1987),
조문호(1947-)는 사람만 찍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청량리 사창가 여인, 강원도 산골 농민, 인사동 풍류객, 장터꾼, 쪽방촌 빈민을 렌즈에 담아왔다. 찾아가 촬영한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 그들과 함께 살면서 작업해왔다. 이 책의 집필을 위해서도 쪽방촌에서 5년간 살았다. 『월간사진』, 『한국사협』, 『삼성포토패밀리』 편집장으로 일했으며, 1995년부터 10년간 「한국환경사진가회」 회장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자연환경 기록에도 힘썼다. 현재 동자동 쪽방촌에 살며 빈민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개인전으로 아시안게임(1986), 동아미술제 초대전(1987), 민주항쟁(1987), 전농동 588번지(1990), 불교상징(1994), 전통문양 초대전(1995), 동강 백성들(2001), 태풍 루사가 남긴 상처(2002), 두메산골 사람들(2004), 인사동 그 기억의 풍경(2007), 신명 설치전(2008), 산을 지우다(2008), 인사동, 봄날은 간다(2010), 장날, 그 쓸쓸한 변두리 풍경(2015), 청량리 588(2015), 사람이다(2016), 산골사람들(2018) 등이 있다.

출판 서적으로 『청량리 588 사진집』,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천상병 사진집』, 『인사동 이야기 사진집』, 『두메산골 사람들 사진집』, 『동강 백성들, 포토 에세이』, 『불교 상징 사진집』 등이 있고, 공저로 『우포늪』, 『동강』, 『낙동강』, 『서울환경』, 『한국불교미술대전』(전7권) 등이 있다. 동아미술제에서 연작 「홍등가」로 대상(1985), 아시안게임기록사진 공모전 대상(1986)을 각각 수상했다. 또한, 강원다큐멘터리 작가(2002)로 선정됐으며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2018)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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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275쪽 | 470g | 148*210*17mm
ISBN13
9791197934988

책 속으로

인사동에는 개점 100년이 다가오는 서울의 오래된 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다. 1924년 문을 연 ‘통인가게’는 지금도 인사동의 얼굴로 한국의 고미술품부터 예술품에 가까운 생활 소품까지 다양한 물건을 팔고 있다. 지금은 화랑까지 운영하고 있다. 필방으로는 1913년 진고개에서 개점하여 명동을 거쳐 인사동으로 옮겨온 ‘구하산방’(1920년 무렵 개점했다는 설도 있음)과 1932년 문을 연 ‘명신당필방’이 꿋꿋이 버티고 있다. 1934년 개업한 고서적상 ‘통문관’은 또 하나의 인사동 얼굴이다.
--- p.17

1970년대 인사동에는 많은 상업 화랑들이 들어섰다. 1970년 4 월 현대화랑이 인사동에 문을 연 것은 우리나라 화랑 역사의 시작이다. 그때만 해도 화랑이라는 단어에 익숙지 않아서 당시 한 신문에서는 ‘그림을 판답니다’라고 소개했다. 마치 1980년대에 ‘이태원에 피자집이 생겼답니다’ 같은 기사다. 화랑이 생기기 전 인사동엔 고서점과 함께 통인가게, 고옥당을 비롯한 고미술상, 구하산방으로 대표되는 필방, 박당표구, 상문당, 동산방 등 표구점들이 자아내는 고미술의 향기가 풍기고 있었는데, 여기에 상업 화랑이 들어서면서 현대미술이 더해지게 된 것이다.
--- p.83

그동안 인사동은 재화보다 문화 예술을 중시했던 예술인들의 아지트였다. 가난하지만 개의치 않거나, 가난하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한 채 정신적 풍요를 누리는 예술인들이 모여 예술을 논하던 곳이었다. 그들의 아지트가 하나둘 사라지고 현대적 상업 시설이 새로 들어서는가 하면, 아예 허름한 건물이 통째로 사라지고 큰 건물이 번듯하게 들어서기도 했다.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화랑, 표구사, 필방과 골동품 가게 등이 없어지고 천연 염색이 아닌 옷가게와 중국산 기념품 가게, 짧은 시간만 머물러야 하는 식당 등은 늘었다. 나무 기둥이 손님들의 손자국으로 반질거리던 전통찻 집이 없어진 대신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깔끔한 카페는 늘었다. 인사동이 변한 것을, 변해가는 것을 나라고 모를 리가 없다. 다만 나는 인사동의 분위기가 조금씩 변해 가는 모습을 늘 지켜보았기에 놀랄 일이 없었고, 오랜만에 인사동을 찾은 그는 몇십 년 만에 흰머리로 뒤덮인 친구를 만난 양 변해버린 모습에 놀랐을 뿐이다.
--- p.127~128

