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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성공한 책 [논어], 실패한 인생 공자
1부 학인學人의 길 1장 학문의 즐거움 학이시습學而時習 학문은 해서 어디에 쓰겠는가? 십오지학十五志學 인생 역전의 길, 학문 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 가난을 걱정하지 말고 도를 행하라 불여호학不如好學 학문을 즐겨라 - 책 읽는 횟수를 기록한 김득신 사해형제四海兄弟 세상 사람이 모두 나의 형제이다 - 이덕무와 박제가 안빈낙도安貧樂道 학문하는 사람이 어찌 가난을 두려워하랴? - 원교 이광사의 안빈낙도 지지위지知之爲知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라 2장 배움과 가르침 인불양사仁不讓師 스승과도 다툰다 - 송시열에 맞선 백호 윤휴 극기복례克己復禮 사양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사회에 속수지례束脩禮 공자대학의 반값 등록금 유교무류有敎無類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 - 정약용의 귀천 절문근사切問近思 묻는 것이 학문의 시작이다 - 우리 교육을 망친 두 원흉 - 송시열 중심의 주자학 유일사상 체제 - 대한제국 말기의 사립학교령 구진유퇴求進由退 2,500년 전의 맞춤식 교육법 3장 1기, 제나라 망명기 군자정君子政 자신을 닦음으로써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 대덕불유한大德不踰閑 큰 덕이 법도를 넘지 않으면 - 김종서의 삼년상 신이후간信而後諫 신뢰를 얻은 후에 간하라 오종주吾從周 나는 주나라를 따를 것이다 - 수양대군의 섭정 가정맹호苛政猛虎 가혹한 정치는 범보다 무섭다 - 정약용의 '애절양' 군군신신君君臣臣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4장 2기, 노나라에서 정치를 하다 시위대동是謂大同 공자가 꿈꾼 나라 - 정조와 군약신강 오장사의吾將仕矣 내가 네 밑에서 정치할 수 없는 까닭 노무습유路無拾遺 길가에 떨어진 물건도 줍지 마라 - 조척과 곡비 도덕제례道德齊禮 모든 잘못은 지배층에 있다 - 공자가 말한 다섯 가지 대악 무신불립無信不立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 필야사호必也射乎 문무를 겸해야 진짜 군자다 - 칼 찬 선비 조직 장타삼도將墮三都 삼손씨를 무너뜨려라 공자퇴행孔子退行 자의 반 타의 반 망명길 - 중종에게 버림받은 조광조 5장 3기, 14년간의 천하 주유 수무부가手無斧柯 내 손에 도낏자루 없으니 떠날 밖에 솔피광야率彼曠野 광야를 떠도는 혼 - 신라 말 최고의 지식인 최치원 회하감사回何敢死 어찌 감히 스승보다 먼저 죽겠습니까? 세한연후歲寒然後 겨울이 오면 -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 아대가자我待賈者 나를 사갈 사람이 없는가? - 조선 개창의 설계자 정도전 군자고궁君子固窮 군자는 굶어도 거문고를 탄다 - 세상에서 쓰이지 못할 책을 쓰는 사람, 선비 유수원 민무소조수족民無所措手足 백성이 어찌 살겠는가? 상가지구喪家之拘 공자는 상갓집의 개다 6장 은둔자들과 함께하다 지불가위知不可爲 안 될 것을 알면서오 왜 해야 하는가? - 안 될 것을 알면서도 하는 사람, 이익 부지육미不知肉味 음악에 미쳐 고기 맛을 잃다 귀여귀여歸與歸與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 - 은자 정도전 7장 공자가 꿈꾼 정치 인정仁政 자경구독自經溝瀆 최고의 의는 백성을 구하는 것 덕정德政 덕불고德不孤 원수의 덕으로 갚지 마라 선양정치選禳政治 천하삼양天下三讓 권력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마라 8장 학인으로 돌아오다 발분망식發憤忘食 밥도 잊고 공부하다 인부지불온人不知不溫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지아자천知我者天 세상은 왜 악인이 성공하는가? 고전을 정리하다 사무사思無邪 [시경]에는 생각의 간사함이 없다 - 정약용의 시론 술이부작述而不作 그대로 전할 뿐 지어내지 않는다 - 이긍익의 역사서 서술방식 난신적자구亂臣賊子構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역사가의 붓이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 왕이지래往而知來 역사는 미래학이다 9장 공자의 일상 오불도행吾不徒行 내가 어찌 걸어 다니랴? 구장단우몌救長短右袂 패션도 실용성을 따져라 고주시포불식沽酒市捕佛食 원산지가 불분명한 것은 먹지 마라 사관불면死冠不免 선비는 죽을 때도 갓끈을 고쳐 맨다 여시은인予始殷人 공자의 유언, 나는 은나라 사람이다 부록 [논어] 원문 |
李德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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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천하에 통용되는 원칙을 제시했다. 인간은 출신이나 계급으로 나뉘지 않는다. 도에 나아간 경지에 따라 군자와 소인으로 나뉜다. 자신을 닦는 수기와 천하 평화를 위해서 노력하는 치인이 결합된 인물이 군자다. 끊임없이 인격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군자가 천하 평화 실현을 위해 나서야 한다.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더불어 잘사는 길, 안으로는 인격 완성에 힘쓰고 밖으로는 천하의 평화를 갈구하는 것이 21세기 군자의 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자는 2,5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양극화로 고통받는 21세기에 다시 살아난다.
