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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산책길에 나선다는 것은
1. 걷는다는 것에 관하여 2. 그중에서도, 산책에 관하여 3. 내 곁에 주어진 풍경에 관하여 4. 일상의 소중함에 관하여 5. 잠깐, 나의 산책 루트에 관하여 6. 욕심을 버린다는 것에 관하여 7. 목적이 없다는 것에 관하여 8. 현재에 머무른다는 것에 관하여 9. 깨어있다는 것에 관하여 제2장: 산책의 몇 가지 미덕들 1. 자유롭다는 것 2. 가볍다는 것 3. 또는, 긍정한다는 것 4. 개방된다는 것 5. 관조한다는 것 6. 분별하지 않는다는 것 7. 그리고,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 8. 평등하다는 것 9. 느릿느릿하다는 것 10. 고독하다는 것 제3장: 그래서, 산책하는 마음이란 1. 정갈함 2. 무덤덤함 3. 그리고, 서늘함 4. 리듬감 5. 후회하지 않음 6. 쿨함 7. 다정함 8. 차분함 제4장: 산책을 하면서, 나는 1. 밤거리를 자유롭게 2. 부초(浮草)에 관하여 3. 내게는 슬픈 스승의 날 4. 참을 인(忍) 세 번 5. 연예인과 ‘교감의 시대’ 6. 악동뮤지션 찬가 7. 고양이에 관하여 8. 햇살 가득한 일요일 오후에 9. 나문희처럼 살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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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 전 저 이집트 일대에 살았던 신비롭고 고혹적인 자태의 고양이들처럼, 저마다의 산책하는 시간 속에 담긴 은밀한 기쁨은 종이 위의 글자들 속에 머무르지 않고 또 어딘가로 슬그머니 빠져나가겠지만……. 그 기쁨을 다시 찾아내기 위해서 우리가 뭐 대단하게 요란을 떨 것은 없다. 우린 그저 대문을 열고,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좋은 음악을 귀에 꽂은 채 다시금 성큼성큼 선선한 공기와 계절의 흐름 속으로 걸어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서문」중에서 산책의 세계관에 성스러움은 없다. 산책하는 이의 마음속엔, 적어도 산책하는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고난을 무릅쓰고 반드시 들러봐야 할 먼 이역의 ‘어떤 공간’은 없다. 그래서 어쩌면 그의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은 ‘아주 조금씩’ 성스럽다. 저 반짝거리는 나뭇잎들과 붕붕거리는 곤충들과 또 매일매일 옅게 번져나가는 계절의 변화마저도. 자신이 데리고 꼬박꼬박 산책을 시키는 멍멍이의 활기찬 꼬리까지도. ---「제1장 그중에서도 산책에 관하여」중에서 그는 걷는 일을 사랑하고 있고, 때때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오직 앞만 바라보고 길고 긴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여행길의 어딘가에 정박해서, 다시금 자신이 사랑을 나눌 어떤 공간이나 관계를 발견한다면, 그때 그는 그 대상의 반경을 얼마간 걸은 후에 ‘그곳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가 여정을 멈춘 그곳이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아무리 먼 곳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어쨌거나 스스로 선택한 공간의 주위를 걸으며 자기 마음을 깊이 고르고 되짚은 후 ‘자신이 아끼는 어딘가로 다시 되돌아온다는 것.’ 그것이 산책하는 일의 소중한 본질일지도 모른다. ---「제1장 그중에서도 산책에 관하여」중에서 말하자면 우리들 모두가 하루하루 마주쳐나가는 ‘일상 속의 가능성’ 말이다. 내 일상에는 어떤 극적인 스토리도 없었지만, 나는 산책 코스에서 마주쳤던 그 평범한 풍경들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온 순간들의 힘을 느끼고 있다. 나는 그 ‘일상의 흘러들어옴’이 내게 선물해 준 육체적인, 정신적인, 또 실천적인 의미의 힘을 확실히 체감하고 있다. 나는 이젠 내게 너무도 익숙해진 저 거리의 분위기와 공기의 질감, 자연과 계절의 꿈틀거림이 주는 안정감이 내 살결 위에 ‘묻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나는 그러한 느낌을 내 영혼으로 꼬박꼬박 불어넣어 주는 나의 ‘생활의 루틴’을 믿고 있다. ---「제1장 일상의 소중함에 관하여」중에서 그러고 보면, 스스로 넉넉함을 느낀다는 ‘자족’이라는 말이 ‘스스로의 발’을 뜻한다는 것도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말 그대로, 나는 자유로이 이곳저곳을 거니는 ‘나의 두 발’을 통해서 여유로워지고 넉넉해질 수 있다. 