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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그렇게 마냥 착한 사람은 아니다
01 이게 사는 건가 기숙사 관리인 계기 논현동 사채업자 3부 이자의 늪 하루카, 그리고 가부키초 완제 공백기 호기심, 그리고 허락 결단과 태도 02 사는 게 직업이다 업과 멋 기자업 집으로 가는 길 테츠야 마스터 춘몽(春夢) 인테리어업 본업 이야기 기막힌 선물 어머니의 영업 03 이렇게 살아도 돼 편의점 인간 믿음의 힘 8평 삼각형 성냥갑 건물의 우메자와 씨 집으로 가는 길 경마하는 날 말차 아이스크림 연서 에필로그 이렇게 마냥 써내려 갈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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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급히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받지 않았다. 불과 해발 599미터짜리 다카오高尾산에서 불어오는 싸늘한 겨울 산바람이 살갗을 파고든다. 이날따라 배터리도 별로 없다. 전철카드는 아무 소용없다. 지갑에는 지폐 한 장 없다. 딸랑거리는 동전만 서너 개.
10분후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잠에서 깬 목소리다. “잠깐 잠들었어. 무슨 일이야?” “큰일났다. 지금 나 하치오지.” “뭐야? 종점까지 가버렸어?” “응… 어떡하지?” 아내는 잠깐 숨을 고르더니 슬픈, 아니 체념한 목소리로 말한다. “오빠 미안. 돈이 지금 하나도 없어. 카드 되는 택시를 타고와도 내 카드는 지금 한도 다 써서 안 될 거야. 기다렸다가 첫 전철 타고 오는 게 나을 것 같아.” “응,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 일부러 마지막은 활기차게 말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자 절망감이 엄습해 온다. 동전 서너 개를 합산해보니 130엔이다. 나이 34살 남자가 수중에 130엔밖에 없다. 웃음이 나왔다. --- 「집으로 가는 길1」 중에서 “내가 이 일한지 딱 8년 됐는데 그래도 네가 처음이야.” “뭐가요?” “이자 미리 갖다 주면서 외국 나간다고 사실대로 말하는 놈.” 그러면서 그는 내 커피 값까지 정말 오래간만에 같이 계산했다. 커피숍을 나와 헤어지는데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열심히 살아라. 넌 될 거야. 물론 돈은 꼭 갚고.”라며 격려까지 해줬다. 그로부터 십 수 년이 지난 후 우연찮게 만난 그쪽 세계의 프로페셔널 재일동포 사채업자에게 이 일련의 사채 경험을 말한 적이 있다. 그러자 그는 “햐, 요즘엔 안 쓰는 말이지만 사채용어 중에 센이치千一라는 게 있는데, 딱 네가 그런 케이스였네.”라며 “정말 운이 좋았던 거니까 두 번 다시 사채 같은 거 쓰지 마라.”라고 껄껄거렸다. ‘센이치’란 천 분의 1, 혹은 천 명 중 1명을 뜻하는 말이다. 빌려주는 사람, 빌리는 사람 양쪽 모두에 해당되는데, 사채업자가 천 분의 1의 확률로 어떤 사람한테 특별한 감정을 느껴 잘 해준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빌리는 사람이 천 분의 1의 희박한 확률로 착한 사채업자를 만난다는 뜻도 된다. 그때는 마냥 지옥같이 느껴졌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보니 최초이자 마지막이 될 사채거래에서 나는 천 분의 1의 확률을 기적적으로 뚫고 ‘천사’를 만난 것이었다. --- 「하루카, 그리고 가부키초」 중에서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보스가 파란 신호등을 기다리며 정면을 주시한 채 차분히 설명한다. “우리 할머니 이야기 너한테 안 했나? 우리 할머니도 생선 팔았는데 할머니는 아예 가게도 없이 장날이 되면 바구니에 생선 담아서 몇 리 길을 걸어가고 했어. 당시 국민학생이던 내가 몇 번이나 따라갔으니까 잘 알지. 그런데 우리 할머니도 영업 한 번을 안 했다. 그냥 장터 한구석에 돗자리 깔아놓고 가져가신 생선 늘어놓은 후에 파는 거야. 주무시기도 했고, 그 옆에 기대어 나도 할머니랑 같이 졸기도 하고. 그러다가 잠에서 깬 내가 심심해서 사람들한테 ‘생선 사이소!’라고 외치면, 주위 상인들은 웃지만, 할머니는 너 지금 뭐 하냐면서 화를 내셨거든. 부끄럽다 이거지. 당신도 부끄러운 일이라 여기시는데 귀여운 손자가 저러니 얼마나 창피하셨겠니? 네 어머니도 그런 심정이었을 거다. 아마…….” 