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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
어떤 남자가 나를 따라왔다 - 김서영 / 피해의식이 아니다, ‘피해의 경험’이다 - 안현진 /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 - 이세아 / 왜 찍히고도 사랑이라고 했나? - 홍승희 / 클리토리스 감수성 - 하예나 / 우리는 소라넷을 아웃시켰다 - 최나로 / 더 더러워지는 중입니다 Chapter2 더 이상 개념녀가 되지 않겠다 - 홍승은 / 계속 말하겠습니다 - 달리 / 나는 너다, 너는 우리다 - 조남주 / 딸, 엄마, 페미니스트 - 파랑 / 괜찮아, 너의 이야기를 해 - 국지혜 / 메갈리아, 워마드 그리고 헬페미 Chapter3 가만히 있지 않기로 했다 - 정박미경 /나는 페미니스트 힝크족입니다 - 변경미 / 홀로인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 조박선영 / 밥상 뒤엎은 년이 다시 차리는 거여 - 박지아 / 운동권 페미니스트의 꿈 그리고 승리 - 김영란 / 이프 마케터의 깃털만큼 가벼운 고백 - 전현경 / 나는 매일 페미니즘을 목도한다 - 이진옥 / 탄성적인 페미니스트 Chapter4 페미니즘 콤플렉스가 있었다 - 박미라 / 우리는 왜 그토록 불화했는가 - 권혁란 / 여자에게 문학을 가르쳐 주겠다고요? - 제미란 / 가위 리추얼, 나는 자유를 입는다 - 김미경 / 페미니즘은 내 인생의 나침반 - 황오금희 / 어쩌다 페미니스트 - 유지현 / 아름다운 여성주의자로 사는 것이 복되도다 Chapter 5 미친년이란 시간여행을 하는 사람이야 - 고은광순 / 62세 내 인생의 페미니즘 - 유숙열 / 석삼년의 비밀 놈들이 나를 미치게 했고, 엄마의 재혼이 나를 페미니스트로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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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인트 하나. 20대부터 60대까지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지형도
현재 2030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페미니즘 이슈를 챕터1 ‘어떤 남자가 나를 따라왔다’와 챕터2 ‘더 이상 개념녀가 되지 않겠다’에서, 지난 20여 년간 대한민국 페미니즘의 변화와 생존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Capter3 ‘가만히 있지 않기로 했다’와 Chapter4 ‘페미니즘 콤플렉스가 있었다’에 담았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 ‘미친년이란 시간여행을 하는 사람이야’에서 50대와 60대 페미니스트가 전 일생을 걸쳐 겪어낸 페미니즘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 포인트 둘. 페미니스트들이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면서 겪는 거의 모든 경험을 이야기한다. ● 한번쯤 이유 없이 들어본 욕설, “씨발년아 똑바로 보고 다녀!” 나를 페미니스트로 만든 건 할머니, 엄마, 아빠, 동생, 친척, 친구, 애인, 동료, 선생님, 선배, 후배, 이웃들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 영화감독, 미술작가, 소설가, 시인들이다. 택시기사, 버스기사, KTX 승무원, 항공사 승무원들이다. 카페 직원, 서비스센터 상담사, 청소노동자, 식당노동자들이다. 청량리, 미아리, 신사동, 시골 다방, 작은 섬의 유흥업소 여성들이다. 심지어 지하철에서 지나가다 나를 툭 치고 “씨발년아 똑바로 보고 다녀!”라고 욕했던 일반 남성 시민들도 나의 페미-파워에 훌륭한 자양분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니 우리는 이토록 페미니스트 양성소와 같은 사회, 국가, 행성에 살고 있다!(할렐루야?) - 나는 너다, 너는 우리다, 지글스 편집장 달리의 글 중에서 ● 출산과 가사, 육아노동의 굴레 아이에게는 분명 아빠가 있고 가족이 있고 이웃과 사회와 국가가 있는데 왜 육아에 따르는 모든 물리적 정신적 노동은 엄마인 나만의 몫인지 그때는 고민할 겨를도 없었다. 나는 가사 및 돌봄 노동에 재능과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그 일을 떠맡은 상태였고, 못하는 만큼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오로지 나에게만 의지하고 있는 생명 하나가 위태로워질 상황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최선을 다했다. 습관대로 성실했다. 그리고 많이 아팠다. - 딸, 엄마, 페미니스트, 『82년생 김지영』 작가 조남주의 글 중에서 ● 우연히 살아남은 여자들의 두려움과 용기 지난 해 5월 18일, <강남역 10번출구>에서 진행된 자유발언대에서 처음으로 많은 이들 앞에 내가 당한 성폭력에 대해 말할 수 있었다. 그러자 또 다른 증언이 이어졌다. 이후 자유발언대에서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증언의 행렬에 동참했다. 당시 온라인에는 자유발언대에 참가자들의 사진이 게시글로 올라와 품평을 당하는 한편, 각종 위협을 암시하는 댓글이 달렸다. 자유발언대에 참가한 이들은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벌벌 떨면서도 참가했다”며 “다시 사건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살아남은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야 한다”고 발언했다. 우리는 위협을 가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함께 항의하고, 서로를 지켜주며 고백을 이어갔다. 그렇게 ‘나도 그랬어’라는 고백은 ‘넌 혼자가 아니야’라는 고백이 되어 돌아왔다. 두려움이 용기가 되어 돌아온 순간이었다. -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 <강남역 10번출구> 활동가 안현진의 글 중에서 ● 지긋지긋한 포르노와 삽입섹스에 대해… 그러나 나는 한동안 파트너와 섹스할 때 포르노감수성에 나를 끼워 맞췄다. 흥분하려고 남자친구와 함께 포르노와 야동를 보곤 했다. 커다란 화면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체위를 따라하면서. 포르노 감수성을 좋아하고, 거기서 흥분을 느낄 수는 있다. 그러나 모두 야동에서 섹스를 배우니까 똑같이 어디어디를 애무하고 삽입하고 사정하고 끝나버리는 섹스를 한다. 이상한 일이다. 먹는 음식도 매일매일 다르고, 핸드폰도 이렇게 다양한 세상인데 왜 섹스는 포르노 감수성으로 획일화되어있을까. 그리고 나는 왜 포르노 감수성에 나의 감각을 끼워 맞추려 했을까. 나는 파트너와 침대에서 섹스 후 집으로 돌아와 혼자 자위를 하면서 오르가슴을 따로 챙겼다. 나의 오르가슴은 침대에서도 소외되었다. - 클리토리스 감수성, 페미니즘 아티스트 홍승희의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