이것은 복잡한 비유가 아니라 ‘산책’이란 글자 그대로의 예찬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산책하는 일은 매 순간 꿈틀거리는 내 안의 욕심과 의심을 버리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에게 만족하는 일과 같고, 산책하는 마음은 그처럼 욕심이 비워진 나를 토닥여주는 작은 위안이자 소탈한 격려와도 같다 ---「제1장 욕심을 버린다는 것에 관하여」중에서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인간이 ‘깨어있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관계를, 자신이 지나온 어떤 세계의 윤곽을 선명하고 형형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내가 깨어있다는 것은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공간처럼, 어두운 지점을 어두운 지점으로 남겨두고, 미지의 영역을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둔 채,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나 자신의 영원한 혼곤함과 ‘보이지 않음’을 홀연히 인정해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제1장 깨어있다는 것에 관하여」중에서 그 조건과 한계까지 포함한 내가, 곧 나였다. 내가 꿈꾸고 욕망했던 무언가가 아니라 그냥 지금 이 자리에서 숨 쉬며 걷고 있는 내가, 바로 나였다. 내 자유로움이 시작되는 지점은 하루하루의 생활과 멀리 떨어진 어떤 곳이 아니었다. 내 자유로움은 내가 마련한 나의 터전과 일상 속에 있었다. 아니, 있어야 했다. 언젠가는 또 벼락과 같은 계기로 영원의 시간 속에 숨 쉬는 신, 어떤 절대적인 존재를 만날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나는 오로지 내 ‘감각’과 ‘경험’을 믿고 있을 뿐이며 그게 내가 선택한 나의 진실함이라는 것 이제는 알고 있으니 말이다. ---「제2장 자유롭다는 것」중에서 발저처럼 산다는 것은 역시 너무도 슬픈 일일 테지만……. 발저의 삶과 그가 남긴 글은 우리에게 말해 준다. 이 험한 세계 속에서 어떤 알레고리가 되기엔 너무도 보잘것없다는 산책의 그 사소함과 가벼움이, 바로 산책하는 일의 가장 핵심적인 알레고리라는 것을. 산책하는 마음의 핵심이란 그것을 ‘진중한 미덕’의 알레고리로 만들고자 하는 모든 사회적 압력을 단호히 거부하는 데 있다는 것을.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과 잣대를 완강하게 거부하기 위해서 때때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깃털보다 더 투명하고 가볍게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제2장 가볍다는 것」중에서 아니, 산책하는 일은 어쩌면 조만간 힘을 내서 다시 한번 달려보겠다고 다짐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며, 동시에 ‘오늘은 이만하면 됐어.’라고 편안하게 긴장을 풀어버리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산책하는 마음이란 “너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소 된다.”라는 (가끔은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는) 가족 누군가의 잔소리를 끝내 정겹게 생각하는 것이고, 밥을 먹고 바로 소파에 벌렁 누워서 TV 드라마에 푹 빠져든 누군가를 슬며시 웃음을 지은 채 바라보는 일이며, 마치 정말로 소가 될 법한 일생을 살아가는 저 뚱뚱한 강아지와 고양이들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제2장 또는, 긍정한다는 것」중에서 LA도 별들도 피렌체의 별들도 파주의 별들도 다 같이 아름답겠지만, [라라랜드]의 세바스찬과 미아에게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에겐 낮의 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저 로맨틱하고 달콤한 밤의 장막이 걷힌 후, 대낮의 환한 햇살 아래에서 우리 주위를 둘러봐야 하는 시간이.