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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의심하는 자들과 회의론자, 구도자들은 어떻게 다른가? 이 책의 대상은 왜 ‘인사이더’인가? 제1장 의심과 의문은 어떻게 다른가? 의심하는 사람이 항상 의문을 품는 것은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이 항상 의심하지는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2장 처음 의심을 품었을 때가 가장 힘든 이유는 무엇인가? 믿고 싶은 의심자보다 의심하고 싶은 그리스도인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왜 중요한가? 제3장 마더 테레사와 한 주를 보낼 것인가, C. S. 루이스와 한 주를 보낼 것인가? 제4장 영적 어둠을 왜 신학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부재를 신학적 관점에서 이해하되 그것을 올바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C. S. 루이스의 글이 우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제5장 십자가의 요한이 쓴 글은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가? 영혼의 밤을 왜 축복으로 여겨야 하는가? 제6장 마더 테레사가 겪었던 영혼의 밤을 통해 어떤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가? 제7장 고난의 시기에 소망이 어떤 믿음의 토대가 되는가? 의심보다는 소망이 우리 삶을 이끌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왜 소망하는 자를 사랑하시는가? 제8장 의심을 하더라도 왜 신앙 공동체 안에 머물러야 하는가? 교회 가는 것이 별 볼 일 없는 듯해도 교회에 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제9장 응답받지 못한 기도가 왜 문제가 되는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보다 하나님 자체를 더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기도를 과소평가하면 안 되는가? 제10장 당신이 믿는 종교를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자신과는 다른 종교적 신념을 가졌다고 무조건 무시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11장 왜 학문적 지식만으로 기독교 신앙을 비판할 수 없는가? 지식이 탁월한 학자가 당신의 신앙에 반론을 제기하더라도 그들의 주장을 따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12장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왜 불신자보다 못한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높임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상과 관계없이 선을 행하는 사람을 격려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제13장 하나님은 왜 자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으시는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믿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14장 겨울 영성은 왜 영적으로 심오한가? 영적 생활에서 여름과 겨울을 모두 거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15장 이 책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 왜 쉽지 않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씨름할 대상이지만 동시에 우리 편이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부록 1 진리는 왜 중요한가? 상대주의가 의심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올바른 방식으로 의심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부록 2 의심이 왜 자연스러운 것인가? 의심하는 사람을 탓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신자들은 무엇 때문에 의심하는가? |
Robert N. Wen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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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의욕으로 새 학기를 시작하는 학생들이 있다. 수업에 집중하고 학구열도 넘치지만 이러한 상태는 기껏해야 몇 주밖에 지속되지 못한다. 바로 이 몇 주가 한 학기의 봉우리에 해당된다. 그러나 학기 초의 열정이 식고, 생활도 단조로워지고, 해야 할 공부도 어렵다 보면 곧 흥미를 잃고 시들해진다. 골짜기로 들어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부 학생이 아니라 모든 학생에게 나타난다. 굴곡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늘 봉우리에만 머무는 사람들이 아니라 골짜기의 삶을 성실하게 견뎌 내는 사람이다. 따라서 학업 성취도는 침체기에 빠지지 않도록 애쓰는 것보다 침체기에 빠졌을 때 얼마나 잘 견뎌 내느냐에 좌우된다. 학교생활뿐 아니라 영적 생활에도 굴곡이 있다. 그러므로 침체기에 빠졌을 때 당황하지 말고 신실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제 4장 중에서) 우리가 드렸던 예배는 곧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과 존경심의 표현이었다. 파스칼이 생각했던 존경심의 표시는 극적이고 희생적인 행동이 아니라 일어서는 것, 모자를 약간 벗는 것처럼 삶의 모든 영역에 흩어져 있는 사소하고 하찮은 행동이었다. 나는 거기에 ‘교회에 가는 것’을 하나 더한 셈이다. 