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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1940~1960년대 스포츠는 눈물이자 희망이다 해방 후부터 60년대까지, 대한민국 스포츠의 시작 통증과 함성 속에 고유명사가 된 김일 인생과 역사, 마라톤의 승자 마라토너 이창훈 백인천 일본 프로야구 진출, 한국 스포츠 해외 수출의 원조 김기수, 국가 주도 경제의 스포츠 버전 선진국 필리핀, 가난한 한국에 체육관을 선물하다 1966년과 2002년, 실미도 축구팀 양지를 아십니까?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축구 대회를 만들다-박스컵 스포츠 저널리즘의 시작, 일간스포츠 창간 1970년대 스포츠는 감동이다 1970년 아시안게임 개최 반납,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남북 대치에 너덜너덜해진 스포츠 정신, ‘져주기 게임’ 한국 여성의 힘과 여자 탁구 세계 제패 복싱 신인왕전,<슈퍼스타K>의 권투 버전에 국민이 열광하다 진정한 무적함대, 여자배구 미도파 홍수환, 스포테이너의 탄생 남자들도 못 한 일, 한국 낭자들의 선전, 1976년·1984년 올림픽 영원한 천하장사 김성률, 씨름판을 통일하다 남자농구 이동균 스포츠 파동, 삼성vs현대 재벌 간 경쟁체제 돌입 1980년대 스포츠는 즐거움이다 광주와 야구, 그리고 선동렬 1980년 아시안컵 축구 4강전, 남북 축구 대결사의 결정적 순간 80년대 최고의 수출 상품 차범근, 세계 최고의 리그를 평정하다 ‘쎄울’ 5공의 첫 업적, 올림픽이 유치되다 고교 야구의 마지막 전성기, 선린상고의 불운 ‘1982년 프로야구 개막’ 3S 정책이 꽃피우다 컬러TV의 등장과 천하장사 이만기 헝그리복서여서 더 슬펐던 김득구의 죽음 목포의 눈물. 부산갈매기 노래 속 지역감정 골은 깊어만 간다 정의사회 구현, 항의하는 야구 감독 구속 국기 태권도에도 배어든 분단의 흔적 80년대, 스포츠광 대통령을 두다 1988년 올림픽 개최, 독재개발시대 최대의 활황을 맞이하다 팔 빠지게 공을 던졌던 최동원을 추억한다 1990년대 스포츠는 위로다 남북 화해의 상징. 코리아팀 결성 ‘오빠부대’의 탄생, 농구 열풍을 이끌다 한국야구의 전환점 메이저리거 박찬호 LPGA를 제패한 ‘요술공주’ 박세리, IMF 시대의 아이콘 되다 프로야구 해태의 9번째 우승과 KIA의 V10사이 IMF 경제 위기와 허재의 불꽃 투혼 2000년 이후 스포츠는 미래다 ‘오 필승 코리아!’ 한일월드컵의 4강 신화와 히딩크 감독 이종격투기 열풍, 왜 천하장사와 세계챔피언은 한국을 떠났을까? 칸첸중가에는 올랐나? 오은선 파문, 상업 등반의 명과 암 여자 핸드볼, ‘우·생·순’ 신화는 눈물에서 싹텄다 IT붐과 e스포츠, 그리고 ‘테란의 황제’ 임요환의 등장 F1(포뮬러원) 코리아 그랑프리의 개최, 국민 소득에 걸맞은 스포츠의 탄생인가? 김연아의 금빛 점프, ‘퀀텀점프’로 이어지다 이영하의 좌절부터 김연아의 환희까지, 한국 동계스포츠 조오련, 최윤희, 그리고 박태환. 서말구, 장재근 그리고……. ‘베이스볼 키즈’ 세대의 등장, 그리고 게임사 엔씨소프트의 9구단 창단 베팅한 대로 뛴다, 프로축구 승부조작 스캔들 사라진 성동원두, 동대문의 추억 마치며… 부록 스포츠와 대한민국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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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 입는 것 다 좋아졌으니 운동선수가 운동만 생각했으면 좋겠다.”