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왔고, 우린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앞으로 어딜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 ---「제2장 분별하지 않는다는 것」중에서 나는 고독하지만, 동시에 나는 내가 아끼고 나를 아끼는 많은 사람과 함께 숨 쉬고 있다. 그가 내게 묻어 있고, 내가 그에게 묻어 있다. 어떤 면에서는 그가 나고, 내가 그다. 나는 그들과 떨어진 채 한편으론 여전히 고독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절대로 고독할 수 없는 어떤 존재다.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또 내가 그들을 기억하고 있으므로. ---「제2장 고독하다는 것」중에서 나는 나의 연약함을 똑바로 바라보는 동시에, 내게 주어진 한발 한발을 최선을 다해 내디딜 뿐이다. 나는 내가 선 이 자리에서 한순간에 저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뛰쳐나가진 못하리라. 하지만 나는, 적어도 내가 선택한 이 길에서 어딘가로 도망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좀 더 침착하고 정돈된 사람, 일상을 담담하면서도 빈틈없이 조각해갈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나는 끝내 내가 좀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믿는다. ---「제3장 정갈함」중에서 산책하는 사람은 자신이 보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열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는 이 세계의 중대한 진리를 발견한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대신 그는 저 이름 모를 들꽃의 색깔에, 골목길의 남루한 정경에, 허리를 굽힌 노인의 뒷모습에 시선을 뺏길 뿐이다. 그는 존재의 언어가 아닌 존재의 침묵 속에 깃든 묵묵한 증언을 믿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정당성을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고 이 땅에서 다만 열심히 살아내는 존재의 무게감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제3장 무덤덤함」중에서 어쨌든 산책이란 정말로 우리가 ‘가장 나이가 들어서까지’ 즐길 수 있는 마지막 야외 활동일 테니까. 너무 이르게 준비할 필요도 없지만, 또 적절한 나이에 적절한 습관을 들인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싶다. 오늘도 하늘에는 구름이 총총 드리워져 있었고, 나는 산책길에 잠시 멈춰서서 저 하늘을 바라보고 돌아왔다. 나는 단지 그렇게 하염없이 흘러가는 구름을 ‘지혜롭고 낙관적으로’ 내 안에 간직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혜롭고 또 낙관적으로…. 서늘하고 또 성실하게. ---「제3장 그리고, 서늘함」중에서 나는 그간 걸어온 것과 비슷하게 내 삶을 연주해 갈 것이다. 동시에 나는 과거와 닮았으면서도 조금씩 절묘하게 변주되는 새 리듬의 향연이 내 앞에 펼쳐질 것을 알고 있다. 모든 것은 새롭고도 반복되며, 반복되면서도 새롭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풍성해진다. 나만의 리듬은 내가 움직이는 한 끊임없이 흐르고 두툼해지며 내 영혼을 북돋아 주리라. ---「제3장 리듬감」중에서 그래서 나는 산책을 한다. 나는 맑은 밤하늘의 별들이 전해주는 온기를 느끼면서, 나를 죽음으로 끌어당기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면서 집 주위를 거닌다. 그 숱한 실패와 실망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끊임없이 솟아나고 있는 다정한 기운을 느끼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되새기며, 바로 그 사실이 우리가 저 먼 곳에서부터 타인과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상기시키는 원초적인 마음의 근원임을 되새기며. ---「제3장 다정함」중에서 나도 갓 스물이 되던 때가 있었고, 무언가를 ‘억지로’ 끌어내지 않아도 내 안에 온갖 감정들이 가득 흘러넘치던 때가 있었다. 나는 이제 늙고 꺾였지만, 그런 자연스러움이 우리에게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삶의 한 단면인지를 기억하고 있다. 