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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고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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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반대편에 있는 위로의 호수
나팔꽃이 피어 있던 날 태어난 예쁜 아기 용이는 그러나 행복하게 자라지 못했다. 아버지는 몸이 아픈 어머니와 용이를 돌보지 않고 매일 술을 마시고, 학교 선생님은 힘센 집안의 아이를 돌보느라 용이의 억울한 사정을 듣지 않는다. 동무들 가운데 누구 하나 용이 편에서 맞서 주지 않았고, 어린이회관의 문지기는 대뜸 캐러멜을 두 번 받아가지 않았느냐고 호통을 친다.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했던 용이는 뜻밖에 벌어진 사건에 휘말리고, 무서움을 견디다 못해 무작정 도망친다. 그러다 만난 신문팔이 소년의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묵던 날, 센 비바람이 몰아치고 우지끈 오두막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 순간 용이는 그만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뜬 용이는 낯선 곳에 있다. 사람들이 모두 천장에 발을 붙이고 서 있고, 머리 위로 커다란 호수가 떠 있다. 거꾸로 서 있던 회색 사람이 용이를 끌어내린다. 마침내 천천히 바라보니, 호수 밑바닥으로 제가 살던 세상이 보인다. 현실과 대칭을 이루는 또다른 세계, 지은 죄에 대해서는 벌을 받고 가엾게 여기는 아름다운 마음은 정직하게 보상받는 곳. 아이들의 호수다. 따뜻한 환상, 지금도 필요한 이야기 자신이 지은 죄로 심판대에 섰지만 회색 사람은 “용이에게는 즐거워야 할 가정이 없었고,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이 사랑을 베풀어야 할 선생이 없었으며, 캐러멜 한 갑을 주고 도둑으로 몰려는 경솔한 어린이회관 문지기와 갈 곳이 없이 돌아다니다 알게 된 나쁜 아이들의 죄가 용이에게 덧붙어 있다”는 판결을 내린다. 용이에게는 죄를 지은 사람들이 형벌을 받는 모습을 구경하며 뉘우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용이는 혼자서 그 길을 떠난다. 참혹한 광경을 보며 용이가 흘린 눈물은 그 자리에서 꽃으로 피어나고, 절박한 마음으로 내뱉은 한숨은 무지개를 만들어냈다. 향기와 빛깔에 목말라 있던 모든 생명에게 감동을 알게 한 용이는 용서를 받고, 천국 같은 아이들의 호수로 보내진다. 그 곳에서 용이는 자신이 죽인 소녀 미애를 만나 마침내 진정한 용서를 구한다. 호수는 너그럽고 눈물겨운 위로의 공간이다. 호숫가에 노니는 물오리들은 용이에게 원래 자기들은 어린아이였다는 말을 한다. 무슨 마법에 걸려 물오리가 된 게 아니라 전쟁의 포화 속에 서로 죽이고 죽는 사람이 싫어서 스스로 오리가 되기를 선택했다고 말이다. 뜨거운 불길 속에서 힘없이 죽어갈 때, 차가운 물에서 원없이 놀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전각화 이 책에 실린 그림은 모두 〈풍경 소리〉로 유명한 전각가 정병례의 작품이다. 네모난 돌에 새겨 그린 전각화는 고전적이면서도 매우 현대적인 느낌이다. 어린이를 위한 작품에 경험이 많지 않은 화가이지만, 글에 대한 진심어린 감동과 수준 높은 해석으로 신비롭고 낯선 한편 자궁 속 같은 근원적인 안식의 공간 ‘아이들의 호수’의 양면을 성공적으로 묘사해 냈다. 새로운 형식, 다양한 함의의 그림이 독서를 한층 즐겁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