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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어머니의 정화수 1 | 새와 별과 시의 마을에 살다 | 우둥불을 찾아서 | 2024년 폭설 | 버림받은 사람 | 조팝나무 | 강릉 읍사무소 앞길 | 두둥실 두리둥실 | 윤동주문학관 | 차마고도의 나귀 | 나귀의 길 | 폭설에 꽃망울 부풀었구나 | 반 고흐의 별하늘 | 메아리 | 풀밭 길 | 굽쇠의 날들 | 2024, 목월운(木月韻) | 월인화랑 | 지심도의 팔색조 | 이상(李箱)과 구보(仇甫) | 광활한 우주 속으로 간 박정만 시인 | 가막살나무 | ‘한국돈황(敦煌)실크로드학회’로 가다 | 버팀목 | 짚풀의 시절 | 미하일이 살아온 길 | 순정공과 수로부인 | 외할아버지의 가르침 | 엉겅퀴와 새 | 소쩍새 울음소리 | 자멸파(自滅派)의 밤길 | 모루도서관 | 작은도서관의 역사 | 창포다리를 건너서 1 | 창포다리를 건너서 2 | 귤의 시간 | 동리 선생님 모습 | 그리운 벌레들 | 오징어 배를 탄 랭보 | 파꽃 피는 고개 | 히말라야의 소금물 | 동춘서커스 | 마지막 언덕길 | 등대 | 강릉 길, 어디인가 | 경포 바닷가 | 혜초(慧超)를 찾아서 | 강릉 처서기(處暑記) | 서역 가는 길 | 하라르 커피를 기다리며 | 고마운 친구들 | 그림자 마을에서 | 남대천 둑방 | 시베리아 민들레꽃꿀 | 이식쿨호 | 나의 5·18 | 근댓국을 끓인다기에 | 큰 새의 풍경 | 파미르고원을 넘다 | 압록강은 흐른다 | 오디를 줍다 | 정든 땅 언덕 위 | 석류꽃 시집을 쓰다 | 그리운 조선 | 팔순(八旬)에 이르렀다 | 팔순 자화상 | 가창오리 깃털 | 설피(雪皮)를 신다 | 호박(琥珀)빛 일출 | 남대천 둑방 길 | 강릉 비단길 | 직박구리 | 지심도를 바라보다 | 강원도 풋마늘 | 괭이갈매기, 자맥질하다 | 흰꼬리수리, 자맥질하다 | 어머니의 정화수 2 | 어느 모롱이 | 강원 대설주의보 | 『논어』 읽기 | 수미산(須彌山)의 톱슈르 소리 | 미얀마 지진 | 구포의 수리부엉이 | 북성극장 부근 | 동해남부선 열차 | 구관조(九官鳥)의 ‘안녕’ | 우수(雨水)를 지나며 | 두렁허리에 대하여 | 『동방견문록』 읽기 | 외뿔고래의 꽃 4 | 시는 어디에 해설 정화수 사발로 돌아가는 길·허희 |
尹厚明, 본명 : 윤상규(尹尙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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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나귀를 타고 간 풀밭 길은
중국에서 열차를 타고 간 돌사막 길은 멕시코에서 숲속으로 간 마야 언덕길은 프랑스에서 버스를 타고 간 겨우살이나무 길은 강릉에서 아픈 발을 끌고 간 강문 뒷길 냇가 길은 모두 내 굽쇠를 바꾸고 가야 마땅했다 나는 늙고 낡았는데도 아직은 밝았다 가엾고 가없는 데도, 덧없는 마지막 날들이 그토록 밝으면 어디에도 없는 이제는 어디에도 없는 날들도 그토록 밝으려나 굽쇠를 새로 바꾸고 가야 마땅했다 --- 「굽쇠의 날들 전문」 중에서 김윤식 평론가는 나를 자멸파라 이름했다 내 어디가 어떻게 자멸을 말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자멸이 아름다울 수 있는가, 나는 묻는다 묻는 것이 내 문학이 된다 나는 내게 물음을 던지며 밤길을 간다 물음이 문학이라고 나는 내게 말한다 그래서 자멸파가 되는 것인가 나는 내게 답을 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자멸파가 될 수밖에 없는가 어두운 밤길이 될 수밖에 없는가 어느덧 나는 자멸파가 되어 이 밤길을 헤쳐 가야 하는가 산을 넘고 들을 지나 어느 날 여명에 ‘그토록 정하다는’ 우물물 긷는 누군가 만나 내 갈 길 묻게 되기를 --- 「자멸파(自滅派)의 밤길 전문」 중에서 ‘엔진에 가창오리 깃털’이 발견되어 제주항공의 사고가 증명되었다고 한다 2024년 무안공항에 떨어져 불탄 비행기 179명이 목숨을 잃은 큰 비행기 참사 나는 철새들의 날아오름을 바라본다 언젠가 낙동강 하구 을숙도에 철새들을 보러 간 적이 있지 않았던가 갈대숲을 헤치고 간 길이 다시 펼쳐진다 철새들이 떼 지어 날아오른다 가창오리라고 했다 다시 와보리라 했는데 오늘 ‘엔진에 가창오리 깃털’이 전서구(傳書鳩)처럼 생명을 전하고 있다 --- 「가창오리 깃털 전문」 중에서 드디어 전쟁이 