악뮤를 들으면서 늘 그런 찡함에 젖곤 하는 것 같다. 그이들은 나보더 덜 살았지만, 더 많은 것을 간직하고 있는 존재다. 우리 뒤에 살아갈 모든 아이들이 그럴 것이다. ‘삶은 반복되지 않는다’는 말은 틀렸다. ‘삶은 반복된다.’ 단 내가 아닌 그 누군가에게서. 쓸데없이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을 억누르지 않고, 환하게 웃을 줄 알며, 자기 재능을 꽃피울 줄 아는 누군가에게서. ---「제4장 악동뮤지션 찬가」중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찰스 디킨스, 존 케이지, 살바도르 달리 등등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 또한 유명한 고양이 집사였다. 그중에서도 미국 작가 찰스 부코스키는 『고양이에 대하여(On Cat)』라는 에세이집을 낼 만큼 고양이를 끔찍이 아꼈다. 술과 도박에 탐닉하며 자신의 영혼과 미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쳤던 부코스키는, 문득 자신의 곁에서 고독과 슬픔, 신산한 삶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텨내는 고양이들을 발견한다. 고양이는 곧 훌륭한 문학적 메타포가 된다. 그의 글들에서, 고양이는 곧 상처받은 부코스키 자신과 같다. ---「제4장 고양이에 관하여」중에서 이스라엘에선 매주 금요일 저녁 모든 식구가 모여 기도를 올린 후 함께 저녁을 먹는다고 한다. 한 주에 한 번씩은 꼭 밥을 같이 먹으며 가족 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관습이란다. 물론 좋은 규율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슈퍼마켓 따님의 ‘찡긋거림’과 어머니의 ‘구시렁거림’을 보며, 난 그런 ‘규칙’은 잠시 제쳐두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매일매일 오래도록 식사를 함께 하면서 가끔씩 서로의 얼굴 표정에 드러나는 자잘한 마음결을 볼 줄 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얼마나 자연스럽고 귀한 규칙인가. ---「제4장 햇살 가득한 일요일 오후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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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산책’이라는 취미를 왜 그리도 홀대했던가?
가장 가볍고 사소해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할지도 모르는 ‘산책의 비밀’에 관하여 ‘산책’은 많은 사람들이 아끼고 있는 멋진 취미이다. 우리는 모두 잠깐의 짬을 내서 ‘동네 한 바퀴’를 어슬렁거리는 일이 전해주는 저 잔잔하고도 놀라운 즐거움을 알고 있다. 산책하는 시간은 우리에게 언제든 활기차고 소중한 시간으로 느껴지게 마련이며, 이렇듯 산책하는(혹은, 산보하는) 행위는 시대와 지역,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참으로 보편적인 친화력과 담백한 미덕을 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산책하는 일이 이렇게 신선하고 멋진 에너지를 전해주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금껏 ‘산책’이라는 일의 의미와 중요성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산책이란 취미는 너무도 가볍고 사소해서, 우리에게 별다르게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여겨지곤 했던 탓이다. 수많은 사람이 틈틈이 산책을 즐기면서도, 산책하는 취미에 더없이 많은 것을 빚지고 있으면서도 보통 산책을 자기 하루의 가장 중요한 일과라고 생각하는 법이 없었다. 왜냐면 산책이란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아무런 목적도 준비도 절차도 필요치 않으며, 누구든 무심하게 즐길 수 있는 단순한 일인 법이니까……. 『산책하는 마음』은 바로 이런 산책의 미덕, 그 은밀하고도 미묘한 미덕에 주목하고 있다. 박지원 작가의 인문 에세이 『산책하는 마음』은 가장 일상적이어서 가장 극적이며, 또 우리 모두에게 가장 소중할지도 모르는 ‘산책의 비밀’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이 책은 우리가 산책길을 나설 때마다 어렴풋이 피어오르는 우리 마음속의 애틋한 비밀들을 조곤조곤 파헤친다. 우리 곁에 흔하고 자연스레 존재하면서, 누구든 쉽게 누릴 수 있는 '산책의 비밀'들을. 