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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01. 고전문학과 풍류 02. 부채 이야기 03. 차를 마시며 04. 절의 정신 05. 문학과 여행 06. 이별과 문학 07. 책과 사람 08. 봄노래 09. 꽃의 문화사 10. 질병과 몸 11. 변방의 노래 12. 장마의 계절 13. 비온 뒤의 산을 오르며 14. 정원 이야기 15. 대나무 향기 속에서 16. 은거의 즐거움 17. 밤비 내리는 소리 |
金豊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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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과 풍류
‘흥興’이라고 표현될 수 있는 정신적 고양 상태는, 조선의 사대부들이라면 누구나 중시하는 하나의 미의식이자 미적 표현이었다. 그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멋’이요 ‘맵시’다. 표면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치장함으로써 표현되는 멋이나 맵시가 아니라, 정신적 승화 과정을 거친 후 표현되는 어떤 삶의 경지를 흥이라고 할 수 있겠다. ---p.28 부채 이야기 세상에 변하지 않는 인연이 어디 있겠는가. 부채가 낡아서 모습을 바꾸듯 우리 인연 역시 그렇게 변하는 것이다. 선물에서 시작해서 아득한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부채를 통해서 만물들과 나 사이의 인연과 변화를 다시 생각해본다. ---p.53 차를 마시며 차를 준비하고 물을 끓이면서 내 마음은 서서히 세상에서 벗어난다. 창밖으로는 흰 눈이 소리 없이 쌓이고, 간밤에 불던 거센 바람은 고요히 잠들었다. 아침 햇살을 받은 먼 산의 눈은 거실 창을 환히 밝힌다. 드디어 차를 우려내어 그 향기가 코끝에 스치고 아름다운 음악이 귓가에 맴돌면, 내가 앉아 있는 곳이 바로 깊은 산 속이며 한적한 바닷가가 되는 것이다. ---p.57 절의정신 무인의 삶은 언제나 그 너머의 드높은 정신경계를 꿈꾸었다. 힘만을 앞세운 무인이 아니라 몸과 정신이 조화를 이루어 그의 행동이 천하 만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이상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p.76 문학과 여행 인간의 몸은 작고 인생도 짧지만 호연지기를 길러서 우주와 하나가 될 수 있다면 그의 삶은 무한한 경지로 확대된다. 호연지기를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산을 오르는 것이다. 짧은 여행이라 해도 그 이면에는 철학적 차원의 밑그림이 전제되어 있다. ---p.94 이별과 문학 세상에 어떤 이별이 가슴 아프지 않으랴. 멀리 수자리를 살러 갔든, 정치적 상황에 의해 생이별을 했든, 혹은 죽음이 이승에서의 인연을 끊어놓았든, 이별은 언제나 개인의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세월이 흘러서 떠난 사람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그에 대한 그리움은 퇴색될 줄 모른다. ---p.118 책과 사람 문자에만 국한되어 하나의 단편적인 지식에 머무른다면, 그것은 독서의 본의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반복해서 읽음으로써 마음 깊이 새기는 일이 중요하며, 보아서 무언가를 얻고 마음에 깨달음이 다가오면 그것을 몸으로 체득하여 아는 것이 최종 목표다. ---p.126 봄노래 봄은 겨울을 넘어 우리 곁으로 왔지만, 그 봄이 언제나 아름답고 풍요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생명과 함께 죽음의 그림자를 함께 가지고 왔다. 어쩌면 생명의 그림자가 죽음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생명은 죽음과 동반자 관계에 있다. 살아 있는 인간의 숙명이 죽음에 연결되어 있듯이, 봄은 우리에게 삶과 죽음을 동시에 던져준다. ---pp.149~150 꽃의 문화사 꽃으로 인해서 봄이 봄답듯이, 꽃 시절로 인해서 우리 인생은 오래도록 빛난다. 꽃이라고 해서 언제나 화려한 것은 아니다. 인간의 시각으로 볼 때, 선뜻 다가서기 힘든 꽃도 있다. 그러나 어떤 식물이든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지점에 꽃이 있다. ---p.159 질병과 몸 뜻하지 않게 찾아오긴 했지만, 병 역시 내 몸을 찾아온 진귀한 손님이다. 