“진나라는 비록 국토는 작았으나 그 뜻은 웅대했습니다. 나라는 벽지에 있었지만 행동이 알맞고 발랐습니다. 몸소 다섯 양피 가죽을 주어 백리해를 등용해 대부로 삼았습니다. 잡혀 있는 사람도 3일 동안 말해보고 취했으니 왕(천자)이라도 될 수 있었는데, 패자가 된 것은 작은 것이었습니다.” 공자 대답의 요체는 인재 등용이었다. 인재를 등용했기 때문에 진 목공이 패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진 목공은 초나라에 잡혀 있던 우나라 출신의 백리해를 구하기 위해 양가죽 다섯 장을 초나라에 예물로 바쳤다. 출신 배경을 따지지 않고 인재를 등용한 것이 진 목공을 패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중종은 노나라 정공이 공자를 버린 것처럼 조광조를 버리고 공신들을 선택했다. 우참찬 이자, 형조판서 김정, 대사헌 조광조, 부제학 김구, 대사성 김식, 도승지 유인숙 등 사림세력이 아무런 죄도 없이 체포되어 옥에 갇혔다. 훈구세력은 당초 이들을 국문도 없이 때려죽이려고 했으나 사림에 동정적이던 이조판서 이장곤과 영의정 정광필의 반대로 겨우 국문이 열렸다. 국문에서 조광조는 이렇게 말했다. “신은 38세의 선비로 이 세상에서 믿은 것은 전하의 마음뿐이었습니다. 국가의 병통이 가짜로 공신이 된 신료들이 사욕을 추구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이를 막아 국가의 명맥을 길이 새롭게 하고자 했을 뿐, 조금도 사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종의 마음은 이미 떠났고 사림들은 사형당할 뻔하다가 영의정 정광필의 반대로 유배형에 처해졌다. … 이렇게 조광조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의 안타까움을 샀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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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대표적 지성이
새롭게 선보이는 인생에 대한 동양학적 사유 공자 따라 논어 읽기! 우리 역사 따라 논어 읽기! 역사학자의 시각에서 본 공자 그리고 《논어》 우리 시대 대표적 역사학자 이덕일. 지금까지 한국사의 뜨거운 쟁점에 정면 도전하는 역사 서술과 생존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비운의 천재나 왜곡됐던 인물을 재조명하여 역사의 교훈을 일깨웠던 그가 이번에는 동양학을 통한 시대정신 모색에 나섰다. 우리 역사에 천착했던 역사학자가 동양고전으로 영역을 넓혀 자기 성찰과 통찰, 현실 비판으로까지 사유의 폭을 넓힌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역사학자의 시각으로 《논어》를 재구성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논어》는 스승 공자가 죽은 후, 그의 제자들이 모여 편찬한 공자의 어록집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논어》에 담긴 20편의 이야기는 저자의 말대로 어떻게 보면 ‘수수께끼 모음집’ 같은 모호한 성격을 띠고 있다. 전체 20편을 관통하는 체계적인 구성 원리나 앞뒤 문장 간의 연관성도 부족하다. 그뿐 아니라 앞쪽에서 말한 내용과 어긋나는 문장이 등장해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이에 저자는 《논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 추적해야 한다. 또한 여러 이야기를 잘 조합해서 공자의 전체상을 찾아내야 한다(33쪽)”고 조언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두 가지 방식의 접근을 통해 독자를 《논어》의 세계로 안내한다. 첫 번째는 공자의 일생을 따라가면서 읽는 《논어》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사기》, 《공자가어》,《춘추좌전》 등의 방대한 사료를 두루 섭렵하여 인간 공자의 일생을 복원하고, 이를 책의 뼈대로 삼았다. 그리고 여기에 2,500년 동안 동양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논어》의 핵심 사상이 우리 선조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 역사발전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다양한 역사 사례로 살펴 한층 풍부한 《논어》읽기를 가능하게 한다. 공자의 삶을 따라가며 역사의 흐름 속에서 《논어》20편에 실린 공자 철학의 주요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추고, 공자가 어떤 맥락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 이런 말을 남겼는지를 이해하면 박제된 교훈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한층 다원적으로 《논어》를 읽을 수 있다. 또한 우리 역사 사례를 되돌아봄으로써 공자와 《논어》의 현재적 의미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 광야의 철학자, 공자의 일생을 따라가는 《논어》 읽기! ▣ 어린 공자, 《논어》의 씨앗을 품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공자는 서로 다른 얼굴을 지닌 두 사람이라고 지적한다. 