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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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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1부
공백이라 하기에는
공백이라 하기에는
공백이라 하기에는

2부
죄와 벌
나무 고아원
이야기
집과 나무
알게 되었다 3
무마(撫摩) 12호
협곡
역순
(나는 너와 너는 나와) 우리
상상만 하고
의향
이채(異彩)
복도와 마차

3부
곬,
본때
지니는 진솔
묻힌 악보들이 흘러, 노래하는 목소리가 들려,
태어납니다
합심
꼭 해야만 한다면 놀이
하루
말미암아, 말미,
틈을 메우는 그 아이의 말
이었다,
향(向),
시간
순이, 언니,

4부
살과 힘
참칭(僭稱)

낮과 밤과 모든 요일
즐비하다, 늘비하다,
구부러지는 숲
아려,
섭렵의 재미
물을 관리하는 사람의 뜰
빛이든, 그림자든,
초입
하루의 놀이터
핵(核),

5부
묘를 쓰다
변복(變服),
무마,
무마,
무마,
무마,

6부
암흑이라 하기에는
암흑이라 하기에는
흑,

해설
‘숨표’는 어디서 제대로 숨 쉬려는가·강정

저자 소개 1

1973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모호한 가방」 외 4편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시집 『느낌 氏가 오고 있다』, 『나는 적극적으로 과거가 된다』 가 있다. 2026년 박상륭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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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180쪽 | 128*205*20mm
ISBN13
9788932045641

책 속으로

백(白)과 흑(黑),
사이에,
써야 할 것들이 많았다,
무(無)와 유(有),
사이에,
남은 것들이 많았다,
---「값」중에서

숲이라고 쓸 때는, 나무들이 그루, 그루, 심어진 뒤였다, 무성해지고 있던, 때였다,
잘린 쪽에서, 숲이라고 볼 때는, 침통한 나무들의 시간이, 빽빽하게 둘러싸고,
밖에서 볼 때는, 알지는 못해도 숲, 잘은 몰라도 숲,
---「구부러지는 숲」중에서

공혈견이, 쏜살같이, 달려와서, 피를, 나누듯이, 네가, 태어나서, 참 좋아, 너랑 놀고, 싶었어, 네가, 눈을, 감으면, 양손을 모으고, 죽은, 사람을, 위해, 부르는 성가(聖歌)를 불러줄 거야, 소리만, 나고 마는, 사냥처럼, 바람이 강하게 불고, 인물들은, 내력을, 다, 지우고, 있어도, 어디서부터, 오고, 있는지, 수렵의 길을 따라, 걷고, 건너고, 헤치고, 두루, 찾으며, 밖으로 가면, 또, 밖이고, 밖은 밖 그 자체, 겹의, 밖을, 알고 나서, 나의, 집은, 나, 자체, 나의 시인의 집은, 나, 나의 집은 시인의 시집, 두루 섭렵해볼 재미가 얼마나 많겠는가, 이런 식이라면,
---「섭렵의 재미」중에서

독이, 오른, 욕망이, 마음을, 지나고, 몸을, 지나서,
둘의, 손등에서, 흘러내린다,
녹아내리는, 꿀처럼,

하루가, 재미있다,

---「하루의 놀이터」중에서

출판사 리뷰

“비틀거리는 중심은 아름답다”

세상의 빈틈을 찾아 파종하는 쉼표
사이를 끌어안는 부드러운 공백의 시간
암흑을 뚫고 순백으로 솟아나는 마음을 그린 황혜경의 네번째 시집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데뷔한 황혜경의 네번째 시집『공백이라 하기에는』이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638번으로 출간되었다. 세번째 시집 『겨를의 미들』(문학과지성사, 2022)을 출간한 이래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이번 시집에 실린 「변복(變服),」 외 9편으로 2026년 제8회 박상륭상을 수상하며 “오랜 공력이 느껴지는 언어적 센스와 그 배면으로 드러나는 품 넓은 통각, 사물과 단어의 껍질을 마치 호두까기하듯 발라내 다른 의미, 색다른 물성으로 야무지게 색칠해내는 솜씨는 그 누구의 시보다 독창적”[운영회의(강정·김진석·김진수.배수아.한유주.함성호) 감사: 동명, 신혜정]이라는 평을 받은 시인은 아련한 깊이를 더하는 언어적 조탁으로 뚜렷이 빛나는 시 세계를 펼쳐놓는다. 고독의 압력을 견디며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는 시어들은 공백을 드나들며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세상의 빈틈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던 시인이 끝내 옮겨 적는 것은 상상에 휩싸인 몸의 즐거움과 서러움이다. 날마다 새로운 이채(異彩)를 내뿜는 시간에 잠겨 ‘그루, 그루’ 되새겨보는 사람의 흔적이다. 의미는 차후의 일. 가두었다 내보내는 숨처럼 삶을 향한 깨달음은 한순간 터져 나온다. 미묘하고도 섬찟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는 54편의 시를 총 6부로 나눠 묶었다.

