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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04
칙간은 저짝에 있어라 … 10 가난은 연이 아니제 … 16 이름이 머시랑가요 … 24 엄니, 배가 새는갑네요이 … 35 뭔 구경거리라고 찍는당가 … 51 갯돌은 갈수록 동글거린당께 … 60 모두 다 제겐 손님이었어라 … 72 초판 작가의 말 … 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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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할머니는 언제나 기다렸다는 듯이 굵직하고 긴 두 팔을 펼쳐 들고 맞아 주었습니다. 할머니는 그런 당할머니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가슴이 답답할 때면 당할머니 발치에 앉아 기도를 하고, 울기도 하고, 가슴에 담아 두었던 말을 조심스레 꺼내 놓기도 했습니다.
---p.25 “아부지는 우째 제 이름을 안 지어 줬어라? 네 발 달린 짐승도 이름이 있고, 바닷속 물고기도 이름이 있어라. 풀도 나무도 모두 이름이 있어라. 그런데 우째 나만 이름이 없어라? 집에서 기르는 개에게도 이름을 줬으면서 우째 사람인 나에게는 이름을 안 줬어라?” ---p.34 ‘어찌 죄 없는 사람을 잡아다 고로코롬 총으로 쏴 죽일 수 있당가?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사람을 그렇게 죽일 수는 없제이.’ ---p.45 할머니는 손자의 아이들이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손자는 식당 일이 바빠서 할머니를 보러 자주 내려오지 못합니다. 명절에도 오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지들끼리 잘 살면 그만이제.” ---p.70 “네 쉴 곳은 이미 마련되어 있느니라. 돌아가 잠시 쉬었다 다시 예 오너라.”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웃음 머금고 돌아갑니다. ---p.76 “한평생 열심히 살았네! 수고혔네!” 서 있는 할머니가 말을 겁니다. 누워 있는 할머니는 대꾸가 없습니다. ---p.82 할머니가 갑니다. 손님 따라 갑니다. 앞서가는 손님, 뒤따르는 할머니. 걸음걸음이 가볍습니다. 몸도 걸음도 모두 새털처럼 가볍습니다. ---p.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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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기르는 개에게도 이름을 줬으면서
우째 사람인 나에게는 이름을 안 줬어라?” 할머니는 이름이 없다. ‘가이나’, 여자아이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 주지 않았다. 이름이 없다고 사는 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는 모두가 할머니를 ‘가이나’라고 불렀다. 결혼하고 나니 시아버지는 ‘며늘애기’, 남편은 ‘여보’라고 불렀다. 동네 사람들은 ‘새댁’이라고 부르다가 아들을 낳으니 ‘정수 엄마’라고 불렀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지금은 ‘할머니’가 되었다. 오롯한 이름이 없어서였을까. 할머니는 평생을 자기 자신보다는 가족을 위해 살아야 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할머니의 남편도, 시댁 식구들도 영문을 모른 채 끌려간다. 할머니 곁에 남은 건 벌벌 떠는 아이 넷과 넋을 잃은 손위 동서뿐. 할머니는 이들을 이끌고 천신만고 끝에 아는 이 하나 없는 섬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갖은 고생을 견디며 서서히 정착한다. 젖은 낙엽처럼 들러붙은 가난, 이어지는 가족의 죽음에도 할머니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 낸다. 지금의 어린이들에게는 어쩌면 옛이야기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할머니의 삶은 우리 이웃과 선대의 이야기로 여전히 지근거리에서 숨 쉬고 있다. “가이나야, 너는 내 손님이었느니라. 그것도 아주 귀한 손님.” 마지막 손님이 오시기 전, 할머니는 뒷산 들머리에 있는 오래된 나무인 ‘당할머니’를 찾아간다. 당할머니는 섬사람들의 수호신이자 기댈 곳 없던 할머니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남들보다 몇 배로 일하며 가족을 지켜야 했던 할머니가 마음껏 울 수 있는 곳은 오직 당할머니 앞뿐이었다. 당할머니는 예나 지금이나 할머니를 향해 굵직하고 긴 두 팔을 펼쳐 든다. 그리고 말한다. “가이나야. 고생 많았다. 사느라 용썼다.” 당할머니가 할머니에게 건넨 위로의 말은, 임정자 작가가 우리 할머니들께 드리고 싶었던 말일 것이다. “사람은 역사적 존재”라고 임정자 작가는 말한다. 삶의 고단함을 버틴 할머니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살아간다. 작가는 할머니들을 향한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담아 『할머니의 마지막 손님』을 정성 다해 썼다. 이인아 화가는 동백꽃빛 물길을 할머니의 노래와 함께 작품 전반에 흐르도록 했다. 하나의 리듬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와 그림은 자연스럽게 독자들을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으로 초대한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쉽지만 진중하게 다루며, 한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렸다. 어느새 도착한 영원한 안식 앞에서 할머니는 평온하게 웃는다. 가장 춥고 황량할 때 피어나는 동백꽃을 닮은 웃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