한 명은 역사상 실존했던 인간 공자의 얼굴이고, 다른 한 명은 역사 속에서 만들어지 이미지의 공자, 즉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성인 공자의 얼굴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완벽한 성인으로서의 공자가 아닌 욕망하고 갈등하는 인간 공자의 모습을 복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학자이자 정치인으로 살았던 그의 인생을 학인의 길과 정인의 길로 나누어 접근한다. 2,5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저자는 공자의 어린 시절과 만난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제사 용품을 가지고 놀았으며 열다섯 살이 되었을 무렵 학문에 뜻을 두었다던 공자의 회고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선뜻 와 닿지 않는다. 제사 놀이는 물론이고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둔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고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어린 시절의 공자를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인간 공자를 이해하는 최초의 실마리를 놓치고 신화 속 인물의 영웅적 면모로 치부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료에 따르면 공자는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 부유한 집안의 가축을 기르고 창고지기로 일하는 등 비천한 직업을 전전했지만 현실의 틀에 갇히지 않았다. 그럴수록 학문에 매진하여 사람과 세상 이치에 눈을 뜨는 계기로 삼았다. 유교무류로 대변되는 공자의 평등사상 등은 이 같은 성장기의 경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며 배움을 ‘즐기는’ 경지로 끌어올린 공자는 점차 이름을 알려 여러 제자를 가르치는 학자로서의 명성을 완성해갔다. ▣ 정치인 공자의 원대한 계획 학자로서의 명성과 달리 정치인 공자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우리가 공자를 생각할 때 흔히 14년에 걸친 천하 주유를 떠올리듯 정치인 공자는 현실에서 성취보다 실패 이미지에 더 가깝다. 하지만 그가 왜 정치에 실패하고 천하를 떠돌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흔히들 모르고 있다. 공자의 천하 주유는 그의 일생에서 대단히 중요한데도 흔히 간과하는 사실 하나를 되새겨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삼손씨 무력화 계획’이다. 노나라에서 정치를 시작한 공자는 백여 년 이상 노나라 국정을 장악하고 있는 경대부( 관직이름)인 삼손씨(맹손씨, 숙손씨, 계손씨)를 무력화해서 정권을 왕에게 되돌려주고, ‘바로 세운’ 노나라를 기반으로 천하를 도모하려던 원대한 계획이었다. 1868년 일본에서 하급 무사들이 막부를 타도하고 일왕 메이지에게 권력을 되찾아준 메이지 유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공자의 천하개혁 프로젝트였다. 공자는 이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해 아끼는 제자 중유(자로)를 가장 세력이 막강한 계손씨의 가재(가신의 우두머리)로 위장취업시키는 등 치밀하게 준비했다. 삼손씨 무력화 계획은 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근거지를 무너뜨리게 하는 일종의 무혈혁명으로,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전략가로서의 공자 모습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공자의 원대한 계획은 예기치 못한 결과로 이어져 그를 천하 주유의 유랑길로 내몬다. 이후 공자는 여러 나라를 떠돌며 자신의 뜻을 펼칠 정치 기회를 찾으려 하지만 당시의 현실 지배체제는 그의 사상을 용납하지 않아 끝내 정치인 공자의 꿈은 거친 광야에서 제 뜻을 펴지 못하고 만다. 우리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온 《논어》 당대에 끝내 제 뜻을 이루지 못한 정치인 공자는 말년에 “천하에 도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라며 “나의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내 무엇으로 후세에 드러나 보이겠는가?” 하고 걱정했지만, 공자는 《논어》를 통해 전 세계에 살아남았다. 그럼 우리 역사에서 공자와 《논어》는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 대학을 세우기 전에 이미 공자와 《논어》가 전해져 크게 유행한 것은 분명하다. 당나라 역사서인 《구당서》는 “(고구려는) 거리마다 큰 집을 지어 경당”이라 부르며 그곳에서 오경과《사기》,《한서》등을 배운다고 기록하였고, 일본 고대 역사서는 일본에 《논어》를 전해준 인물이 아직기나 왕인 같은 백제인이라고 전하고 있으니, 공자와 《논어》가 우리 역사 전면에 등장하여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조선은 유학의 나라였기에 공자의 철학은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노론 세력이 정국을 장악한 가운데 왕위에 오른 정조는 신하들과 자주 경연을 열어 학문과 정사를 토론하면서 국정을 운영해 나가면서 자신의 정치철학을 신하들에게 피력했다. 