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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 머릿글 | 나이테는 늘어나지만 이파리와 가지는 풋풋해 / 김정택 _ 정 목 일 _ · 나팔꽃 일생 · 무수 무량 · 보석과 무기 · 안개 속에서 ·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_ 반 숙 자 _ · 꽃잠 · 낙엽주 특강 · 해체의 현장에서 _ 염 정 임 _ · 그 깊고 푸른 점 · 우리에게 고향은 있을까· · 프로방스의 인상 _ 정 태 원 _ · 관우정觀宇亭을 바라보며 · 산새 이야기 · 달빛 머금은 거문고 이야기 · 채화採火 _ 김 은 숙 _ · 허수아비의 노래 · 아중역 · 귀띔 _ 조 설 우 _ · 쉼표를 찍으며 · 오십 년만의 귀향 · 우공이산 · 커피를 볶으며 _ 남 기 연 _ · 삶의 몽환 _ 김 정 택 _ · 박태기나무· · 전농로 벚꽃 길 · 나의 임사臨死 체험 _ 이 부 림 _ · 취임식 전야 · 씨간장 · 최연조 군 · 공서연 양 _ 장 영 향 _ · 고양이가 우는 새벽 · 자작나무숲에 가다 · 화본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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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들판에 서서 한 해의 끝자락을 바라보고 있다.
겨울 들판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농부들도 집으로 돌아간 지 오래이다. 들판을 가득 채운 빛깔들은 어느새 해체되어 자취없이 사라졌다. 형형색색으로 넘실거리던 생명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는 벌거숭이가 된 느티나무에 이마를 맞대고 한 해를 생각해 본다. 새 천 년을 맞는다고 세계인들이 감격하던 2000년이 작별을 고하며 돌아서고 있다. 새해 해돋이를 보면서 천년 햇살과 영원을 느끼던 그 감동이 어느새 공허로 변해버렸다. 어찌 새 천년 해돋이에서만 영원의 햇살을 느끼며 매일 보는 해에 선 찰나의 햇살만을 느끼랴. 하루, 일 년, 천 년을 구분하는 계산법도 인간이 필요에 의해 만든 것이 아닌가. 수數에 얽매이는 것은 탐 욕, 집착,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다. 영원을 수용하려면 수에 얽매여선 안 된다. 무엇에도 한정되지 않고 구애받지 않는 대 자유 속에 영원이 숨 쉰다. 영원과 대 자유는 무수無數 무량無量에 있다. 한계가 없어야만 영원이 깃든다. 천지 사방에 골고루 비추는 햇빛이 무수 무량이다. 봄이면 나무들마다 새잎을 틔워 잎 하나씩이 모여 세상을 초록으로 변혁시키는, 이 끝없는 되풀이…. 파도가 밀려와 모래톱을 적시는 끊일 새 없는 반복, 은하계 별들의 운행,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가 무수 무량의 세계이다. 꽃은 피었다 지고, 한 생명이 숨을 거두는 순간, 또 한 생명이 탄생하지 않는가. 무수 무량은 무한 무념이고 한계가 없다. 피는 대로 피어나고 지는 대로 지는 것이다. 영원 속에 태어났기에 영원 속으로 돌아갈 뿐이다. 빈손으로 왔기에 빈손으로 가는 것이다. 얻을 것도 없으며 잃을 것이 없는 세계이다. 꽃이 떨어져 열매를 만들고, 그 열매가 떨어져야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 이 무수 무량한 법이 영원법이 아닌가. 꽃으로 떨 어져 열매를 맺는 일, 열매마저 내놓고 사라지는 것이 영원으로 돌아 가는 일이 아닌가. 마음속에 텅 빈 충만, 찰나 속에 영원을 숨쉬고, 영원 속에 찰나를 발견하는 것이 무수 무량의 세계이다. 많은 수와 양에 집착하고, 또 최고 최선의 유일수를 얻으려고 매달리는 한, 어둠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꽃이 지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고, 물이 강으로만 흘러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바다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이기와 한계에서 벗어나야 새 세계를 얻을 수 있다. 욕심과 증오는 마음의 눈을 멀게 하는 얼룩이다. 마음을 비워 맑게 닦지 않으면 영원을 볼 수 없다. 무수 무량의 세계에 들어야만, 맑고 향기로워진다. 찰라와 영원, 죽음과 삶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무수 무량이 아닌가. 나는 하나의 모래알, 먼지의 한 알갱이다. 파도의 한 물결이며 별빛의 한 반짝임일 뿐이다. 금년(2000) 봄에 여든 여섯의 나이로 타계하신 어머니의 임종을 생각한다. 마지막 숨고르기를 하시고, 숨을 놓으시자 너무나 편안한 표정이셨다. 태어나실 때와 같은 표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머니는 말없이 무수 무량의 세계로 돌아가셨다. 