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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전 선생의 회고록을 발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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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鉉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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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전 선생은 수묵담채의 문인화뿐만 아니라 채색공필화工筆畵에도 남다른 실력을 지니고 있는 특별한 분이다. 선생은 애초에 이당以堂 김은호殷鎬(1892-1979) 밑에서 채색공필화라고 할 수 있는 북화풍 인물화로 그림공부를 시작하였고 이것으로 「선전鮮展」(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 약칭)에서 최고상까지 받은 분이기 때문에 일찌감치 이쪽의 화법에 통달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해방과 더불어 일제 화풍의 청산을 통감하고 남종 문인화에서 그 해법을 찾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문인화의 전범典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동양화의 생명이랄 수 있는 선조線條와 묵운墨韻을, 그리고 여백공간을 한껏 살리면서도 형체의 단순화와 직절화直截化라고 하는 현대 조형양식을 도입함으로써 동양화에서 말하는 골법骨法적인 방법으로 신선하고도 새로운 이른바 월전화풍을 창출해 낸 것이다.---p.41~42
총체적으로 월전 선생의 작품이 우리에게 늘 감명을 주는 것은 현대라고 하는 이 복잡한 도시문명의 속진俗塵 속에서 청정한 가을하늘의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근대화라고 하는 바람을 타고 몰아쳐 온 저 번잡한 소란, 혼돈과 불안에 너무 시달리고 있고 지쳐 있다. 앞이 안 보이는 무질서가 정신분열증을 유발하는 세태에서 선생의 작품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정서(마음)를 되찾게 하고 명상의 정적을 느끼게 한다.---p.41~42 가끔 선생님을 뵙고 말씀을 나누면 늘 우리나라 화단의 혼란스런 상황에 걱정의 말씀을 하시곤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혼란스런 우리 화단의 상황에서 한국화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월전미술상을 제정하시고 동방예술연구회를 만드시어 후학들에게 좋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심으로써 한국화단의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셨다.---p.56 신선도神仙圖에 보면 신선과 복숭아를 곁들인 그림이 많은데, 월전 선생님께서는 평생 신선 같은 삶을 사신 분이셨습니다. 선생님은 비록 세상에서 다시는 뵈올 수 없지만 늘 저의 곁에 계십니다. 생전에 이루어놓으신 선생님의 작품과 손수 모으신 유물, 그리고 선생님의 고고한 인생철학은 이천에 세워질 미술관을 중심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영원히 존속될 것입니다.---p.59~60 자기에게 결핍된 새로운 아름다움을 날카롭게 느끼고, 깊이 이해하고, 어느덧 내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비상한 능력, 이것이 월전 화백의 뛰어난 천부적 재능이요, 오늘의 대성을 이룩한 요인인 것이다. 그의 중반기까지의 극세극채極細極彩의 인물화는 그 스승 이당을 능가할 정도였고, 그의 화조 역시 오원吾園 이래의 두드러진 수준이었으나, 그 위에 다시 현대적 화법이 조화된 오늘의 그의 화경畵境은 과연 우리나라 미술사상의 획기적인 대수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p.80 한국의 현실은 작가에게 많은 고난을 강요하는데 선생은 한번도 굴하지 않고 의연한 자세로 작가생활을 계속해온 데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경의를 표하고들 있다. 평생 화실을 떠나지 않은 분이고 쉬고 싶어도 화실에서 쉬겠다는 분이다. 늘 화실에서 작품에 열중하고 때로는 사색에 잠겨 새로운 화상을 찾기도 하며 세월을 관조하는 생활이다. 헛되이 세속의 번잡스런 일에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으며 곧고 맑은 정신생활을 영위하는 분이다. 6.25 동란으로 말미암은 나라의 손실은 막대한 것이어서 휴전 이후 복구 건설에 온 국민이 주력한 결과 근래에는 많은 진전을 보여 나라의 살림도 커졌고 해외 진출 또한 각 분야가 다 활발해졌다. 특히 5.16 이후 눈부신 발전이 있어서 한때는 화계에도 관심이 많이 쏠린 적이 있었다. 따라서 원로급에 대한 대우 등에 대해서도 시종 꿋꿋한 자세로 원로작가의 풍도를 지켜 왔다. 헛되이 매명賣名만을 일삼는 작가 정신이 결여된 이들에 대해서 몹시 마땅치 않게 여겼으며 후진들에게도 이런 행위가 없도록 당부하시곤 했다.---p.86~87 월전의 작품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정신을 담은 격조 높은 문인화이다. 화제와 그림이 어우러져 생략과 묘사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 작품들은 월전만의 한 장르를 확립시켰다는 점에서 그 업적을 높이 살 만하다. 월전 작품에서 두드러진 미적 특징은 평범한 사물을 간략하고 확연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과 운필의 격조와 여운이다. 