여기서 다룬 주요 학문이 《논어》를 중심으로 한 유학이었음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정조는 공자가 말한 ‘학( 배움)’의 의미를 두고 당시 정국을 지배한 주자학자들의 견해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조선의 주자학자들이 떠받든 남송의 주자는 ‘배움’은 먼저 깨달은 자를 본받는 것이며 깨닫기 위해서는 깊이 공부해서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격물치지) 말뜻은 그럴 듯하지만 문제는 사물의 이치를 깨닫기 위한 깊은 공부는 경제적 기반을 갖춘 사대부에게나 가능한 말이었고, 이 논리는 조선 사대부들이 자신들이 신분적 지위를 공고히 하는 데 활용하였다. 공자가 광야를 헤매면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행복한 공동체를 실현하려고 노력했던 것과 달리 조선의 주자학자는 사대부가의 사랑채에 들어앉아 백성의 고혈을 짜내 자신의 배를 채우면서도 큰소리칠 수 있었던 본질적 모순이 여기에 있었다. 정조는 이런 해석에 의문을 품고 ‘학’이라는 글자에는 앎뿐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도 함께 들어 있다고 해석하여 현실과 동떨어진 책상물림 학자들을 비판하였다. 실천을 중시한 정조는 앎을 실천으로 옮기는 군주였다. 그는 다양한 개혁정책을 실시해 공자가 추구했던 더불어 잘사는 나라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정조의 개혁정책은 정조의 의문사 후 노론 소수 계급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예전으로 돌아가버렸다. 춘추시대와 마찬가지로 조선시대 역시 악한 자들이 성공하는 모순투성이였던 것이다. 주희의 해석에 의문을 품고 새로운 관점에서 해설을 고쳐 쓴 윤휴 같은 이는 “천하의 이치를 어찌 주자 혼자 알고 나는 모른다는 말이냐?”는 반박에도 죽음을 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절대주의적 억압도 공자의 인생과 《논어》에 담겨 있는 평등사상, 인간애 등 시대를 앞서간 사상마저 가두어둘 수는 없었다. 다산 정약용은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태어나 배움과 노력의 여하에 따라 차이가 날 뿐이라는 공자의 평등선언인 ‘유교무류’라는 네 글자를 통해 신분제를 초월한 평등사상을 마음 놓고 부르짖을 수 있었고, 복잡한 세상을 피해 몸을 숨긴 은자들에게 “안 될 것을 알면서도 하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인간의 길을 포기하지 않은 공자처럼 벼슬길이 막힌 성호 이익은 비록 세상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당대 현실의 문제점을 바로보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할 수 있었다. 실패한 인생 공자, 성공한 책 《논어》 공자와 그의 철학을 담은 《논어》는 춘추시대의 혼란을 수습하는 데 실패했고, 진시황 때는 분서갱유의 대상이 되었다. 한나라 때는 관학의 자리를 차지하지만 사상의 다양성을 억압하는 데 악용되었고, 남송의 주희 같은 주자학자에 의해 사대부를 옹호하는 계급 사상으로 덧칠해졌다. 이웃나라 조선에서도 평등,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 등은 외면당한 채 지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쓰였고, 20세기 중국의 문화대혁명 때는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사상이라며 터무니없는 비난에 시달렸다. 공자가 다시 태어나 지금 우리 사회가 공자를 새롭게 주목하고, 《논어》를 다양한 방식으로 읽으며 인생의 지혜를 구하고 미래 비전을 기획하는 것을 보면 꽤나 반가워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을 좀 더 지켜본다면 공자의 태도는 달라질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와 과연 얼마나 다른 것일까? 공자가 지금 산다면 과연 그의 뜻을 펼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각종 카르텔 구조를 아는 사람은 그렇지 못하리란 사실을 잘 알 것이다. 노나라의 삼손씨 카르텔, 신라 후기 골품 카르텔 못지않은 카르텔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한 공자 같은 사람이 설 자리는 여전히 없다.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다”며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던 공자가 이리 저리 법의 허점을 이용해 승승장구하는 소수의 무리가 여전히 성공하는 세상을 보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하늘에 죄를 지었어도 빌 필요가 없다” “가르치는 데는 계급이 없다”며 평등을 부르짖었던 공자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경제 불평등을 목격한다면 또 어떤 한탄을 남길 것인가? 2500년 전 공자가 외친 혼자가 아닌 더불어 잘 사는 평화로운 공동체, 끊임없이 자신을 닦고 경계하여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던 과제는 아직도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다. 수세기를 지난 오늘에도 공자의 인생과 그의 책이 깊은 울림으로 남는 이유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