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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_알 수 없는 것과 접촉하다
1부 제2평행세계의 시작 1장 세상의 정체를 의심하는 소녀와 환청을 듣는 소년과 손목을 긋는 소년 2장 능력에 눈뜨다 3장 한 번뿐인 생이 아니었다 4장 집, 악몽의 상자 5장 변화의 시작 6장 지석의 사념을 읽다 7장 시신과의 교감 8장 지석의 사념과 접촉하다 2부 제3평행세계의 시작 1장 수혁 2장 사람이란 알 수 없는 것 3장 변칙적인 존재 4장 이제부턴 혼자 5장 신이 내린 숙제 3부 제4평행세계의 시작 1장 어린 수혁의 잔류의식 2장 나의 과거를 바꾸다 4부 제5평행세계의 시작 1장 능력이 사라지다 2장 낯설지 않은 소년 3장 미늘동의 파수꾼 4장 공포의 양면성 5장 능력이 돌아오다 6장 미늘동, 그들만의 게토 7장 제2의 지석들을 위하여 8장 터닝포인트 5부 제6평행세계의 시작 1장 촉법소년, 촉법소녀 2장 결투 3장 빨간 고무대야에 앉은 아기 4장 뉴월드 복합상가 5장 4인의 공범 6장 악인의 머릿속에 생각을 불어넣는 방법 6부 시작과 끝 1장 제1평행세계-내일이 없는 소녀 2장 제7평행세계-교복 입은 소년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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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시신경에 미세한 통증이 일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오른쪽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 영상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번엔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을 떴다. 그러자 다시 그 영상이 나타났다. 양쪽 눈으로 보고 있어도 반복되는 장면을 실제로 보고 있는 것은 오른쪽 눈이었다. 내가 보고 느끼고 듣는 것의 정체가 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것에 빠져들었다. --- p.16
그날 도이가 선택할 수 있었던 등굣길은 두 개였다. 걸어서 1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길과, 5분 정도 더 돌아가야 하는 길. 그날 도이가 선택한 길은 걸어서 10분 정도면 교문에 도착할 수 있는 빠른 길이었다. 그 길 위에서 중년남자의 외피를 뒤집어쓴 악마와 만났다. 도이의 시간은 그날 이후로 멈춰버렸다. 도이는 매 순간 그 길 위에 붙박이처럼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서 있는 자신을 본다.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 자신만은 여전히 그 길에 서 있다. 그 시간은 아직까지도 현재일 뿐 결코 과거가 되어주지 않는다. --- p.23 이 세상엔 사람을 사람으로 느끼지 못하는 괴물들이 넘친다. 우리들과 똑같이 생겼지만, 우리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종족이다. 백만우의 형량이 결정된 날, 아무것도 모르던 도이는 잠결에 어머니의 우는 소리를 들었다. “너무 가볍잖아! 이게 말이 돼? 12년이라니. 도이가 살아 있는 것 같아? 고작 눈만 뜨고 숨만 쉬고 있는 게 살아 있는 거야? 그 악마 같은 새끼 때문에 도이도 우리도 모두 부서져버렸는데.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왜 하필 우리 도이냐고!” --- p.40 양쪽 눈 시선의 방향이 서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야의 초점이 흐려지고 겹쳐지고 굴절되었다. 현기증이 나서 속이 메스꺼워진 도이는 털썩 주저앉았다. 먹잇감을 찾는 포획자처럼 오른쪽 눈이 날뛰는 동안 왼쪽 눈은 시력을 상실하고 오른쪽 눈만이 환하게 밝아졌다. 마침내 뭔가가 또렷하게 보였다. 오른쪽 눈은 유백색의 안광을 발하며 어둠 속에 잔류하던 사념과 감응하기 시작했다. --- p.77 “넝쿨손은 넝쿨식물 줄기에서 나오는 가느다란 실 같은 건데, 이게 실처럼 가느다랗게 보여도 사실 나무조각도 뚫을 만큼 강해. 넝쿨로 자라는 식물들은, 이 넝쿨손을 뻗쳐 줄기를 지탱하는데 뭐든 움켜잡아. (……) 다른 물체를 단단히 움켜쥔 식물들은 잎이 찢어지더라도 쓰러지지 않아. 난 네게도 이 넝쿨손이 있었으면 좋겠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뭐든 움켜잡는 생명력 같은 거 말이야.” --- p.107 ‘살아가는 동안 괴물과 마주치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70퍼센트?’ 이 세상에 괴물들이 득실거린다는 것을 뉴스로만 듣는 그 70퍼센트의 사람들은 이 괴물이 얼마나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들 틈에 끼어 살고 있는지 모른다. 나머지 30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은 대인공포증을 비롯해, 수많은 병증에 시달리며 사람 자체를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피하고 숨고 도망치면서 죽지 못해 살아간다. 도이 역시 마찬가지다. --- p.144~145 도이 역시 백만우로 인해 망가져버린 자신의 과거를 바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이 간절한 것처럼 수혁 역시 간절할 것이다. 