삶이 그림 맞추기라고 한다면, 내 삶의 모든 퍼즐은 ‘인사동’과 ‘귀천’이 들어가야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인사동에서 세상을 배우고, 인사동에서 사랑을 하고, 인사동에서 아이를 만나고, 인사동에서 행복했고, 인사동에서 슬펐다.밀레니엄 이후 세계를 터벅거리며 떠돌다가 다시 인사동으로 돌아오니, 내가 알던 인사동은 갈 곳을 잃고 있었다. 인사동의 구심점은 뭐니 해도 ‘공간’이다. ‘귀천’ 같은 어른들이 계시던 낮의 공간! 그리고 밤이면 ‘불나방?’처럼 모여들던 정감 있는 허름한 주막이 그것인데, 인사동은 모든 것이 깔끔해졌다. 오가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세계적 명소는 된 듯하지만, 그 안에 웅크리고 살던 속칭 ‘인사동 사람들’이 갈 곳은 없었다.
--- p.210

이제 우리들이 변했듯 인사동도 변했다. 낡았던 인사동은 젊은 옷으로 갈아입어 카페와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며 골목의 풍경이 바뀌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곳엔 여전히 시와 그림과 조각들이 있고, 앞으로도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낭만들이 각자의 표정으로 새롭게 연출되며 인사동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진화할 것이다. 그래서 인사동은 우리들의 인생동(人生洞) 아닐까.
--- p.226

인사동에 가면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도 들여다보고, 사지도 않을 한지 부채를 폈다 접었다, 한복 치마를 요리조리 들여다보고 하는 등 눈이 호사를 누린다. 어디선가 이름을 부르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휙 돌려지고, 아는 얼굴들이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생각에 혼자 씨익 웃는다. 그러다 우연히 진짜로 마주치면 반가워 폴짝폴짝 뛰기도 하고 팔짱을 끼기도 하면서 난리법석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괜스레 어슬렁거리고 싶은 인사동은 옛날과 달리 많이 변했다지만 그래도 그 거리, 그 골목, 그 추억은 잊을 수 없다.

--- p.251~252

출판사 리뷰

#서른다섯 명의 저자가 들여주는 그때 그 이야기”

인사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전통의 거리, 그림이 가득한 예술의 거리일 것이다. 그림을 전시 판매하는 곳을 요즘에는 ‘갤러리’라 부르지만 예전에는 ‘화랑’이라 불렀다. 인사동은 우리나라 화랑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다양한 직업의 가진 서른다섯 명의 저자가 화랑 이야기를 비롯해, 카페, 찻집, 술집, 밤거리 등에 얽힌 ‘그때 그 시절 그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10대는 물론 20~40대들에겐 마치 [검정 고무신] 이야기처럼 아주 오래된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인사동에 만나자』를 읽으며 나이 든 사람들은 옛 기억을 소환해 살포시 미소 짓게 될 것이고, 젊은이들은 인사동의 옛 모습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겨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과거의 인사동, 현재의 인사동의 모습을 살펴보고, 미래에도 지속 가능한 인사동을 위해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희망한다.

#지도와 함께 인사동 구석구석 명소 찾아보기

보물찾기하듯 인사동 구석구석 명소를 찾아보자. 갤러리, 고미술, 한지?필방?표구, 공예, 카페?식당, 복합문화공간으로 나누어 업종별로 색깔을 달리하여 한눈에 보기 쉽게 표시하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장소는 총 80곳이다. 이 책의 77쪽에는 인사동 곳곳에 숨어 있는 표지석을 모아두었는데, 표지석 찾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268~269쪽에는 화장실 벽면을 가득 메운 낙서들을 실었다. 허름한 가게에 들어가 화장실 낙서를 찾아보자. 인사동 거리를 탐방한 뒤 시간이 남는다면 인사동 건너편에 자리 잡은 운현궁 산책을 해보자. 또 다른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갤러리, 고미술품, 카페 등 인사동 지킴이 상세 정보

갤러리, 고미술품점, 필방, 카페, 식당 들이 없다면 인사동 거리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사동 거리를 만든 가게들과 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인사동의 주인이다. 저자들의 글과 별도로 80군데 갤러리, 고미술품, 카페 등의 상세 정보를 실었다.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한번 들러 보기 바란다. 갤러리에 들어가 그림을 구경하는 것도 좋고, 전통찻집에 앉아 느긋하게 향긋한 차 한잔 마셔보는 것도 좋다. 필방에 들러 붓 한 자루, 한지 한 장 사는 것 또한 큰 즐거움일 것이다. 귀찮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슬렁거리며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눈과 귀가 풍요로워진다. 인사동에서는 언제 가더라도 버스킹을 하는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

백년가게들을 탐방하는 것도 재미있다. 1902년 대한제국 시절 개업한 이문설농탕, 1913년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필방인 구하산방, 1919년 시작한 낙원떡집 역시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서울시 유형문화재인 승동교회는 조선시대 교회 건물로 3?1독립운동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사동의 또 다른 대표명사라 할 수 있는 작은 찻집 ‘귀천’에 들러 고 천상병 시인과 부인 목순옥 여사의 향기도 한번 느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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