산책을 ‘주연’으로 삼은 본격적인 인문 에세이 ‘산책하는 마음’이 지닌 27가지 빛깔들 박지원 작가의 『산책하는 마음』에선 정말로 ‘산책’이 주인공이다. 사람들은 지금껏 보통 산책보다 더 진지하고, 중요하고, 전문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일들에 눈을 뺏긴 채 이 고상한 취미를 차분하게 음미하려 한 적이 없었다. 전 세계인의 가장 보편적인 취미이면서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여백의 시간을 이토록 홀대했다니…….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어딘가를 걷는 것, 즉, ‘걷기’에 관한 실용서나 철학서는 이미 많이 나와 있고, 또는 산책이 하나의 모티브가 된 훌륭한 소설이나 에세이들도 많다. 그렇지만 ‘산책하는 일’과 ‘산책하는 마음’ 그 자체를 주연으로 삼아서, 바로 이 취미만이 지닌 개성과 미덕,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냈던 책은 쉽게 찾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산책은 정말 가벼운 일이지만, 어쩌면 그 가벼움과 자유로움, 일상성의 덕목들을 통해서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무언가가 될 수 있는 건 아닐까? 『산책하는 마음』은 우리가 단순히 어딘가를 걷는 일이 아니라, 또는 뛰어난 유적지나 명소를 찾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삶의 반경을 어슬렁어슬렁 잠시 산책하는 일’이 지닌 매력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속속들이 이야기한다. 즉, 『산책하는 마음』은 사람들이 왜 이토록 산책하는 일을 좋아하는지,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근본적인 에너지와 의미가 무엇인지를 총 27가지 인문적 키워드의 챕터를 통해서 차근차근 되짚어보는 책이다. 자신의 곁에 주어진 풍경과 일상을 아낀다는 것, 욕심을 버리고 현재에 머무른다는 것, 자유롭고 가벼우며 주위의 세계를 향해 개방된다는 것, 삶의 리듬감과 다정함과 차분함의 덕목들을 잃지 않는 어떤 태도……. 이처럼 『산책하는 마음』은 산책이라는 취미가 지닌 미덕들, 산책하는 이의 마음속에 깃드는 마음의 무늬들을 세세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삶이 담긴 에세이인 동시에 ‘인간의 마음’을 인문학적으로 다룬 교양서의 성격 또한 짙게 띠고 있다. 『산책하는 마음』에는 로베르트 발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빅토르 위고, 소동파, 무라카미 하루키, 알베르토 자코메티, 칼 구스타브 융, 대니얼 데닛,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안톤 체호프와 천상병, 그리고 건축가 김중업과 조성륭 등등 ‘산책하는 미덕’을 둘러싼 수많은 문학과 철학, 인문학의 성취들이 맛깔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산책하는 시간은 왜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걸까? 이 소박한 일이 인간에게 큰 힘을 주는 이유는 뭘까? 박지원 작가에 따르면, 산책은 삶의 ‘작고 부드러운 공백’과 같은 것이다. 산책은 자유롭고 또 가벼운 행위이다. 자유롭고 가벼우므로 이 일은 빠르게 질주하는 목적 과잉의 세계에서 우리를 구출할 수 있다. 산책한다는 것은 달리는 일처럼 자신의 고통을 매 순간 부정하며 이 세계를 스쳐 지나가는 일이 아니다. 산책은 자신의 주위 풍경과 인연들을 정겹고 애틋하게 생각하면서 그것을 향해 빙긋 웃어주고, 자기 자신과 타인들의 삶을 넉넉하게 긍정하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산책은 나의 자아를 꾹 움켜쥐려는 폐쇄적인 인간관이 아니라, 이 세상과 자연을 향하여 자신을 활짝 열어놓는 개방적 인간관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넉넉함과 느릿느릿함의 미덕을 통하여, 산책하는 사람은 평화로운 마음, 분별하지 않는 마음으로 이 세계를 조용히 관조하는 습관을 지닐 수 있다. 즉, 어슬렁어슬렁 자기 삶의 가까운 반경을 걷는 이는, 산책이라는 작은 공백을 통하여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매끈하고 완벽한 것만 좋아하던 버릇을, 세상의 사물들을 미추(美醜)와 호오(好惡), 우열의 그림자로 나누어보던 습성을 잠시 내려둘 수 있다. 