엄청난 쉼표와 단어와 문맥과 그것들이 조합해낸 의미망이 우주의 솜털처럼 만발한다. [……] 시는 팔랑이는 먼지이자 본디 색깔 없던 그것에 고유의 빛깔을 입혀 어떤 무더기로 변화하는 눈 밑의 무지개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통상 어법으로는 도저히 드러낼 수 없는 또 다른 깊이, 더 어둡고 환하게 무마된 채 재생하는 새로운 현실을 열어젖힌다.
-강정 해설, 「‘숨표’는, 어디서 제대로 숨 쉬려는가」에서

날개를 편 언어의 양쪽에 있는 것들
변복의 재미로 무한히 새로워지는 하루

틈을 메우는, 그 아이의 말,
말과 말의 틈을 찾아, 차고 있는 어둠,
틈을 메우는 말을 찾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둥글리고자, 해,
-「틈을 메우는 그 아이의 말」 부분

시집 1부에 수록된 동명의 시 「공백이라 하기에는」 세 편은 한 페이지의 백면 그리고 몇 개의 쉼표, 따옴표, 말줄임표로 채워져 있다. 완전한 공백이라면 독자가 주인이 되어 맘껏 뛰놀 수 있는 놀이터일 텐데 말과 말 사이 놓여야 했을 쉼표, 차마 꺼내놓지 못한 생각을 묶은 따옴표, 끝을 맺지 못한 그 모든 머뭇거림의 말줄임표는 무언가 머물렀던 자리를 가리키기에 ‘공백’이라 하기에는 멋쩍은 지점이 있다. 이렇듯 시집의 시작과 함께 시인은 독자로 하여금 마주 앉을 의자를 내준다. 마주 앉아, 아예 없었던 것이라 치부할 수 없는 어두운 시간을 기록해나간다.

“남몰래 서둘러 지우려”(「죄와 벌」) 했으나 역사가 되어버린 시간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을 만들고 “나무, 한 그루”(「나무 고아원」)처럼 화자의 눈앞에 서 있다. “나는 되지 못했는데 되려고 힘쓰는 것을 볼 때면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말하고 싶었”(「이야기」)다는 속마음은 생을 향한 애타는 기도에 가깝다. “모르니까 가고 볼 것이”며 “모르는 채 갈 것이라는 맹세”(「집과 나무」). 이 선언은 주체의 내부를 향한 것이 아니라 외부를 향한다. 황혜경의 “시는 쓰는 방식이 아니라 사는 방식”(「알게 되었다」)이어서 지속적인 세계와의 부딪침으로 시간성을 획득한 후에야 의미를 지니게 된다. “첫머리에 쓴 머리말”이 “매번 마지막 페이지에서 읽히”(「역순」)듯이.

삶에서 건져낸 풍경의 의미를 헤아리기 위해 사위의 소음, 움직임, 냄새,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리듬을 복기하는 동안 잠시 멈출 수밖에 없으므로 시인은 “시를, 쓰면서, 쓰고도, 쓰다가, 쉼표를 찍”(「의향」)는다. 시인에게 있어, “상상만, 하고, 세우지 못하는,”(「상상만 하고」) ‘형상’과 달리 형상이 녹아들어간 ‘시간’은 ‘너’와 ‘나’의 “동선이 겹쳐지고 날씨”[(「나는 너와 너는 나와) 우리」]마저 피부에 “쭈글거리”며 새기는 실체다. “시간을 세우느라, 손때 묻은 곳에, 손을 쓸 때,/백색의 눈보라로, 슬쩍 가리면서 시원해지는 내부,”(「곬,」)가 있다. 시집의 중반에서 후반에 이를수록 점차 늘어나는 쉼표와 말 사이의 간격은 “조각조각 여기저기 산만하게 놓”인 ‘우리’의 행렬 같고, 그 모습은 마치 우주라는 커다란 마당에 삼삼오오 모인 ‘우리’처럼 “즐비하다, 늘비하다,”(「즐비하다, 늘비하다,」).

황혜경의 시는 생의 곳곳에서 발목을 잡는 고통의 흔적을 무마(撫摩)하려는, 살살 어루만져 덮어주는 손길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모두를 완전히 은폐하거나 지우지 않는다. 오로지 시간과의 분투를 통해 앞으로 펼쳐진 “모르는, 무궁무진,”의 나날을, “가능해지는 허밍”[「무마,」(p. 154)]을, 무수한 쉼표를 거쳐 간 우리에게 일깨운다. 그리하여 6부에 수록된 「암흑이라 하기에는」 동명의 시 두 편과 「 흑,」은 무마한 자리에서 초연하게 태동하는 언어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거리를 어루만지며 다가오는 평화
싹틔워 무성해지는 말미의 시간
또, 어떻게?

