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시인의 말
1부 공중제비 | 끈 | 새벽 네 시 | 나는 모른다 | 책 더미 | 소리와 분노 | 프랑켄슈타인 | 디저트 | 창문에 누워 | 보물찾기 | 당신 중 한 사람 2부 새장 | 깃털 형태의 돔 | 더듬어 | 내가 먼저 피하려고 했어 | 세 개의 컵 | 더 작은 사람 | 갈림길 | 이인용 자전거 | 보물찾기 | 도깨비불 | 눈동자 | 호두 | 끈이 풀어지고 3부 둘이 거리로 나와 | 추워 | 우에노 공원 | 출발과 시작 | 가만히 | 나는 너랑 논다 | 친구의 슬픔 | 마지막 글자 | 지난 일들 | 몇 가지 흔적 | 별이 가득하던 날 | 일기장 4부 위해 | 크랙 | 야경 | 이번만큼은 | 달라지는 것과 달라지지 않는 것 | 보물찾기 | 떠나온 숲 | 델마 혹은 그로토프스키 | 길 찾기 | 덤불과 가로수 | 얼룩 | 두 눈으로 해설 ‘우리’라는 불가능의 에로스 김보경 |
오은경의 다른 상품
|
이건 미래이고, 손에 잡힌 건 정체불명의 노끈이다. 미래가 노끈의 형태라면 미래란 얼마나 작고 가벼운가? 아니, 미래란 왜 이렇게 헐거워져버렸을까? 작은…… 미래, 꿈꾸던 내 모습이 아니었어. 나는 나를 볼 수도 만날 수도 없었다(미래에는 당연히 나를 만나게 되리라고 예상했는데, 어디에도 나는 없었네. 그렇다면 지금이 미래가 아니라는 소린가? 잠깐 의심했지만, 노끈이 되어버린 미래는 여전히 손에 쥐어져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노끈을 사용한 적 없었고 무언가를 묶거나 무언가에 묶인 적 없었다. 노끈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다. 노끈은 바람에 흔들렸지만, 떠내려가지 않았다. 땅에 단단히 박힌 상태였다. * 아무도 끈을 사용하지 않았다. --- 「공중제비」 중에서 접시에는 푸딩,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 링만 남은 흔적, 계속 새 접시들이 놓이고, 달콤한 것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나도 내가 단 음식을 이렇게나 좋아하는 줄 몰랐다) 어지를 줄만 아는 사람처럼 이제까지는 한 번도, 네가 두 명이었다거나 접시를 정리하기 위해 바쁜 줄은 몰랐다 텅 빈 접시, 반투명하거나 불투명한 흰 접시, 깨끗하게 비워진 접시, 깨지지 않은 접시 초콜릿이 묻은 접시(팔미에카레와 초코크루아상의 흔적), 이가 나간 접시, 부분적인 접시, 접시 왜 웃어? 내가 웃었어? 웃고 있잖아 그러면 너무 재밌어 --- 「디저트」 중에서 너와 만나는 동안, 나는 여러 번 이상함을 느꼈다 네가 원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번에 처음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과연 사랑이 물질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물질의 크기가 사랑과 비례한다면 마음은 측량할 수 있어야 한다(눈에 보여야 한다), 우리는 30분 전까지 손을 잡고 있었는데 지금은 손을 놓았다 네가 준 선물은 커서 두 손이 다 필요했다 이상했다 걷고 있는데 또다시 걷는 기분, 상연 중인 연극처럼(객석에서 벗어날 수 없음), 숨어 있던 존재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믿음, 내가 욕망의 주체가 아니면 기다리던 대상은 내가 될 수도 있음 하지만 너의 입장이면 몰라도, 내가 나를 만날 수 있을까? 아니라면 나는 왜 끌려다니기만 할까? 무거운 짐 가방처럼 벗어둔 외투처럼 키 링처럼 --- 「보물찾기 - 줄다리기」 중에서 부엌 식탁 등을 켜둬 침실 천장이 밝았다. 나는 동이 틀 때 잠이 들었다. 불면증의 원인이 집 안 어딘가에 숨어 있을 벌레에 있다고 생각했다. 타닥거리며 식탁 등에 몸을 부딪치던 벌레, 내가 어렸더라면 벌레가 날면서 내는 소리라고 여기겠지만 지금은 벌레의 단단한 껍데기가 단단한 표면에 몸을 던질 때 생겨나는 굉음임을 안다. 벌레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나를 옮기려면 어떤 날개가 필요할까? 그것이 얼마나 무겁든 간에 가볍고 빠른 날갯짓이 필요하다. 몸짓 같은 거. 털어내듯이. 두 손을. 나는 기도하듯이 양손을 모았고 내던지듯이 손깍지를 풀었다. 가슴 한구석이 찌르르했다. [……] 벌레가 움직이는 방향대로 팔을 뻗는다. 사이에 두꺼운 창이 가로막고 있다는 듯이 문지르듯이, 상반신을, 벌레처럼 달리기를 시도한다. 내게는 보이지 않는 벌레를. 실현 가능한 것처럼. 있다는 듯이. 친구가. 여기. 