손님을 푸대접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그를 맞아 잘 대접하다 보면 병은 어느새 친밀한 벗으로 변한다. 그 벗이 나를 죽음으로 데려갈 수도 있지만, 내 삶의 차원을 전혀 다른 곳으로 안내할 수도 있다. ---p.190 변방의 노래 문명의 중심에서 새로운 문명이 태동한 적이 있었던가. 새로운 문명의 빛은 언제나 변방에서 시작하여 세상을 뒤덮곤 했다. 자신의 문명에 심취하여 그것을 누리기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새로운 세상은 열리지 않는다. 자신의 세계에 틈을 만들고 그 틈새 사이의 새로운 길을 찾아서 모험을 떠나 방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자격이 있다. ---p.210 장마의 계절 품위 있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내게 주어진 현실을 넘어서 새로운 길을 찾으려는 열정과 용기에서 비롯한다. 맑은 날보다는 장마와 같이 현실적 불편함이 우리 삶을 에워싸고 있어서 온갖 꽃향기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인간의 향기가 빛을 발하는 법이다. ---p.227 비 온 뒤의 산을 오르며 세상의 굴레를 벗어나 자유로운 세계를 맛보고 싶은 사람은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 나는 어떤가. 그냥 그렇게 할 힘은 없으니, 이렇게 말로라도 계속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 말의 힘으로 언젠가 나도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말 속에서 희망을 찾아보는 일,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실천일 수도 있겠다. ---p.241 정원 이야기 정원쟀 변화를 통해서 계절의 변화와 함께 우주의 변화를 감지한다. 몸은 비록 좁은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의 마음은 천하와 함께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지를 저절로 터득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함과 깨달음 사이의 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이야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경지를 몸과 마음으로 체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오랜 기간의 수련과 공부가 있어야 가능하다. ---pp.254~255 대나무 향기 속에서 아무리 무거운 눈을 머리에 이고 대나무가 휘어졌다 해도, 눈이 녹으면 다시 곧게 하늘을 향해 허리를 편다. 외물外物에 의해 휘어짐은 잠시의 일이고, 곧게 서서 푸른빛을 드러내는 것은 평소의 모습이다. 우리의 삶도 그와 같아서,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할 때 잠시 휘어질지언정 평소의 모습은 곧고 싶다. 평생 이루지 못한 중생의 꿈이라 비웃어도, 나는 그런 모습을 꿈꾼다. ---p.270 은거의 즐거움 자발적 은거부터 비자발적 은거에 이르기까지, 거기에는 숨어사는 사람의 숫자만큼 많은 사연이 깃들어 있다. 때로는 풍류로,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원망으로 드러나는 삶이지만, 숨어 사는 사람들에게 상대항은 사람들의 욕망으로 가득한 속세다. 속세와 은거지 사이의 거리는 심리적인 것이지만 그 사이를 메우는 수많은 사연은 참으로 다채롭다. ---p.288 밤비 내리는 소리 바람을 따라 밤중까지 내리는 봄밤의 비에 만물이 피어나는 것 하며,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를 느끼는 그 마음이 어찌 그냥 얻어진 것이겠는가. 걸어가야 할 길은 캄캄하지만, 그래도 그 밤을 지새우고 새벽이 되면 붉은 꽃을 보리라는 희망. 그것이 우리의 힘든 삶을 버티게 하는 큰 격려가 아니겠는가. ---p.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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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신의 깊숙한 곳에 아름다운 무늬를 만드는 옛시 읽기의 즐거움!
