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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홀로 존재하는 자 낯선 자의 잿빛 비늘 신성모독 나는 너를 귀히 여겼나니 2부 사람들 속으로 백두 마을에 나타난 나그네 삼성신의 신물을 찾다 천지에 무지개길을 놓고 다시는 인간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리라 3부 백두산 나의 어머니 보이지 않는 샘 모르는 곳을 지켜야 한다 4부 내 신성은 오늘을 위해 주어진 것 운명을 믿어 보리라 최후의 결전지 내 심장의 일부를 가져간 이들이여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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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말아라. 너는 위대한 백두산의 하늘과 천지의 정기로 다시 태어났느니, 너를 감싼 비늘은 해와 달의 기운으로 천 번에 천 번을 달구었고, 차디찬 천지 물에 천 번에 천 번을 담금질하였다. 그 어떤 불도 너를 태우지 못하고, 그 어떤 열도 너를 녹이지 못하리니 너는 능히 백두산과 천지를 지켜 내리라.”
--- p.25 “네 심장의 절반은 인간의 것. 천리 밖을 보되 한 치 앞을 보지 못하고, 천리 밖의 소리를 듣되 정작 네 안의 소리를 듣 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느니,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로되 스스로를 사랑하여라. 그러면 모두를 능히 지켜 내리라.” 그 말을 끝으로 어머니 백두여신과 아버지 백 장수는 함께 산너머산으로 들어갔어. --- p.25 “스스로 비어 있지 않으면 용의 눈으로도 세상을 볼 수 없고, 용의 귀를 갖고도 태산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법입니다. 감각은 무릇 한결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 p.42 “나는 백두산과 천지를 수호하는 신이다. 강한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강한 것은 더 강한 것에 의해 부러지고 무너진다. 강가 갈대를 본 적 있는가? 그들은 약하여 작은 바람에도 흔들린다. 그러나 서로 부딪쳐도 부러지지 않고, 홍수에도 휩쓸려 가지 않는다. 뿌리가 깊지도 않은데 말이다. 왜 그러겠느냐? (…) 강한 자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함께 얽히고설킬 만한 자를 찾는 게 강해지는 길일지도 모른다.” --- p.102 “강한 자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함께 얽히고설킬 만한 자를 찾는 게 강해지는 길인지도 모른다.” --- p.109 해마루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칠성국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 부족을 아끼고 지켜 주려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어. 그건 백두 마을 사람들에게서도 느껴지는 것들이었지. 그래서 흰달은 사람의 강인함은 비록 약해도 ‘함께’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지. --- p.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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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사랑하여 끝끝내 백두산을 지키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드라마 백룡 흰달은 거무튀튀한 돌과 모래뿐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천지 가에 살며 홀로 백두산을 지킨다. 백두산에서 쫓겨난 악신 흑룡은 백두산으로 돌아오기 위해 ‘천지간 통로’를 찾으려고 끝없이 도발한다. 처음엔 백룡 흰달을 회유하려는 목적으로 동족인 재룡을 보내 백룡의 가장 가까운 벗 ‘초초’의 생명을 빼앗는다. 이어서 흑곰, 붉은 지룡, 검은 새 무리까지, 흑화한 흑룡의 부하들이 침입해 들어올 때마다 백두산 골골은 더 크게 요동친다. 천지간 통로를 뺏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사활을 건 싸움에서, 지키려는 자 백룡 흰달의 인간적 감정이 거듭 그를 수렁에 빠뜨리는 것이다. 인간의 피는 약점이기만 한가? 그렇지 않다. 아버지 백 장수의 마지막 조언은 “스스로 사랑하라”는 것.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의미다. 완벽한 신은 홀로 싸우지만, 백룡 흰달은 혼자가 아니다. 백두산 골골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과 네 발 달린 짐승들을 비롯해 마을의 나무와 바람까지, 생명 가진 모든 존재와 대자연이 한마음으로 함께한다. 그들 모두가 악신에 대항해 싸우는, 백두산을 지키는 영웅이자 주인공들인 것이다. 인간의 피 때문에 비록 크고 작은 패배를 경험할지언정, 대자연의 순환 원리를 따라 거듭 부활하여 끝끝내 모두를 살리고 진정한 신으로 거듭나는 백룡의 대서사시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적 매력’이 더해져 더욱 매혹적이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듯’ 백두산 설화에서 소환하는 포용과 공감의 리더십 “세상의 평화는 거저 주어지는 법이 없었지.” (본문 23쪽) “신력을 허투루 쓰는 자가 생기면 세계의 질서는 무너지고 수많은 애먼 생명들이 다치게 돼. 지금이 딱 그 꼴이야. 흑룡이 불의 힘을 나누어 무리를 만들고, 그 무리가 백두산을 불태우고, 숱한 생명들을 죽이는 지금 말이야.” (본문 184쪽) 마치 한국의 오늘을 예견한 듯한 본문 속 구절이 의미심장하다. 흑룡의 반대 끝단에 서 있는 백룡 흰달은 한마디로 ‘포용과 공감의 리더십’을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홀로 살아남을 수 없는 가장 약한 존재를 가장 세심히 살피는 포용의 리더십이다. 또 가장 여린 생명의 공깃돌 하나에도 관심을 가지는 공감의 리더십이다. 흑룡의 저주에 걸려 흑화한 존재들을 멸할 수밖에 없지만 마음 한켠으론 ‘가엾게’ 여기는 연민의 마음은 흰달의 치명적인 약점이면서 끝끝내 공동체와 생명을 지키는 비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흑룡의 거듭된 도발은 모두 함께 눈 부릅뜨고 지키지 않으면 언제든 야만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경고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듯’, 신화는 끝없이 현실의 문제점을 성찰하게 한다. 21세기의 4반세기가 지난 오늘 우리는 그 경고 앞에 정면으로 서 있다. 한 줌도 안 되는 바위종다리 초초까지 백두산의 모든 존재가 가장 귀한 것을 걸고 백두산을 지켰듯이, 오늘의 우리는 무엇을 걸어야 하는가? 이야기는 이 질문의 답을 스스로 끝까지 파헤치라는 숙제를 독자들 각자에게 던진다. 작가 임정자에게 백두산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신성’이다 20여 년 전 백두산 천지를 처음 본 이후 작가에게 백두산 신화는 평생을 관통하는 화두가 되었다. “거친 바람을 맞으며 천지를 마주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언어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유일하게 떠오른 단어는 ‘신성’이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신성’ 외에 그 어떤 단어로도 천지를 설명할 수 없다.” 작가에게 신성은 “만물을 생성하고 기르고 멸하는, 대자연의 순환하는 힘”이다. 한 학자(광주교대 최원오 교수)는 임정자 작가가 “(백두산의) 잊힌 신들을 불러내어 우리 민족에게 백두산이 어떤 산으로 인식되었는지를 상기시키려고 한다”며,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올림퍼스가 신전(Pantheon)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면, 우리 민족의 신화에서는 백두산이 그런 신전 역할을 하는 곳임을 일깨우고자 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백두산과 사랑에 빠진 작가 임정자에게 ‘신성’은 영웅 흰달처럼 운명을 따라 끝없이 진화하는 그 무엇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