끝났다 학교가 문을 연다고 했다 육군 대위 아버지는 어머니와 나를 지프차에 태우고 강릉 읍사무소 앞을 떠나 대관령 아흔아홉 구비를 넘어 점심때가 되자 밭가에 차를 세우고 얻어 온 풋마늘 몇 줄기 어린 나도 풋마늘을 우물거렸다 그리고 또 어디론가 달려 대전의 선화초등학교에 들어갔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 먹성은 강원도 외진 산기슭 풋마늘에 머물러 마늘꽃 돋아나고 새아버지와 어머니와 나의 새로운 한 끼니 쪽마늘 같은 인생의 출발 --- 「강원도 풋마늘 전문」 중에서 강릉에서 부산까지 인생은 흘렀다 시 한 편 제대로 쓰려고 물금이라는 곳으로 미카 열차를 타고 갔던 어느 날 그곳이 어디였더라 그곳이 어디였더라 친구도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모든 것은 지난 세월에 묻히고 아득히 뒷전으로 흘러갔는데 나는 서울 서촌에서 이상(李箱)과 윤동주(尹東柱)를 만난다 시는 어디 있는가 나는 자하문고개를 넘으며 간(肝)을 앓아 숙여지는 몸이나마 등성이와 골짜기를 두리번거린다 시는 어디 있는가 시는 어디에 친구여 --- 「시는 어디에 전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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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저 세월이 이토록 아름다웠다니요
흩뿌린 조팝이 이토록 아름다웠다니요” 저세상의 어머니는 아직 강릉에 계신다 이모들도 외삼촌들도 그 어디에 오간다 이웃집 소꿉동무도 그 귀머거리 할머니도 모두 골목길을 지키고 있다 전쟁 때문에 모든 게 옛적에 멈춰 있는 것일까 아니다 어린 나도 부지런히 어디론가 오간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마을을 떠돈다 어머니는 새벽마다 뒤란 정화수 속 대관령에 기도하며 나를 바라본다 그래서 나는 강릉을 떠난 적이 없다 ─「어머니의 정화수 1」 부분 시인은 첫 시집을 펴낼 당시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먼 곳으로 떠돌 궁리에만 사로잡혔던 오랜 세월 동안 나는 그 굶주림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면서 한편으로는 그 굶주림이 해소될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명궁』 뒤표지 시인의 글)라고 말한 바 있다. 삶의 절망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깊은 허기, 지워질 수 없는 문학의 원형. 윤후명에게 그런 대상은 바로 ‘어머니’이다. 시에서 어머니는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존재로 저세상의 끝에서도 화자를 위해 애달픈 기도를 이어가는 고결한 존재이다. “이제 78세까지의 지난날을 펼치며/추사 대신 어머니의 치마꼬리를 잡고 있는”(「창포다리를 건너서 1」) 시의 화자는 “남대천에 나가 물결 속에서 어머니를”(「오디를 줍다─강릉 비단길 2」) 바라보며 단 한 순간도 어머니를 떠난 적이 없었음을 깨닫는다. 이렇듯 시집에는 물리적으로 시인의 곁을 떠난 이들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이 가득하다. 끝끝내 고마움을 전하지 못한 육군 중위였던 새아버지와 첫 남편을 잃고 담배 장사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나가는 어머니 그리고 시인이 학창 시절부터 흠모해온 박목월, 서정주와 같은 청록파 시인들(「2024, 목월운(木月韻)」「월인화랑」)까지. 그 외에도 시인은 부암동 자하문고개를 지날 때면 시인 윤동주를, “안국동에서 경복궁을 거쳐 영추문을” 지날 때면 “‘날개를’ 달고 일본으로” 갔을 이상과 “‘천변(川邊)’을 거쳐 북쪽으로 가버”(「이상(李箱)과 구보(仇甫)」)린 구보를 떠올리며 자신의 문학 세계를 정립해나간다. 자신보다 먼저 떠난 극단 학전의 대표이자 가수 김민기와 소설가 박태순을 향한 그리움을 말할 때는 짧은 생애의 덧없음과 지난날의 찬란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이렇듯 윤후명의 시 속에서 존재와 부재, 저승과 이승은 나뉘지 않고 함께 호흡하며 시인의 곁을 맴돈다. 