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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시작하는 말 첫째 마당 : 출애굽 이야기 첫째 마디 : 바벨탑과 떠돌이 둘째 마디 : 족장들의 이야기 셋째 마디 : 출애굽 이야기 (1) 히브리인의 이야기 (2) 모세와 출애굽 사건 (3) 야훼와의 해후와 출애굽의 기적 (4) 광야에서 맺은 계약 (5) 가나안 정착 (6) 새 공동체의 특징 (7) 탈출공동체가 이룩된 과정 둘째 마당 : 다윗의 바벨탑과 갈라진 두 왕 첫째 마디 : 다윗 왕조에 이르기까지 둘째 마디 : 다윗의 등극 과정 셋째 마디 : 유대 왕국의 예언자들 (1) 이사야 (2) 미가 선지자의 예언 (3) 개혁을 하려고 한 왕들의 한계 둘째 마당의 정리 셋째 마당 : 출애굽 전통을 되살린 북왕국 이스라엘 1. 엘리야 2. 아모스 3. 호세아 4. 예레미야 5. 에스겔 셋째 마당의 정리 넷째 마당 : 제2 이사야의 환각 첫째 마디 : 제2 이사야의 환희에 찬 노래 둘째 마디 : 서글픈 예루살렘 재건 전통 셋째 마디 : 제3 이사야의 외침 (1) 귀환공동체의 혼란과 제3 이사야 넷째 마당의 정리 다섯째 마당 : 새벽을 알리는 계명성 첫째 마디 : 예언자 요나의 이야기 둘째 마디 : 모압 여인 룻의 이야기 셋째 마디 : 선민주의를 탈피한 야훼의 종의 노래들 (1) 첫째 노래 (2) 둘째 노래 (3) 셋째 노래 (4) 넷째 노래 다섯째 마당의 정리 구약 전체의 두 흐름 여섯째 마당 : 바벨탑과 갈릴리 탈출공동체 첫째 마디 : 예수의 출신 둘째 마디 : 예수가 이긴 시험들 (1) 첫째 시험 (2) 둘째 시험 (3) 셋째 시험 셋째 마디 : 예수의 선교 (1) 갈릴리 청년 예수의 제1성 (2) 예수의 선교 1. 물(物)의 공유 2. 타락한 유대교를 배격 3. 권위주의와 힘의 철학을 배격 4.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비밀 5. 예수님의 교육학적인 이해 6. 하느님 나라란? 7.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문 일곱째 마당 : 빗나간 대망공동체들과 오늘의 도전 첫째 마디 : 빗나간 두 대망공동체 둘째 마디 : 곁길로 치닫는 교회 셋째 마디 : 산업 문화와 교회 맺는 말 발문 -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
文東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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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언제나 떠돌이들의 편이셨다
민중신학의 핵심 주장은 하느님이 언제나 약자의 편이라는 것에 있다. 그래서 민중이 주체가 되어 선도하는 역사 진보의 이면에는 하느님의 뜻이 있다고 말한다. 민중신학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해방신학의 형태로 나타나 남미 역사에 큰 영향을 주었고, 한국에서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 신간 [바벨탑과 떠돌이]의 저자 문동환은 책에서 그러한 민중신학의 전통을 긍정하고, 그 성과를 인정한다. 그러나 기존 민중신학에 대해 민중이 어떻게 해서 역사의 주체가 되고 역사 진보를 선도할 수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곧, 민중의 주체화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중신학의 이른바 민중 개념에 대해서도 비판을 한다. 지금까지 민중신학이 민중 개념에 대해 제대로 규명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또 민중신학이 민중을 기존 제도에서 자기 몫을 찾는 그러한 존재로 이해하기도 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오랜 세월 성경을 연구해온 저자는 성경에 다시 천착해 떠돌이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다. 권력의 상징인 바벨탑이 떠돌이를 양산했는데, 하느님은 바로 그 떠돌이를 통해 자신의 새 내일을 창출하려 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 민중신학자들의 과오는 민중의 개념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한 것이다. 성서에서 새 역사의 주인공은 떠돌이들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지 못한 것이다. 