■책소개 중국, 고려, 조선시대의 옛시들을 17개의 주제어로 분류, 정리한 한시 에세이 「옛시에 매혹되다」가 도서출판 푸르메에서 출간되었다. 30년 가까이 옛시를 읽고 공부해온 강원대 김풍기 교수는 자신이 처음 옛시에 매혹당한 순간은 물론, 옛 지식인들이 시와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온 사유의 기록들을 간결하면서도 감성적인 문체로 담아냈다. 「옛시 읽기의 즐거움」, 「삼라만상을 열치다」 등 인간미 넘치는 한시 에세이로 한시의 대중화를 이끌어 온 저자가 「옛시에 매혹되다」를 통하여 풀어낸 옛시 이야기는 전작만큼 따뜻하면서 선현들의 풍류의 향기는 한층 더 물씬 풍긴다. 젊은 날 방랑길에서부터 무심코 흰머리를 발견하는 현재까지 때로는 위로와 격려로, 때로는 시대를 바라보는 창으로, 때로는 성찰과 수행의 지침으로 저자 곁에 있어준 옛시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줄 것이다. 한시, 선현들의 일상을 투영하다 옛 지식인들에게 한시란 어떤 의미였을까? 계절이 오고 가는 때, 차를 끓이고 마실 때, 정인情人과 아픈 이별을 했을 때, 피고 지는 꽃을 볼 때, 질병이 몸에 찾아 왔을 때, 유배를 떠나거나 여행을 할 때, 늦은 밤 비가 내릴 때, 번우한 세상사를 피해 숨어 살 때에도 옛 지식인들은 시를 짓고 읽었다. 다산 정약용은 무더운 여름,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방법으로 「더위를 없애는 여덟 가지 일」이라는 시를 지은 바 있다. ?藪?諧度?炎구수의 우스개로 장마와 무더위 지내니 美人顔色隔重簾미인의 얼굴빛이 두터운 주렴으로 막혀 있다. 唯知競病全依律어려운 운자로 시 짓는 일 온전히 율격에 의지한 것 누가 알랴 忽訝戈波半露尖홀연 글자 획의 끝부분을 반쯤 드러내는 것 놀라워라. 思路望窮千里目생각의 길에서는 천 리의 눈을 다해 바라보고 疑山撚斷數莖髥의심의 산에서는 몇 가닥 수염 꼬아 끊는다. 不如自作詩千首내 스스로 천 수 시 짓느니만 못하니 難字還宜信手拈어려운 글자 손 가는 대로 집어내 본다. -정약용,「더위를 없애는 여덟 가지 일(소서팔사消暑八事)」중 제7수, '다산시문집' 권6 송단호시(松壇弧矢, 송단에서 활쏘기), 괴음추천(槐陰?遷, 홰나무 그늘에서 그네뛰기), 허각투호(虛閣投壺, 텅 빈 누각에서 투호놀이), 청점혁기(淸?奕棋, 맑은 댓자리에서 바둑 두기), 서지상하(西池賞荷, 서쪽 못에서 연꽃 감상), 동림청선(東林聽蟬, 동쪽 숲에서 매미 소리 듣기), 월야탁족(月夜濯足, 달밤에 탁족하기)에 우일사운(雨日射韻, 비오는 날 시 짓기)이 거기에 해당한다. 사람도 오지 않고 찾아갈 사람도 없는 무료한 장마철,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부러 어려운 글자를 넣어 시를 짓는 선비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듯 생생하다. 장대 같은 빗줄기를 바라보며 시를 짓는 선비의 모습, 이 얼마나 풍류 넘치는 광경인가. 꽃을 사람에 빗대어 표현한 작자 미상의 사설시조 또한 명편이다. 모란牧丹은 화중왕花中王이요 향일화向日花는 충효忠孝로다 매화梅花는 은일사隱逸士요 행화杏花는 소인小人이요 연화蓮花는 부녀婦女요 국화菊花는 군자君子요 동백화冬栢花는 한사寒士요 박꽃은 노인이요 석죽화石竹花는 소년이요 해당화는 갓나희로다 이 중에 이화梨花는 시객詩客이요 홍도벽도삼색도紅桃碧桃三色桃는 풍류랑風流郞인가 하노라. -작자 미상의 사설 시조 옛 지식인들은 당나라 황제들이 궁궐에 심어두고 즐겼다 하여 모란을 부귀의 의미로 읽었고, 한겨울에 피어난 매화는 절개와 지조를 상징한다 하여 욕망으로 물들었던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상징으로 삼았다. 