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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사랑 나의 귀신 - 귀신에 관하여
2. 직녀 내 사랑 3. 염소 할매 4. 내 사랑 나의 암놈 |
崔仁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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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 나의 귀신... 그러나 비참한 나의 현실
--- 00/01/19 김선희(rosak@hanmail.net)
아직도 이런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사람이 있다니. 처음 이 소설을 읽어 들어가면서 나는 약간 실망하였다. 지난 시대, 사실주의의 힘을 업고 대거 유행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또 다시 듣게 되는 줄 알았다.
운동권... 노동자... 철거민....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그 때의 소설들은 모두 하나같이 그런 단어들을 가지고 있었다. 90년대에 들어서자, 소설가들은 이제 후일담 소설이라는 것까지 내놓았다. 지겨웠다. 끝없는 절망. 우울한 문체. 희망 없음들. 나는 또 그런 소설을 만나게 되는 줄 알았다. 모든 것이 끝난 후, 이제 반듯반듯한 아파트에서 모두 자리잡고 있는데 바로 조금 전, 철거되던 그 시절의 얘기를 들추면 누가 거들떠보겠는가. 그것이 아무리 잊지 말아야 할 과거지사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지만, 작가란 누구인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곳에 쉽게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한 쪽 발을 걸쳐둔 채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작가 '최인석'이 '환상'이라는 묘약을 섞어 <아름다운 나의 귀신>을 내놓았다. 소설의 형식은 민둥산이라는 한 공간을 무대로 펼쳐지는 네 사람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보통사람의 시선에는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이며 제 각기 환영의 세계를 갖고 있다. 그 '환상'이 민둥산과 더불어 큰 맥락을 이루고, 또 그 시절의 소설과 차별화 된다. 그러면서 지루한 얘기를 지루하지 않게 풀어 놓았다. 처음 소설 속으로 들어갈 때, 나는 신생아실의 화재로 자신의 운명이 이웃집 '알프레드'와 바뀌었다고 믿는 영화의 주인공 '토토'가 생각났다. 또, 자신의 출생을 기억하고 분노의 소리로써 유리창을 깨뜨렸던 '오스카 마체라트' 주인공의 '양철북'도 생각났다. 그것들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 아닐까 싶게 일그러진 성장을 겪은 인물들이 흡사하게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러나, 중간 부분을 넘어가면 이제부터 작가의 제 색이 빛을 발한다. 천박하나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소시민들의 넋두리를 풀어내는 입담도 일품이고, 그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도 퍽 따뜻하게 전해져 온다. 환상을 꿈꿀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현실, 비참함을 넘어서 비열했다. 작가 '최인석'은 항상 그 곳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내가 인정하지 않고 부정했던 삶이 그대로 나의 것이 되는 것을 바라보아야 함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게다가 그것이 나의 힘을 벗어난 세상의 순리라면?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나는 부끄럽고 괴로웠다. 나는 내가 아비와 다름없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어미와 다를 게 없는 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삶이고, 현실인데 어찌하란 말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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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량하여 하지 말라. 당신들의 그 지루한 속도, 그 지루한 시간, 치욕 덩어리가 되어버린 나의 몸뚱이에서 생명 유지 장치를 떼어낼까 말까를 궁리하는 그 지루하고 무의미한 계산은, 그것을 계산하는 그 지루하고 무의미한 시간은 나에게도 당신들에게도 시간이 이니라, 우리 모두에게 치욕이다. 나는 꿈의 속도로 날아간다. 어처구니 없는 명칭의 공간,코스모스란 어디에도 없는 이 광막하고 황량한 코스모스에서 나의 꿈이 현실과 화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유일한 위성 플래닛 X를 향하여.
--- p.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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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기를 낳았어. 쌍둥이야. 아들하고 딸하고.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골목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어. 어쩔 수 없었어. 이윤 말 안해도 알지?'
나는 모든 할말을 잃었다.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순희의 얼굴을 믿을 수 없었다. 그것은 얼굴이 아니라…… 무엇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것은 얼굴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면, 죽음, 돌덩이……, 그런 것이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그 비명은 폭죽처럼 날아올라 면회장의 유리창을 깨뜨리고 벽을 깨뜨리고 구치소의 철문에 부딪쳐 그 단단하고 두꺼운 철문을 찌그러뜨렸으며, 황소 울음소리 같은 그 비명에 놀라 구치소의 보안과장이 헐레벌떡 달려와 내 입을 막고 면회를 중지시켰고, 순희는 그 돌덩이 같은 낯으로 왜 그래 자기, 하고 멀거니 나를 쳐다보다가 내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은 투명한, 그러나 갇힌 자와 갇히지 않은 자 사이를 엄격히 구분하는 유리벽으로 뛰쳐올라 그것을 물어뜯으려 하자 황급히 물러나 다음주에 또 올게, 하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달아났다. 물론 그녀는 다음주에 오지 않았다. 왔다 해도 나를 만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는 이미 내가 이곳을 떠나 플래닛X를 향하여 여행을 출발한 뒤였으니까. 나는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쳤다. 보안과장이 사람을 불러 나에게 처치복을 입혔으나 나는 그것을 갈가리 찢어버렸다. 나는 부끄럽고 괴로웠다. 조금 전 홍조를 띤 순희의 얼굴이 부끄러웠고, 그 홍조 띤 얼굴을 보며 내가 느낀 욕망이 한심스러웠다. 나는 내가 아비와 다름없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어미와 다를 게 없는 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의 자식들을 잡아먹었다. 자식들의 생명을 끌어다 탕진했다. 나는 살아 있으면서 자식들은 죽였다. 알을 낳고 죽어 가는 물고기들, 나비들…… 그러나 나는 그 물고기나 나비보다 못난 자였다. 나는 나도 알지 못하는 어느 순간 자식들을 죽였다.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나는 노예였다. 갈 데 없는 노예, 더도 덜도 아닌 노예…… 나의 아기는 죽어 어떤 귀신이 되었을까. --- pp.95-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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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기 위해 만들어진 동네가 아니라 망가지기 위해, 서서히 죽어가기 위해, 산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세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곳인지를 입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네였다. 이사온 지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나는 그곳이 싫어졌고, 아비 어미가 싫어졌고, 형도 누이도 싫어졌고, 사람이 싫어졌으며, 살기가 싫어졌다.