동시에 그들이 지향해야 하는 새 역사가 어떤 것이며 어떻게 그 역사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인지를 밝히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자본주의 산업 문화가 극성을 부리는 오늘날 전 세계를 통하여 떠돌이들이 양산되고 있다. 물론 한국에도 아무 소망이 없는 밑바닥 사람들이 있다. 그들도 한국 사회에서 아무 소망이 없는 떠돌이라는 것을 명확히 깨닫고 새 내일을 갈망하면서 아우성을 칠 때 새 내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 ‘시작하는 말’ 중에서) 저자는 떠돌이 문제가 성경의 중심 의제라고 말한다. 기존 민중신학의 민중 개념이 체제 내적이고, 다소 정적인 성격이 있었다면, 저자의 떠돌이 개념은 보다 급진적이고, 체제 자체에 대해 저항적이며, 탈주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민중이 단지 가진 자들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웠다면, 떠돌이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골짜기 자체를 메우고 새로운 동산을 건설한다. 이는 저자의 떠돌이신학이 기존 민중신학의 발전적 계승이자 심화임을 의미한다. 민중신학이 어두웠던 지난 시기 민중의 투쟁을 촉구한 것과 마찬가지로, 저자의 떠돌이신학 역시 자본과 권력이 판을 치는 오늘날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그 어조는 더 단호하고, 근원적이다. “그러기에 하느님이 창조하신 땅으로 탈출해야 한다. 거기에서 땅을 갈아 소출을 서로 나누어 서로 섬기고, 용서하는 환희에 찬 에덴동산을 이룩해야 한다. 모두가 더불어 기뻐하고 보람을 느끼는 생명 문화를 창출해야 한다. 그래서 어두운 세상에 등불이 되어야 한다. 삶의 진미를 맛보게 하는 삶을 창출해야 한다. 이것이 누룩처럼 확산되고 산 위에 세운 성처럼 우뚝 서서 온 인류에게 새로운 소망을 줘야 한다.” (/ ‘일곱째 마당: 빗나간 대망공동체들과 오늘의 도전’ 중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출애굽 탈출공동체의 경험을 모델 삼아, 그들이 어떻게 제국에 맞서 싸웠었고, 그러나 이후에 왜곡이 되어 파멸하고 말았는지를 통렬하게 보여준다. 이는 문제의 핵심이 바벨탑의 논리 그 자체에 있는 바, 다시 말해 권력의 속성 자체, 인간 이기심의 속성 자체, 탐욕으로 귀결되고 마는 지금까지의 민중 투쟁사의 뼈대 자체가 극복의 대상임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곧 저자가 책의 모든 페이지를 관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벨탑의 논리, 바벨탑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한 어떤 투쟁도, 어떤 민중의 실천도 악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떠돌이로 칭한 자들, 즉 억압받고, 고통받고, 착취당하고, 멸시당하고, 힘겨운 삶을 겨우 인내하고 있지만, 하느님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하느님이 진정 역사 진보와 변혁의 맹아로 인정한 그들이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곧 바벨탑의 논리를 근본적으로 거부하고, 기득권자들의 권력을 단지 승계하거나 탈취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움직임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떠돌이들의 탈주로부터 오늘날의 어려운 세상과는 다른 생명공동체, 평화공동체를 꿈꿀 근거가 생긴다. 저자는 바로 이 근거를 바탕으로 새로운 출애굽이 일어나야 함을 역설한다. 바벨탑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新세계와 新공동체의 비전을 지닌 지구적 운동의 촉발을 촉구한다. “이제 새로운 출애굽 사건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 3000여 년 전에 이집트에서 일어났던 출애굽 사건이 재생되어야 한다. 2000년 전에 갈릴리에서 일어나 지중해 연변에 확산되었던 하느님 나라 운동이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재현되어야 한다. 거대 도시들을 조성한 오늘의 바벨탑에서 탈출하여 다시 가나안 복지인 갈릴리로 가야 한다. 더불어 생산하여 나누는 농촌으로 가야 한다. 서로 이웃사촌이 되어 나누고 도우면서 사는 생명공동체를 이룩해야 한다.” (/ ‘일곱째 마당: 빗나간 대망공동체들과 오늘의 도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