이쪽에. --- 「더듬어」 중에서 손에 호두알을 쥐고서, 굴려본다 넘치지 않게 다치지 않게 살살 어루만지면서, 손바닥을 지압한다 나에게 손은 손동작에 불과하지만, 이렇게라도 움직임을 확인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손을 잃거나 몸 전체를 잃어버리게 될 것을 안다 겁이 난다 너는 나의 손을 잡으면서, 나를 잠깐 아프게 했지만 (한 번도 놓지 않았던 호두인데, 빼앗기고 말았네 그런데 빼앗겼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어) [……] 나는 다른 게 아니라, 너를 바라보고 있었어 지켜봐왔어 네가 모르게, 아니, 네가, 건강하던 네가, 입을 다문 채 어떤 생각에 골몰하고 있었어 나는 네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을 것을 알아서 주먹 쥔 너의 손을 잡는다 너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나를 이번에 처음 만났지만 --- 「호두」 중에서 네가 와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너에 대한 섭섭함이 동시에 일어 화가 났는데,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화를 내거나 참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나가거나 너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젖혀진 가리개 커튼 사이로 네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더 이상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나는 텅 빈 반찬 통을 치울 기력이 부족했고. 잠이 오지 않았지만 잠들려고 누웠다. 축축해진 소매의 물기를 짜면서. 바보같이 또 젖고, 물기를 짜내고. 나중에는 그냥 그대로 있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았으니까. 천장에서 날아온 무언가가 나를 덮어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지만. 나의 의지임이 분명했다. 너무나 부드럽고 가벼운 느낌의 그늘(텍스처)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침일까, 저녁일까? 그 무엇도 구분되지 않는 새벽(황혼)에 나는 부패하는 식물 냄새를 맡았다, 썩으면서 흙이 되어가는. 한동안 나는 청소를 해야 할 것이다. 청소를 하지 않으면, 도무지 생활할 수가 없다. 나는 일상을 되찾고 싶고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 그러니까 나를 이해해주겠지. 적어도 나는 나를 이해한다. --- 「지난 일들」 중에서 |
|
“나 역시/마음이 읽히기를 바랐으니까. 한 번쯤//틀리더라도(다르게 적히더라도)”
- ‘나의 없음’을 ‘나의 있음’으로 전복하는 사물 되기 내가 의자라면 그녀가 없을 때 보이고, 그녀와 함께일 때 가려져야 한다. 숨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 시간이 계속 과거로 역행한다는 게 문제다. 그녀 없이. 나는 있다. ← 나는 또 의자가 된다. 이번에는 진짜 사물이 되었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면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났으니까. (← 이제 나는 내 정체가 무엇이든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궁금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다. [……] 나는 의자였는데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의자가 걸어 다닌다는 것. 그리고 내가 멈춰 설 때 그녀는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새로 생긴 카페, 골목의 구석구석을 헤맨다. 그녀가 앞장서 나가면 내가 따라가 쫓는다. - 「둘이 거리로 나와」 부분 오은경의 시 속 주체들은 같이 있어도 함께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 그러다 이내 떠나버리고 마는 ‘너’라는 존재에 골몰하며 거리를 거닌다. 