내가 적어도 한 가지 위로를 발견한 것은 몇 달이 지난 뒤였다. 언젠가는 나는 죽을 것이다. 그것은 처형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에서의 삶은 이미 처형을 위한 심판이니까. 나는 생일을 축하한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태어난 날이 저주스러웠고, 나를 낳은 아비와 어미가 원망스러웠으며, 내가 태어난 이 세상에 염증이 났다. 나는 여기 사는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주 받은 한 마리 짐승에 불과했다. --- p.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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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재의 심연을 포착하는 강렬한 주제의식과 모국어의 상상공간을 한껏 확장시킨 풍성한 서사력으로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작가 최인석의 다섯번째 장편소설 <아름다운 나의 귀신>이 출간되었다. 작가 최인석의 작가적 아이덴티티인 탄탄한 서사 구성능력과 진지한 문제의식, 그리고 새로운 소설 언어에 도전하는 강렬한 작가정신은 이번 작품에서 한 절정을 맞고 있다.
최인식의 신작 장판은 90년대의 소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가벼움, 내면화, 사인화, 여성성, 소설가 소설, 후일담 소실 등으로 대표되는 90년대적 경향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소설문법을 축조해온 최인석은 이번 소설집에서 새로운 변신을 시도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몽환적 분위기로 생의 금지로 몰려가 있는 뿌리뽑힌 존재들을 생생하게 묘사해내는 최인석의 새로운 소설 언어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명명해도 전혀 낯설지 않다. 빈둥산 달동네로 표상되는 황폐한 삶의 현장은 몽환적 이미지에 의해 표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신랄하게 되살아나면서 역동적 상상력의 위력을 펼쳐나간다. 최인석은 인작장편 <아름다운 나의 귀신>에서 90년대 한국소설의 한 흐름을 형성하면서 한국문학의 미래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아름다운 나의 귀신>은 철기 직전의 달동네를 중심으로 네 명의 화자가 펼치는 각기 다른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킨 연작 장편소설이다. 더이상 나빠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피폐하고 잔혹한 삶에 내돌리며 서서히 망가지는 삶들이 사는 저주받은 공간. 그곳에서 사람들은 생의 비극적 국면에 몸서리치며 차라리 귀신을 꿈꾼다. 무자비한 철거가 시작된 재개발지구 달동네, 생의 근거와 이유를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맞섰던 달동네 주민들은 무참하게 쓰러지고, 동네는 산산조각난다. 이 참혹한 과정을 서로 다른 네 명의 화자가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아름다운 나의 귀신>은 환멸을 끌어안고 마침내 그것을 극복하는 새로운 처방전이다. 밑바닥 삶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적대적이거나 호의적이지 않다. 내일이 없는 곳. 내일이 없어서 믿음이나 희망이 없는 곳. '귀신'을 꿈꾸지 않고는 견뎌낼 수 없는 '게토'. 하지만 이 전망적인 현실에 대해 작가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왜곡이며 어설픈 낭만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대신에 작가 최인석은 그 자리에 몽환적인 환상 세계를 슬쩍 갖다놓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최인석은 인간과 현실에 대한 긴장력을 잃어버린 리얼리즘과 결별하고 최인석 특유의 소설미학을 탄생시키고 있다. 절망스러운 현실에 대한 환멸과 역설적 환상이 절묘하게 결합된 최인석의 소설은 비극적인 세계 인식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킨다. 이에 대하여 문학평론가 장경렬씨는 "정녕코 우리의 현대문학사에서 찾아보기 힘든"것이며 "환상적 요소가 환상적 요소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환상과 현실의 결합이 매끄럽다는 점에서, 남미의 마술적 현실주의를 떠올리게 한다"고 평하고 있다. 또한 문학평론가 강진호씨는 "최인석이 극단의 절망을 통해 참된 희망을 얻고자 하는 문학을 계속한다면, 언젠가는 한국문학이 아직 닿아보지 못한 어떤 미답의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