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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
지은이의 말 제1강 한비가 살던 시대 1. 한비의 출생과 당시 정치 상황 2. 한비의 사상적 성장 과정 제2강 한비의 전기 1. 『사기』 속의 「한비열전」 2. 새로운 자료로 알 수 있는 사실 3. 한비에 대한 가설 4. 한비의 정치사상 5. 진시황제와 한비 6. 한비의 최후 제3강 한비의 사상 1. 『한비자』의 구성 2. 『한비자』와 『노자』 3. 「해로」 편에 보이는 한비의 사상 4. 한비의 사상 혁명 5. 한비의 근본 사상 6. 한비의 법술 사상 7. 법·술·세 8. 한비 사상의 근대성 9. 한비의 실정법 맺음말 일본의 한비자학 미주 한비 연표 옮긴이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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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의 삶과 시대를 새롭게 조명하다
사기「한비열전」에 대한 과감한 비판과 새로운 해석 『한비자 교양강의』의 가장 큰 매력은 새로운 한비를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전국시대 제자백가의 한 사람이자 대표적인 법가 사상가로서 진시황의 천하통일 사업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한비는 서양의 마키아벨리와도 견주어지는 냉철하고도 현실적인 경세관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일면적인 법가 사상가로서가 아니라 한나라 왕족으로 태어나 청년기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부단히 고민하며 사유의 변화를 겪고 사상을 다듬었던 입체적인 인물로서 한비의 삶과 사상에 조명을 가하고 있다. 사마천의 저작인 유명한 『사기』 「한비열전」의 내용은 한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권위 있는 사료로서 지금껏 큰 의심 없이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다양한 실증적 근거를 대며 『사기』의 기록이 지닌 진실성에 과감히 반박한다. 예컨대 한비가 유학자 순자(荀子)의 제자였다든가, 진나라의 재상이 된 동문 이사(李斯)의 시기심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는 서술들의 진실성에 의심을 품는다. 『한비자』에 보이는 순자에 대한 서술은 몹시 소략하고도 부정확하며, 그중에는 만일 서로 사제지간이었다면 결코 저질렀을 리 없는 시대착오도 보이는데, 저자는 이것이 통설과는 달리 한비가 순자를 제대로 만난 적도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일견 관계가 없어 보이는 중산국 왕릉 속 청동 솥을 들어, 솥에 새겨진 명문(銘文)의 내용과의 대조를 통해 이 점을 확인하는 부분은 저자 고유의 한비자 연구 방법을 잘 드러내는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진나라에 있던 이사가 한비에 대한 시기심 때문에 한비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사마천의 서술도 반드시 신뢰할 수 없다고 하면서, 지금까지는 큰 비중 없이 간과되어 왔던 『전국책』의 숨은 기록 등을 활용해 자신의 주장을 박진감 있게 논증한다. 새롭게 알 수 있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한비가 존경했던 인물 자산(子産)에 대한 전승들을 찾아 한비가 추구한 정치가의 이상을 짚어 냈고, 진시황릉에서 발견된 흙인형들의 모습으로 당시 진나라 사람들의 민족 구성과 생김새를 추론하였는가 하면, 별다른 맥락의 설명 없이 실려 있는 『한비자』 속 세 통의 편지를 통해 진시황과 한비자, 이사 사이에 벌어진 상황을 재구성하기도 한다. 저자는 머나먼 시간적 거리와 한정된 사료라는 한계 속에서도 채 주목되지 않았던 단서와 상상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한비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행적을 되살려 냈다. 종횡무진 흥미진진한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격랑의 전국시대에 직접 들어서 있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독법으로 읽는 한비의 법치 사상 한비자 각 편을 시간순으로 재배열하다 이 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구 대상은 무엇보다도 한비의 저작인 『한비자』 그 자체다. 한 권 안에 집대성되어 있으면서도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 한비의 사상을 저자는 면밀한 분석을 통해 시간순으로 재배열해 냈다. 이로써 한비가 청년기에 품었던 이상과, 시간이 흐른 뒤 맞게 된 사상적 변화의 양상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저자는 먼저 각 시기별로 뚜렷이 나타나는 주제와 인용을 근거로 하여 『한비자』 각 편마다의 형성 시기를 최대한 정확히 나누어 본 뒤 한비의 독서 편력과 사상 변천을 추적했다. 