영원을 맞이하신 표정이었고 엄숙하고 아름다운 임종이었다. 울면서 비탄하고픈 마음마저 들지 않았다. 곤궁하고 고통에 찬 일생을 보내셨으나, 탐욕과 집착에 벗어나 선량하고 고요로운 삶을 사셨다. 무수 무량의 세계에 살았기에 평온하셨으며, 물욕이나 세속에 집착하지 않으셨다. 이름 없는 풀꽃으로 피어 지내시다가 무수 무량의 세상으로 가셨다. 한 해를 보내는 빈 벌판에서 가을걷이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가진 것을 말끔히 비워 낼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들판엔 추위가 오고 눈이 덮일 것이다. 어둠이 내리면 별들이 뜰 것이다. 어느 한 부분이 자취를 감추면, 어느새 새로운 것이 자리를 메우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아, 애타는 사랑법도 마음 행하는 대로 놓아두어라. 타는 노을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가슴에나 담아둘 일 아닌가. 밤하늘을 올려다 볼 때처럼 나는 무수 무량의 세계에 몸을 던져 버리고 싶다. 벌거숭이 느티나무에게 이마를 갖다 대고 나의 일 년, 나의 천년을 생각한다. 일 년의 삶을 한 줄씩 아름다운 목리문木理紋으로 그려 놓았을 나무의 일생을 생각해 본다. 하루의 햇살과 천년의 햇살을 가늠해 본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 인간은 오로지 오늘을 살고 있을 뿐이다. 오늘의 충실, 순간의 최선이 내일을 창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고단하고 어려운 오늘이 내 일생을 짜는 목리문이 아닌가. 하루하루가 내 인생을 짜는 영원의 고리일 것이다. 일 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천년이 자취 없이 지나가고 있다. 겨울을 맞은 들판은 무수 무량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다. ---「정목일, 무수無數 무량無量」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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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테는 늘어나지만
이파리와 가지는 풋풋해 첫 동인지를 낸 때가 1994년 1월이었습니다. 이듬해에 ‘프로가 되자’며 다짐을 한 지 4반세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작년 정태원 회장님께서 우리 모임에 현수목現隨木이란 애칭을 붙여주셔서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국에 흩어져 자주 뵙지는 못해도 현대문학의 한 뿌리 인연으로 유대를 갖고 늠름하고 의연하게 잘 자라고 있음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수필은 짧은 시간의 긴 만남’(문학평론가 박양근)이라고 합니다. 수필가만의 독특한 세계와 관점과 개성을 잠깐 사이에 읽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나이는 들었지만 풋풋한 열정과 아름다운 이상은 살아 있어서 수필문단의 중진으로 작품 활동을 하시는 모습을 익히 보면서 존경의 마음을 금치 못합니다. 한국문협 장르별 회원 수는 시인 다음으로 수필작가가 많다고 합니다. 수필가들이 양산되어 끼리끼리 섹트화해 가는 것이 큰 병폐라고 합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거나 평범한 안목 또는 똑같은 선입관이나 진부한 시각으로는 수필을 잘 쓸 수 없습니다. 수 필을 ‘부실’문학이라 지탄하는 이도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으로는 건성으로 읽기 쉽고, 왜곡된 심리, 굴곡된 시선으로는 잘 읽을 수 없습니다. 서로의 글을 돌려가며 읽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저희들은 작품 속에 재미와 감동을 주고 싶었습니다. 시대감각을 살리고자 애썼고 현대감각의 수준에 맞추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도공이 시원치 않은 자기 작품을 바로 깨버리고 다시 굽듯이 쓰노라 하였습니다. 나의 나태한 삶(글), 타락한 삶(글), 그릇된 삶(글)은 쉽게 들통이 나기 까닭입니다. 여유 있게 애정을 갖고, 진지하게 읽어 주시고 널리 보급하길 바랍니다. 이번에 여러 사정으로 참가하지 못한 회원도 계십니다만 다음 기회에는 함께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동안 애써주신 회원 여러분과 편집을 맡아주신 선수필 정연순 주간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 서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