굶주렸던 조선의 청년은 대한만국 태극기를 가슴에 달았지만 여전히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거나 역기를 들어 올리는 역도에서, 혹은 죽을힘을 다해 치고받는 권투에서 빼어난 성과를 냈다. 미는 뒷전이었고 힘이 앞섰다. 투박하지만 그들의 팔뚝은 불뚝거렸고 낡은 유니폼은 땀에 절었다. 빛바랜 사진 속 울고 웃는 그들은 우리의 아버지이지 할아버지였다. 해방 후부터 60년대까지, 대한민국 스포츠의 시작 중에서- 프로레슬링 선수 김일은 고유명사다. 그를 떠올리면 변변찮은 스포츠 중계가 없던 60~70년대 서민들의 체육관 안, TV속 함성이 연결된다. ‘땡땡땡’으로 경기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와 ‘원, 투, 쓰리’로 이어지는 경기 캐스터의 숨 가쁜 경기 중계도 귓가를 맴돈다……하지만 프로레슬링의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야구, 농구 등 각종 스포츠로 볼 것이 많아지고 약물로 근육을 빵빵하게 키운 WWF 등 미국 프로레슬링의 시대에 단색 경기복만을 입은 배 나온 아저씨들의 아날로그식 프로레슬링은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프로레슬링은 쇼’라는 고백은 여전히 레슬러들의 발목을 잡았다……화끈한 박치기의 추억을 남기고 반칙이 특기인 일본 선수들은 박치기와 코브라 트위스트, 풍차돌리기 등으로 혼내주던 김일의 모습에서 국민들은 쾌감을 넘어선 승리감마저 느꼈다. 그가 떠난 날 환호와 추억은 사라졌다. 프로레슬링의 한 페이지이자 한 세기도 끝이 났다.---「통증과 함성 속에 고유명사가 된 김일」중에서 5월의 첫날 광주는 들떠 있었다. 당시 국민 스포츠로 불렸던 고교야구에서 광주일고와 광주상고가 맞붙었기 때문이다. 초고교급 투수 선동렬의 광주일고와 만능선수 이순철이 이끄는 광주상고는 사상 처음으로 동향팀끼리 결승전을 벌였고 지역민을 열광시켰다. 결과는 광주일고의 8대2 대승이었다……다음 대회는 청룡기 대회였다……선동렬의 광주일고는 출전자 명단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은 광주에 갇혔다. 선수들의 형제, 부모 몇몇은 행방을 찾을 수 없었던 생황이었다. 운 좋게 광주에서 빠져나왔을지라도 그들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 했으리라, 야구는 순식간에 흐름이 바뀌는 경기로 멘털스포츠라고 불린다. 고교 야구는 더더욱 그렇다. 침울해 있는 식구들을 뒤로 하고 서울로 나선 10대의 소년들이 집 생각을 떨쳐버릴 순 없었으리라. 대신 청룡기 대회의 우승은 박노준, 김건우 등이 있는 선린상고의 품으로 돌아갔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여파로 잠시 동안 광주야구는 ‘휴화산’이 된 셈이다.---「광주와 야구, 그리고 선동렬」 중에서 기아 농구팀은 모기업인 기아자동차의 부도를 맞은 상황에서 경기에 임했다 상대 팀은 실업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던 현대였다 기아에는 농구 천재 허재가 있었고 현대에는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던 이상민이 팀을 이끌었다……최종 승자는 현대였다 그러나 한물 간 선수 취급을 받았던 허재는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매 경기 맹활약을 펼쳤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허재의 투혼에서 자신의 모습을 봤을 것이다 멀쩡하던 기업이 하룻밤 새 문을 닫던 살벌한 시절이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엄습해왔지만, 그래도 먹고 살아야 했다 가족들을 생각하면 막노동이라도 해야 했다 모두가 힘들었고 모두가 절박했던 시절이었다. 손에 붕대를 감고, 다리를 쩔뚝거리며, 눈 주위에 반창고를 붙이고 뛰었던 허재의 모습은 1998년 IMF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던 한국인의 절박한 자화상이었다. ---「IMF 경제 위기와 허제의 불꽃 투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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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문화를 스포츠로 풀다!