그래서 산책하는 이에게는 이 세상의 온갖 존재를 그 자체로 긍정할 수 있는 겸허함이 깃들 수 있으며, 그러한 겸허함은 자기 자신과 이웃의 얼굴을 다시 한번 명징하게 들여다보는 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동시에 산책은 정갈하게 쌓이는 ‘시간의 힘’을 믿는 소박한 취미이기도 하다. 산책하는 사람은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육신과 영혼을 ‘소소하게’ 점검하고 반성한다. 산책이란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빚어지는 하루하루의 세속적인 삶에 충실하면서, 바로 거기에서부터 조금씩 정돈하고 조금씩 나아가겠다는 소박한 의지의 표현이다. 산책이란 걷는 일의 리듬감을 통하여 자신의 삶과 세계를 가로지르는 본연의 자연스럽고 쾌활한 리듬을 재확인하는 일이고, 결과적으로는 이 세계를 다정다감하고 차분하며 강인하게 살아가기 위한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일이다. ‘헤비산책러’ 출판인들이 진행한 ‘산책 프로젝트’ 산책하는 일을 아끼는 모든 이들을 위한, 한 권의 책 박지원 작가는 파주출판도시 인근에 살고 있는 작가 겸 출판인이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잡지 기자와 서점 MD, 출판사 에디터 등을 거치고 지금은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2018년 4월 『아이돌을 인문하다』라는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 도서를 집필, 출간했던 그는 2년여간 파주시 문발동과 교하동 일대를 구석구석 산책하며 이 책을 준비했던 바 있다. 『산책하는 마음』은 2018년 11월 크라우드 펀딩 채널인 텀블벅 프로젝트를 통하여 제작된 책이다. 150명 남짓한 후원자들이 책의 기획 의도를 듣고 선뜻 도서 출간 펀딩에 참여, 130퍼센트에 육박하는 펀딩 달성률을 보이면서 무난하게 출판 펀딩에 성공했다. 도서출판 사이드웨이를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준비했던 출판인들 모두 다 자기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일을 즐기는 ‘헤비산책러’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책을 비롯한 프로젝트 전반의 디자인을 맡은 석윤이 북디자이너는 ‘코리아 디자인 어워드’ 그래픽 부문상, ‘2016 올해의 출판인상 디자인 부문상’을 수상하고 현재 북디자인, 그래픽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터 전반에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디자이너다. 산책을 좋아하는 작가와 편집자, 디자이너가 모여서 산책하는 이의 마음속에 차오르는 기쁨을 한 권의 책으로 표현하고자 뜻을 모았고, 그 프로젝트의 결실이 바로 『산책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이 책에는 산책하는 일에 대한 박지원 작가의 이런저런 성찰적인 이야기가 꼼꼼하게 풀어져 있고, 그가 산책하는 구체적인 공간들이 소개되고 있으며, ‘산책하는 마음’이 훌륭하게 담겨있는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모티브들이 각 챕터마다 정갈하게 배어 있기도 하다. 산책하는 시간의 에너지를 알고 있고, 그 일을 진심으로 즐기고 계신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볼 만한 책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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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독서와 비슷하다. 걷기는 읽기만큼 잔잔한 행위이다.
나는 차가 없고 웬만하면 걸어 다니며, 매일 긴 시간의 산책을 한다. 걷기라면 나름의 일가견이 있는 셈이다. 세상은 얼핏 시끄러워 보이고 재밌게만 사는 이도 많은 것 같다. 우리 삶도 이따금 비바람이 치고 너울도 일고 있지만, 결국 대개는 잔잔하다. 『산책하는 마음』은 그런 세상의 풍경을 걸으면서 바라보는 느낌과 같은 책이다. 그러고 보면 ‘산책’을 얘기하는 ‘책’만큼 잘 맞는 궁합도 없다. 이제는 가끔 이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산책해야겠다. ‘읽는 맛’과 ‘걷는 맛’이 실은 얼마나 닮아있는지를 되새기면서. - 신견식 (『콩글리시 찬가』저자 · 번역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