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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 4
녹문집 제13권 잡저雜著 경의 經義 논어 기유년 論語 己酉 · 11 학이 學而 · 11 위정 爲政 · 26 재증 再證 · 35 팔일 八佾 · 43 중용 을묘년 中庸 乙卯 · 54 서 序 · 54 수장 首章 · 57 2장 二章 · 77 11장 十一章 · 78 12장 十二章 · 81 13장 十三章 · 90 15장 十五章 · 91 16장 十六章 · 91 17장 十七章 · 113 18장 十八章 · 114 20장 二十章 · 115 25장 二十五章 · 121 27장 二十七章 · 122 녹문집 제14권 잡저雜著 경의 經義 의례 신유년 임술년 儀禮 辛酉壬戌 · 129 상복 喪服 · 129 주역 임술년 계해년 周易 壬戌癸亥 · 193 녹문집 제15권 잡저雜著 경의 經義 상서 을유년 병술년 尙書 乙酉丙戌 · 237 요전 堯典 · 237 순전 舜典 · 244 대우모 大禹謨 · 261 고요모 皐陶謨 · 272 익직 益稷 · 277 우공 禹貢 · 282 오자지가 五子之歌 · 301 윤정 胤征 · 303 탕서 湯誓 · 304 중훼지고 仲?之誥 · 305 탕고 湯誥 · 306 이훈 伊訓 · 309 태갑 太甲 · 315 함유일덕 咸有一德 · 318 반경 盤庚 · 323 열명 說命 · 327 서백감려 西伯戡黎 · 334 미자 微子 · 334 태서 泰誓 · 335 목서 牧誓 · 337 무성 武成 · 338 홍범 洪範 · 338 여오 旅獒 · 350 금등 金? · 353 대고 大誥 · 354 강고 康誥 · 354 주고 酒誥 · 355 소고 召誥 · 357 낙고 洛誥 · 360 다사 多士 · 361 녹문집 제16권 잡저雜著 경의 經義 대학 신축년 大學 辛丑 · 365 경 1장 經一章 · 365 전 수장 傳首章 · 391 전 2장 傳二章 · 392 전 3장 傳三章 · 395 보망장 補亡章 · 401 전 6장 傳六章 · 407 전 7장 傳七章 · 421 전 8장 傳八章 · 427 전 9장 傳九章 · 428 전 10장 傳十章 · 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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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간 진행된 호락논쟁을 정리하다
녹문이 살았던 시기의 정치·사회적 주요 특징을 정리하면, 예론(禮論)을 중심으로 한 당쟁의 격화, 호락논쟁의 전개, 실학의 형성이다. 이러한 시대 상황은 녹문의 생애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호락논쟁은 그의 철학적 문제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호락논쟁이란 무엇인가? 처음 이 논쟁은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발생하였다. 한원진(韓元震)은 인물성(人物性)의 이(異)를 주장하고, 이간(李柬)은 인물성(人物性)의 동(同)을 주장하였다. 권상하는 한원진의 이론(異論)을 지지했으므로 이간은 권상하·한원진을 상대로 논변하였다. 인물성 동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개 낙하(洛下 : 지금의 서울 지방)에 살고 있었으므로 낙학(洛學) 또는 낙론(洛論)이라 불리게 되었고, 한원진의 인물성 이론에 찬동하는 사람들은 모두 호서(湖西 : 지금의 충청도 지방)에 살고 있었으므로 호학(湖學) 또는 호론(湖論)이라 칭하게 되었다. 인성과 물성이 같다고 주장하는 낙론은 대개 《중용》 경(經) 1장의 주희(朱熹) 주(註)의 “사람과 물(物)이 각각 그 부여된 바의 이(理)를 얻어서 건순오상(健順五常)의 덕(德)이 되었다.”에 근거해 인과 물이 모두 균등하게 오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인성과 물성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호론은 대개 《맹자》 생지위성장(生之謂性章) 주의 “이(理)로써 말하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품수(?受)가 어찌 물(物)이 얻은 바가 전(全)하리오?”