스포츠는 선수들의 기록뿐만이 아니라 팬들과 선수들이 공유하는 눈물이자 희망이요. 감동이자 즐거움, 위로이며 미래이기도 하다. 우리는 왜 아직도 김일, 최동원을 추억하는 것일까? 왜 박세리와 김연아의 우승에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그 시절의 우리들은 약소국의 설움을 대신 해소해준 김일의 박치기에 열광했고 박세리의 역전에서는 IMF 경제 위기 속의 희망을 보았다. 부도난 모기업 소속임에도 끝까지 부상투혼을 보여주던 허재를 보며 우리는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었다. 최동원과 선동렬의 라이벌 대결에서는 스포츠만이 줄 수 있는 짜릿한 승부의 세계와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그 시절의 그들을 추억하고 감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때의 우리와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그 순간을 함께하고, 이겨내고, 즐거웠던 기억을 공유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순간의 기억을 독자들과 다시 한번 공유하고 추억하기 위해 스포츠 한국사를 하나하나 조사하여 찾아낸 이야기들을 50개의 사진과 기록으로 만들었고 그 시대를 살고 같이 견뎌내고 지켜봐온 관객이자 주인공인 우리들의 모습도 더불어 되살리고 있다. 스포츠는 순간이다 선동렬과 최동원의 불 같은 강속구가 투수 마운드에서 포수에게 다다를 때는 1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이승엽이 투수의 공을 때려내기까지 생각하거나 반응하는데 결정해야 하는 시간 역시 짧은 순간이다. 백인천이 친 홈런의 순간도 눈 깜짝할 사이이며 축구, 탁구, 농구, 권투, 육상 등의 스포츠도 순간의 궤적들이 어우러진 순간들의 희열에 선수와 관객이 함께 반응하고 열광한다. 스포츠는 기억의 공유다 공을 향해 달리거나 타구를 날리는 선수는 승리와 환희의 순간을 공유하기 위해 땀을 흘린다. 펀치를 날리는 선수들과 매니저의 목표는 오직 하나, 승리의 순간을 공유하기 위함이다. 팬들 역시 목이 터져라 선수를 응원하며 선수들과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그러기에 팬들은 기꺼이 김일의 박치기에 덩달아 주먹을 움켜쥐고 IMF 경제 위기 속에서도 박세리의 우승 소식에 눈물을 흘리고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외치는 히딩크의 몸짓에 함께 들썩이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순간순간은 기록을 만들고 경기를 이루고 시즌을 만든다. 노히트노런이나 퍼펙트게임을 기록한 야구선수가 한순간에 난타당하기도 하고 KO승을 거둔 권투선수가 어느 순간 KO패로 초라하게 링에서 내려오기도 한다. 이러한 절정의 순간부터 나락의 순간까지를 팬들은 고스란히 느끼고 기억한다. 스포츠는 역사다 스포츠는 그 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나 생활상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스포츠에는 그 어느 국민들보다 지난한 현대사를 관통해야 했던 한국민들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데 선수의 기록에도 그의 삶과 시대의 흐름이 묻어난다. 또 그들을 스포츠 영웅으로 만들어낸 시대도 있다. 먹고사는 것이 삶의 목표였던 50~60년대에는 별다른 장비나 도움없이도 체력과 정신력만으로 승부를 가르는 복싱이나 마라톤 등이 인기를 끌었다면 70~80년대에는 군사정권 위정자들에 의해 스포츠가 삶의 고단함을 잊게 하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 예로 3S 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프로야구는 벌써 출범 30년이 되어 국민스포츠로 발전되었는데 그 프로야구의 인기 속에는 정치로부터, 광주의 비극으로부터 국민들의 관심을 떼어놓으려는 권력층의 계산이 있었던 것이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 한국은 분단국가라는 어두운 이미지를 벗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997년 IMF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도 태평양 건너에서 들려오는 박찬호와 박세리의 우승 소식에 국민들은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웃을 수 있었으며 2002년 한일월드컵을 통해 한 곳에 모아진 한국민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스포츠는 인생이다 야구공에는 150g의 하얀 가죽에 빨강 실밥 108개가 촘촘히 둘러져 있다. 골프공이 멀리 날아갈 수 있는 비결은 표면에 오목하게 팬 수백 개의 ‘딤플’ 덕이다. 이처럼 스포츠는 생채기가 더해진 우리들의 삶과도 닮아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팬들은 스포츠에 열광하고 선수들의 땀방울에 힘을 얻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스포츠의 역사만을 짚어주진 않는다. 스포츠의 역사만을 위한 책이었다면 스포츠 연대표만으로도 충분하다. 『기억을 공유하라! 스포츠 한국사』는 스포츠가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 같이 숨쉬고 변화하고 살아왔는지를 평범한 작가이자 우리들의 시각으로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스포츠가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가질 때 우리는 열광하고 공감하고 그 추억을 공유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다. 『기억을 공유하라! 스포츠 한국사뮡는 스포츠에 관련된 우리들의 추억을 공유하기 위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