내가 아닌 것처럼,
입지, 그렇게 입을 수밖에 없는 날의, 그런 상태가 있잖아,
-「변복(變服),」 부분

때로 마음을 날카롭게 찔러 “일상의 고요를 깨뜨리는” 형상에 사로잡혀 “무너진 내부를, 슬쩍, 노출시키고, 보여주자고 다짐하거나, 본때를,” 보여주자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흘러 시인은 안다. “비밀스러운 것의 자루를,” 틀어쥐고 “본래의 것에서 떨어져 나와 무찌르고,” “어쩌다 완성되는,”(「본때」) 것이 삶의 재미임을. 재미를 터득한 후에야 의미는 익어간다. 버거운 땅에 놓여 “갸우뚱갸우뚱 행똥행똥/느릿느릿 천천히 끝까지”(「태어납니다」) 걷는 무아지경의 아이들, 그 작은 그림자를 디디며 뒤따라가는 존재로서 황혜경 시의 화자는 미래를 감히 예고하지 않는다. 다만 말미를 주고 “향하여 어떻게든 어디로든 가”볼 수 있는 의지를 곁에서 일으켜 세워 “이곳저곳 못 가본 이곳저곳 안 가본 쪽으로”(「향(向,)」) 나아가 온 세상을 섭렵하기를 기다린다. “새로운 막을 올리기 위해 부지런히 돋아나는,” 나무들, 각각의 아픔과 고독으로 “구부러지고 이지러지는,”(「구부러지는 숲」) 순간으로 무성해진 것이 ‘우리’가 일군 숲이라 말한다. “불필요한 저장을 마다하는, 나무들의 자생력”[「무마,」(p. 146)]으로 숲은 살아 숨 쉰다. “어두운 그들로 인해, 선연한”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빛은 많은 것이 각자의 역사에 흩어져 간신히 내쉰 숨의 증거이다. “어두워질 때, 속부터, 피어나는, 이었다, 낯설게 확연한, 빛꽃”,(「이었다,」)이다. 한데 얼크러진 ‘너’와 ‘나’ 사이에 쉼표를 두고 위태로움 속에서 도달한 시인의 언어는 암흑을 뚫고 환하게 솟아난다.

시집의 해설을 맡은 시인 강정의 말처럼, 황혜경은 “더 깊은 호흡과 보다 근원적인 숨의 끝을 삶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언어의 미세한 조직들을 잘게 부수고 세심하게 쪼개 말의 홀씨들을 말의 외연 바깥으로 끌어내려 힘쓴다”. 이 절묘한 해석을 살짝 비틀어 다시 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시인이 세계의 무수한 빈틈을 찾아 파종한 시의 씨앗은 삶의 신비를 간직한 채 읽는 이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올릴 것이라고. “아직도, 생소하게, 처음으로, 들어가, 보는, 곳은,/어디에도, 어디에나, 남아 있을 거라고,/시작은 그런 것이라고,”(「초입」).

· 시인의 말

공백은, 빈 것처럼,
보이거나,
공백은, 하얗지만,
무(無)가, 아니고,
격렬하게, 주저한, 흔적의, 기록일 수도, 있고,

2026년 8월
황혜경

· 뒤표지 글(시인의 산문)

포착하는 것에서 시작(詩作)하지만, 시는 지우려고 시작할 때 더 남는 장르가 아닐까, 경험에 의하면 절대 남는 장사는 아니겠지만, 오른손으로 연필을 쥐고 밤낮없이 썼다,

왼손은, 모르게,
도, 모르게,
이, 모르게,

오른손에 가장 작은 몽당연필이 남을 때까지,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썼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나를 바라본 적 있는 눈동자 속에서, 순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혹시, 내가 없더라도, 그들이 나를 생각하는 순간마다, 황혜경식으로 계속 씌어지면 좋겠는데, 그렇게 해준다면, 완전히 삭제되지는 않을 것이며, 섣불리, 소멸을 꿈꾸던 오만한 마음은 지워질 것이며, 아주 없는 날은 아닐 것이며, 오늘, 또 하나의 몽당연필을 그 자리에 묻었는데, 점점, 연필 무덤은 커지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쓰면서 지금은 살아 있다, 아직은, 마침표를 찍을 때가 아니면 좋겠는데, 쉼표에 기댄 날들의 기록, 문장부호 하나가 나를 살게 한다는 실감, 이 시집은 호흡곤란 상태를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목이 떨어져 나갔거나, 다리가 없는 듯한 지점에서, 달리, 숨을 쉬고자 하는 것이, 왜, 그토록, 힘이 들까, 내가 내 죽음을 해명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쓸 것이므로,

쉼표가 있는 자리에, 숨이 남아 있을 것이다, 지난 숨이, 묻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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