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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으로 본 보위
소개의 글 01 : 보위의 생애 02 : 보위의 세계 03 : 보위의 작품 04 : 보위의 유산 주변인물 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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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위가 문화 전반에 미친 영향은 ‘화성에도 생명이 있을까?’(Life on Mars?)와 같이 영향력 있는 노래와 시대에 획을 긋는 영화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The Man Who Fell to Earth)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인터넷이 세상을 이렇게 바꿀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보위는 1999년에 이미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 보위 말고 누가 여성 복장으로 성별 개념을 뒤흔들어 놓겠는가. 1971년에 이미 여성 복장으로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팬들에게 보위는 스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존재였다. 보위는 팬들이 원하는 것은 뭐든 할 수 있도록 해방의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보위의 생애와 작품세계, 작품과 유산을 기리는 이 책은 ‘스타맨’으로 기억될 예술가가 이 땅에서 지녔던 마스크와 페르소나, 상징과 작품의 아주 작은 일부분만이라도 담아내려는 시도다. ---「소개의 글」 중에서 보위는 이틀 뒤 자신의 뉴욕 아파트에서 숨을 거뒀다. 보위는 18개월 전 간암을 선고받고 비공개로 투병 중이었다. 전 세계 팬들이 영웅의 죽음을 애도했다. 군중들이 브릭스톤의 윈드러시 광장에서 보위의 노래 ‘스타맨’과 ‘렛츠 댄스’를 함께 불렀다. 보위가 말년을 보낸 뉴욕의 라파예트 스트리트 285번지 앞에는 꽃이 수북이 쌓였다. 보위가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이기 팝과 함께 살았던 아파트가 있는 베를린 쇤베르크 지구의 하우프트스트라세(Hauptstrasse) 155번지에도 군중이 몰려들었다. 보위는 장례 절차 없이 화장되었고 그의 이 세상에서 마지막 안식처는 가까운 가족들 이외에는 공개되지 않았다.---「데이비드 보위의 생애」 중에서 1985년 보위와 재거는 에티오피아 난민구호 자선공연인 ‘라이브 에이드’(Live Aid)에서 1964년 마빈 게이(Marvin Gaye)의 곡 ‘댄싱 인 더 스트리트’(Dancing in the Street)를 불렀다. 이 싱글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한다.---「데이비드 보위의 작품」 중에서 보위는 다른 뮤지션들과 즐겨 협업하고 스튜디오에서 창의적 발상과 실험을 독려했다. 1981년 그룹 퀸과 함께 ‘언더 프레셔’(Under Pressure)를 녹음할 때 보위는 가사와 오프닝 즉흥연주를 주도했다. 이 곡은 협업 곡 중 최고 걸작으로 뽑히며, 영국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하였다. 보위가 섭외한 다른 뮤지션은 또 누가 있을까?---「데이비드 보위의 작품」 중에서 “듀란듀란, 마돈나, 레이디 가가, 비욘세, 다프트 펑크… 그 누구의 음악이든 의욕에 차거나, 기이하거나, 의상을 갖춰 입거나, 이전에 보지 못한 팝이라면 대체로 이 음악가의 도구와 형식을 차용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는 브롬리 출신에 의치를 했고 이름은 ‘보위 나이프’에서 따왔다.” ---「데이비드 보위의 유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