두 사람을 이렇게 만든 원흉인 서진구와 백만우는 지금 감옥에서 몸을 사리며 사회에 나와 보복할 순간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사형제도가 없는 한국에서는 어쩌면 놈들에겐 교도소가 살아남아야 할 사회이고, 이 사회는 놈들이 음흉한 망상을 마음껏 펼쳐도 되는 놀이터인지도 모른다. --- p.183~184 자신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런 능력이 석윤도 지석도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불가사의한 것들의 움직임이 자신을 택했고 그 힘은 그녀를 이용해 선과 악의 균형을 맞추려는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도이가 가진 능력은 언젠가는 사라져 다른 사람에게 갈 것이다. 어째서인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이든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 p.383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와 하늘을 찌를 듯 자라 있는 고목. 한 뿌리에서 올라가 여러 갈래로 갈라진 가지들이 마치 크고 작은 길 같다. 저 가지 하나하나가 우리가 선택할 때마다 분기되는 평행세계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죽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평행세계를 분기시키는가. --- p.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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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보는 소녀와 환청을 듣는 소년
사람의 기억, 슬픔, 원한 등의 감정이 해소되지 않고 어떤 장소나 물건, 살아 있는 사람에게 오랫동안 고여 있는 잔류사념. 도이는 어린 시절 끔찍한 사건을 당한 후로 시력이 손상된 오른쪽 눈에 보이는 환상이 과거에 누군가에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 날, 자신의 방 안에서 어머니와 아들로 보이는 두 사람이 낯선 남자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남자가 소년의 어머니를 칼로 찔러 살해하고 소년의 얼굴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하려는 찰나, 도이는 자신도 모르게 소년을 향해 소리친다. “다 죽어! 엄마 마중 나가!” 그리고 얼마 후 어머니를 마중 나가라는 환청을 듣고 불운을 피할 수 있었던, 얼굴에 흉터 하나 없는 말끔한 모습의 타투이스트로 자라난 소년과 만나게 된다. 그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마음속에만 넣어두기로 했다.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며 X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상상 속의 친구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을 지켜주는 수호자 같다는 생각이 들어 힘든 일이 있으면 미래를 알고 있을 것 같은 X에게 혼잣말을 하곤 했다. 가끔 대답이라고 생각되는 환청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생각인지 X의 생각인지 알 수도 없었고, 생각 같은 환청은 자주 중간에 끊기곤 했다. _113~114쪽 선택하는 순간, 모든 가능성만큼의 평행세계가 생겨난다! 도이는 자신에게 잔류사념을 보는 능력뿐 아니라, 과거의 시간에 접촉함으로써 현재의 삶이 아닌 또 다른 세계를 분기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된 도이는 가족으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해온 지석과 아홉 살 이후로 줄곧 알 수 없는 환청에 시달려온 석윤, 환청을 듣고 다행히 불운을 피할 수 있었던 석윤을 대신해 얼굴에 끔찍한 자상을 입은 수혁, 그리고 과거의 끔찍한 기억으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잔류사념에 접촉해 새로운 평행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선택의 기회를 주기로 결심한다. “저 나무는 몇 살이나 되었을까? 나는 고작 열여덟 살인데. 그럼 저렇게 많은 나뭇가지처럼 나도 계속해서 선택해도 되는 걸까? 그래도 된다면 실패가 두렵지 않을 거 같아.” 선택이 두려운 이유는 실패가 두렵기 때문이다. 실패해도 된다고, 실패해도 다른 선택을 하면 된다는 허락을 받는다면 용감해질 수 있을 것이다. _404쪽 하지만 그들에게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기더라도 우리 주위에 숨어 있는 괴물과 같은 존재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지옥과 같은 현실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어째서 매번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많은 상처를 입어야 하는 것일까.” “세상엔 왜 이토록 악마들이 많은 것일까.”(142쪽) 이런 가혹한 현실에 분노한 도이는 반복되는 악의 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 자신에게 일어났던 끔찍한 과거의 기억에 접촉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