유럽에서 맞이한 바로 그 주일 아침, 우리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아침을 먹고, 걸어서 교회에 가고, 그곳에서 한 시간 정도를 보냈다. 우리는 그 수고를 감당했다. 우리는 우리의 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존경심을 표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 가운데 하나임이 틀림없다. 다른 어느 곳에서 이러한 경의를 표할 수 있겠는가? 교회가 아닌 어느 곳에서, 또 예배가 아닌 어떤 방법으로 표현하겠는가? (제 8장 중에서) 그렇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는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불신자들보다 우월한 도덕성을 지니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일까? 항상 그렇지는 않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해서 진짜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단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변화된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소명을 깨닫도록 도움을 준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서 서로 교제를 나누고 성경과 교리를 배우며 함께 신앙고백을 하면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위치한 이러한 양육 환경으로 새신자들은 새 삶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이를 통해 그들은 옳음과 그름, 선과 악, 미덕과 악덕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 12장 중에서) 우리는 탈골된 몸으로 하나님과 씨름한 야곱을 회의에 빠진 그리스도인들에 빗대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렇다. 우리는 회의에 빠져 고통스러워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진 것은 아니다. 야곱의 씨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엉덩이 뼈를 다쳐도, 하나님을 붙잡았던 그 옛날의 야곱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다. 야곱처럼 우리도 복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영혼의 밤을 지날 때에도 하나님을 붙잡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붙잡는다는 것은 신실하고 끈기 있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생활을 지속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포기하거나 하나님을 붙잡은 손을 쉽게 놓아 버려 그분이 우리에게서 빠져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 (제 15장 중에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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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게을리한 것도 아닌데
불현듯 의심이 밀려와 혼란스러운 당신에게는 기도해 보라는 뻔한 충고나 딱딱하고 차가운 신학 이론이 아니라 이 상황에 대한 명쾌한 설명과 따뜻한 격려가 필요하다 신앙생활을 게을리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내 믿음이 진리라는 확신이 사라졌다면,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의문을 품고 신앙생활을 지속하고 있다면, 이렇게 홀로 의심과 의문 속에 빠져 있는 느낌에 고통스럽다면, 이 책은 바로 당신을 위한 책이다. 의심에 휘말린 그리스도인에게 모범답안은 이미 나와 있다. 바로 ‘기도해 보라’는 것. 그러나 많은 경우, 이러한 대답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의문과 의심으로 혼란스러운 사람들을 더욱 맥 빠지게 하고, 그들의 입을 굳게 다물게 할 뿐이다. 『기도해 보라는 뻔한 대답 말고』는 언뜻 기독교의 진리를 변호하는 변증서의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비신앙인’을 대상으로 치밀하게 논리를 따지는 변증서와는 달리, 저자 로버트 N. 웬버그는 이 책의 독자를 ‘인사이더’로 규정하고 독자들이 자신이 품고 있는 의심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 관점은 이미 의심과 고통스럽게 씨름한 신앙의 선배들의 다채로운 경험에서 나온 통찰이다. 이 책은 총 15장에 걸쳐 마더 테레사, C. S. 루이스, 십자가의 요한, 블레이즈 파스칼, G. K. 체스터턴 등의 통찰을 담았다. 각 장은 짤막짤막하게 구성되어 지혜로운 신앙의 멘토들과 번갈아 가며 오밀조밀한 산길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읽어 나갈 수 있다. 어떤 선배에게서는 명쾌한 설명을, 또 다른 선배에게서는 날카로운 조언을, 혹은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받게 될 것이다. 각 장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독자는 처음부터 이 책을 통독할 수도 있지만, 자신에게 관심 있는 분만을 골라 선택적으로 읽어 나갈 수도 있다. 자신이 의심하게 된 원인과 계기가 무엇이든 간에, 의심하는 그리스도인은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는 야곱의 모습과 닮았다. 따라서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완벽한 설명이나 모범답안보다는 다음과 같은 위로와 격려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지금 씨름하고 있는 상대편은, 사실 당신이 이기기를 바란다고! 그러니까 그 씨름이 아프고 힘들더라도 상대를 꼭 붙들어. 그럼 곧 끝날 거야. 힘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