이러한 격조와 여운은 현실적인 인식과 시대상을 화면에 반영하면서도 대상과 공간의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지적인 화면을 연출한다.---p.133 장우성은 정신성을 망각하고 외형으로만 표현하는 그림은 문인화가 아니며 문인화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정신이고 격조라고 거듭 주장했다. 정신주의의 입장에서 남화를 옹호한 그에게 있어서 남화는 주관적인 정신성이 그 핵심이다. 그의 문인화는 간결함 속에 선조가 살아있고 정신과 격조가 있는 전통을 따르고자 하며 무엇보다도 화제가 돋보인다. 그림과 화제는 모두 그가 추구하고 이상화했던 존재에 대한 연모로 가득하다. 급격한 시대적 변화와 문인이 사라진 시대, 근대화의 충격 속에서 갈피를 찾지 못하고 문화적 정체성이 흔들리며 혼돈과 갈등이 거듭되는 과정 속에서 그가 부여잡고 의미를 부여했던 세계는 문인들의 정신적 세계였다. 그는 전통사회에서 문인들이 즐겨 그렸던 소재를 다시 반복해서 이를 자신의 내면과 정신을 표상하는 매개로 거듭 다루었다. 따라서 그 소재들은 결국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자 그가 지향하는 존재의 표상이었다. 그 존재란 결국 조선시대 사대부 문인들이었다. 그는 자신을 그 존재와 부단히 동일시했던 것이다. 그가 그린 그림 대부분이 그러한 존재의 투사로 아득하다.---p.161 월전 장우성은 격조 높은 문인화 계열에서 많은 사군자를 다루고, 한편 충무공 이순신 장군 초상 등의 인물화에서 날카로운 능력을 보여준 한국화단의 중진重鎭이다. 동양의 선비가 가지고 있는 깔끔한 결백성이 그의 체질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격조와 더불어 간결과 요약에 있다. 따라서 그의 화면은 물체의 충실감보다는 그 물체의 적당한 배치와 그로 인하여 생기는 공허공간. 즉 여백이 큰 작용을 하고 있다. 이 여백의 사상은 동양화에서는 제일 중요한 특질로서 공간개념을 크게 둘로 나누어서 충실공간과 공허공간으로 나눈다면, 손쉽게 알아볼 수 있는 충실공간도 중요하지만 자칫하면 소홀하기 쉬운 공허공간에 더욱더 뜻을 두는 것인데, 이것이 곧 월전 작품의 특질이다.---p.251 월전 장우성은 한 예술가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목을 두루 갖추었다. 동양에서는 이상적인 문인화가상을 가리켜 삼절이라 했다. 삼절이란 시ㆍ서ㆍ화에 고루 능할뿐더러 이들 세 분야의 예술적인 성취가 정점에서 통합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경우를 말한다. 이로써 보면 월전은 이 시대의 삼절이다. 시와 글씨와 그림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한 몸인 것처럼 결속되어 있기에 그렇다. 어려서부터 닦은 한학으로 시를 짓는 일이 자유로울 정도이다. 한문공부만으로 시를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란 필시 문학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화제의 대부분이 자작시라는 점은 화가이기 전에 이미 문인임을 말해준다. ---p.3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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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국화의 경지를 개척한 한국화가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한국 현대화단의 큰 별 월전 장우성 선생이 2005년 2월 28일 타계한 지 7년이 지났다. 2012년은 선생의 탄생 100주년 되는 해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76년~2011년 사이에 발표된 선생에 관한 35인의 글을 모아 회고록 『월전을 그리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1부는 2005년 월전 선생이 타계하신 후의 추모의 글로 이열모 등의 제자들과 동방예술연구회 회원들의 글이 주로 실려 있다. 제2부는 회고의 글로 김동리, 박노수, 정중헌 등 주요 인사들의 글을 모았다. 제3부는 국내외 여러 평론가들이 쓴 생전 전시의 서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1980년의 「프랑스 세르뉘쉬미술관전」, 「독일 쾰른 동아시아박물관 초대전」, 1988년의 「일본 세이부미술관전」, 200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장우성ㆍ중국 리커란전」의 서문, 그리고 2010년 가을 이천시립월전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장우성ㆍ대만 푸쥐안푸전」의 소논문 2편, 2011년 봄에 동 미술관에서 개최된 「장우성ㆍ박노수 사제동행전」의 소논문 3편 등이 실려 있다. 제4부는 논평의 글로 월전의 예술정신과 작품세계에 관해 깊이 있게 분석한 글들을 모았다. 장우성 선생을 곁에서 지켜본 지인들의 회고를 통해 세상의 혼돈과 변화, 잡스러움 속에서도 고고하게 자신만의 전통적 정신세계를 지켜 가고자 했던 문인화가의 내면세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그가 남긴 작품 수십 점과 그의 제자 박노수의 작품도 함께 엮어 책의 운치를 높이고, 작품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책을 구성하였다. 부록으로는 월전 장우성의 생애를 기존의 미술사 자료, 신문기사 등을 통해 보완하여 연보를 수록함으로써, 앞으로 월전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거나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