말끝을 흐리는, 보스의 차분한 설명을 듣다 보니 정말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사실 어머니는 부끄러워했다. 당신의 몸에 항상 배어있는 생선 냄새를. 그 생선 냄새가 나한테 옮겨갈까 봐 가게도 오지 말라 했던 유년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 「어머니의 영업」 중에서 너와 처음으로 만났던 2009년 그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직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했던 너. 걱정도 했지만 너는 금방 홀로 섰다. 부모의 도움 없이, 고졸이라는 학력으로. 그 홀로서기에 내 행동과 생각과 인식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기를. 한국으로 떠난 지 몇 년이 되었지만 페이스북도 있고 카카오톡도 있다. 고민이 있을 땐 늘 그렇듯 ‘속상해’라고 보내라. 해결은 안 되겠지만 조금의 위안은 받을 수 있을 테다. 그리고 그렇게 세월은 흘러간다. 모든 게 순조롭게 해결되면 더 무료해지는 법이다. 문제가 생기고 해결이 안 되어 속상한 것을 털어놓으면서 위안 받고 기분이 조금 풀리면 그 에너지로 또 나아가고. 이 루틴의 ‘위안’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여전히 내가 담당할 테니 넌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살아가면 된다. 잘 살고 있다. 너는. --- 「연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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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그저 버티고만 있을 때
눈길이 닿은 타인의 이야기는 소소한 위로가 된다 이게 사는 걸까 싶다. 사는 게 일이다. 일하듯 살다 보면 늘 선택의 순간이 찾아와 발길을 멈춰 세운다. 이 책에는 기분 좋은 웃음도 있지만 좌절에 빠져 눈물 흘리던 시간도 담겨 있다. 순간을 버티고, 아파도 웃어넘기며 살아온 외국 생활 18년의 경험담이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가 당신에게 해결책이 되진 않겠지만 조금의 위안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세월은 흘러간다. 모든 게 순조롭게 해결되면 더 무료해지는 법이다. 문제 해결이 안 되어 속상하면 그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위안 받고, 기분이 조금 풀리면 그 에너지로 또 나아간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기지만, 우리의 이야기다. 어차피 ‘존버’해야 한다면 위트와 당당함으로, 남의 눈을 신경 쓰지 말고 영화를 전공하며 예술가의 꿈을, 시나리오에 담으며 대학 생활을 보낸 저자는 게임회사에 취직한다. 하지만 일본인 상사의 위태위태한 취미를 함께 즐기기 시작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눈물도 흘렸지만 특유의 긍정적인 발상으로 “이렇게 된 거 외국 생활이나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했지만 버티고 버텼다. 유흥업소 호객꾼, 음식점 아르바이트, 백수, 언론사 기자, 저널리스트, 생계형 도박꾼, 술집 바텐더를 거쳐, 이제는 인테리어 업체의 대표(라고 하지만 여전히 온몸으로 뛰는 막노동꾼이다) 일을 한다. 돌아보니 18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다. 어느새 곁에는 일본인 아내와 개성 가득한 아이가 넷이나 있다. 18년, 긴 시간이다. 혈혈단신 외국 생활이 고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래도 자존감과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졌다. 남의 눈을 신경 쓰기보다 지켜야 할 것을 지켰다.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일본 땅에서 중앙일간지(경향신문)에 칼럼을 연재했고, SNS 페이스북을 통해 이름이 알려졌다. 워낙 특별한 경험을 쌓아온 터라 그 경험담을 좋아하는 사람이 늘었고, 이제 별명 ‘노가다 뛰는 칼럼니스트’로 통한다. 밝은 면만을 부각하지 않았지만 애교처럼 자랑도 담겨 있다. 어두운 이야기에도 여유가 있고, 가슴 찡한 이야기에도 위트가 있다. 이 책은 지금도 ‘존버’ 중인 한 인간의 곁으로 드러나지 않은 진솔한 뒷면, 일과 업(業)의 이야기다. |