에 근거해 사람은 오상의 온전함을 얻었지만 물(物)은 오상의 온전함을 얻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위의 두 구절뿐만이 아니고 인물성의 동이에 관해 주희는 여러 군데에서 어떤 때에는 인물성의 동을 주장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인물성의 이를 주장하였다. 이 논쟁은 기호학파(畿湖學派)에 속한 많은 학자들이 장기간에 걸쳐 깊이 있게 진행하였는데, 이러한 호락논쟁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이가 임성주이다. 이 논쟁은 그 자체로도 매우 철학적이면서 사회정치적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현대의 학자들로부터 그다지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 독자적인 연구 끝에 인물성상이론으로 전환하다 녹문은, 성은 본래 하나이므로 기질지성(氣質之性)이 곧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고 보고 기질지성을 해명하는 데에 노력하였다. 녹문은 이(理)의 보편성만을 본성이라고 하고 현실의 구체적인 사물의 성을 기질지성이라고 하면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은 서로 분리되며, 현실의 구체적인 사물과 분리된 본연지성은 공허한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에 녹문은 ‘인물성동론’을 주장했던 초기의 관점을 버리고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한 뒤 ‘인물성상이론’으로 전환한다. ■ 당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다 《녹문집》에는 예론에 대한 많은 의론이 실려 있다. 자세히 보면 녹문은 철저히 경전의 고증에 근거하여 자신의 예론을 주장하였다. 녹문은 소론(少論)의 중심 인물인 남계(南溪) 박세채(朴世采)의 황극탕평설(皇極蕩平說)을 비판하였고, 또한 노론의 거두인 송시열과 한원진의 예론을 비판하였다. 녹문이 활동하던 당시 조정에는 예론을 중심으로 당파 간에 매우 살벌하고 날카로운 대립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1779년(정조3)에 정언 이양재(李亮載)가 녹문을 탄핵할 것을 상소하였으나, 정조는 근거가 없다고 하여 받아들이지 않아 당쟁의 화를 입지 않았다. 녹문이 당쟁의 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순수한 학문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편견에 치우치거나 정치적 술수나 목적을 위하여 문장을 견강부회하였다면 한 번쯤 화를 당하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 《녹문집》의 구성과 내용 《녹문집》번역서는 모두 7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제1책과 제2책은 서(書), 제3책은 서(書)와 잡저(雜著)인 심경(心經), 소학(小學)에 대한 경의(經義), 제4책은 잡저로 논어(論語), 중용(中庸), 주역(周易), 대학(大學) 등에 대한 경의(經義), 제5책은 잡저인 한천어록(寒泉語錄), 옥류강록(玉溜講錄), 서연강의(書筵講義), 녹려잡지(鹿廬雜識), 산록(散錄)과 서(序), 기(記), 제6책은 제발(題跋), 명(銘), 잠(箴), 찬(贊), 제문(祭文), 애사(哀辭), 제7책은 묘지명(墓誌銘), 행장(行狀), 시(詩), 부록(附錄)이 실린다. 이번에 발간된 제1책과 제2책은 서간(書簡)만 수록되어 있다. 《녹문집》전체로 볼 때 편지글이 300편 이상으로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일반적인 문집의 체제에서는 시(詩)가 가장 앞에 수록되지만 저자는 시를 여기(餘技)로 여겨 힘을 쏟지 않았고 작품 수도 많지 않기 때문에 시를 문집 뒷부분에 수록하고, 저자가 심혈을 기울여 학문적 논쟁을 다룬 서간을 문집 앞머리에 수록한 것이 특이점이라 하겠다. 1책의 〈미호 김공에게 보내는 글 (與渼湖金公)〉등을 보면 임성주가 주장한 이기론, 심성론, 인물성동이론을 살필 수 있고, 2책의 〈김백고에게 답하는 글 (答金伯高)〉,〈이백눌에게 답하는 글 (答李伯訥)〉등에서는 녹문이 예론에 대해 논한 것을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