시인의 다정한 시선을 좇다 보면 깊은 절망에서 건져 올린 희망이 오직 문학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 모습은 어디로 가고 나타난 다른 얼굴 나는 아직도 ‘비단길’을 가고 있구나” 어느덧 팔순(八旬)에 이르렀다니 그리운 모든 것 아직 그대로인데 이게 웬일이냐고 새삼 돌아본다 그리운 구석구석 모두 그냥 숨어 있는데 뜻하지 않은 황무(荒蕪)의 땅에 이르렀는가 뭘 찾아다닌다고 하였으나 무엇인지 아득한 나이 나에게 왔다가 간 모든 것 인생의 페이지를 더듬는다 더듬는다, 더듬어지지도 않는다 아름다움과 그리움은 머언 무지개 그런데도 어딘가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어쩌면 황야의 한 티끌로 향하고 있는가 그럼에도 어디론가 걸어가야 한다 머언 무지개는 어디 있는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팔순(八旬)에 이르렀다」 전문 어느덧 팔순에 접어든 시인의 시선에 걸린 세상은 여전히 고달프고 위태롭기만 하다. 하지만 윤후명의 시는 과거의 체험을 시에 고스란히 옮기기보다 시인이 느낀 감정을 묘출해내는 데 몰두한다. 문학평론가 김종철은 이러한 윤후명의 시가 주로 관계하는 정서를 두고 “한(恨)의 세계”라고 명명하며 그의 시에는 “공통된 역사적 경험과 공통된 문화적 전승을 토대로 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논리적인 이해나 설명 이전에 함께 나누고 공명하는 근원적인 체험의 현실성”(『명궁』 해설, 「캄캄한 세계 속에서의 완강함」)이 드러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범세계적인 시선은 “미얀마에 규모 7.7의 큰 지진”이 발생했다는 보도를 들으며 “빗속에 말을 끌고 가는 학병의 모습”(「미얀마 지진」)을 떠올리고 재난과 식민의 기억을 횡단하는 시선과도 이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2024년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다룬 시에서는 “179명이 목숨을 잃은/큰 비행기 참사”가 “오늘 ‘엔진에 가창오리 깃털’이 전서구(傳書鳩)처럼/생명을 전하고 있다”(「가창오리 깃털」)라고 말하며 공동체적 슬픔을 가시화하여 정의하는 게 아닌, 여전히 점멸하고 있는 개인의 슬픔으로 치환해낸다. “인생의 페이지를 더듬는” 산수에 들어선 이후에도 “나는 어디에 있는가” 하고 되묻는 그에게 시 쓰기란 삶의 고독과 깊은 절망으로 점철된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나아가는 길이 “황야의 한 티끌로 향하고” 있다 할지라도 “어디론가 걸어가야 한다”라고 말하는 시인은 광주의 끔찍한 상황이 서울로 전해지던 당시 직장을 그만두고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를 만류하는 이에게 “흉흉한 시대일수록 글 한 줄 더 쓰리라/진실이 무엇인지 글 한 줄 더”(「나의 5·18」)라고 답하며 글쓰기에 대한 의지를 내비친다. 이렇듯 윤후명에게 문학이란 삶의 진실과 가까워지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하는 과정이다. 철학Philosophy의 어원이 사랑하다는 뜻의 필로스philos와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sophia가 합쳐진 고대 그리스어 필로소피아philosophia에서 비롯된 것처럼, 윤후명의 문학 역시 지혜를 사랑하고 진리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도 같았다. 일평생 삶의 본질을 탐구하며 문학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삶의 진리를 추구해온 작가, 살아 있는 일의 고독과 절망 속에서도 오로지 문학 안에서 비상하던 그를 우리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시인의 말 먼 길을 가야만 한다 말하자면 어젯밤에도 은하수를 건너온 것이다 갈 길은 늘 아득하다 몸에 별똥별을 맞으며 우주를 건너야 한다 그게 사랑이다 언젠가 사라질 때까지 그게 사랑이다 윤후명, 「사랑의 길」(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