지는 날까지 태양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를 뜻하는 향일화는 임금과 부모를 향한 충효의 마음과 닮았다 여겼고, 흰머리의 노인을 밤에만 하얗게 피는 박꽃에 비유했다. 석죽화와 해당화를 각각 어린 소년과 소녀로 빗대어 표현한 것도 재치 있다. 꽃 하나에도 깊은 의미를 담았던 선현들의 탐미적인 사유가 매력적이다. 이밖에 기대승이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를 하면서 지은 시 「글을 읽으며」나 재기 넘치는 여인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각박한 조선의 현실을 변방에서 나라를 지키는 남성에 빗대어 노래한 허난설헌의 「새하곡」과 같은 한시는 선현들의 삶을 투영시키는 대상이자 우아한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길이었다. 옛 지식인들의 삶과 생각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옛시 읽기는 이렇듯 즐겁고 매혹적일 수밖에 없다. 절제된 언어로 천 가지 감정을 전하다 감정이 짙어질수록 말은 짧아지고, 짧은 말에 함축된 깊은 의미를 깨달을 때 감동은 더 커진다. 은유의 미학을 잃어버린 거친 말, 미사여구에 둘러싸인 장황한 말, 자신의 이익만을 주장하는 배려 없는 말들이 범람하는 오늘날 「옛시에 매혹되다」는 절제된 언어 예술인 시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절절히 울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我兄顔髮曾誰似우리 형님 얼굴은 누구와 비슷했나 每憶先君看我兄선친 생각날 때마다 형님을 보았었지. 今日思兄何處見이제 형님 생각나면 어디서 뵈올까, 自將巾袂映溪行의관을 갖춰 입고 냇물에 비춰봐야겠지. -박지원,「연암에서 돌아가신 형님을 그리워하며燕巖憶先兄」 박지원의 이 작품은, 죽음이 가져온 이별을 담담하면서도 가슴 깊은 울림으로 잘 전해준다. 형님의 죽음이 슬프다거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다거나, 그립다는 등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단어는 거의 이용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작품을 읽는 순간 형님에 대한 박지원의 애정과 그리움을 가슴 뭉클하게 느낄 수 있다. 방황하는 이여 옛시를 읽으라! 방황 없는 청춘이 어디 있으랴만, 내 젊은 시절의 방랑길에 오랫동안 함께 했던 벗은 한시를 비롯한 수많은 옛시였다. 낯선 도시에서 나는 옛 지식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방랑길의 굽이들을 같이 넘었다. 힘든 줄 모르고 삶의 고비를 지났다면 상당 부분 옛시를 읽으며 지냈던 세월 탓이다. - 들어가는 말에서 방황하는 이가 어디 청춘뿐이랴. 무엇을 해야 할지 막연한 사람, 가고 있는 길이 자신이 그리던 길인지, 옳은 길인지 알 수 없어 괴로운 사람, 앞만 보고 달리다 문득 인생의 허무함을 느낀 사람 모두 길을 잃은 방랑자일 것이다. 방황의 시간을 걷는 우리에게 차 한 잔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가지고, 병에 걸리면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으며, 사회의 가장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덕을 지키며 뜻한 바를 위해 노력하면 길이 열릴 것이라는 저자와 선현들의 격려는 메마른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는 단비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