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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호. 1 ― 7
치카코. 1 ― 65 리호. 2 ― 113 치카코. 2 ― 170 리호. 3 ― 210 치카코. 3 ― 231 해설 ― 250 |
Sayaka Murata,むらた さやか,村田 沙耶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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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사야카 월드
한국에 소개된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 중 가장 잘 알려진 소설은 역시 『편의점 인간』이다.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일상적 공간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보통 사람을 연기하며 살아온 주인공을 우리는 꽤 흥미롭게 지켜봤다.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소설을 써온 작가의 이력도 덧붙여서 말이다. 그런데 『편의점 인간』은 일종의 예고편, 그러니까 본격 무라타 사야카 월드로 입문하는 초입이었다. “『편의점 인간』을 읽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여느 아이처럼 죽은 새를 가엾게 여기지 않고, 아빠가 참새구이를 좋아하니까 더 잡아 오자고 말하는 주인공의 모습이었다. 싸우는 반 아이들을 말리라는 선생님 외침 한 마디에 난폭하게 날뛰는 아이를 삽으로 내리치는 장면은 어떤가.” -소설가 백영옥 전작에서 목격한 바 있듯 무라타 사야카는 언제나 정상과 비정상, 평범함과 비범함의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비틀어버리는데 이 조용한 파괴력에는 무섭고도 묘한 쾌감이 있다. 『멀리 갈 수 있는 배』에서는 섹슈얼리티라는 예민한 재료를 다룬다. 지금 우리의 이야기이거나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 또 어떤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불편한 이야기. 불편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이 특기인 이 작가는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요리할까. 무라타 사야카가 우리를 위로하는 방식 ‘왜 이런 걸 하지 않으면 안 될까.’ ‘왜 이런 식으로 역할을 강요하는 걸까.’ 『멀리 갈 수 있는 배』는 작가 자신이 줄곧 느낀 ‘살기 어려운 삶’에서 비롯되었다. 많은 사람이 사소하게 생각하는 작은 것에서부터 싫은 감정이나 위화감이 들었고, 특히 여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괴로움이 있었다. 이에 관해 마음껏 써보고자 탄생시킨 것이 주인공 리호다. 사회에서 이런저런 역할을 강요받아서 자신을 규정 짓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열심히 역할을 수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누구나 고민하며 나아가고 있다고 위로의 메시지를 건넨다. “이 이야기를 씀으로써 저는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치카코라는 여성이 제 뇌로는 알 수 없었던 장소로 저를 보냈습니다.” -무라타 사야카 치카코는 소설 속에서 특별한 인물이자 작가를 변화시킨 인물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치카코는 구상 단계부터 설정한 것이 아니라 리호만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잘 풀리지 않자 다른 시점으로 넣어본 인물이라고 한다. 기왕이면 상식적인 사람과 조금 다른 인물, 소설을 쓸 때 주인공으로 삼기엔 괴로운 인물을 만들어내고 싶어서 우주적 감각으로 사는 인물을 만들었는데 쓰는 도중에 작가 본인도 우주 속에 사는 상상을 하며 재미있었다고 한다. ‘여자니까 이렇지 않으면 안 돼’ ‘어른이니까 이렇게 하면 안 돼’ 같은 생각으로 여태 작가 본인을 억압하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는 것을 치카코로 하여금 느낄 수 있었고 좀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어서 살기 편해졌다고 한다. 이름 없는 모든 성에게 이 책의 원제는 ‘방주(ハコブネ)’다. 성경에서 방주는 하나님이 부패한 세상을 멸망코자 노아의 가족에게 만들게 한 거대한 배다. 그 배 안에 모든 종류의 동물을 한 쌍씩 싣게 한 다음 세상이 잠겨버릴 만큼의 비를 퍼부었다는 이야기 속 ‘노아의 방주’ 말이다. 『멀리 갈 수 있는 배』의 주 무대인 독서실은 방주로 비유된다. 리호에게 독서실은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사이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구원할 무언가, 정확히는 자신이 어느 쪽인지 정의해줄 수 있는 구원자의 배, 또는 암수 어느 쪽도 될 수 있는 선택지를 가진 자신을 태운 방주다. 작가는 ‘주인공이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몰라서 흔들리고 있지만, 사실은 그 어느 쪽 중 하나였습니다’ 식의 이야기가 아닌 흔들리고 있는 상태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 즉, 성애의 모호함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일본 근대 문학회의 2016년 11월 정기 발표회 특집에서는 『멀리 갈 수 있는 배』를 ‘섹슈얼리티의 가능성’ ‘이해하기 쉬운 기호로 성을 파악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하나의 이름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다양성을 제시하는 시도’라고 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