하지만 “숲속에 있으면서 숲을 알아차리지 못”(「갈림길」)하듯 ‘너’에 대한 앎은 ‘너’에 몰두해 있을 때 획득될 수 없고, 이에 ‘나’는 ‘너’에 대한 생각과 이입으로부터 빠져나와 ‘너’도 ‘나’도 아닌 다른 무언가의 관점을 취한다. “내가 그녀였다면”이라는 막연한 가정은 ‘나’를 지움으로써 “내가 의자라면”(「둘이 거리로 나와」)이라는 적극적인 수행이 되고, 사물이 된 ‘나’는 “다가가면/희미해지고 물러나면/선명해”(「얼룩」)지는 ‘너’를 있음의 자리로 소환하여 객관적이고도 집요한 눈길로 들여다본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네가” 사물화된 “나를 통과해/지나가는 순간” 애써 소거한 ‘나’가 다시 복원되고 그 외연이 “넓어진다”(「눈동자」)는 것이다. 시선을 두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너’만큼이나 커다래진 ‘나’ 앞에서 오은경의 ‘나’들은 ‘너’를 이해하려면 ‘나’에 대한 이해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새로이 존재하게 된 ‘나’는 “너를 통과할 때/되찾은 내 그림자”(「창문에 누워」)를 뒤축에 붙이고 사물이 아닌 ‘나’로서 ‘너’를 찾기 위해 다시 거리로 나온다. “(새로운) 나를 찾아봐줘요 네게서 멀지 않을 테니” - ‘우리의 있었음’을 확인하며 또 다른 길 찾기 “보물찾기”라는 동일한 제목을 달고 시집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세 편의 시(「보물찾기- 줄다리기」 「보물찾기- 숨바꼭질」 「보물찾기- 달리기」)는 오은경의 시가 걷기와 되기를 거쳐 ‘찾기’에 다다랐음을 환기한다. “본 적 없는데, 본 적 없는 상대를/찾을 수 있을까?”(「보물찾기- 줄다리기」) 하는 의구를 품고서도 “마음의 비호 아래 이동”하는 오은경의 시 속 ‘나’는, 쪽지에 적혀 있는 보물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일단 그것을 찾아내려 애쓰는 아이를 닮았다. “나를 움직여주”는 “장치”(「친구의 슬픔」)인 마음은 “더는 걷지 못”할 정도로 쉽게 “흔들”리는 탓에 그것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큰 “힘이”(「마지막 글자」) 들고, 이에 “뭔가를 찾고 있”는 동안 “어려운 일은 전부 마음 안에서 일어”(「보물찾기- 숨바꼭질」)난다. 이토록 불안정하게 요동하는 마음을 동력 삼아 보물찾기를 지속하는 일은 상대의 에너지와 긴장을 기민하게 살펴야 하는 줄다리기, 꼭꼭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 대상을 찾아 헤매는 숨바꼭질, 전력을 쏟아 담박질해야 하는 달리기가 된다. 낯설게 또는 익명으로 서술되는 ‘너’를 “꼭 찾아야”(「보물찾기- 줄다리기」)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보물찾기가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달리”는 ‘너’를 잡으려 뛰는 달리기로 이어질 때 문득 “나는 왜 달리고 있을까? 이 마음은 다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보물찾기- 달리기」) 하는 의문이 생겨나고, 그제야 ‘나’는 시집 도처에 드러나 있는 괄호를 경유하며 생략해도 무방하지만 부러 꺼내어 보이고 싶은 이면, 마음 한구석을 열어젖혀 고백해버리고 싶은 진심 들을 돌이켜본다. “우리가 다니는 골목은 비좁아서 한 사람씩 통과해야”(「출발과 시작」) 하고, ‘너’가 “앞장서 나가면/내가 따라가 쫓는”(「둘이 거리로 나와」) 위태로움 속에 있다. 그러나 이 절실한 공간의 공유로부터 나란하지 않은 ‘나’와 ‘너’ 또한 우리였음을, 즉 과거의 갈피마다 발생해온 “우리의 있었음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길 찾기」)다. ‘나’의 결여와 구멍을 안고 있는, 아주 잠시간의 성근 마주함.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보경의 말처럼 “이 빈 부분이야말로 사랑의 증거이며 ‘우리’의 증거이다”. “발자국에 발자국을 포개며” 서로의 자취를 따라감으로써 “완전하고 예상을 벗어”난 미래에 들어선 “우리는 원환을 벗어나” “제자리에서 멀어져”간다. 끈질긴 움직임으로, 헤매고 발견하고 통과하며 “눈 속을 헤쳐나가고 있”(「보물찾기- 달리기」)는 화자는 시간의 무자비한 흐름에 떠밀린 “분명한 추방”을 “해방”(「떠나온 숲」)으로 치환하며 “텍스트를 벗어나”(「위해」) 전과 다른 풍경에 도달한다. 세계의 시간성을 발명하려는 시적 의지로 언어를 실험하며, 오은경의 시는 새로운 거리에서 다가올 ‘당신’을 기다리며 서 있다. 시인의 말 나의 ‘너’가 되어준 사람들에게. 때로는 펼쳐지는 풍경이, 녹음이, 푸른 가시밭이 당신 마음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 2025년 7월 오은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