스스로를 ‘도술(道術)의 사(士)’로 정의했던 한비가 모종의 계기를 통해 ‘법술의 사’로 자부하게 된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청년 한비에게서 드러나는 심성이 얼마나 부드럽고 다정한 것이었는지, 그것이 송견이라는 초기 법가 사상가와의 만남을 통해 어떻게 ‘법치’의 강조로 구체화되어 가는지를 지켜보게 된다. 절대권력의 유지를 위해 비정한 책략을 제안한 법가 사상가 한비의 일반적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입체적인 모습이다. 격동의 시대였던 전국시대를 어떻게 살아내야 좋을지, 일개 왕족이자 신민으로서 그리고 자신은 되어 보지 못한 군주의 입장에서 한비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궁리했다. 그의 결론은 ‘법’(法)이었다. 유가가 강조하는 ‘성인(聖人)의 다스림’은 현실적으로 계속되기 어렵지만, 자연의 ‘도’를 구체화한 성문법이 규정되고 지켜진다면 꼭 성인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언제나 다스려지는 세상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술’(術)과 ‘세’(勢)를 통해 군주가 절대권력을 유지하고 사회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도 그러한 믿음의 일환이었다. 자신의 문제의식을 언제나 풍부한 실제 예와 비유를 들어 주장한 한비의 태도는 현대의 법실증주의와도 맞닿아 있다. 또한 그의 설명 속에서 구체화된 ‘법치’와 ‘권력의 집중’, ‘상벌’ 등의 개념은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하고도 문제적인 화두로 자리하고 있다. 독자는 한비가 겪은 사상의 여정을 살펴봄으로써, 비로소 그가 제시한 법가 사상의 요체를 파악하고 그 양면적 유산에 관하여 고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동아시아 한비자학의 집대성 일본 고전연구의 석학 가이즈카 시게키 저자 가이즈카 시게키(1904~1987)는 고대중국고고학 전공자로 동양사, 비교문화, 중국 근현대사에까지 방대한 관심과 지적 수준을 갖추고 있었던 일본 동양학계의 석학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기존에 정설로 인정되어 온 역사적 기록들에만 기대지 않고, 새롭게 발견된 각종 단서들을 모두 동원해 이천여 년 전 살았던 한비의 실제 사상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밝히고자 힘을 쏟았다. 이 책에 담겨 있는 성과는 일본 에도(江?) 시대의 학문적 전통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6세기 이후 일본의 에도에서는, 제자학을 비롯한 여타 사상들에 대해서 무척 배타적이었던 조선 사회와 비교해 훨씬 자유롭고 독자적인 한학의 전통이 꽃피고 있었다. 그러한 풍토 속에서 ‘한비자학’(韓非子學) 역시 다채롭게 발전하고 계승되었다. 이 책은 에도 학풍의 전통에서 비롯된 일본 한비자학과 20세기 후반까지 이루어진 동아시아 한비자 연구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그간 중국, 대만, 일본 등에서 행해진 한비자 연구를 촘촘히 검토하고 수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전까지 아무도 그 관련성에 주목하지 않았던 춘추전국시대의 다양한 유물?사료 속 단서들을 통해 한비자에 관한 독창적인 탐구를 이루어 내었다. 저자는 『한비자』의 구체적인 내용을 짚어가며 한비의 생각이 옮아간 과정을 쫓아가고,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 낸 결정적 계기로서 ‘황제사경’ 중 하나로 추정되는 텍스트 『경법』을 제시한다. 일련의 착상들은 방대한 선행 연구를 소화한 저자의 학문적 토대와 당시 새롭게 발굴된 죽간 등 유물에 대한 주목을 통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구와바라 지쓰조(桑原??), 나이토 고난(?藤湖南) 등 일본의 대표적인 동양 고전학 석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가이즈카 시게키의 분방한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격랑의 전국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던 한비와 당대 인물들의 모습을 그 어느 책에서보다 생생하게 대면하게 된다. 한반도에서는 높은 수준의 한학적(漢學的) 전통이 이어져 왔지만 유학, 특히 성리학만이 인정되고 주류로 자리 잡은 세월이 길었기에 제자학처럼 비주류로 규정된 학문적 대상에 대해서는 관심이 소홀하였고 성과 또한 소략하였다. 고유의 시각과 방식으로 한비자를 해설한 일본 석학과의 만남을 통해 한비자 자체를 새롭게 읽게 됨과 동시에 고전 전반에 관한 참신한 시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